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가 정신을 차린 건 자고 일어난 후였다. 사실 잤다기보단 거의 기절에 가까웠지만 깨어난 건 본인의 침대 위에서였다. 옷도 잠옷으로 갈아입혀져서 어제의 일이 마치 악몽 같았지만 몰아쳐오는 두통과 쓰린 속에 현실이라는 걸 잘 알게 됐다.
“일어나셨습니까?”
아닌가 꿈인가. 분명 어제 같은 부분을 여러 번 후려쳤는데도 치트의 얼굴은 멀끔했다. 치트는 패치의 시선을 눈치 채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다는 얼굴로 뺨을 감싸고는
“선배님의 손길이 닿은 거니 그대로 냅두고 싶었지만~ 일하는데 가서 보이면 직원분들이 맞고 사는 남편이라고 수군거려 선배님이 오해받으면 속상하지 않겠슴까~”
패치에게 있어서 더 속 터지는 오해는 단란한 부부 사이라는 오해였다. 그걸 모를 치트가 아니었지만 행복한 얼굴을 한 채 패치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으로 끌었다. 밖에 나갔다 왔는지 뺨은 꽤 서늘했다.
“어제 영화 재밌었죠?”
두통과 복통 때문에 축 늘어져있던 손이 뺨을 밀어냈다. 얼굴이 밀리는가 싶더니 몸은 멀쩡하게 중심을 잡고 있어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굉장히 얄미운 꼴이 되어버려서 패치의 속은 다른 의미로 아파졌다. 잡고 있는 손을 쳐낸 패치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아프시겠지만 죽이라도 좀 드시라고 사왔슴다~ 어제부터 밥도 변변찮은 것들만 먹고 다 토하기까지 했으니 기운 없을 거 아닙니까~”
그마저도 치트가 이불을 걷어버리는 바람에 패치의 속은 한층 더 아파오고 있었다. 패치의 상태가 영 아닌 걸 알고 있는 치트도 더 말을 걸진 않았지만 파리한 안색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왜...”
“네?”
“왜 그랬나...?”
“뭐가 말입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 패치는 기절하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치트는 선배님? 하고 다시 불렀지만 미약하지만 고른 숨소리에 잠들었다는 걸 눈치채고 또 잔다며 투정을 부렸다.
“어쩔 수 없죠~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이런 헛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한 치트는 사온 죽과 함께 방을 나갔다. 냉장고에 죽을 넣으며 패치가 무얼 물으려 했을까 생각하던 치트는 돌연 기분이 좋아져 또 웃었다. 멱살을 잡고 제 목으로 손을 옮겨주던 그 때에도 저런 질문을 했었다. 묻고자 하는 건 다르겠지만 말이 똑같은 걸 보면 여전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냉장고 안을 쭉 훑어보니 기본적으로 있는 계란과 어제 급하게 넣어놓은 반찬들 몇 가지 외엔 텅텅 빈 냉장고에 치트는 반사적으로 누구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모드양을 많이 부르긴 했나보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죽 사러 나가기 전에 냉장고를 보는 거였다며 작게 투덜거린 치트는 닫혀있는 문을 힐끔 보고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선배님~ 부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잠들어계십쇼~”
***
패치는 드물게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꽤 한정적이었는데 죽었다 살아나면 꾸는 꿈도 달라지는 건지 생전 처음보는 꿈을 꾸게 됐다. 꿈속의 패치는 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고 있는 패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꿈이었다. 간혹 꿈속에서 또 잠을 자서 꿈을 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얘기에 영향을 받은 꿈인가 싶었던 패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자고 있다면 내가 왜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지?
패치는 잠에서 깨기 전까지 계속 자고 있는 자기 모습만 보게 됐다. 꿈이 늘 그랬듯이 자고 일어나면 단순했어도 꽤나 흐릿해져서 기억이 제대로 안 나게 되는 게 꿈이었다. 꿈속에서 패치 자신은 어떤 얼굴로 자고 있었는지, 괴로워했던 얼굴이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는지 흐릿했다. 옷은 파랬던 걸 기억하면 수호대 복장일 듯 싶었다.
어쩐지 찝찝한 느낌에 다시 눈을 감던 패치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치트가 어디 나갔다 온 걸 눈치 챈 패치는 조심스레 일어나 조용히 문을 잠갔다. 일어나자마자 또 속이 뒤집어지고 뒷목이 당기는 건 사양이었다. 문고리가 덜걱거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베개를 던져주는 걸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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