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을 갔다 온 패치는 지친 얼굴로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핸드폰을 다시 켜 봐도 수호대에서 연락 온 건 없었다. 고요한 메시지 창을 끄고 뉴스들을 쭉 살펴봤다. 수호대에 대한 뉴스와 기사는 차고 넘쳤다. 그 중 최신 뉴스들을 쭉 살펴보니 수호대와 연관이 없어보이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페이지를 누르니 곧바로 영상이 재생됐다.

 

[보시는 바와 같이 균열로 인해 주위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로선 거대한 균열을 막을 방법이 없어 이 앞은 전부 봉쇄되었습니다.]

 

데몬갓챠처럼 어딘가에서 균열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척 보기에도 척박한 땅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수액체 뿐만 아니라 상어의 하반신도 집어삼킨 균열을 떠올리며 영상을 끈 패치는 다른 뉴스들도 마저 찾아봤다. 그닥 소득은 없었다.

 

화면을 끄는 순간 알림이 울렸다. 문자였다. 다시 켜서 내용을 확인하니

 

[밥은 드셨습니까?♥♥]

 

패치는 핸드폰을 던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유 모를 결혼 거래엔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나는 이혼 금지였다. 치트는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이혼하자고 할 패치의 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기간은 평생이었다. 당연히 패치는 반발했지만 치트는 절대 굽히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바로 별거 금지였다. 이것 또한 패치의 반발을 일으켰다. 앞선 조건과 같이 절대 굽힐 생각이 없었던 치트였지만 이미 한 번 죽었던 패치의 사고는 앞선 조건에 대한 스트레스와 결합해 극단적인 선택을 도출해냈다. 그에 둘은 합의 끝에 결혼식을 올린 후 1년 동안 별거 금지로 타협을 봤다.

 

이 별거 금지엔 집만 안 구하고 1년 동안 호텔이나 여관에서 머무르는 꼼수를 막고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숙박할시 사흘을 넘기지 않고 어디에서 숙박하는지 알린다는 조건 또한 달렸다. 짜증이 극에 달했던 아까 전이었으면 조건이고 뭐고 잠적을 생각했겠지만 진정된 지금 패치는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건지 의문에 빠졌다.

 

물건들을 봤을 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시 나갔다 들어오고 정리됐을 때도 전부 쓰레기봉투에 넣을 때까지도 무언가가 붙어있진 않았다. 그랬기에 패치는 물건들을 전부 버렸다.

 

아까 쭉 둘러봤을 때 치트의 방에서도 크게 특이하거나 이상해 보이는 건 없었다. 굳이 꼽는다면 패치가 들어와서 살펴볼 걸 예상하고 행복한 부부의 생활이나 그 부부의 뜨거운 밤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보란 듯이 꽂혀있던 책장 외엔 없었다.

 

짜증을 이어갈 기력도 없었다. 이 방만큼 뒤집어엎는 게 의미 없는 곳이 없다는 걸 잘 아는 패치는 창고로 가 공구상자를 꺼내와 제 할 일을 했다. 새로운 문에 보다 더 튼튼한 잠금장치가 걸렸지만 눈 가리고 아웅하는 감이 없잖아 있어 패치의 마음은 더욱 가라앉을 뿐이었다. 땀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순간이었다.

 

[혹시 로맨스 영화 좋아하심까~?]

 

패치는 한편으론 순수하게 감탄했다. 더 이상 짜증이 일어날 자리도 없을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일일이 짜증나게 할 수 있을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혹시나 예기치 못한 일이나 사고가 터져 급하게 휴가가 끝날까 싶어 켜뒀지만 치트 혼자서만 간 걸 보면 그럴 일이 없다고 판단한 패치였다. 치트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수호대에서도 찜찜한 분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온 패치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소파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뜬금없이 커피가 끌렸고 마침 주전자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주문해놓고 못 마신 커피의 영향도 있었다. 비록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 위한 거였지만.

 

물이 끓는 동안 패치의 머릿속은 오늘 하루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치트가 오기 전까지 지금과는 달리 정신없이 들어와 앉아있던 순간을 떠올렸다. 조금 더 올라가니 외침과 함께 각이 진 사람들을 봤을 때였다. 그 위로 겹쳐지는 비난에 눈을 감던 패치는 비명소리를 듣고 퍼뜩 놀라 일어섰다.

 

삐이이 김을 올리며 울리는 주전자 소리였다. 먹먹함에 잠겨있던 패치는 가스레인지 불을 끄고 컵에다 물을 부었다. 숟가락을 가져와 마저 섞던 패치는 수호대를 떠올렸다. 수호대는 비난 여론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저 복구와 관련된 일들만 보도했다. 그에 대놓고 꼬집은 인터뷰가 있었지만 임원진들은 묵묵부답으로 행동했다.

 

패치는 궁금했다. 왜 치트만 부른 것일까.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임원진들도 알 게 훤했다. 치트가 이번 멸망의 원인이라는 걸. 기술을 독점하는 만큼 정보 또한 탐욕스럽게 찾고 쥐는 이들이었다. 알게 된 이들이랑 다르게 제 기억에 없다 해도 알아내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부를 수밖에 없는 존재지만 왜 이제야 부른 걸까. 물론 그동안 수호대가 바쁘긴 했다. 죽음으로 묻어있던 일들이 부활과 함께 관에서 나왔으니. 하지만 사람을 부르는 건 별개였다. 한동안 사람 하나 부르기 힘들 정도로 파고드는 눈들이 매서웠을까? 그럴 만한 사람들을 추려내던 도중 패치는 반사적으로 오른쪽 가슴을 더듬었다. 방금 탄 커피는 입으로 갈 일도 없이 싱크대에 부어졌다. 패치는 다른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켜봤지만 어느새 방전되어 전원이 꺼져있었다. 그대로 방 안으로 들어간 패치는 침대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온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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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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