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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16. 8. 20. 23:21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느껴지는 한기는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울 지경이었다. 어차피 그 한기는 집주인이 들어선 이상 휴식이라는 이름 하에 움직이는 행동들로 인해 얼마못가 금방 물러날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말을 걸 상대는 없지만 TV를 틀면 말 할 필요 없이 소리가 텅 빈 방을 채워주기 일쑤였다. 그런 TV에서 나오는 소리와 모습을 보고 간혹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며 한순간 바라기는 했으나


"며칠간만 맡아주실 수 있으시겠슴까?"


이렇게 갑자기는 아니었다.


"갑자기 뭔가?"


"아아 비오는 날에 상자에서 냐옹냐옹 우는 게 안쓰럽지 않습니까~그래서 주워왔는데 저희 집에선 고양이를 키울 수 없어서 말임다."


"보통은 유기동물보호소에 맡기는 게 맞지않나."


"하지만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대로 눈을 감는 세상 아닙니까. 키우겠다는 주인을 찾는동안 맡아주시지 않겠슴까?"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사는 아파트에선 동물을 키우려면 주민들의 허락을 받아야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었고 몇 번 마주치지도 않은 주민이 어느샌가 작은 강아지를 끌어안은 채 집에서 나오는 것을 엘리베이터 틈 너머로 바라본 적도 있었다. 짖는 소리가 들려올 법도 하지만 만든지 오래되지도 얼마되지도 않은 아파트는 제법 방음이 잘 되어있었다.


"그럼 며칠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어느새 그의 품엔 갈색과 검은색이 섞인 얼룩무늬 고양이가 들려있었다.


"목걸이에다가 이름 이니셜까지 새겨넣은 걸 보면 키우려고 작정한 것 같은데..."


파란색 글자로 이니셜이 새겨져있는 빨간 목걸이를 보면서 말해봤자 이름을 붙였을 당사자는 이미 그의 품에 떠넘기고 가버린지 오래였다. 본인에게 붙여진 이름을 들었을 고양이에게 말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사자인 조수는 윗사람으로 인해 3일간 멀리 출장을 가게됐다는데 영 탐탁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보지만 평소라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을텐데 이번엔 신호가 전부 다 간 이후에도 받지 않는다. 얼마가지 않았을테니 쫓아가서 이름에 대해 물어볼까 싶었지만 늘상 먼저 다가오는 건 조수였고 오랜만 혹은 처음일지도 모를 정도로 찾아갔을 때 말 많은 조수의 입에서 나올 것은 겨우 고양이 이름에 발을 움직인 것에 대한 서운함일지 혹은 그만큼 고양이가 마음에 든 게 아니냐는 능글거리는 웃음일지 몰랐다. 물론 둘 다 듣는 순간 인상을 구기게 될 것이 뻔했다.


"어차피 며칠동안만 키울테니 "


한 살도 채 안되어 보이는 작은 고양이를 끌어안으며 그는 그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로 들어섰다.


"...이것도 안 먹는 건가."


내용물이 얼마 줄어들지 않은 사료봉지들이 잔뜩 널려있는 모습에 그는 조금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고양이의 입맛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작은 사료봉지를 산 그는 자신의 선택에 뿌듯함을 느껴야할지 까다로운 고양이 덕에 불어난 사료봉지들에 한숨을 쉬어야할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론 그에게서 가장 먼저나온 것은 다름아닌 한숨이었다.


"간혹 사료를 가리는 동물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더군다나 이렇게 심한 것도 처음 본다. 조금 먹어보고 고개를 돌리는 건 우습게도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했다. 아예 냄새만 맡고 거들떠도 안보는 사료들이 바닥에 널렸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드디어 마지막 한봉지를 뜯고 건넸을 땐 또다시 고개를 돌리는 고양이의 모습을 떠올렸으나


"애옹"


짧게 울음소리를 내고는 제대로 먹기 시작하는 모습에 그저 허탈한 웃음만이 나왔다. 그릇을 비운 고양이가 소파 위로 훌쩍 뛰어올라 몸을 웅크리는 건 금방이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다름아닌 먹다남긴 사료들이었다.


"거기 목걸이에 그대로 적혀있지 않슴까?"


드디어 연락이 통한 조수에게서 나온 대답은 이것 뿐이었다.


"이게 이름인가?"


"물론 이니셜입니다만 선배님이라면 분명 알아채실거라고 했는데...이거 정말 슬픕니다 흑흑.."


스피커 너머로 들려오는 우는 흉내에 헛웃음도 나오지 않는지 그의 얼굴은 그저 딱딱하게 굳어있다. 말로는 울어도 웃고 있을 게 뻔한 얄미운 조수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그는 빨간 버튼을 누르기 바빴다.


"애우웅~"


고양이는 애교는 없는 고양이었다. 하지만 혼자 있는 것은 싫었는지 나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따라나오기 시작했다. 그는 그런 고양이를 힐끗 돌아보고는 갈색이 섞인 조그마한 발이 현관을 넘어서기 전에 빠르게 문을 닫았다.


"이런..."


작업복으로 갈아입는데 눈에 띈 고양이 털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 작은 몸에 어떻게 이렇게 털이 많이 나올까 싶었다. 분명 나올때까지만해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말이다. 잠깐의 불평도 잠시, 밀려오는 일에 고양이 털은 어느샌가 신경쓰이지 않게 됐다.


"애오옹"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언제왔는지 바로 앞에 앉아있는 고양이를 밟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걷지만 움직이는 발 사이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게 여간 거슬리기 그지 없었다.


"잠깐만 비켜있어라."


점심을 고려해 미리 채워놓았던 그릇은 비어있었다. 다시 그릇을 채워놓은 후 늘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소리가 방을 채운다.


"애옹"


TV에서 나온 소리가 아닌 고양이 울음소리가 방 안을 약하게 휘저어놓는다. 어느새 그의 곁에 올라온 고양이가 파란 눈으로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는 말없이 고양이를 쓰다듬어줬다.





"정말 이런 걸 좋아하나?"


잘 휘어지는 막대 끝에 달린 부드러운 털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흔들기 무섭게 달려드는 고양이들을 많이 봐왔지만 까탈스러웠던 작은 고양이가 좋아할지는 알 수 없었다.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에는 집에오는 순간까지 막대는 그의 손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만 바로 쓰진 못했다.


"....앉을 수가 없겠군."


소파 한 가운데에 떡하니 자리잡고 잠이 든 고양이를 보며 그는 막대를 내려놓고 리모콘을 집어들었다. 또다시 TV소리가 방을 채운다.


"애옹"


울음소리에 돌아보니 언제 깨어났는지 모를 고양이가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파란 눈들이 서로를 마주본다. 그는 말없이 막대를 들고 리모콘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흐음~꽤나 마음에 든 모양입니다?"


그의 조수는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다. 고양이 장난감 용품을 둘러보는 그에게 건네는 말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나쁘지 않더군."


"까탈스러운 선배님께서 이렇게 마음에 들어하시다니~역시 제 마음이 통한겁니까?"


"자네 마음이 통한 게 아니라 고양이가 마음에 든 거네. 그리고"


이내 그는 빨간 목걸이를 능글맞게 웃는 조수에게 던졌다.


"그런 걸 달아놓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크게 뜬 조수의 눈과 마주한 파란 눈이 한차례 깜빡이는 것과 동시에 멀어져갔다. 빨간색 목걸이에선 빨간 불빛이 작게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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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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