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가 정신을 차린 건 자고 일어난 후였다. 사실 잤다기보단 거의 기절에 가까웠지만 깨어난 건 본인의 침대 위에서였다. 옷도 잠옷으로 갈아입혀져서 어제의 일이 마치 악몽 같았지만 몰아쳐오는 두통과 쓰린 속에 현실이라는 걸 잘 알게 됐다.

 

“일어나셨습니까?”

 

아닌가 꿈인가. 분명 어제 같은 부분을 여러 번 후려쳤는데도 치트의 얼굴은 멀끔했다. 치트는 패치의 시선을 눈치 채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다는 얼굴로 뺨을 감싸고는

 

“선배님의 손길이 닿은 거니 그대로 냅두고 싶었지만~ 일하는데 가서 보이면 직원분들이 맞고 사는 남편이라고 수군거려 선배님이 오해받으면 속상하지 않겠슴까~”

 

패치에게 있어서 더 속 터지는 오해는 단란한 부부 사이라는 오해였다. 그걸 모를 치트가 아니었지만 행복한 얼굴을 한 채 패치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으로 끌었다. 밖에 나갔다 왔는지 뺨은 꽤 서늘했다.

 

“어제 영화 재밌었죠?”

 

두통과 복통 때문에 축 늘어져있던 손이 뺨을 밀어냈다. 얼굴이 밀리는가 싶더니 몸은 멀쩡하게 중심을 잡고 있어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굉장히 얄미운 꼴이 되어버려서 패치의 속은 다른 의미로 아파졌다. 잡고 있는 손을 쳐낸 패치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아프시겠지만 죽이라도 좀 드시라고 사왔슴다~ 어제부터 밥도 변변찮은 것들만 먹고 다 토하기까지 했으니 기운 없을 거 아닙니까~”

 

그마저도 치트가 이불을 걷어버리는 바람에 패치의 속은 한층 더 아파오고 있었다. 패치의 상태가 영 아닌 걸 알고 있는 치트도 더 말을 걸진 않았지만 파리한 안색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왜...”

 

“네?”

 

“왜 그랬나...?”

 

“뭐가 말입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 패치는 기절하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치트는 선배님? 하고 다시 불렀지만 미약하지만 고른 숨소리에 잠들었다는 걸 눈치채고 또 잔다며 투정을 부렸다.

 

“어쩔 수 없죠~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이런 헛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한 치트는 사온 죽과 함께 방을 나갔다. 냉장고에 죽을 넣으며 패치가 무얼 물으려 했을까 생각하던 치트는 돌연 기분이 좋아져 또 웃었다. 멱살을 잡고 제 목으로 손을 옮겨주던 그 때에도 저런 질문을 했었다. 묻고자 하는 건 다르겠지만 말이 똑같은 걸 보면 여전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냉장고 안을 쭉 훑어보니 기본적으로 있는 계란과 어제 급하게 넣어놓은 반찬들 몇 가지 외엔 텅텅 빈 냉장고에 치트는 반사적으로 누구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모드양을 많이 부르긴 했나보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죽 사러 나가기 전에 냉장고를 보는 거였다며 작게 투덜거린 치트는 닫혀있는 문을 힐끔 보고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선배님~ 부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잠들어계십쇼~”

 

***

 

패치는 드물게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꽤 한정적이었는데 죽었다 살아나면 꾸는 꿈도 달라지는 건지 생전 처음보는 꿈을 꾸게 됐다. 꿈속의 패치는 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고 있는 패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꿈이었다. 간혹 꿈속에서 또 잠을 자서 꿈을 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얘기에 영향을 받은 꿈인가 싶었던 패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자고 있다면 내가 왜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지?

 

패치는 잠에서 깨기 전까지 계속 자고 있는 자기 모습만 보게 됐다. 꿈이 늘 그랬듯이 자고 일어나면 단순했어도 꽤나 흐릿해져서 기억이 제대로 안 나게 되는 게 꿈이었다. 꿈속에서 패치 자신은 어떤 얼굴로 자고 있었는지, 괴로워했던 얼굴이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는지 흐릿했다. 옷은 파랬던 걸 기억하면 수호대 복장일 듯 싶었다.

 

어쩐지 찝찝한 느낌에 다시 눈을 감던 패치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치트가 어디 나갔다 온 걸 눈치 챈 패치는 조심스레 일어나 조용히 문을 잠갔다. 일어나자마자 또 속이 뒤집어지고 뒷목이 당기는 건 사양이었다. 문고리가 덜걱거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베개를 던져주는 걸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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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집에 돌아온 패치는 술판을 벌였다. 밥을 먹으면서 술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간식들도 사오긴 했지만 사온 맥주들이 꽤 많아 밥과 함께 먹어야 했다. 그 결과 과자 봉지를 뜯기도 전에 제법 취했다. 그렇다고 멈추진 않았다. 작정하고 마시니 빈 맥주캔이 무서울 정도로 쌓였다.

 

거의 기계적으로 캔을 까고 마시는 걸 반복하다가 새로운 캔을 잡으려고 뻗은 손이 헛손질을 했다. 맥주가 전부 동이 났다. 아직 안 깐 새 캔을 찾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빈 캔들만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듯이 세워져있는 캔들도 있지만 다른 캔들에 밀려 쓰러져 다 마시지 않아 조금 남은 맥주를 뚝뚝 흘리는 캔들도 있었다. 엉망이었다.

 

하하...”

 

맥주와는 반대로 안주로 사온 과자들은 꽤 많이 남았다. 먹다가 제법 세게 쥐었는지 과자 부스러기들이 손에 남고 바닥에도 흩어져있었다. 엉망이었다.

 

하하하하...”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패치는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안 웃고 못 웃은 만큼 웃는 걸까, 웃길 일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그러다가 술은 평생치의 웃음을 끄집어내는 것도 모자라 집중력마저 빼앗아갔다. 패치는 일어나서 빈 캔과 과자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도 까먹고 거침없이 발을 움직였다. 과자를 밟았는지 작게 빠직 부스러지는 소리와 양말 밑이 거슬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을 연 패치는 어느새 웃는 것도 멈추고 멍하니 밖을 봤다. 영화보고 길거리에서 난리치고 돌아와서 홀로 술판까지 벌였는데 하늘은 빨간 부분도 없이 시퍼렇다. 이렇게 대낮에 술을 이렇게까지 많이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끝도 없이 웃음이 나올 줄 알았는데 파랗고 아득한 하늘을 보니 이상하게 나오던 웃음도 뚝 끊어졌다. 어쩐지 귀가 웅웅거리는 느낌에 패치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선배님...?”

 

도어락 소리는 미처 못 들을 정도로 웅웅거리는 상황에 저 선배님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선명하게 들릴까. 패치는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재수없게 매끈한 평소와는 달리 한쪽이 퉁퉁 부은 얼굴이 저기에 있었다. 어쩐지 패치는 그 얼굴이 너무 웃겨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부은 거에 더 해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시야 때문일까 저 얼굴이 찌푸린 걸까. 더 웃겨서 더 웃었다.

 

선배님 이게 무슨...”

 

아까부터 너무 웃어 가슴께가 아팠던 패치는 조금 수그리다가 뒤로 등을 기댔다. 난간은 날갯죽지를 아슬아슬하게 받치는 형태라 그 위는 휑했다. 어쩐지 난간에 닿는 부분이 간질간질해 이대로 뒤로 넘어가면 날아가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난간을 경계로 몸을 앞뒤로 흔드니 저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저기서 더 일그러질 수 있다니 너무 웃겼다.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패치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숨을 넘기며 몸을 완전히 뒤로 넘긴 순간, 몸이 앞으로 확 당겨졌다.

 

웃는데 온 힘이 쏠려서 그런지 감각이 둔했지만 어지러워지고 바로 아래로 내려간 시야 덕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건 패치 본인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이 휘저어놓은 머리는 웃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멈춰 세워 멍하게 만들었다.

 

“....이번엔...대체 왜...!!”

 

저 일그러지다 못해 터진 찐빵이 뭐라 소리치고 있는데 들리질 않는다. 눈만 도륵 굴려 위를 보니 찐빵 속의 노란 무언가랑 마주쳤다. 모든 게 흐릿한데 저 노란 건 유독 선명했다.

 

왜 저를 이렇게 실망시킵니까 왜!!”

 

실망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곱씹었다. 하지만 상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억센 손이 패치의 멱살을 붙들어 매었다.

 

그래요. 기대조차 안 하는 게 나았겠죠! 하지만 전 절망 밑에 더 한 실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과연 선배님이에요, 선배님에게 비롯된 모든 건 제가 생각한 모든 것도 모자라 제가 몰랐단 부분마저 뛰어넘는군요. 그것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마저!!”

 

실망을 곱씹던 패치는 천천히 눕혀지는 걸 느꼈다. 곧이어 멱살을 잡던 두 손이 천천히 타고 올라와 목을 감싸는 걸 느꼈다. 이걸 느낀 건 두 번째였다. 곧이어 손끝으로 힘이 가해지는 걸 느낀 패치는 주먹을 꽉 쥐고 부은 자리를 한 대 더 후려쳤다.

 

뻐억! 제대로 들어간 소리와 함께 패치는 술이 확 깼다. 천천히 돌아오려는 고개에 맞서 주먹을 한 차례 더 휘둘렀다. 송곳니가 입술을 찢었는지 치트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자네가 감히 왜 실망을 논하나?”

 

패치는 제 목을 감싸 쥔 손목들을 붙잡아 꺾었다.

 

예전에 이미 한 번 말한 것 같지만 실망은 내가 했네.”

 

그대로 치트를 밀쳐서 일어난 패치는 치트를 내려다봤다. 노기를 띄어 형형하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흐리멍텅한 눈이 보였다. 그런데도 시선은 절대 패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선을 피해 흔들리는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 문을 단단히 잠근 패치는 변기통 앞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그대로 속을 게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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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은 것과 배가 고픈 건 별개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텅 빈 위장이 배고픔을 호소했다. 패치는 바깥으로 나오면서 바로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려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기 직전, 제 손을 잡아끄는 힘에 안으로 한 발 내딛지도 못했다.

 

배고프시죠? 근처에 아는 맛집이 있으니 거기로 가죠.”

 

대체 이 근처에 자네가 아는 맛집이 왜 존재하나?”

 

선배님께 맛있는 걸 먹이기 위한 저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는 반대로 잡아끄는 힘은 꽤나 강압적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드러날 정도로 심사가 뒤틀렸다는 걸 느낀 패치는 덩달아 짜증이 올라오는 한 편, 무엇이 치트의 신경을 건드렸을까 궁금했다.

 

파스타 좋아하십니까?”

 

아니.”

 

여기 파스타가 맛있습니다. 들어가죠.”

 

귓등으로도 안 들을 거면 대체 뭐하러 묻는 건가?”

 

선배님도 제 말을 들어주시지 않잖습니까?”

 

들어야하나?”

 

패치는 끌려가는 힘에 저항하며 자리에 우뚝 섰다.

 

내가 자네 말을 들어야하나?”

 

치트는 천천히 돌아봤다. 뒤틀렸던 심사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얼굴로 웃으면서

 

이미 두 번이나 들어주셨죠.”

 

곧바로 그 얼굴 위에 주먹이 꽂혔다. 머리가 흔들리면서 몸도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지만 꽉 쥔 손이 끝까지 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 붙들었다. 주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같은 자리를, 다른 뺨과 눈 위, 이마, 코 전부 때렸다. 코피가 터지고 피멍이 들면서 부풀어 올라 얼굴이 흉하고 아프게 일그러졌다. 그런데도 행복이 가득 담긴 웃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멱살이 아닌 손을 잡고 있었다. 때린 횟수가 10번은 넘었음에도 바로 붙잡아 제압하는 억센 손도 없었다. 과거의 영광을 액자에 기리던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닌, 사람들이 지나가고 뒤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 실외였다.

 

자네는 지금 주저앉아있지.”

 

.”

 

보라머리 끄나풀도 없고.”

 

.”

 

지나가는 사람들 전부가 증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일세.”

 

.”

 

입술 바로 옆 또한 때렸는데 나오는 대답은 뭉개지지도 않고 선명했다.

 

그런데도 똑같군.”

 

그렇습니까?”

 

행복이 더 깊어졌다. 치트만 행복했다. 패치는 쥐고 있던 손을 내동댕이쳤다.

 

원래도 그랬지만 앞으로 밥은 따로 먹게.”

 

패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지 않고 유일하게 다른 말이지만 둘 사이를 이루는 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손이 욱신거렸다. 무언가를 던지거나 묶는데 익숙했던 손은 의외로 때리는데 어색했다. 패치는 손이 느끼는 고통에 집중하면서 영화가 끝난 이후의 상황을 쭉 되짚어봤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다. 치트는 이미 미친 새끼였고 앞으로도 계속 미친 새끼였다. 미친 새끼의 심사가 뒤틀린 원인을 찾는 것만큼 의미가 없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 미친 새끼가 이혼도 불가능한 법적 혼인신고 상대에다 적어도 1년간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면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거였다.

 

편의점의 가장 큰 장점은 번화한 도시라면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었다. 횡단보도 건너고 한 골목 꺾으니 또 다른 편의점이 바로 나타났다. 이번 편의점은 방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도시락 하나와 마른 간식들 두어개를 집은 패치는 잠시 카운터에 올려두고 바로 냉장고로 향했다.

 

미친 새끼를 이해할 순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친 새끼의 반응은 끌어내고 볼 수 있다.

 

패치는 맥주를 종류별로 하나씩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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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급하게 영화를 잡으시다니, 그만큼 저랑 데이트를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는 재미는 없어졌지만 선배님의 마음은 덕분에 아주 잘..., 아픕니다~ 그리고 운전 중이니 놔주십쇼~”

 

운전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 덕에 패치는 순순히 잡고 있던 치트의 머리를 놨다. 그나마 예매한 곳이 가까운 영화관이었지만 나가는데 준비하는 시간 때문에 조금 빠듯했다. 지금 들어가면 광고가 주구장창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표를 뽑은 패치가 상영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치트가 붙잡았다.

 

저희 아침도 아예 안 먹었는데 팝콘이라도 사가는 게 어떻습니까?”

 

필요 없네.”

 

여기 커플세트A 주십쇼~”

 

제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행태에 패치는 혀를 차며 바로 상영관으로 향했다. 잠시 떨어진 지금 상황에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양손에 콜라와 품에 팝콘을 안은 채 바짝 붙어오는 치트에 패치의 속은 다시 불편해졌다.

 

한가한 시간대여서 그런지 아니면 영화가 인기 없는 축에 속하는지 빈 자리가 꽤 많았다. 가까운 영화관에 가장 가까운 시간대의 영화를 마구잡이로 고른 거라 재밌을지는 사실 패치도 몰랐다. 언제든 뛰쳐나가기 좋게 복도 바로 옆 자리에 앉은 패치는 광고만 묵묵히 봤다. 콜라를 건네도 받지 않자 컵홀더에 내려놓고 옆 자리에 앉은 치트는 패치의 얼굴만 열심히 쳐다봤다. 그러기를 5분 후, 비상구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를 끝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재미없었다. 왜 빈 자리가 많았는지 바로 납득이 될 정도로 뻔하고 어디선가 많이 본 요소들이 뒤죽박죽 섞여있었다. 영화 10분 만에 재미없는 걸 느낀 패치는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을 꾹 참았다. 그렇게 꾹 참다가 조력자가 어디서 많이 본 이중인격 박사의 모습으로 변했을 때 결국 눈을 감았다.

 

선배님~ 자는 겁니까?”

 

안 자네.”

 

치트가 작게 소곤거리자 패치는 곧바로 대답했다. 하지만 눈은 뜨지 않고 있었다. 그대로 가만히 있자 고개를 가까이 붙였는지 바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패치는 결국 눈을 떴다. 바로 옆에 바짝 달라붙은 얼굴을 밀어내곤 다시 영화를 보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날 사랑해서 이런 일을 벌인 거라고?]

 

왜 하필 저런 대사가 나오는 거지.

 

앞 내용을 그냥 넘기는 바람에 처음 보는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그 사람은 칼을 주인공에게 겨누고 있었다. 완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날의 말이 떠올라 눈만 굴려 옆을 보니 치트도 방금 나온 대사가 흥미로운지 고개가 앞쪽을 향해있었다.

 

칼을 든 사람이 곧이어 웃어대기 시작했다. 실성한 태도에도 주인공은 칼이 무서운 건지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은 칼에 집중이 되더니 가슴으로 직격했다. 그런데 찌른 가슴은 칼이 잡은 손과 연결되어있었다.

 

[이게...대체 무슨...]

 

[내 복수야...]

 

이게 대체 무슨 영환가. 곧이어 칼을 급하게 뽑는 손길에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랐다. 원래 칼 같은 날붙이에 찔리면 뽑지 않는 게 당연한데 저긴 그렇지 않아보였다. 결국 남은 사람이 절규하며 화면은 페이드 아웃되고 곧이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고 있었다.

 

재밌는 영화를 골랐어도 제대로 보기는 힘들었을 테지만 제대로 본 마지막 장면이 저런 건 영 아니었다. 안 그래도 안 좋던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옆으로 눈을 굴리니 치트의 표정도 굳어있었다. 완벽이니 뭐니 전혀 공감 못할 찬양을 해댔으면서 영화가 최악인 건 남들 느끼는 것처럼 느끼는 듯 싶었다.

 

이제껏 본 영화들 중에 최악이네요.”

 

공감했으나 패치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만약 조금이라도 긍정의 말이 나온다면 굳은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샐쭉 웃으면서 역시 우리의 마음은 같다며 입을 털어댈게 훤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은 어떠셨습니까?”

 

치트의 질문에도 패치는 입만 꾹 다물었다. 식은 팝콘이 쓰레기통으로 와르르 쏟아지고 얼음이 녹아 잔뜩 축축해진 종이컵도 함께 들어갔다. 그 때까지도 조용했다.

 

선배님.”

 

화장실도 지나쳐 앞서 나가던 패치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그러나 돌리진 않았다.

 

선배님은 어떠셨습니까?”

 

질문은 같았다.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더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라도 대답해주시죠.”

 

내 대답이 중요한가?”

 

짜증이 올라온 패치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쳐냈다. 그런 패치의 반응에 치트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체 어느 포인트가 저렇게 기분이 좋아질 포인트인지 알 수 없는 패치는 눈을 더 찌푸리며 덧붙였다.

 

대신 이해는 될 것 같더군.”

 

말도 상식도 통하지 않는 끔찍한 사람과 단 둘이 있는 건 고역이었다. 그렇기에 영화 속의 등장인물은 자살을 택했겠지. 그 끔찍함과 고역은 이해가 갔다. 다만 칼을 휘두를 방향은 반대였을 거다.

 

치트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까보다 더 심각한 충격이 담겨있었지만 패치는 제대로 보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어깨를 또 잡히지 않기 위해 빠르게 자리를 떴다. 사람이 많은 영화관이라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지만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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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밤중에 청소를 하고 망가진 데를 고치느라 결국 늦게 잘 수밖에 없었던 패치는 늦은 아침에 일어났다. 깊게 잠들지도 못해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나가니 분명 패치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늦게 잤을 원흉은 아침밥까지 차려놓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분명 뭘 먹지도 않았는데 토기가 올라오는 느낌에 패치는 뒤로 물러나며 다시 방문을 닫았다. 그러자 바로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선배님~ 또 창문으로 나가시는 거 아니죠~?”

 

그럴 생각 없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졌다고 쏘아붙일 뻔 했지만 가까스로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대답이 없자 바로 문고리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오우! 바로 앞에 서 계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패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치트만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만약 문이 잠겨있었다면 창문 밖으로 나갔을 때처럼 바로 문을 부쉈을 게 훤했다. 패치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분노를 꾹 참고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좋지 않은 말들을 꾹꾹 누르느라 입매가 굳어있었지만 눈은 빠르게 치트의 반응을 훑어보고 있었다. 왜 멀뚱히 서 계시냐, 배고프실 테니 어서 식사하러 나오라 등등 말은 많이 하는데 손을 뻗진 않았다.

 

선배님?”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이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는 게 이상한지 불러보지만 패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곧이어 여보, 달링, 허니 등등 패치의 인내심을 긁어내리는 호칭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국 발차기가 한 번 동원된 후에야 오그라드는 호칭들이 사그라들었다. 치트의 입이 완전히 다물어진 후에야 패치가 입을 열기를

 

영화 보러가지.”

 

?”

 

스스로가 생각해도 꽤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입을 멈추지 않았다.

 

, 조건이 있네.”

 

뭐라 더 물으려던 치트가 입을 합 다물었다. 지금 되도 않는 소리를 꺼내면 지금 이 기회가 날아가는 건 물론이고 다시는 패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무슨 핑계를 대든 내가 있는 방에 멋대로 들어오지 말게.”

 

아침은 드셔야죠~”

 

나가.”

 

제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어쨌든 멋대로 들어오지 않는 게 조건이라니 쉽네요~”

 

들어오게 해달랍시고 하루 종일 문을 두드려대거나 그에 준하는 개수작을 벌일 생각 말게. 그것들 포함해서 말하는 걸세.”

 

영화 한 편엔 좀 비싼 거 아닙니까~? 전 영화보단 계속 우리 여보를 더 볼 수 있는 시간이 중요한...”

 

바로 방문이 닫히기 직전에 막은 치트는 빠르게 외쳤다.

 

한 번으론 너무 대가가 큽니다! 그러니 데이트 횟수라도 늘려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그 입에서 공평이라는 말이 나올 줄이야. 공평하게 가려면 자네는 지금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지금 저희는 부부관계잖습니까! 사실 각방도 너무..., ! 선배님 닫지 마십쇼! 저 손가락 잘립니다!!”

 

차려놓은 밥은 진즉에 식었고 거기에 더 해 이미 아침이 아닌 시간까지 실랑이를 벌이던 둘은 이번에 영화를 같이 보는 대신 멋대로 들어오지 않는 것, 노크는 최대 세 번으로 제한을 두는 걸로 타협했다. 거기에 응답을 할지 안 할지는 패치의 마음대로였다.

 

그럼 어떤 영화를 보실지 같이 골라볼까요?”

 

이미 정해놨네.”

 

오우! 이렇게 적극적이시다니 감동 받았지 뭡니까~ 시간과 날짜는 언제로 할까요?”

 

핸드폰을 꺼내든 패치는 시간을 확인하고 툭 던지듯이 말했다.

 

나갈 준비하게.”

 

?”

 

이제 두 시간 남았군.”

 

그리고는 태연히 치트를 밀어내며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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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잠들었던 패치는 침대 한쪽이 푹 꺼지는 느낌에 깨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당연하게도 치트의 얼굴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바로 얼굴을 찌푸리며 베개를 던졌을 테지만 반쯤은 잠에 잠겨있어 꿈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꿈은 참 특이했다. 현실과는 달리 굉장히 낯선 모습으로 있었다. 항상 둥글게 휘어지던 검고 노란 건 뒤집어 놓은 도끼마냥 유난히 섬뜩해보였다. 멍하니 보고 있으니 검은 게 점점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커지는 것들 중에 가장 먼저 다가온 건 쭉 뻗은 갈퀴였다. 그 갈퀴는 곧이어 패치의 목을 감싸 쥐었다.

 

순식간에 불쾌감이 치솟아 손목을 잡아챈 패치는 그대로 꺾어버렸다. 이제 멍한 얼굴이 된 건 치트였다. 아플 법한 손목을 멍하니 보던 눈이 패치의 시선과 마주친 순간

 

일어나셨습니까, 선배님~?”

 

순식간에 현실로 돌아왔다.

 

바로 얼굴을 구긴 패치는 쥐고 있던 팔을 던졌다. 생각보다 힘이 꽤 들어갔는지 한차례 허우적거린 치트는 기어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침대 아래로 떨어졌다. 패치는 그 틈에 바로 문을 살펴봤다. 문 자체는 이번엔 멀쩡했지만 잠금장치가 한 눈에 봐도 맛이 가 있었다. 망가진 고철덩어리들을 쏘아보던 눈이 침대 아래의 원인에게로 향했다.

 

아픔다~! 저 좀 일으켜주십쇼~”

 

왜 멋대로 들어왔지?”

 

우선 저 좀 일으켜주시면 안 됩니까~?”

 

같잖은 엄살 부리지도 말고 얼른 대답해.”

 

매정하심다~! 이 팔에 멍든 것 좀 보십쇼!”

 

치트는 울상을 지으며 패치가 꺾은 팔소매를 걷었다. 쥐었을 때의 모양 그대로 멍이 꽤 크게 들어있었다. 둥근 눈꼬리 끝에 눈물이 맻혀 떨어지는 걸 보면 아픈 게 엄살은 아닌 듯 했지만 패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다른 쪽 팔은 장식인가? 꼴사납게 바닥 뒹굴면서 대답 피하지 말고 당장 말해.”

 

치트는 울상지은 표정 그대로 천천히 일어났다.

 

들어오니 너무 조용해서 이번에도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을까 너무 걱정되지 뭡니까? 그래서 부득이 하게 들어와서 확인했습니다.”

 

패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쏘아보는 모습을 유지하며 치트의 모습을 쭉 훑어보았다. 방금 온 게 사실인지 치트는 나갔을 때 걸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손들은 팔목을 쥐고 돌리고 있어서 손바닥은 보이지 않았지만 손등엔 상처가 없어보였다. 잠깐 사이에 훑은 기색을 눈치 챈 건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선배님이 꺾은 팔이 너무 아픔다~ ~ 해주십쇼!”

 

패치의 눈이 순식간에 가늘어졌다. 나머지 팔도 마저 꺾으면 조용해지지 않을까 싶어 멀쩡한 팔을 훑자 시선의 뜻을 눈치 챘는지 치트가 슬그머니 일어나 살살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그럼 내 목은 왜 쥐려고 했지?”

 

너무 조용히 주무시고 계셔서 순간적으로 살아있나 확인해보려 했습니다~”

 

대체 사고방식이 어떻게 되어먹었길래 살아있는 걸 확인하려고 목을 쥐려한단 말인가. 패치는 절대 저 말을 믿지 않았다. 죽은 것과 살아있는 건 척 봐도 구분이 되는데다 살아있는 걸 확인할 땐 보통 코나 입에 손을 대보면서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트가 쥐려던 손은 맥을 재기 위한 힘이 아니었다.

 

그보다 진짜 호~ 해주십쇼!”

 

내가 왜 그래야하지? 멋대로 방에 침입하고 내 목까지 조르려던 녀석한테.”

 

조르려다니! 억울함다!! 절대 아님다!!”

 

보아하니 치트에겐 순순히 나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있으면 계속 저 징징거림을 들어야하는 건 물론이요 뒤에 이어질 희롱들로 인해 속이 더 긁힐 게 훤해 패치는 주변에 있는 물건들 중 단단하고 던지기 쉬운 걸 찾기 시작했다. 그런 패치의 행동 의미를 눈치 챈 건지 아닌지 그의 손이 서랍장에 닿는 순간 치트는 결국 한 마디 했다.

 

부탁드립니다, 여보~”

 

그 날 치트는 진짜로 죽을 뻔 했고 쓰레기장엔 부서진 서랍장이 마저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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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장을 갔다 온 패치는 지친 얼굴로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핸드폰을 다시 켜 봐도 수호대에서 연락 온 건 없었다. 고요한 메시지 창을 끄고 뉴스들을 쭉 살펴봤다. 수호대에 대한 뉴스와 기사는 차고 넘쳤다. 그 중 최신 뉴스들을 쭉 살펴보니 수호대와 연관이 없어보이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페이지를 누르니 곧바로 영상이 재생됐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균열로 인해 주위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거대한 균열을 막을 방법이 없어 이 앞은 전부 봉쇄되었습니다.]

 

데몬갓챠처럼 어딘가에서 균열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척 보기에도 척박한 땅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수액체 뿐만 아니라 상어의 하반신도 집어삼킨 균열을 떠올리며 영상을 끈 패치는 다른 뉴스들도 마저 찾아봤다. 그닥 소득은 없었다.

 

화면을 끄는 순간 알림이 울렸다. 문자였다. 다시 켜서 내용을 확인하니

 

[밥은 드셨습니까?♥♥]

 

패치는 핸드폰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유 모를 결혼 거래엔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나는 이혼 금지였다. 치트는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이혼하자고 할 패치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간은 평생이었다. 당연히 패치는 반발했지만 치트는 절대 굽히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바로 별거 금지였다. 이것 또한 패치의 반발을 일으켰다. 앞선 조건과 같이 절대 굽힐 생각이 없었던 치트였지만 이미 한 번 죽었던 패치의 사고는 앞선 조건에 대한 스트레스와 결합해 극단적인 선택을 도출해냈다. 그에 둘은 합의 끝에 결혼식을 올린 후 1년 동안 별거 금지로 타협을 봤다.

 

이 별거 금지엔 집만 안 구하고 1년 동안 호텔이나 여관에서 머무르는 꼼수를 막고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숙박할시 사흘을 넘기지 않고 어디에서 숙박하는지 알린다는 조건 또한 달렸다. 짜증이 극에 달했던 아까 전이었으면 조건이고 뭐고 잠적을 생각했겠지만 진정된 지금 패치는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건지 의문에 빠졌다.

 

물건들을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시 나갔다 들어오고 정리됐을 때도 전부 쓰레기봉투에 넣을 때까지도 무언가가 붙어있진 않았다. 그랬기에 패치는 물건들을 전부 버렸다.

 

아까 쭉 둘러봤을 때 치트의 방에서도 크게 특이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건 없었다. 굳이 꼽는다면 패치가 들어와서 살펴볼 걸 예상하고 행복한 부부의 생활이나 그 부부의 뜨거운 밤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보란 듯이 꽂혀있던 책장 외엔 없었다.

 

짜증을 이어갈 기력도 없었다. 이 방만큼 뒤집어엎는 게 의미 없는 곳이 없다는 걸 잘 아는 패치는 창고로 가 공구상자를 꺼내와 제 할 일을 했다. 새로운 문에 보다 더 튼튼한 잠금장치가 걸렸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감이 없잖아 있어 패치의 마음은 더욱 가라앉을 뿐이었다.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순간이었다.

 

[혹시 로맨스 영화 좋아하심까~?]

 

패치는 한편으론 순수하게 감탄했다. 더 이상 짜증이 일어날 자리도 없을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일일이 짜증나게 할 수 있을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혹시나 예기치 못한 일이나 사고가 터져 급하게 휴가가 끝날까 싶어 켜뒀지만 치트 혼자서만 간 걸 보면 그럴 일이 없다고 판단한 패치였다. 치트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수호대에서도 찜찜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패치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뜬금없이 커피가 끌렸고 마침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주문해놓고 못 마신 커피의 영향도 있었다. 비록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거였지만.

 

물이 끓는 동안 패치의 머릿속은 오늘 하루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치트가 오기 전까지 지금과는 달리 정신없이 들어와 앉아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조금 더 올라가니 외침과 함께 각이 진 사람들을 봤을 때였다. 그 위로 겹쳐지는 비난에 눈을 감던 패치는 비명소리를 듣고 퍼뜩 놀라 일어섰다.

 

삐이이 김을 올리며 울리는 주전자 소리였다. 먹먹함에 잠겨있던 패치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컵에다 물을 부었다. 숟가락을 가져와 마저 섞던 패치는 수호대를 떠올렸다. 수호대는 비난 여론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복구와 관련된 일들만 보도했다. 그에 대놓고 꼬집은 인터뷰가 있었지만 임원진들은 묵묵부답으로 행동했다.

 

패치는 궁금했다. 왜 치트만 부른 것일까.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임원진들도 알 게 훤했다. 치트가 이번 멸망의 원인이라는 걸. 기술을 독점하는 만큼 정보 또한 탐욕스럽게 찾고 쥐는 이들이었다. 알게 된 이들이랑 다르게 제 기억에 없다 해도 알아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왜 이제야 부른 걸까. 물론 그동안 수호대가 바쁘긴 했다. 죽음으로 묻어있던 일들이 부활과 함께 관에서 나왔으니. 하지만 사람을 부르는 건 별개였다. 한동안 사람 하나 부르기 힘들 정도로 파고드는 눈들이 매서웠을까? 그럴 만한 사람들을 추려내던 도중 패치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가슴을 더듬었다. 방금 탄 커피는 입으로 갈 일도 없이 싱크대에 부어졌다. 패치는 다른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켜봤지만 어느새 방전되어 전원이 꺼져있었다.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간 패치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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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몸을 험하게 다룹니까?”

 

자네는 몸을 험하게 다룰 수가 없어서 멀쩡한 물건들을 험하게 다루나?”

 

몸을 험하게 다루는 것보단 낫죠~”

 

결국 지치는 건 패치였다. 소파에 완전히 기댈 정도로 힘이 빠진 패치는 은근슬쩍 제게 기댈 수 있게 감싸대는 치트의 팔을 밀어내며 뒤로 더욱 체중을 실었다.

 

저랑 영화 보러 가지 않겠습니까?”

 

패치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저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나올 말인가? 그런 눈빛에도 치트는 아랑곳 않고 핸드폰으로 최신 로맨스 영화를 검색하고 있었다.

 

지금 그딴 말이 나오나?”

 

모처럼의 휴가이니 말이죠~ 이대로 보내긴 아쉽잖습니까.”

 

휴가고 뭐고 집안 꼴을 이딴 식으로 만들어놓고...!”

 

사람 불러서 치우면 됩니다~”

 

패치는 이대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랬다간 맨발로 어딜 가냐며 신발을 들고 쫓아올 모습이 그려져 아득한 심정이 되어 그대로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냈다. 몸이 안 좋다면 오늘은 쉬고 내일 가자는 헛소리가 나오자 패치는 눈을 감은 채 발로 찼다.

 

패치는 머리가 핑 도는 걸 느꼈다. 아침에 깬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 게 없었고 짜증과 분노를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걸 눈치 챘는지 부드러운 어투로 밥이라도 들지 않겠냐 했지만 패치는 들은 척도 안했다.

 

선배님~?”

 

꺼져, 좀 꺼져!”

 

남아있는 짜증을 쥐어짜며 다시 발을 휘두르자 치트는 그제서야 물러났다. 그 순간 전화벨소리가 울렸다. 패치의 벨소리는 아니었다. 잠깐 웃던 치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고 어질러진 방 근처를 피해 부엌 쪽으로 갔다. 패치는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느낌에 찬찬히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일이 터졌다네요. 영화는 아쉽지만 일단 식사라도 꼭 챙기세요, 선배님.”

 

?”

 

패치는 제 주머니를 더듬어봤다. 분명 핸드폰이 있는데 문자 알람조차 없었다.

 

패치가 뭐라 더 물어볼 새도 없이 치트는 식사를 챙기라는 말을 한 번 더 하며 그대로 출근했다. 현관문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패치는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엉망진창인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닫는 건 모두 열려있고 망가져있기까지 했다. 급하게 여느라 밖으로 튀어나온 것들을 제외하면 물건들은 그대로 있었다. 하나하나 꼼꼼히 물건들을 확인한 패치는 덜렁거리는 창문으로 다가갔다. 걸어놨던 밧줄은 끊겨서 묶인 부분만 거의 남아있었다.

 

패치는 따로 치우지 않았다. 엉망인 상태 그대로 두고 방을 나와 집을 쭉 둘러봤다. 그리고는 그대로 집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한 패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나오기 전의 광경이 상상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부의 상태가 멀쩡한 상태로 되돌려져있었다.

 

부서진 문은 멀쩡하게 달려있었고 바닥에 가득했던 톱밥들과 파편들도 싹 사라진 상태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옷장문과 창문도 멀쩡했고 마구잡이로 열어서 어질러진 물건들도 제자리에 놓여있었다.

 

나가기 전과 같이 물건들을 쭉 훑어보던 패치는 편의점에서 사온 쓰레기봉투를 꺼내고 그 안에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을 쏟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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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던 건 다행이었다만약 정 가운데에 앉았으면 가게의 모든 사람들이 이 상황을 봤을 테니하지만 결국 근처에 앉아 의도치 않게 목격한 사람들도 있고 수건을 가져다주는 직원도 있었기에 힐끔거리는 시선들이 꽤 있었다.

 

방 안엔 아무도 없고 창문만 덩그러니 열려있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물티슈와 받은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를 얼추 닦아내던 치트가 꺼낸 말이었다그 말을 들은 패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

 

그럼요그게 중요하지 않다면 뭐가 중요합니까?”

 

중요하고 뭐고 간에 보통 이럴 때 나올 말은...”

 

패치는 말하려다 말았다다짜고짜 얼굴에다 커피를 쏟은 거에 대한 불평을 꺼내는 게 보통 반응이라고 정정해주기엔 이미 둘 사이는 보통이 아니었다혀를 차며 다시 나온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분명 쓴데 지금 이 상황보다 달게 느껴지는 것만 같아 속이 쓰려오기 시작했다.

 

뭐하러 왔나?”

 

뭐하러 오긴요선배님도 참당연히 선배님을 찾으러 온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왜?”

 

왜긴요?”

 

패치는 손에 들려있는 컵을 만지작거렸다한 모금밖에 안 마신 터라 내용물은 가득 차 있었다뻔히 보이는 경고에 치트가 웃으면서 말하길

 

부부사이잖습니까.”

 

동시에 커다란 손이 컵을 덮어 눌렀다커피가 또다시 치트에게 뿌려지는 일은 없었다패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그 뒤를 치트가 말없이 따라가기 시작했다.

 

둘의 모습은 제법 시선을 끌었다정확히는 머리 상태가 엉망이고 어깨 부분에 검게 물이 든 치트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가 따라가는 게 패치다보니 치트를 보면 패치도 보는 식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려있는 지금 상황에서 따돌리는 건 의미가 없었고 왜 따라오냐 따지는 건 카페에서의 상황을 반복하는 일 밖에 되지 않았다그렇다고 계속 구경거리가 되는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싫었다이리저리 생각을 옮기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방 안에 패치가 없다는 걸 알고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지금 방문의 상태는?

 

그대로 멈출 뻔한 다리가 점점 빨라지더니 거의 뛰다시피 움직이고 있었다빠르게 도착한 집은 현관문조차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다시끄럽게 울려대는 도어락 소리를 끄고 들어가니 집 안은 더 가관이었다.

 

.”

 

물건들에 이상은 없었지만 그 위와 바닥에 톱밥들이 이리저리 흩뿌려져 있었다지저분한 꼴만 해도 어이가 없는데 톱밥들이 가득한 곳으로 가니 패치는 이미 없는 어이가 다시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문이 있어야할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다여기 있었을 문이랑 같은 색인 나무 파편들만 그 아래 바닥에 깔려있을 뿐.

 

멍한 눈으로 방 안을 보니 방 안도 만만치 않았다옷장 문도 뜯어져있고 침대는 엉망인데다 밧줄이 걸려있던 창문마저 없어져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고 있었다패치의 빨간 머리가 살살 흔들렸다.

 

집이 좀 엉망이죠~? 금방 치워드리겠습니다하지만 오늘은 이 방에서 못 자겠네요~

 

집 안을 이런 꼴로 만든 당사자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패치의 허리에 팔을 두르려했다잽싸게 팔을 쳐낸 패치는 손이 찔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바닥의 파편들을 주워 치트에게 던졌다얄밉게도 전부 피한 치트는 태연하게 다가와 패치의 손을 감싸쥐기까지 했다.

 

이런...찌거기들이 박혀서 손에 피가 나잖습니까.

 

그 때 역으로 치트의 손을 붙잡은 패치가 주먹을 날렸다아프지도 않은지 맞으면서도 패치를 끌고 그나마 깨끗한 거실로 데려가 쇼파에 앉히면서 언제 챙겼는지 모를 연고와 붕대를 손에 대고 있었다. 발차기까지 동원됐지만 치트가 물러나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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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주어진 휴가에 패치는 고민에 빠졌다. 방에 틀어박혀있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다. 이상하게 치트가 방까지 침범하지 않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무엇보다 결국 같이 사는 집이다 보니 아예 안 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가기엔

 

아직 자고 계십니까~?”

 

저놈은 호랑이도 아니고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귀신같이 방문을 두드린다. 시간을 보니 휴일이라도 일어났을 시간을 넘긴지 꽤 됐다. 패치는 문득 자기가 일어나는 시간까지 잘 알고 있는 치트가 징그럽다고 느껴져 아무 대답도 꺼내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는지 잠시 조용했던 문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선배님?”

 

패치는 아예 문 쪽에 대해 신경 끄고 이 휴가를 어떻게 넘겨야할지 고민하려 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두드리는 강도가 세지고 있었다. 저렇게 두드리면 손이 아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쳐다보는 패치와 반대로 점점 더 두드리는 손과 소리가 격렬해졌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가. 어쩐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일어나니 어이가 없는 마음 조금과 소음 공해를 일으키는 치트에 대한 짜증 대부분을 담아 패치는 바로 옆에 있던 베개를 세게 문으로 던졌다. 퍽 소리가 나면서 베개가 문을 치자 그제서야 두드리던 소리가 멈췄다.

 

아침 준비 다 됐으니 어서 나오십쇼~”

 

곧이어 흥얼거리는 소리가 나오고는 점점 멀어졌다. 패치는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속에서 뭐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몰려오는 스트레스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옷장을 열고선 바로 옷을 갈아입었다.

 

밖에 함부로 나가기엔 걸리는 게 많았지만, 집에서 치트와 내내 있을 걸 생각하니 그런 건 전혀 문제 축에도 끼지 않았다. 적당한 모자 하나를 꺼내 푹 깊게 쓴 패치는 창문도 열어젖혔다. 늘 가지고 있는 밧줄은 언제나 유용했다.

 

무사히 내려온 패치는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냈다. 다행히 이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밥은 미리 챙겨놓은 에너지바가 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진짜 문제는 이제 어디로 가야하는가.

 

아파트에서 더 멀리 떨어지니 상가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통편도 적당한 곳이라 사람들이 꽤 오가는 길이기도 했다. 원래도 시끌벅적했을 길은 복구된 후엔 더 시끄러워졌다.

 

우리의 자리를 돌려달라!!”

 

돌려달라!!”

 

시위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매끈한 건물과 구경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각이진 사람들의 행렬이었다. 그들의 모습과 같이 각진 팻말을 들며 커다란 목소리로 외쳐댔다. 그 모습을 본 패치는 바로 골목으로 빠져나갔다.

 

패치가 정신을 차렸을 땐 골목거리 작은 카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있는 상태였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11음료의 매너 문구를 봤는지 얼음 넣은 아메리카노가 앞에 놓여있었다.

 

마냥 앉아있을 순 없던 패치는 핸드폰을 전부 꺼냈다. 꺼낸 두 핸드폰을 보니 기존 핸드폰엔 여전히 많은 연락들이 오고 있었다. 업무용 핸드폰은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고 생각했다.

 

“...이 징그러운 새끼가...”

 

어차피 같은 수호대 내에서 돌아다니는 터라 새로운 핸드폰 번호 쯤이야 금방 들킬 거라는 생각은 했다. 선배님을 시작해서 어디 계시냐 창문이랑 밧줄 보고 깜짝 놀랐다 등등, 마지막으로 온 게 찾으러 간다는 문자였다. 이미 두 자리가 넘어선 전화 알람은 덤이었다.

 

문을 분명 잠가놨는데 열고 들어온 걸 보면 문을 부순 게 틀림없다. 돌아가면 난장판이 되어있을 게 훤해 한숨과 함께 등받이에 기대는 패치였다. 얼음이 좀 녹아 맛이 연해졌을 아메리카노를 든 순간

 

여기 계셨습니까?”

 

반사적으로 컵을 휘둘렀다. 제대로 명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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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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