[치트패치] 술

단편 2020. 7. 11. 01:33

치트는 굉장히 억울하고 눈물 나고 화가 났다. 다짜고짜 무슨 일인가 따져본다면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간다.

 

4년이 지나면서 회식 한 번 안 열었던 걸로 유명한 패치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없었다. 특별히 술을 마시는 건 부하직원들이 꽤 큰 실수를 하거나 안 좋은 일이 터지는 날에 아주 가끔, 혼자서 구석진 골목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서였다.

 

그런 그의 말 상대가 되는 건 손님이 적어 한가한 술집 주인이거나 그 날 스트레스를 준 기억 속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만큼은 술집 주인도 상상도 아니었다.

 

이번 일은 꽤 스트레스가 컸는지 패치는 평소 조절하던 것보다 더 마시는 바람에 정신줄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마침 술집엔 마찬가지로 술이 약한 건지 아님 많이 마신 건지 패치와 술버릇이 비슷한 사람이 근처에 앉아있었다.

 

열심히 혼자 떠들다가 소리가 맞닿은 둘은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자기 할 말만 나열하기 바빴다. 대체 왜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아서 주루룩 무너지게 만들었냐, 대체 어떤 놈이 자꾸 자기네 차고 앞에다 차를 대냐 등등 만취한 이들의 속풀이 시간이었다. 둘의 곁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조금 더 흘러 저녁에서 밤이 되고 둘은 그나마 걸어서 집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술이 깨어 서로가 누군지도 모른 채 그대로 헤어졌다. 사실 누구였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집에 도착하고 더 중요한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런 미친...”

 

정말 어떻게 찾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패치는 옷을 갈아입는 동안 우연히 도청기를 찾았다. 잘못 봤나 싶었지만 술 취한 눈으로 봐도 명백히 도청기였다. 술이 확 깨는 걸 느낀 패치는 손에 쥔 도청기를 노려봤다.

 

누구나 다 알 듯이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은 치트였다. 하지만 패치는 알 리가 없었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자기 집에 도청기를 설치했을까. 최근에 집에 도청기를 심고 개인정보를 얻어 보이스피싱으로 돈을 챙기는 녀석들이 있으니 대처법을 설명하는 뉴스가 스치는 듯 했다.

 

여기서 보통의 패치가 했을 일은 도청기를 끌 수 있다면 끄고 경찰에게 신고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건 다시 강조하자면 보통의 패치가 했을 일이었다.

 

불행이라 해야 할지 지금의 패치는 술 취한 패치였다. 아무리 술이 확 깼다한들 여전히 취기는 남아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깜빵에 처넣어도 시원찮을 녀석을 어찌 골려줄까. 제정신이 아닌 머릿속에서 뉴스 뒤로 바로 스쳐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아까 전의 같이 일방적으로 떠든 술상대의 말이었다. 정말 왜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아뉘이이~!! 열시미 콤퓨타 뚜드리는 뒈에에~!! 왜 옆집 쉐끼드른 떡을 쳐서~!!”

 

요컨대 컴퓨터로 작업 중에 옆집 사람들이 있을 벽 너머에서 신음소리가 크게 들려와 깜짝 놀라고 민망했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제정신이 아닌 술 취한 패치는 도청기를 입에다 가져다대고는

 

아으..! 아앙..!!”

 

그 상황에 이 도청기를 설치한 범인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듣고 있던 치트는

 

대체 어떤 새낍니까!?!?!!!”

 

굉장히 억울하고 눈물 나고 화가 났다. 전혀 억울할 부분이 없지만 치트는 억울했다. 자기가 열심히 아끼고(?) 기대하던 딸기를 대체 누가 따먹는단 말인가!

 

참 신기하게도 바로 옆집이었지만 벽 너머로는 신음소리가 나지 않았다. 오직 도청기를 통해서만 들려왔다. 치트는 아주 자연스럽게 패치네 집 문을 따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한창 열심히 신음을 흘리다가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패치는 빨간 얼굴로 돌아봤다가 직장 조수가 서 있는 걸 보고 한 번 더 놀라면서 딸꾹질을 했다.

 

얼굴은 빨갛지만 가득한 술기운과 술냄새, 멀쩡하게 다 입고 있는 옷, 손에 쥔 도청기, 혼자 있는 패치.

 

상황을 파악한 치트는 언제 그렇게 분노를 담았냐는 듯이 싱긋 웃더니

 

우리 선배님~ 많이 쌓이셨군요~?”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와 패치의 옷을 천천히 잡아당기며 벗기기 시작했다. 너무 갑작스런 상황을 연달아 겪은 패치는 슬슬 자신을 감싸는 치트의 팔을 잡고

 

우웨엑!!”

 

그 날의 기억은 그렇게 술냄새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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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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