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는 튀어나간 말을 수습하려고 횡설수설하며 아무런 말이나 꺼내기 시작한 퍼블리였지만 오히려 더 말이 꼬여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퍼블리가 처음 꺼낸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마법사는 정신없는 퍼블리의 모습에 진정시키고자 대답했다.

끝냈어.”

?”

간신히 제정신을 붙잡은 퍼블리가 시선을 바로잡으며 반문했지만 마법사의 시선은 멀어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 집을 떠난 그 날. 내가 끝냈지.”

그런 마법사의 얼굴엔 바로 그 날 느꼈던 냉기가 조용하면서도 간절하게 주위로 손을 뻗고 있었다.

 

거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애매한 걸?”
애매하기 이전에 왜 웃어야할지가 들어가는 거야?”

웃고 싶은 부분은 너의 상상속의 말들과 실제로 나온 말이고 말아야할 부분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

그에 퍼블리는 뚱한 얼굴로 아니카에게서 조금 떨어져 걷기 시작했지만 곧이어 어깨동무하며 붙어오는 아니카에 의미는 없어졌다. 그렇게 놀리고 툴툴대는 반응이 반복되면서 교실까지 가는 시간들을 채우기 시작했다. 다만 그런 소소한 장난과 투덜거림이 곧이어 절망으로 바뀌는 건 꽤나 순식간이었다.

다음 주에 쪽지시험 볼 거다. 이제까지 배운 부분에서 낼 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대체 어떻게 부담을 갖지 말라는 거냐는 절규들이 꽤나 직설적이게 선생에게 날아들었지만 전혀 타격을 줄 순 없었다. 사실상 다음 주부터 시험기간이긴 했지만 선생의 말은 자기의 정식시험은 바로 그 다음 주 쪽지시험으로 때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졸지에 이 과목은 시험기간이 일주일로 줄어든 파격적인 과목이 되었지만 다른 말로는 학생들의 정신을 부수는 파괴적인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폭탄을 던진 선생은 특별히 자습이라며 유유히 앞문을 열고 나갔다. 다른 반에도 이 폭탄을 던지러 갔던 건지 야유와 절규와 비명소리들이 벽과 복도를 타고와 현재 다른 반의 상황을 충실히 알리고 있었다. 여파가 남은 반의 학생들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책상에 얼굴을 묻거나 실소를 흘리거나 욕을 내뱉기 바빴는데 퍼블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첫 번째 무리에 속했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떡해...하나도 모르는데...”

일주일의 유예가 남았잖니, 똑같거나 비슷한 애들이 많다는 거에 위안을 가져.”

“...빈말로라도 지금부터 하면 괜찮다는 말은 안 해주는 거야?”
빈말이라도 해주기엔 현실이 너무 굳건해서 말이지.”

한동안 학생들의 상태는 계속 됐다. 수업종이 칠 때마다 들어오는 선생들은 그런 모습들에 혀를 끌끌 차거나 안타까워하는 말투로 수업을 나가고 시험범위와 날짜를 공지했다. 그에 당연하게도 학생들은 더더욱 우울한 기색을 뿌리고 다녔다. 이러한 분위기가 회복된 건 점심시간 때였다.

늘 드는 생각인데 입에 뭘 물리면 어린애건 학생이건 어른이건 다 기분이 그나마 올라가나봐.”

그나마 시간이 흐른 덕도 있지 않을까? 기분이 안 좋거나 우울할 때 바로 입에 뭘 넣으면 체할 것 같은데.”

볶은 버섯을 입에 넣으며 말한 퍼블리는 다시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일주일 정도 앞으로 들이닥친 쪽지시험이라는 시험은 제 아무리 긍정적인 마녀라고 해도 부담스러울 거다.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일주일 안에 혈액특성이론을 내 머리에 전부 들어가게 하는 건 무리일 거야.”

전부는? 그럼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는 말인데 왜 그래?”
“...너무 빡세...”

요컨대 싫다는 말이었다. 잠시 상상의 시간을 가져보던 아니카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주 어렸을 때 잠깐 보고 퍼블리한테 간간히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파악했는지 아니카는 그저 아무 말 없이 퍼블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점심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시험범위와 날짜 공지는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두 번 더 들은 후에야 오늘 하루 학교를 끝내는 종이 울려 퍼지고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깜빡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어?”

? 뭐가?”
어제 너희 아빠가 대답한 이후로 어떻게 됐냐고.”

해가 하늘 꼭대기에 서서 많은 땅과 공기를 달궈놓았는지 걷는데 조금 땀이 흐를 정도로 더웠다. 아니카는 요즘들어 발밑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마법을 쓰지 않고 땅에 떨어지지 않게 계속해서 공중에 띄워 차는 기술을 시도해보고 있었다. 아니카의 질문에 반문하면서 돌멩이를 보고 있던 퍼블리는 눈을 깜빡이며 어제의 기억으로 눈앞을 채웠다.

마법사는 그 이후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마주앉아 차려놓은 저녁을 먹었고 빈 그릇들을 물통으로 가져가 설거지를 하고 늘 그랬듯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달이 가장 높은 곳으로 뛰어 올라가기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이자 오늘 아침엔 어제 있었던 대화가 없었던 것 마냥 일어났냐는 인사를 하고 아침을 먹은 후 자신은 늘 그랬듯이 학교를 가야했기에 가방을 들어 문고리를 잡았고 잘 갔다오라는 무뚝뚝한 인사를 받은 후 문을 나섰다. 그게 끝이었다.

그러니까 별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갔다 이 말이네?”

. 그래서 나도 사실은 꿈이었나 싶었어.”

다섯 번째, 이번엔 힘이 많이 들어갔는지 돌멩이가 다시 차기엔 너무 멀리 날아가버렸다. 다시 땅으로 돌아간 돌멩이를 뒤로하고 둘은 멈춰있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니카는 근육이 응원가라도 만들어야겠다며 퍼블리를 놀렸고 퍼블리는 그런 아니카에게 못됐다며 질린 얼굴을 했다. 갈림길에서 멈춰 선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 둘의 머리 위로 날아가던 비둘기우체부가 특유의 울음을 다섯 번 정도 냈을 때쯤에야 둘은 무언가의 망설임을 꾹 누른 채 서로에게 인사했다.

집에 도착한 퍼블리는 습관적으로 다녀왔다는 인사를 하려다가 아무도 없는 걸 깨닫고 그대로 멈췄다. 하지만 곧이어 어디엔가 다녀왔는지 흙이 묻은 손을 털며 들어온 마법사에게 다시 인사했다. 그에 짧게 인사를 받고 대답을 한 마법사는 손을 씻으러 갔고 퍼블리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가방을 내려놓은 퍼블리는 책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놨다.

시험공부라는 명분이 한동안 맴돌던 것들을 짓눌렀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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