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후일담입니다. 소소한 설정과 생략된 이야기들에 관한 내용 및 질문 들어온 거에 대해서 얘기할까 합니다.

 

우선 마력랑이 가장 많은 마녀 혹은 마법사가 누구냐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현재 시점에서는 속에 밸러니가 있는 패치입니다. 만약 정화의 날 이전 시점이라면 당연히 밸러니입니다. 아득한 세월동안 살아오면서 그만큼 쌓인 마력이 많았거든요. 물론 오래 살았다고 해서 마력이 쌓이는 건 아니지만 밸러니는 모두가 알다시피 로메루와 모글리제랑 함께 특수한 실험을 했지요. 그 여파로 저절로 쌓이게 된 겁니다. 비록 뜯어낸 기억만큼만 남은 밸러니지만 그만큼 쌓인 마력이 많으니 그만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근소한 차이로 모드입니다. 밸러니를 포함한 고대 삼총사의 실험 결과물인 하얀 장미에서 파생 되었으니 말이 필요 없죠. 거기에다가 첫 탄생시 치트가 각 한 병당 마법사 혹은 마녀 한 명 분의 마력이 들어있는 병들을 쏟아 부어 단숨에 키워냈으니...

그 다음으로 많은 건 GM 용사 컨티뉴 순이고 이후로는 굳이 구분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전부 마찬가지로 근소한 차이거든요.

 

다음은 전투를 했을 때 강한 순서입니다. 현재 시점으로 일대일 전투에서 강한 건 GM입니다. 연륜은 무시할 수 없죠.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도 강하지만 일대일에 더 실력을 확실하게 발휘합니다. 연륜이 있어서 웬만한 마법사나 마녀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일대일 전투와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 둘 다 강한 건 모드입니다. 일대일 전투는 모드 다음으로 패치가 강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패치는 적당히 몸 사릴 줄 알고 목숨을 안 겁니다. 모드는 목숨을 신경 쓰지 않죠. 상대든 자신이든.

퍼블리는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 몸도 굉장히 사려서 전투라기 보단 제압을 하는 편입니다. 여기서 몸을 사리는 기준을 패치와 비교해보면 패치는 팔 다리 하나 날아가는 거까지 염두하고 퍼블리는 거기까진 안 갑니다. 조금만 더 크면 전투에 관해선 패치보다 더 강해지겠지만 저 당연하다고 한다면 당연하다고 할 기준 때문에 진지하게 임할 수 없겠죠.

 

밸러니와 합체한 이후와 아기 퍼블리를 만나기 전 그 사이의 패치의 행적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기억에서처럼 합쳐진 이후론 사라진 밸러니의 숲을 찾으려고 그 근처를 엄청 돌아다니고 뒤에 온 후발대는 다수고 자기는 혼자니 상대하기 너무 불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제 안의 밸러니의 존재 눈치 채고 약새풀 키우는 법 터득하고 후발대와 사라진 숲에 대해 조사하러 나온 이들에게서 숨어다니다가 이대론 나아지는 게 없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물러나자는 생각으로 무의식적으로 퍼블리가 심어진 호수 근처에 와서 집을 짓고 산겁니다.

 

사실 따지자면 퍼블리는 보호자 운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밸러니의 숲에 가지 않고 저주가 흘러나오는 사태가 전혀 없었다면 용사가 퍼블리의 보호자가 됐을 겁니다. 그 뒤의 미래는...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용사의 행동과 성격이 말해주고 있지요...사실 용사가 보호자가 돼도 용사를 돌보다시피하는 게 패치였으니 퍼블리도 덩달아 돌봤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주 사건이 터지고 보호자가 패치가 된 건 본편 내용 그 자체이니 허허...아주 만약에 이 둘을 제외한다면 GM이 보호자가 됐을 겁니다. 하루하루 GM의 놀림에 놀라고 당황스러워하면서 자랐겠지만...마음고생은 본편보다 덜 했으려나요? 어른이 되면 GM네 마을의 일원이 됐을 겁니다.

 

GM네 마을 마법사들은 GM의 제자나 잠시 혹은 오랫동안 GM이 돌보던 이들이었었고 아예 몇몇은 GM이 보호자였습니다. 그리고 아니카의 엄마도 GM이 돌보던 마녀입니다. 잠깐 마녀왕국 갔을 때 컨티뉴와 함께 돌보고 가르쳤죠. 물론 아케이와 에키테가 멀쩡히 살아있고 한창 통치 중이던 때였으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컨티뉴와 흑룡의 만남은 한창 많은 이들이 검은 산으로만 알고 있던 흑룡을 넘어가려고 할 때입니다. 넘어가는 걸 거부하는 산에 대한 호기심으로 컨티뉴가 찾아가 혹시나 싶어 직접적으로 물어봤고 그에 대답한 걸 시작으로 둘의 관계가 시작됐습니다. 이 세계엔 당연히 용이 있지만 현재 마키마의 배경이 되는 장소 자체가 폐쇄적인 상황에 놓여있으니 용이라는 생물 자체를 모릅니다. 기껏해야 말하는 개나 비둘기 곤충까지만 알고 있죠. 컨티뉴는 흑룡에게 마법사와 마녀가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마법과 더불어 자신이 사는 세상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흑룡은 컨티뉴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흑룡은 현재시점으로도 컨티뉴를 매우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혹시 모르죠. 컨티뉴는 오래 살아왔으니 죽었어도 존재 자체가 특성이 되어 용사처럼 다시 태어날지도.

 

꿈 능력 즉, 예지몽의 능력을 지니고 제대로 서술 된 건 용사와 모글리제, 그리고 퍼블리입니다. 퍼블리는 맨 처음 자신을 심은 게 용사여서 그에 영향 받아 흐릿한 미래와 과거를 꿈을 통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어요. 용사는 어느 순간부터 가지게 되었고 그건 패치와 처음 만나기 전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외전1 스포 있습니다.) 패치에게 세계의 멸망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은 게 바로 예지몽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외전을 쓰다 보니 까먹었습니다. 그 때 용사가 꾼 꿈은 패치와 함께 밸러니를 상대하는 꿈이었습니다. 다만 흐릿해서 누구랑 싸웠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천진난만한 용사가 되어서야 꿈이 선명해졌죠. 모글리제는 선천적으로 있었고 가장 정확하게 예지몽을 꾸는 마녀였습니다. 사실 이 셋 외에 예지몽을 꾸는 마녀나 마법사는 있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잘 기억을 못합니다. 덕분에 데쟈뷰를 많이 느끼죠. 이런 꿈 능력 말고도 개인마다 흔하지 않거나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들이 있지만 중요하지 않으니 넣지 않았습니다.

 

사실 큰 줄기만 제대로 정해놓고 쓴 터라 초기 설정과 달라지거나 삭제되고 생략된 설정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마법사들은 그들의 망토 색이 그들의 이미지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붉은 망토의 용사라던지...또한 이름을 버리거나 감춰 은둔한다는 설정도 있었지요. 다만 너무 자잘하고 굳이 쓸 필요성이 없어 생략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변형된 내용전개도 있습니다. 사실 패치 용사 컨티뉴 이 삼인방이 한 팀이었다는 건 메르시를 통해서가 아니라 5챕터의 기억을 통해서 퍼블리가 알게 되는 식으로 가려고 했지만 퍼블리가 패치의 아이란 걸 알게 된 메르시가 굳이 이에 대해 얘기 안 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그냥 메르시가 얘기하는 걸로 바꿨지요. 덕분에 극적임은 사라졌지만 이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 바꿨지요. 게다가 캐릭터들이 워낙 정체성이 강력해서 제가 생각한 대로 잘 안 갑니다.....

 

2챕터의 치트가 나가고 홀로 집에 갇힌 패치가 말하는 것보단 속마음으로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라고 한 부분이 있었는데 처음에 제가 고치는 걸 까먹은 부분인가 싶었는데 뒤에 내용을 보니 아난타가 집 밖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패치는 말로 한 겁니다. 아난타 들으라고. 이 부분을 좀 나타내야했는데 아난타 있었다는 부분을 안 넣어놨군요...이걸 고쳤어야했어....그 시점부터 아난타는 자의적으로 본정신이 돌아오는 게 가능했습니다. 이걸 안 적었어...!!

 

마키마는 썰로 시작했지만 썰과는 달라진 내용이 많습니다. 원래 썰은 퍼블리가 마녀왕국의 다음 왕이 될 재목이었다는 거라던지 세세하게 정하기 이전에 그냥 말 그대로 장미에서 태어나는 퍼블리가 보고 싶어서 풀었던 썰이었으니 구멍도 많고 별 생각도 없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정한 게 결말부분과 하이라이트 두 개였습니다. 결말부분은 아기 용사를 만난 퍼블리, 하이라이트는 숲에서 용사의 기억을 통해 누가 씨앗이었던 자신을 심고 이름을 붙여줬는지와 밸러니와 합체한 패치 이 두 개입니다. 이것들을 쓰기 위해 마키마 본편을 달려왔죠.

 

프롤로그를 쓸 때는 프롤로그의 결말이 자연스럽게 정해졌습니다. 왠지 패치는 이럴 거고 치트는 이럴 거다 싶었거든요. 그래서 본편은 퍼블리의 이야기가 메인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들 전부 자기 사정 급급했으니 변하질 않고 가장 변화하고 변화를 줄 수 있는 게 퍼블리였으니까요. 변화와 환장의 신호탄은 정작 치트가 쏘아 올렸지만.

 

패치가 지금의 아기용사를 본다면 어떤 심정일까는...굉장히 복잡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가장 먼저 올라오는 게 죄책감 아닐까요. 하지만 많이 희석됐습니다. 퍼블리와 많이 얘기한 덕분도 있고 시간 흐름이란 게 확실한 약이죠. 달라지지 않은 건 용사의 뒷바라지겠죠.

 

아니카는 퍼블리를 지탱해준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자 소중한 친구죠. 사실 친구를 넘어선 것 같지만 연애적인 감정이라기 보단 둘은 서로를 친구이자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아니카가 없었다면 지금의 퍼블리는 없었을 겁니다. 참고로 아니카는 패치를 안 좋아합니다. 오히려 싫어하는 축에 속하죠. 퍼블리 마음고생을 엄청 시켰으니...다만 퍼블리는 좋아하고 일단은 보호자니까 욕은 안 합니다. 만약 단 둘이 남게 된다면...허허....

 

그다지 과거 서사를 짜둔 캐릭터는 많지 않습니다. 본편에서 아직 안 나온 것도 있기도 하고 굳이 이 캐릭터들의 과거 서사를 설정할 필요성은 못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예 몰라서 못 짠 경우도 있죠. 예를 들면 컨티뉴와 GM의 첫 만남은 아직 원작에서도 안 나왔으니 섣불리 정할 수 없어 그냥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물론 단순히 비즈니스라고 끝내지 않고 오래 살아오고 오래 본 만큼 누구보다 서로 친근할 테지만요. 들개들은 한창 쓰고 있을 때 GM을 만나 이렇게 인연이 된 걸로 해야지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나온 원작에서 컨티뉴랑 먼저 만났네요...그래서 이들 과거도 그냥 삭제했습니다...

 

용사 같은 케이스는 확실히 특이케이스입니다만 그렇다고 용사만 그런 건 아닙니다. 흔하지 않을 뿐 종종 저렇게 죽은 이후에도 다시 아기로 부활하는 경우가 있어요. 비유하자면 포켓몬의 이로치가이 같은 케이스입니다. 확실히 특이케이스고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뒤집어질 정도의 사건은 아닌 케이스.

 

여기서 두 번째 후일담을 마치겠습니다. 더 이상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이게 마지막 후일담이 될 거예요. 혹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얼마든 물어봐주세요! 다만 까먹은 설정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허허

 

지금까지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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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가 완전히 끝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치트는 이후에 어떻게 되나, 메르시와 흑기사단들은, 아난타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했어요. 그 밖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과 패치가 쎈데 왜 치트와 싸울 때 힘들어하는가와 마력이 가장 많은 게 누구인지, 연표와 지도를 알고 싶다는 얘기도 있었어요.

아쉽게도 연표는 일부러 어른들의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게 하기 위해 시간을 모호하게 했으니 못 만들 것 같습니다. 20살 어른이 된 이후부턴 GM과 컨티뉴처럼 아주 오래된 마법사 혹은 마녀가 아닌 이상 나이 개념은 의미가 없거든요. 마녀와 마법사의 시간은 매우 길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마법적인 존재라 구체적인 시간을 서술하고 싶진 않았어요.

지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동쪽은 들판으로 쭉 뚫려있고 실제로 그 너머로 간 이들이 많지만 다신 돌아오지 않은 이들이 전부라 세상의 끝이라고 불립니다. 그 너머로 간 이들이 안 온 이유는 단순해요. 연락책을 안 남겼거나 남겼어도 수정구나 다른 마법물품들이 마력을 인식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겁니다. 아직까지 여행 중인 이들이 대부분이고 돌아오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멀리 간만큼 돌아오는 게 오래 걸립니다. 이들의 시간은 매우 기니까요.

 

메르시와 흑기사단은 딱히 더 얘기할 게 없습니다. 이들은 저주도 다 풀리고 행복해졌거든요. 등장 안 시킨 이유는 저주가 풀려 언데드화 풀린 흑기사단들은 상상이 안 가니 안 등장시켰습니다. 이들은 바다를 여행 중이에요. 생선 요리 식단에 질린 메르시가 채소를 외치다가 우연히 섬을 발견하고 신나게 뛰어내리고 다시 출발할 땐 배 한 켠에 텃밭이 있는 이런 소소한 일들이 일상인 행복한 삶을 살 겁니다. 그러다가 다른 대륙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고요. 과연 그 대륙에 있는 건 마법사도 마녀도 아닌 평범한 인간일까요, 아님 여행 왔다가 다시 돌아가기 힘들어서 정착한 여행자들일까요?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아난타는 치트가 패치와 아난타 둘의 바꿔치기 페이크에 정신없는 틈을 타 도망쳤습니다. 퍼블리가 뒷마당으로 돌아가면서 흩뿌린 무지개빛을 이용해 모드의 눈을 가린 틈을 타 잽싸게 도망쳤습니다. 그 후엔 저주로 인해 생겨난 난폭한 인격을 안경 없이 다스려보려고 노력하겠죠. 마침 안정적이게 되었을 때쯤에 저주가 풀린 걸 느끼고 깨어난 동료들을 맞이하러 갈 겁니다.

 

퍼블리가 무사히 패치를 데려오고 예전에 살았던 그 호수 있는 숲에 살고 있는 동안 치트는 패치의 흔적을 찾으려고 합니다. 허나 그를 막는 이는 놀랍게도 GM! GM은 마을을 떠나있는 동안 본격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밸러니의 숲에서 하얀 장미와 책을 훔치고 이런 사달을 일으키게 만든 원흉들을 찾아내기 위해서죠. 마침 치트가 그들을 구워삶아 수장자리 앉은 채 부려먹고 있는 걸 알아냈습니다. 꼬리를 잡아낸 거죠. 철저하게 숨겨왔지만 꼬리를 잡힌 이유는 패치를 찾기 위해 무리하게 모습을 많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걸 알아챈 GM은 패치의 행적을 완전히 숨겼습니다. 패치 찾으려다 오히려 발목 잡힌 꼴입니다.

그래서 치트는 GM과 싸우러 갑니다. 물론 모드도 동원했죠.

들개들은 용사가 패치, 컨티뉴와 함께 밸러니의 숲으로 떠난 이후론 쭉 북쪽에 있었습니다. 세상의 끝이자 거대한 산이며 컨티뉴의 제자인 흑룡과 말동무를 하며 지냈습니다. GM도 가끔 이 북쪽으로 이들 보러 왔습니다. 마침 들렸을 때 치트가 찾아온 격! 치트는 패치가 이 산 너머로 간 줄 알았겠지만 GM의 페이크에 걸렸습니다! 패치는 정반대인 남쪽을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갔다!

 

치트와 GM의 싸움 결과는...본편 완결과 이 후일담을 쓰는 시점에 아직 원작에서도 결판이 안 났으니 어떻게 싸웠냐는 생각 안 해뒀습니다. 치트는 목숨 무사히 물러납니다. 이후로도 끈질기게 패치의 행적을 뒤쫓아 언젠가는 남쪽의 세상 밖으로 나간 걸 알게 되겠죠. 물론 쫓아갑니다.

 

패치는 로메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잠정적으로 화해한 밸러니의 오랜 미련을 매듭지어줄 생각입니다. 이젠 왜 그렇게까지 고집스럽게 로메루를 안 찾아갔는지에 대한 기억도 안 남은 밸러니지만 여기 더 한 고집의 패치가 있습니다. 아마 로메루의 흔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할겁니다. 로메루는 과연 살아있을까 아니면 같이 떠난 친구인 모글리제를 따라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마녀가 되었을까 또한 여러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졸지에 용사를 키우게 된 퍼블리! 퍼블리는 열심히 용사를 키우지만 용사의 해맑음과 행동력은...(먼산) 같이 사는 아니카도 당연히 함께 용사를 키웁니다. 퍼블리는 용사에 대해 그리고 육아 난이도에 대한 한탄을 담아 패치에게 종종 편지를 보냅니다. 당연히 전서구는 죽어나갑니다.

(외전1 스포 있습니다.)

그리고 제법 커졌을 땐 행동력이 정점을 찍어 패치가 전서구를 통해 만든 지도를 어떻게 찾았는지 챙겨들고 세상의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문제는 지도에 그려진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용사를 본 들개들은 드디어 용사가 돌아왔구나 하며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어쩐지 어려진 것 같다는 말도 꺼내고요. 흑룡은 컨티뉴에게 많이 들었던 용사를 보고 컨티뉴를 그리워하며 비켜줍니다. 한편 지도가 없어진 걸 안 퍼블리는 전서구를 통해 패치에게 헬프를 칩니다. 로메루에 대한 단서를 찾고 돌아오던 패치는 난데없는 상황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겠죠. 이번엔 퍼블리와 함께입니다. 오랜 육아에 지친 아니카는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듭니다.

그렇게 둘은 용사의 여행을 뒤쫓으며 들개들과 인사도 나누고 위기에 빠진 용사를 몰래 도와줄 겁니다. 마치 원작처럼요.

그리고 그 때쯤이면 치트도 패치의 행적을 완벽하게 알고 뒤를 쫓아 이리저리 훼방 놓고 납치시도를 할 겁니다.

마치 원작처럼요.

 

여기까지 첫 번째 후일담을 마치겠습니다. 두 번째 후일담은 주로 왜 이렇게 됐는가와 누가 가장 마력이 많은가 등 세부적인 설정이 주 내용입니다. 일단 저도 까먹은 게 많아 다시 돌아봐야할 것 같거든요. 껄껄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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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후 태어난 자가 있었다.

 

아기가 탄생할 만큼 크지도 않았으니 이미 실패한 건 확정이었지요. 그런데 다른 것들도 다 시들었나 봐요?”

 

그 모든 걸 지켜본 이는 그를 아이로 받아들여 키웠다.

 

사실 그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을 테죠. 돌아가면 같이 함께 했던 마녀들에게 죽을 테고 사실을 당당하게 알리자니 그들을 제외한 왕국 내의 모든 마녀들한테 죽을 테니까.”

 

어느 정도 주변을 살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때 그는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위화감을 느꼈다.

 

처음엔 신기했지만 갈수록 지루했죠. 뭐 덕분에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방법도 익혔고 돈도 단 과자들 사먹을 정도로 제법 벌었으니 좋잖아요? 마을 들린 마녀에게서 유용한 것도 얻게 되고.”

 

그를 지켜보고 키우던 이는 다 자랐을 무렵에 죄책감 가득한 비밀을 속삭이고는 스스로 눈을 감는 걸 선택했다.

 

어쩐지 대충 먹거나 굶기도 자주 굶었는데 그렇게 키가 자란 게 스스로도 신기했죠. 죽기 위해 목은 매달아놨는데 혼자 남는 제가 또 걱정돼서 마력을 곳곳에 남겨놨다니 참 신기해요. 상자 안에 기억까지 넣어두고. 그 마녀의 마력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으니 이제야 죽었다고 하는 게 맞겠죠?”

 

자신이 무엇인지 알게 된 그는 자신은 물론 살아있는 모든 것에 흥미가 들지 않았다.

 

. 이 뒷이야기는 좀 뒤로 미뤄야겠네요. 기억 보고 난 다음 얘기가 필요할 테니.”

 

마녀에게서 기억을 받은 나는 곧장 한 일이 있었다.

 

이러다가 제 특기 마법이 불마법이 되겠네요~”

 

빨간 과일이 되기 전엔 하얀 꽃이라는 게 참 신기했다. 반은 진심이었어도 반은 농담이었는데 어른들은 어른 되는 아이가 그렇게 좋은지 내가 바란 반의 진심대로 하얀 딸기꽃으로 화환을 만들었다. 그 성의를 받아 머리에 썼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이에 대해 보답으로 술 마시는 마법사들의 잔을 손수 채워줬고 모든 마을 마법사들이 그 술을 마셨다.

 

자는 중이니 그렇게 아프진 않을 거라 믿어요~”

 

화환의 딸기꽃을 만지며 불타고 있는 마을을 구경했다. 이렇게 큰 불을 질러보는 게 얼마만일까. 어쩌면 깨있는 마법사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별 상관이 없었다. 열기와 날아오는 재에 숨이 조금 막혀 이쯤하면 됐겠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꽃보단 달달하고 먹을 수 있는 딸기가 더 좋네요.”

 

화환을 벗어 불 너머 마을로 던져줬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으니 그대로 뒤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가 시작한 일은 제게 남겨진 비밀의 조각들을 모으는 거였다.

 

엄청난 비밀도 알고 기억 뒤엔 마녀가 뭘 했는지, 왜 그렇게 됐는지 구구절절한 사연에다가 어느 것과도 감히 비교 못할 정보도 얻었죠. 밸러니의 집에서 하얀 장미와 책을 훔친 것도 모자라 한 패 내에서 또 훔치고 배신하다니 그것만큼 웃기고 귀한 얘기는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제가 할 일은 뭐겠슴까?”

 

비밀을 찾고 비밀을 캐고 비밀을 간직하다보니 다른 비밀들마저 함께 그의 손에 담기기 시작했다.


남은 비밀들을 캐는 거죠. 다 관련자들이다보니 한 번 캐면 줄줄이 딸려나오는 게 꼭 감자 같았슴다~”

 

그러다보니 그는 각자의 비밀을 가진 자들을 알아냈고 그들을 끌어 모을 수 있게 됐으며 그들을 이용하면서 편리함을 느꼈다.

 

시킨 대로 다 하니까 얼마나 편리함까? 재미는 없지만.”

 

살아있는 모든 것에 흥미가 없던 그는 따분함을 없앨 의무적인 일과 동시에 편해지기 위해 그들을 이용해 비밀을 모으기 시작했고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도록 쥐었다.

 

물론 그 중에서 반항하는 이들도 제법 많았죠. 그런데 반항할 거면 제대로 반항하거나 아니면 머리를 조금이라도 굴렸으면 했는데...결국 재미없게 또 쓰레기를 태우는 느낌만 들더군요.”

 

그러던 중 그는 자신과 비슷한 자를 만났고 한순간 위화감에서 해방됐다.

 

아 이것도 좀 설명이 필요한 내용임다.”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던 때, 내가 죽인 마녀의 짐에 있던 씨앗의 정체를 알게 됐다. 나를 탄생시킨 검은 장미와 모든 일의 발단인 하얀 장미처럼 다른 색 장미 씨앗이었다. 그 다음 내가 한 행동은 당연했다. 씨앗을 심었다.

 

기다리긴 지루하고 지금상태론 위험부담이 큰데.”

 

그래서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 같이 창고에 넣어뒀던 병들을 가져와 심은 자리에 그대로 부었다. 하나하나 당 마녀 혹은 마법사 한 명 정도의 마력들이니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리고 이 씨앗은 내 기대를 충족시켜줬다. 다음날 와보니 어른크기만한 보라색 장미꽃이 피어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꽃잎과 같은 색 머리카락을 지닌 어른 마녀가 태어났다. 이 순간만큼은 지루함도 나를 방해할 수 없었다.

 

제 이름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름은 모드입니다 모드양.”

 

 

그 이후로 그는 의무감을 버리고 비밀을 취하는 걸 즐거워하며 온갖 비밀들을 긁어모았다.

그렇게 온 세상의 비밀들은 그의 앞에선 비밀이 아니게 됐다.

 

즐거운 게 당연했죠. 혹시 성공한 이색 장미들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찾아보니 실종된 파란색 빼곤 다 실패했더군요. 모드양이 열심히 뛰어주니 장미에 관련된 비밀들뿐만 아니라 온갖 비밀들도 알 수 있게 됐죠. 덕분에 입은 더럽지만 꽤 일 잘했던 부하도 얻었었는데...뒤통수 맞고 정신없는 틈에 도망쳤더군요.”

 

만족감이 조금 들어차며 비밀을 모으기 전보다 삶이 즐거워졌지만 따분함은 사라지지 않았고 비밀 외에 흥미가 도는 건 없었다.

 

한 마법사를 만나기 전까진.

 

정말 우연이었다. 길목이 잘 나있는 작은 숲을 지나가고 있던 중, 이제 겨우 걷는 것처럼 보이는 아기가 마력도 이제 막 깨우쳤는지 제어도 못한 채 이리저리 흩뿌리며 숲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멈춰서 아기를 볼 게 분명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그 아기의 마력을 접했을 때 매우 놀랐다.

저 아기는 마녀다. 하지만 장미와 아기에 관해선 굉장히 예민한 게 바로 마녀들인데 어째서 마녀 아기가 마녀왕국에서 꽤 떨어진 이 숲에 나와 있을까. 그것도 보호자 없이.

호기심이 동했고 어쩌면 근처에 보호자가 있을 테니 어떤 마년지 보자는 심정으로 같은 공간을 돌게 하는 마법을 이 주위에 걸었다. 조금 걷던 아기는 주위가 이상해졌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 퍼블리!”

 

그리고 나타난 건 마녀가 아니라 마법사였다. 전혀 예상치 못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마법사가 표정을 굳히며 헛웃음을 흘리고 멈추더니

 

나와.”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나와.”

 

그 마법사를 자세히 보니 내가 좋아하는 딸기처럼 잘 익은 색에 내가 자주 쓰던 불처럼 솟아오른 머리카락을 지녔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 색과는 정 반대로 굉장히 차가워 보이는 푸른 눈이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치고 내 온 몸을 휘몰아치는 소름과 감정들에 혼란스러워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렸다. 이런 내 움직임을 놓치지 않은 마법사는 내가 있는 곳을 쏘아보더니 거침없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마치 내 목을 물어뜯을 맹수처럼.

그리고 그가 바로 내 앞에 온 순간

 

빠빠아아아!!”

 

아기의 울음 섞인 외침에 그는 바로 뒤돌아 아기에게 달려갔다. 아기를 안아들어 잠들 때까지 달래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뒤돌아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봤다. 그리고

 

꺼져.’

 

심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빨리 뛰고 있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라니 정말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는 걸 막지 말아주십쇼, 늙은 마법사와 들개들.

 

 

 

 

Second side story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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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마법사는 토끼보다 오래 버텼고 토끼보다 더 시험해보는 종류가 다양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너무 즐거워서 그랬는지 마법사는 기대에 못 미칠 만큼 일찍 죽었다. 옷 주머니엔 어떻게 작동시키는지 모를 마법물품과 앞뒤 내용이 없어 맥락 파악하기 난해한 정보를 담은 종이가 몇 장 나왔다.

 

손해는 아니지만 뭔가 아쉬운데...”

 

얻은 건 분명히 있지만 더 나아가지 않는다는 게 아쉬웠다. 새로운 걸 얻어서 한창 흥미로울 쯤에 계속 멈추는 현상은 별로 유쾌하진 않았다. 어쨌든 이것들 또한 창고와 서랍 안쪽에 넣어놓았다. 넣는 도중에 이젠 자리가 부족했는지 무언가 밀려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녀의 옷장 깊숙이 있던 낡고 작은 상자였다.

서랍도 다 찼고 옷장에 다시 넣어놓기엔 받아온 옷들을 넣어놔서 넣기가 마땅치 않았다. 나중에 가능하다면 창고도 늘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상자를 책상 한 구석 끄트머리에다 올려놨다. 정리를 끝낸 후 마무리로 토끼 시체 대신 남은 풀을 태워 없앰으로써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돌아왔다.

 

변함과 사건 없는 삶이란 이렇게 마법사를 재미없고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제 내게는 귀찮은 일이란 건 없었고 아픈 것보다 지루한 게 더욱 끔찍했다. 마녀가 나를 키울 동안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으니 인식을 못했던 거였다.

 

진짜 많이 컸네~”

 

얼마 안 있음 치트도 어른이지?”

 

그런데 치트 아빠는 한 번도 못 봤네.”

 

바쁘다고 하잖아? 바다에서 일한다면 이 마을에 올 일이 없지.”

 

그들의 말대로 나는 이제 어른이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고 내 키는 굉장히 많이 커져 이젠 마을 내에서 올려다 볼 어른이 없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날카롭던 마을의 분위기 또한 풀어졌고 내가 벌인 일들은 가끔가다 어른들이 술을 마실 때 얘깃거리로 나오곤 했다. 나를 의심하며 경계하던 이들은 여전히 거리를 뒀지만 예전만큼 날을 세우지 않았다.

 

화환을 만들어야겠지?”

 

치트야 꽃이 좋니 나뭇잎이 좋니?”

 

둘 다 써서 만드는 게 어때?”

 

어른이 되면 꽃이나 나뭇잎으로, 둘 다 없는 겨울엔 얇은 나뭇가지들을 엮어서 환을 만들어 머리에 씌우는 풍습이 남아있는 마을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마을이 그런 마을인 줄은 몰랐다. 내 의견을 묻겠다며 원하는 꽃과 나뭇잎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어른들에게 딸기꽃이라고 말하니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농담인 거 아시죠? 그러니까 안 만들어도 괜찮아요.”

 

에이 무슨 소리야? 만드는 게 어렵지도 않은 걸.”

 

게다가 여긴 다 늙은이들 밖에 없어서 이런 거 챙기고 만들 일이 거의 없었단 말이야. 다들 만드는 거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늙은이에서 난 빼라, 난 아직 젊다.”

 

어른이 된다 해도 지금 상태론 달라질 게 없었고 이 반복에서 벗어날 방법이 되는 것도 아니니 별 감흥이 없었다. 신난 어른들은 화환 말고도 준비할 다른 것들에 대해 떠들고 얼마 안 있으면 어른이 될 나는 무료한 눈으로 책만 봤다. 이제 이 책가게의 책도 전부 봤다.

 

어른 되는 날까지 며칠 안 남아서 그동안은 오래 못 본 아빠랑 같이 지낼까 해요.”

 

어이구 그건 당연한 거지!”

 

그 때 네 아빠도 모시고 와! 전부터 궁금했어!”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인사하며 마을로 나왔다. 더 있었다간 표정 관리를 못할 게 분명해 발을 빨리 움직였다. 재미없는 데에 억지로 있는 건 너무 고역이었다.

 

지루함은 참 끔찍해요.”

 

호응 없는 불평을 뱉으며 주변의 모든 걸 눈에 담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는 언젠가 지루함을 못 이겨 결국 스스로 목을 매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을 찾으면 그동안 지루함이 없지 않을까.

별별 생각을 다 하며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는 그대로 아무것도 안 했다. 밥도 먹지 않고 뒤척이지도 않은 채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시간이 흘러 창문 너머 햇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지는 것도, 다시 해가 떠서 밝아지는 것도 쭉 지켜봤다. 그러면서 배 또한 고파졌지만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져서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다. 계속 같은 자세로 누워있으니 등을 비롯해 자잘한 부분이 뻐근해졌다가 마찬가지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이 전부 무감각해졌는데도 지루함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지루함은 죽음보다 더 독하겠지.

 

그렇게 꺼진 의욕을 따라 숨 또한 꺼뜨리길 며칠,

 

?”

 

한 순간 빛이 번쩍였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며칠간은 해지는 시기는 물론 뜰 시기도 감 잡을 시기였다. 해가 뜨려면 한참 남았고 방금 그 빛은 창문 밖에서 번쩍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집 안에 빛을 내는 거라곤 장작도 안 넣은 난로와 초밖에 없었다. 며칠 동안 누워만 있었던 터라 금방 일어나기도 쉽지 않아 고개만 옆으로 돌리니 책상 한구석에 뭔가가 빛나고 있었다.

 

콜록!”

 

다시 한 번 헛웃음이라도 흘리려고 했지만 지금 목 상태에 두 번은 힘들었는지 바로 기침이 올라왔다. 그러자 고통들이 잠에서 깨어나듯이 몰려올라와 온 몸을 괴롭혔다. 후들거리는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일어서는 동시에 몸이 휘청 흔들려 넘어졌다. 침대와 겨우 두 걸음 거리의 책상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는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기다시피해서 책상에 도착한 나는 후들거리는 팔을 들어 올려 뻗었다. 손 끝에 상자가 가볍게 닿았다. 그러자 잠겨서 열리지 않았던 상자가 열리고 빛이 터져 나왔다. 그 후 나타난 건

 

당신이 비밀이 많다는 건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빛은 마력이었는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고 똑바로 설 수 있었다.

 

궁금해서 찾아보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숨길 건 제대로 숨기고 없애놔서 알기도 힘들었죠.”

 

밧줄도 없는데 마녀는 공중에 떠있었다. 잔뜩 울상을 지으면서 나를 내려다본 상태로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예전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게 뭐냐고 물었겠지만 제대로 말도 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부턴 묻지도 않았던 것도 기억나네요. 자기연민과 죄책감 가득한 당신은 아마 제가 물으면 또 때릴까 안 물었다고 생각했겠죠? 안타깝게도 틀렸습니다~”

 

나는 마을 어른들에게 곧잘 지어주던 웃음을 지으며 말해줬다.

 

뭘 묻기엔 당신은 제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대답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살아있는 건지 아니면 그저 환영인지 모를 마녀는 내 말에 대답대신 다른 걸 내놓았다. 내 머리에 손을 얹은 흰 빛은 기억이 되어 들어왔다.

 

대여섯 명의 마녀들이 보였다. 그 중 둘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하나는 목매달아 죽은 후 상자에 있던 마녀였고 다른 하나는 내가 죽인 마녀였다. 목까지 맬 정도로 죽음을 바랐던 마녀는 뭔가에 겁에 질려 울고 있었고 다른 마녀들은 짜증난다는 얼굴로 돌아보거나 아예 무시했다. 그나마 그 마녀를 위로하는 건 역시 내가 죽인 마녀였다.

 

기억이 바뀌고 이번엔 울고 있던 마녀만 나타났다. 이번에도 겁에 질린 얼굴이었지만 상황이 아까와는 달랐다. 도망치고 있었다. 주위엔 단 한 번도 본적 없는 건물들과 특이한 형태의 옷을 입은 마녀들이 있었다. 그에 나는 저기가 어쩌면 그 마녀왕국이 아닐까 싶었다.

울고 있는 마녀는 손에 피를 흘리면서 무언가를 쥔 채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손에 있는 걸 자세히 보니 가시 가득한 녹색 줄기가 흔들렸다.

 

다음으로 나온 기억은 어떻게든 마녀왕국을 빠져나왔는지 주위 풍경이 익숙했다. 나무 사이를 빠르게 달리고 풀과 꽃들을 밟으며 마녀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밤이라 어두워서 그런지 마녀는 앞도 제대로 못 보고 나무에 부딪히고 엉킨 풀에 걸려 넘어지길 반복했지만 계속 일어나 달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시야가 환해졌고 마녀는 순간 앞을 못 보고 구르듯이 넘어졌다. 동시에 첨벙 물소리가 들렸다. 마녀가 고개를 드니 바로 앞에 호수가 있었다. 호수는 푸른 달과 처음 보는 검은 꽃을 담고 있었다. 모양을 자세히 보니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책에서 써진 대로 줄기에는 가시가 가득하며 천을 덧댄 것처럼 민들레 홀씨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풍성한 꽃. 장미였다.

하지만 저 장미는 일반적인 장미가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날 만큼 크지도 않고 한 손에 줄기를 쥘 정도로 작았으며 꽃잎 색이 빨간색이 아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밤하늘보다 더 검은색을 처음 봤다.

 

마녀는 피투성이 손으로 기어가 호수위에 떠 있는 검은 장미로 손을 뻗었다. 맑았던 호수가 피로 물들었고 푸른 달이 빨갛게 지워졌다. 장미에 손이 거의 닿는 순간

 

우으아

 

검은 장미는 사라지고 마녀의 손 끝엔 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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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는 수정구 말고도 옷과 작은 책, 씨앗이 들어있는 봉투, 뭔지 모를 게 들어있는 유리병들이 있었다. 우선 유리병들만 꺼내 살펴보니 물 같은 게 아닌, 색이 있는 연기가 구름처럼 흐르고 있었다. 온갖 색이 섞여있어 더 설명하기 난해한 이 연기의 정체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했지만 정체는 비록 나중이지만 간단하게 알게 됐다. 같이 들어있던 작은 책에 적혀있었다.

 

가만히 있었어도 몇몇은 죽었겠네.”

 

마력 추출. 여러 어려운 말이 적혀있고 풀과 나무, 꽃 등 자연물을 상대로 한다고 했지만 내용을 보면 그냥 제 눈만 가린 꼴이었다. 함부로 처리하기도 힘들어서 창고에 넣어두고 더 자라 책의 내용을 이해하게 됐을 때 덩달아 그 때 사건의 범죄자의 정체와 수법을 알게 됐다. 짐 가방 주인이었던 그 마녀였다.

이유는 몰랐었고 얼마 전에야 알게 됐지만 목적은 단순하고 당연하게 마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자연물에서 나오는 한 줌 정도의 마력이 아닌, 마녀나 마법사 하나는 될 정도로 많은 마력이 한 번에 필요했고 그 결과물이 유리병 속의 내용물이었다. 저 병 하나하나에 들어있던 연기는 바로 그 사건에서 죽은 마녀들과 마법사의 마력이었다. 원래 눈에 안 보이는 마력이 저 정도로 압축해놓으니 결국 보이게 된 결과였다.

유리병을 창고로 넣은 이후엔 크게 별 일은 없었다. 마을 마법사들과 마녀들은 의외로 서로에게 별 말이 없었고 가보니 마녀들이 이미 떠난 상태였다. 다만 마을 마법사들은 그 날 이후로 경계심이 심해져 여행 온 마녀는 물론,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사가 올 때에 분위기가 미묘하게 가라앉고 세운 날을 감췄다.

소식지에선 범죄자를 잡지 못했지만 더 이상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 이후로는 다시 전처럼 생활상식과 소소한 자연 이야기만 올라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대로 자라지 않을 줄 알았던 내 키는 생각지도 못하게 쑥쑥 컸다. 맞는 옷들이 없어 곤란해진 때에 이제 내 키가 많이 큰 걸 보고 기특하다는 듯이 웃던 마을 마법사들은 자신들 혹은 다 자란 자식들의 예전 옷들을 꺼내 내게 안겨줬다. 어떤 어른들은 사흘밖에 안 지났는데도 갑작스레 커진 내가 어색했는지 힐끔거리며 보고 있었다.

자급자족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키가 큰 이후론 마을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본격적으로 돈을 벌어 모아놓을 수 있게 됐다. 마녀가 가지고 있던 돈이 꽤 많았어도 언젠간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마을에서 사는 게 어떠니? 매번 이렇게 왔다 갔다 하기 번거롭잖아.”

 

지금 사는 데가 일터랑 더 가까워서 옮길 생각이 없다고 하시네요.”

 

벌써부터 돈 벌 생각을 하다니 기특하기도 하지, 자 이거 먹어라. 한창 클 때 많이 먹어둬야 하는 거야.”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내가 종종 세던 마당 닭 중 하나를 잡아 구워 내게 건넸다. 이렇게나 호의를 보이는 그들에게 웃어주며 아직 그대로 있는 책가게로 눈을 돌렸다. 작은 마을엔 책도 귀하고 하물며 이런 책가게가 있는 건 꽤 운이 좋고 신기한 일이었다. 이 책가게도 책을 판매하기보단 책을 빌려주면서 돈을 받는 식으로 유지해왔다고 했다.

그래서 이 책가게는 철거하거나 책을 뿌리기엔 가치가 마을 내에서 높았고 가치와는 별개로 책을 많이 읽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아 이대로 두고 일종의 도서관처럼 쓰기로 결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에 난 괜히 무겁게 책들을 들고 왔다는 감상 외엔 든 게 없었다.

덕분에 마을에 올 때 돈벌이 외에 목적이 생겼다. 당연하게도 책가게의 책들을 읽는 거였고 사실상 내 지루함을 없애주는 공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 읽는 아이가 그렇게 좋은지 찾아와 과자를 주지 못해 안달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렸으니 그렇게 평화롭게 지냈구나 싶었다.

 

이제 얼마 안 있음 딸기철이네.”

 

그러고 보니 한 몇 년 전 이맘 때 쯤에 웬 정신 나간 마법사 하나 찾아오지 않았었나?”

 

애 앞에서 말 곱게 써라. 그리고 정신 나간 게 아니라 아파 보이는 거였어.”

 

아니 상처는 없었는데 얼굴은 초췌하고 이상한 말만 하던 마법사가 정신 나간 마법사 아니면 뭔데?”

 

그러, 니까, , , 곱게, , 라고!”

 

끊어지는 단어 사이사이의 등짝 때리는 소리 박자가 귀에 잘 들어왔지만 듣고 싶은 건 이상한 마법사에 대한 거였다. 그에 대해 더 자세히 물어보니 바로 얘기가 술술 나왔다.

 

어느 날 다짜고짜 나타나서 내 팔 붙잡고 흰 색 장미를 들고 간 마녀를 못 봤냐고 묻더라. 장미는 빨간색이라고 제대로 알려줬는데 막 화를 내더니 갑자기 이 집, 저 집 뛰어 들어가 부수고 난리 부려서 나무 다듬이랑 호박집, 늘풀이 이 셋이 그 놈 붙잡고 마을 밖으로 내쫓았지.”

 

흰 색 장미요?”

 

우리가 아무리 장미 본 적 없다 해도 장미가 빨간색이란 건 다 아는데 뻔히 그런 말한 거 보면 아직 회수 중인 야생 장미가 있었나 싶었지. 아마 그거 노린 녀석 같았는데...아무리 생각해도 그 때 제대로 붙잡아 놓고 마녀 왕국에다가 알려야 했던 거 아냐?”

 

그 셋이 겨우 달라붙어 내쫓은 녀석을 어떻게 붙잡아 두려고?”

 

장미와 호수에 대해선 기본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장미가 빨갛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뭔가 이 내용은 꽤 흥미로웠다. 그냥 장미라고 해도 될 텐데 굳이 하얀 장미라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면 말 그대로 하얀 장미가 존재했거나.

 

완전히 쫓아낸 거예요?”

 

아니. 한 일주일에 한 번은 찾아와서 깽판을 부리다가 어느 순간 뜸하게 오더니 지금 아예 안 오고 있어.”

 

마지막으로 온 게 치트 네가 여기 맨 처음 온 때로부터 1년 전? 아마 그 때쯤이었던 걸로 기억해.”

 

이 마을에 이렇게 얼굴을 익히게 된지 4년은 넘었다. 그 수상한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온 게 적어도 5년 전이라는 거였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기자 또 올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히려 내 입장에선 또 왔으면 좋겠다 싶었으니 정말 의미 없는 위로였다.

내가 이 마을에 처음 발을 들인 날로부터 대략 1년 전, 뭔가 묘하게 신경 쓰였다. 그러다 별 의미 없이 고개를 올려 천장을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그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이 마을을 찾아오고 사라진 해는 나를 키우던 마녀가 자살한 해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흥미만 잔뜩 돋았지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른들이 설명하는 인상착의를 토대로 어디 있는지 모를 그 마법사를 찾으러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책을 읽는 걸로 지루함을 없애보려고 했지만 얼마 안 가 한계가 왔다. 그래서 저번에 비해 작은 사건을 한 번 일으켜봤다.

 

저게 뭐야?!”

 

세상에...어떤 미친놈이야!!”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닭들을 전부 마을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담에다가 매달아 놔봤다. 피투성이의 닭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고 정작 해놓은 나도 그리 유쾌하진 않았으나 마을 마법사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는 이상 닭들이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어 매달릴 일은 없었으니 이들이 누굴 의심하고 내가 저지른 걸 어떻게 알아낼지 궁금했다.

 

“...일단 진정하지.”

 

어떻게 진정해? 심지어 네 닭들이야!”

 

그래 저 꼴 난 닭들이 내 닭들이니 놀라고 화내는 건 내 몫이야. 그러니까 그만 화내고 진정해.”

 

나무 다듬이가 화난 걸 참으면서도 씁쓸한 표정으로 매달린 닭들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 성질 급한 마법사 하나가 누가 저랬는지 짐작 가냐고 닦달하듯이 물었지만 고개를 저으며 닭들부터 내려놓기 시작했다. 다른 마법사들도 도우면서 닭들을 아깝다는 눈으로 쳐다봤다.

 

아주 계획적인 미친놈이야. 달걀까지 깨놨어.”

 

마을 마법사들의 분노가 한 차례 더 불타올랐지만 그들은 누가 그랬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고 단서도 못 찾았다. 며칠간은 열심히 찾거나 새로 닭을 들여와 닭장 앞을 직접 지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 마법만 해놓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그 죽은 닭들은 웬 미친놈한테 발목 한 번 잡힌 거라고 치부하며 얘깃거리로 쓰이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에 나는 당연히 실망했다.

 

강도를 좀 올려볼까?”

 

저번에 마녀들이 찾아왔을 때처럼 근처 숲을 불태웠다. 닭들로 했으니 그렇게 안이했나 싶어 이번엔 과일 따러 간 마법사가 있을 때 일부러 태워봤다. 그제야 이런 일을 저지른 녀석을 잡아다가 찢어죽이겠다며 일어서는 꼴을 보니 우스우면서도 한심했다. 혹시 이대로 또 가라앉나 싶어 조금씩 자극을 해주니 점점 타올라서 내 발자국을 찾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난 말이야. 솔직히 치트가 의심스러워.”

 

야 뭔 소리야? 왜 멀쩡한 애를 의심해?”

 

생각해보면 치트가 온 이후로 일이 벌어졌잖아? 그 마녀 감싸준 것도 치트였고.”

 

드디어 답을 맞힌 마법사가 나왔지만 외부에 가까운 자에 대한 방어적인 배척이 토대라 또 실망감이 가득 차올랐다. 이 짓을 두 번 더 하고 나서야 그만뒀다. 애초에 이런 평화로운 곳에 박혀 살아온 마법사들에게 합리적인 의심과 추리력을 기대하는 건 겨울에 봄꽃을 기르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잠잠해진 이후에도 마을 마법사들 중 몇몇은 은근하게 혹은 대놓고 나를 꺼려했고 그런 분위기를 본 나무 다듬이 마법사가 결국 나섰다.

 

아무리 그래도 애를 그렇게 보는 건 스스로도 창피하다고 생각 못하나?”

 

하지만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잖아! 우리가 쟤를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바로 이런 일들이 사라졌잖아!”

 

게다가 네 닭들을 자주 보던 것도 치트였어!”

 

말은 바로 해야지. 치트를 의심하자마자 사라진 것처럼 말하지 마, 너희가 의심한 후에도 이런 일들이 몇 번 일어났잖아?”

 

너무 재미가 없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었다. 의심하는 이들은 나에게 와서 대놓고 뭐라 하기엔 심증인데다가 증거가 없으니 나를 피하고 의심하지 않는 이들은 다른 이들을 대신해 미안해하며 나에게 더 다가와 갖은 칭찬과 간식을 주기 시작했다.

지루함을 없애기 위해 그래도 뭔가 더 해볼까 하던 순간 흥미로운 손님이 나를 찾아왔다.

 

, 안녕? 혼자 사니?”

 

두드려질 일이 없는 문이었는데 똑똑 소리가 울리자 바로 밖으로 나가보니 본 적은 없었지만 뭔가 모습이 익숙한 마법사가 나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빠는 바다에 나가서 일해요.”

 

정말?”

 

. 그러니까 아빠 보러온 거면...”

 

아니 그게 아니라 네 보호자가 정말 마법사니?”

 

그 말에 나는 그 마법사를 빤히 쳐다봤다. 왜 익숙했는지 깨달았다. 본적은 없어도 저 인상은 잘 들어둬서 생생하게 기억했다. 상세하게 설명해준 그 어른들에게 짧게 감사를 속삭였다.

 

일단 들어오실래요?”

 

어느 날 마을에 갑자기 나타나 흰 장미에 대해 묻고 행패를 부려서 쫓겨났다는 미친놈이자 나를 키우던 마녀가 자살한 해에 사라졌다던 마법사.

 

집에 하나뿐인 의자를 양보하고 물을 한 잔 떠와 놓아줬다. 나는 그 사이에 탁자를 두고 의자 높이만큼 쌓아놓은 책 위에 걸터앉았다.

 

고맙구나.”

 

아니에요. 그런데 여기까지 들어오는 마법사는 드문데 무슨 일이세요?”

 

마녀를 하나 찾고 있다.”

 

제 보호자에 대해 물은 것과 같나요?”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올려다봤어야 했겠지만 단숨에 커진 키 덕분에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내 얼굴에서 어린 티는 아직 가시지 않았던 건지 그렇다며 혹시 보호자를 불러주지 않겠냐고 했다.

 

제 보호자는 없어요.”

 

얘야, 농담은 그만하고

 

농담이 아니라 말 그대로예요. 제 보호자는 없어요.”

 

그렇게 대답해주고 이젠 밧줄도 없는 천장에 시선을 돌리니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챈 건지 표정이 꽤 복잡해졌다. 뭔가 짜증과 분노, 허망함은 알겠는데 하나는 많이 본 표정이 아니라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는 내가 가져다 준 물을 들이키고는 말을 이어 뱉었다.

 

“...그래 결국 배신자도 끝은 다 똑같아, 다 죄책감 아니면 저주에 짓눌려 죽는 거지.”

 

죄책감이랑 저주요?”

 

이번에도 모른 척 하지마라. 그 마녀 아래서 자랐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죄책감은 학대를 저지른 것 말고도 뭔가 더 있어보였지만 저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내 반응이 꽤나 솔직하게 다가왔는지 마법사는 도리어 저가 의아하다는 눈빛이 됐다.

 

아무 말 안 해줬어? 그럴 리가 없는데? 죄책감은 물론이고 자기 연민도 강한 녀석이라 그동안 키운 너한테 자기 사정 떠벌리면서 일방적으로 이해해달라며 강요하고도 남았을 텐데 아무 말도 안 했다고?”

 

마녀와 아는 사이가 맞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녀는 뭔가를 실수로라도 말할까 숨기기 바빴고 말로는 미안하다 했지만 행동은 저 설명대로였다. 실제로도 내가 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뜻 모를 위로만 가르쳤으니.

 

진짜 애 하나 주워가지고 자기위로 속죄라도 하려한 건가? 무슨 생각으로 널 주워서 키운 건지 알고 있니?”

 

항상 목 조르고 동화책만 읽어줘서 잘 모르겠네요.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마녀는 왜 찾으러 온 거고 저주는 뭡니까?”

 

혼란에 빠져 뭐라 더 중얼거리던 마법사는 내 말에 정신 차리고 나를 빤히 보더니 미묘한 웃음을 짓고는

 

혼자 사니까 힘들지 않아? 나랑 같이 안 갈래?”

 

그다지 힘들진 않네요. 그보다 저주가 뭔지 말해주시겠어요?”

 

나랑 같이 가면 말해줄게.”

 

뭐가 그리 급한지 웃는 얼굴에 초조함을 가득 담고 대답했다. 저렇게 다짜고짜 말한다면 내가 아니어도 수상쩍어하면서 안 가겠다는 생각을 저 뒤로 밀어 넣고 내 얼굴을 빤히 보는 그를 마주 봐줬다.

 

게다가 혼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힘들지 않니? ?”

 

고민하는 걸로 보였어요?”

 

?”

 

제가 먹었을 때에 비해서 두 배는 넣었는데 역시 어른이라서 그런가? 멀쩡하네요?”

 

...”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쓰러지는 마법사와 그 여파로 깨지는 물잔이 참 아까웠다. 그래도 유용한 상대와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으니 기분 좋게 파편들을 치웠다.

 

토끼들은 금방 죽던데 당신은 마법사니 좀 버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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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끌어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딱딱하게 굳은 어깨를 보니 얼굴은 굳이 안 봐도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갔다.

 

조금 이따가 그 방으로 올래?”

 

울고 흐느끼던 목소리는 사라지고 가라앉은 말만 남기며 마녀는 물러났다. 사태가 일단락이 되었으니 마녀들은 범죄자의 흔적을 찾기 위해 마을 근처를 조사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말한 후 둘로 일행들을 나눴다. 하나는 마을 밖으로 다른 하나는 쉼터로 돌아갔다. 쉼터로 돌아간 이들은 일종의 대기조였다. 나와 대화를 나눈 마녀는 대기조였다.

쉼터로 들어가 둘러보니 다행히 마녀들은 각자의 방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계단을 올라가 가장 끝 구석진 방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다. 내가 엿들었든 그 창문의 방이었다. 문이 열리고 눈물 자국이 사라진 마녀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들어오렴.”

 

실례하겠습니다!”

 

역시 혼자만의 비밀이었는지 방 안엔 마녀 외엔 아무도 없었다. 다른 마녀들이 들으면 곤란할 테니 일부러 갇혔던 이 방으로 나를 불러낸 게 분명했다.

 

저 창문너머로 들었던 거니?”

 

.”

 

어디까지?”

 

이번엔 내가 아니라는 것만.”

 

누군가와 대화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들은 건 그것뿐이었다.

 

왜 그랬니?”

 

이건 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경계하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내 입을 막기 위해 나를 죽이는 상황까지 상상했었는데 지금 반응은 사고를 치거나 무례한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달래고 타이르려는 어른의 반응이었다. 황당함에 순간 바로 대답이 안 나왔다.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채근하는 말에 머릿속을 정리하고 무난한 반응을 던져봤다.

 

어른들이 책가게랑 쉼터를 못 가게 해서 몰래 와봤는데 꽁꽁 닫힌 창문이 있어서요.”

 

위험하니까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그 반응에 나 또한 깨달은 게 있었다. 마녀에게 있어서 나는 경계대상은 물론, 죽이면서까지 입을 막을 위험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어린아이였다. 제대로 엿들은 게 없는 버릇 나쁜 어린아이였다. 그걸 깨닫자 문득 떠오른 게 있었다.

 

저를 기르는 보호자와 닮으셨어요.”

 

충동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그만큼 앞의 마녀는 나를 기르던 마녀와 닮았다. 얼굴조차 닮지 않은데다 내 목을 조르고 소리치면서 물건을 던져대지도 않았고 오히려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는데도 닮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너희 아빠도 그런 걸 보면 걱정을 많이 끼쳤었나 보구나. 그러면 안 되지.”

 

상대가 어려서 위협거리조차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너무나도 닮았다. 거기에서 차이점을 짚자면 나를 기른 마녀는 위협이 안 돼서 마음껏 폭력을 가했고 내 앞에 있는 마녀는 위협이 안 돼서 이렇게 타일렀다.

 

그리고 기른다고 하는 게 아니라 키운다고 하는 거야. 의미는 같지만 기른다고 하는 건 보통 가축한테 쓰는 거니 느낌이 좀 그러니 이젠 주의하렴.”

 

신기하면서도 웃겼다. 내가 아직 어른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런 그들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 키가 커진 만큼 아래를 못 보게 되는 걸까 아니면 고개를 숙여볼 생각을 못하는 걸까. 경계할 가치조차 들지 않는 어린애가 책가게의 주인을 죽이고 저를 궁지로 몰아붙였다가 건져준 걸 저 마녀는 영원히 모를 거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너무나도 웃긴 동시에 즐거웠다.

한순간에 지루함이 가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환하게 웃어주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한결 더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사실 준비해놓고 아까 던져본 말로 포기한 게 있었다. 하지만 마녀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마음을 놓아버려 매우 유용하게 됐다.

 

친절하고 좋은 어른한테 주는 선물이에요!”

 

얇고 긴 끈을 달아놓은 작고 동그란 가죽 공이었다. 흔들면 찰랑찰랑 안쪽에서 물이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가죽에는 꽃잎 물을 들여 색도 향도 꽃이었다. 마녀는 그 공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으면서 받아 목에 걸었다.

 

예쁜 선물 고맙구나.”

 

마녀와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곤 작별인사를 하며 나왔다. 시간을 보아하니 이제 마녀들끼리 교대를 할 때가 됐다. 내가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까지 대화했던 마녀를 포함해 남아있던 마녀들이 밖으로 나갔다.

집에 있었던 책들은 마녀왕국에 있을 법한 책들이 꽤 많아 무작정 외우기만 했지 이해는 안 된 마법들이 많았고 그만큼 굉장한 마법들이 많았다. 구성을 이해하면 훨씬 더 편하고 마법 자체도 변형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좀 더 자라고 머리도 더 돌아갔을 때 기본부터 다시 익혀 구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니 말이다.

다만 이 땐 말 그대로 전부 다 외웠다. 종이에 적힌 그대로 다른 데에다 똑같이 옮겨 적을 수 있을 정도로 외웠고 마법자체는 마법진 혹은 주문식에 마력만 불어넣으면 발동이 되는 거였다. 그 마법들의 마법진과 주문식을 전부 다 외운 나는 그 모든 마법들을 쓸 수 있었고 주문식보다는 마법진이 더 잘 맞았다. 마침 내가 본 책에는 원격으로 마법을 일으키는 마법진이 있었고 당연히 그 마법 또한 외웠다.

마녀에게 준 가죽 공 안쪽엔 원격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누가 어린애가 원격 마법진을 새겨 넣을 거라 생각하겠는가. 거기에 더해 마녀는 나와 대화하느라 목에 걸어둔 걸 잊었고 그대로 교대 탐색하러 밖으로 나갔다. 탐색이어서 뿔뿔이 흩어져도 기본적으론 두 명이서 함께 다니는 듯 했지만 그래봤자 소수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다시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마당으로 돌아와 거기 있는 닭들을 열 번 정도 셌고 이정도면 됐겠지 싶어 어제도 썼던 작은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썼다. 원격 마법 또한 발동 됐다. 덧붙여서 밝히자면 그 가죽 공 안에 든 건 기름이었다.

 

 

 

아니 어제도 그렇고 누가 이렇게 불을 지르는 거야?!”

살해범이 날뛴다더니 여긴 방화범이 날뛰고 있네!”

 

불이 붙자마자 나무로 넘어졌던 건지 저 멀리서 연기와 함께 주황빛이 아직 새파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마을 마법사들이 기겁을 하며 어제 물마법을 가장 잘 다뤘던 마법사를 앞세워 물통을 들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틈에 나는 바로 책가게로 달려갔다. 어제처럼 그림자에 숨어 뒷문 쪽으로 가보니 불을 끈 후에 시신만 수습하고 전부 내버려둔 건지 문이 그대로 열려있었다. 겨우 의심 가는 마녀를 잡아뒀다고 이렇게 허술하게 뒤처리도 안 하다니 내 입장에선 참 고마웠다.

그을음이 가득한 바닥을 밟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이 다시 돌아와서 내가 여기 들어온 걸 발견해도 딱히 걱정은 안 됐다. 호기심 때문에 들어왔다고 울먹이며 시무룩해하면 잔소리 몇 마디 외엔 의심조차 안 할 테니 걱정이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린애로 있는 건 이런 면에서 참 편하구나 싶었다.

 

.”

 

그을음이 안쪽까지 번져있었지만 책들은 전부 멀쩡했다. 대신 물에 젖어 구겨진 책들이 꽤 있었다. 흥미 안 가는 책들이 대부분이라 정말 이거 밖에 없나 싶어서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겹쳐진 책장이 보여 밀어보았다. 그러자 안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책들이 나타났다. 역시 귀한 건 한 번 정도는 다른 걸로 덮는구나 생각하며 물 젖은 흔적도 없이 귀하게 보관된 그 책들의 제목들을 쓸어보았다.

대부분이 유용한 생활상식 보단 더 전문적이고 귀한 마법이론 책들이었다. 그중에서 그나마 흥미로운 책들 네다섯 권 챙겨들은 나는 밖으로 나와 다시 그림자 아래로 숨어들어가 마을 분위기를 살폈다. 바깥으로 전부 나갔는지 매우 조용했다. 혹시 누구 하나라도 아직 집에 있을까 싶어 마을 한 가운데로 나가진 않았다. 바깥은 숲에 번진 불 때문에 소란스럽지만 마을은 조용하다. 이 대비되는 고요가 참 마음에 들어 아주 예전에 동화책에서 읽었던 구절을 흥얼거렸다.

 

요정들은 작지만 욕심이 커 짚담에 큰 구멍을 만들어 아이들도 따라 구멍으로 드나들고

 

마을을 벗어나 불이 꺼져 탄 자국이 가득한 숲으로 발을 들였다. 저 멀리서 아직까지 불을 끄고 있는지 소란스러움이 가득했지만 상관없었다.

 

요정의 뒤를 따른 아이들은 온갖 신비로운 환상들을 보게 되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소리들은 옅어지고 탄내가 짙어졌다. 그림자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까맣고 조용해 검은 글자 가득한 책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신이 나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저 앞에 나무가 아닌 뭔가가 있었다.

 

길을 잃었답니다.”

 

가장 먼저 보인 발이 주위의 나무처럼 까맸다.

 

하지만 전 밖에서 살아서 길을 잃지 않아요.”

 

검은 발이 점점 바스러지더니 탄 자국이 가득한 짐 가방을 제외하면 모든 게 사라지고 있었다. 검은 재들이 전부 사라지고 남은 건 처음보고 이름 모를 꽃 한 송이였다.

 

거기에다가 전 오늘 운이 너무 좋네요.”

 

단 둘이 방에서 얘기할 때 얼핏 본 그 짐 가방을 들어올렸다. 그을음이 묻었지 가방 자체가 탄 게 아니었다. 안쪽에서 뭔가 시끄럽게 웅웅거렸다.

 

[무슨 일...!! 이거 왜....!!!]

 

두 손으로 꺼내 들어야할 정도로 커다란 수정구에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고장이 났는지 안쪽이 희뿌옇고 소리가 끊겼다. 쓸모없겠구나 싶어 꽃 있는 데로 던져줬다. 쨍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조용해졌다. 수정구를 꺼내니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져 그 안에 들고 있던 책을 넣고 맸다.

 

재미없네.”

 

오늘은 운이 너무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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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쓰면서 책가게의 책들을 떠올렸다. 보는 순간 저 정도면 얼마나 지루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았지만 책등에 써져있던 기본생활 상식이나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열매 찾기 같은 문구 때문에 금방 흥미가 식어버렸다. 열매는 이미 토끼들을 통해 알아냈고 생활 상식은 소식지에 어떤 풀을 같이 넣으면 빨래 얼룩이 금방 빠진다는 식으로 항상 제보됐다.

지루함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그대로 숨을 멈추면 지루함이 사라질까 호기심이 일기까지 했다. 이때까지는 단순히 아픈 게 싫었으니 당연하게도 아픔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지루함에 잠겨 말라죽어가고 있을 때 계기는 의외의 곳에서 충동적으로 다가왔다. 소식지가 오랜만에 다른 소식을 담아왔다. 자연의 경이나 소소한 생활지식들 대신 어떤 사건이 꽤나 심각하고 진중한 단어들과 함께 적혀있었다.

내용은 마녀왕국에서 연쇄적으로 살인이 일어난다는 거였고 시신의 상태가 상당히 이상하다는 내용이었다. 어딘가 찔린 데도 없고 맞아서 멍든 데도 없는데다 마법을 쓴 흔적도 없다는 얘기였다. 얼핏 보면 단순히 잠든 걸로 보일 정도로 상태가 멀쩡해 흔들어 깨우려고 하기 전까진 자고 있는 줄 알았다는 얘기들도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이상한 상태는 바로 시신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였다. 바람이나 물, , 꽃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문제였다. 왕궁 마녀들이 조사한 결과 시신에게서 자연으로 돌아갈 만큼의 마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즉 빈껍데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였다. 왕궁 마녀들은 범죄자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 누가 안심할 수 있을까. 지금 마녀왕국은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마지막으로 이 사건의 내용은 끝이 났다.

확실히 심각한 사건이라는 건 알겠지만 실감이 안 가 감흥이 없었다. 이런 건 이렇게 글로 읽는 것보단 천장에 걸린 밧줄을 보는 게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아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처도 마법 흔적도 없이 잠든 것처럼 마력이 전부 사라진 채 죽은 마녀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이랬다.

과연 마녀들만 당한 걸까?

마녀들이 왕국에 뭉쳐있는데다 따로 조사하는 마녀까지 있어서 빠르게 얘기가 퍼진 게 아닐까?

그렇다면 마법사들은?

마법사들이, 그리고 내가 당할까봐 걱정되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마력을 전부 없애면서 연쇄적으로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궁금했고 만약 마법사들도 당했다면 이 소문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식지인 만큼 마을 마법사들이 이 사건을 모를 리는 없을 테고 한동안 마녀들이, 넓게 잡으면 외부 마법사들이 마을에 들린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경계할 테고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건 그들일 게 분명했다.

 

마법사 하나만이라도 같은 수법으로 죽어줬음 좋겠는데.”

 

주변에 어른이라도 있었다면 바로 끌려가 정신머리를 고친답시고 도덕교육을 가르쳤겠지만 이 집엔 나 혼자뿐이었다. 마녀가 일찍 사라져서 정말 편하고 다행이었다.

직접 말하면서까지 바랐던 상황은 정말 이루어졌다. 사건이 터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엔 마녀왕국에서 살고 있던 마녀가 아닌, 왕국 근처의 마을 마법사가 피해자였다. 즉 범죄자는 마녀왕국을 탈출한데다 이제 잡히기가 더 어려워졌고 이제 피해 대상이 마법사들도 본격적으로 경계하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동화에서 흔히 나오는 착한 아이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요정은 절대 없다는 걸 확신하며 신난 기분으로 그 때 잡힌 토끼의 숨을 단번에 끊어주었다.

여행 온 마녀나 다른 마을에서 온 마법사가 언제 마을에 잠시 들릴지 모르니 소식지를 읽은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은 마을에 갔다. 근처에 호수도 없어 어른 밖에 없는 작은 마을에 어디서 왔는지 모를 아이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웠는지 상냥한 어투로 말을 걸거나 설탕 뿌린 빵을 주곤 했다.

그들이 준만큼의 기대에 맞게 웃어주니 단 것들 말고도 장난감까지 받게 됐었다. 어디에 쓰는지 모를 방울달린 막대를 이리저리 흔들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다니니 어른들 표정이 저렇게 좋을까 싶을 정도로 풀어진 웃음을 띠고 있었다. 어쩐지 인형극의 재롱부리는 인형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진 않았지만 꾸준히 마을로 온 결실이 맺어졌다. 대 여섯 명의 마녀들이 그 마을을 방문했다.

가장 힘이 좋아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나무 다듬이 마법사의 집 앞에 모두 모여서 그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당 닭들을 구경하는 척 하며 그들 근처에 서서 하는 말들을 들어보니 그들은 범죄자를 찾으러 나온 왕궁 마녀였고 왕궁에 멀리 떨어져있는 마을들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왔다고 했다.

 

꼬마야 여기 사니?”

 

마녀들 중 한 명이 내가 신경 쓰였는지 말을 걸었다.

 

아니요, 전 다른 데서 살아요!”

 

혹시 수상한 마녀나 마법사 못 봤니? 딱 봐도 뭔가 이상하다 싶은 느낌이라도 좋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했다. 누굴 찾느냐고 물으니 위험한 마녀 혹은 마법사를 찾는 중이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모습을 보이면 바로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신들에게 달려오라 주의를 주며 내게서 관심을 껐다. 나 또한 흥미를 잃었다는 얼굴을 한 채 다시 닭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범죄자를 목격한 이들이 있는 것 같았지만 모두들 설명하는 인상착의가 제각각이고 공통점이라곤 딱 봐도 수상하게 생겼다, 느낌이 이상하다 같이 누구나 그렇게 느낄 법하고 별 도움이 안 되는 정보 외엔 없어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피해사례가 또 있나 확인하고 있는 게 그들의 일이라고 했다.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마을 마법사들에게 말해두겠다며 마녀들을 쉼터로 안내했다. 닭 보는 걸 그만두고 그들을 보니 마법사와 마녀는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됐다. 생김새는 비슷해도 옷을 입는 모양새나 어투, 사소한 행동과 느낌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같이 살았던 마녀가 살아있었을 때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지만 이렇게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 되니 하얀 종이 위에 검은 점처럼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마을 마법사들도 이번에 온 마녀들을 경계하면서도 호기심이 드는지 쉼터로 향하는 마녀들을 힐끗 눈을 굴려 보고 마녀들은 눈길도 주지 않는 걸 보면 그런 시선들이 꽤 익숙해보였다. 쉼터로 들어가 모습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마법사들은 그들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마녀 보는 건 처음이야. 마법사랑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했는데 엄청 다르네?”

 

옷 모양새가 신기하더라. 색도 진하고 다양해.”

 

그런데 이 먼 데까지 그 범죄자가 올까?”

 

머니까 더더욱 오겠지.”

 

대부분 이런 얘기들이었다. 이번엔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다가가 이것저것 물어볼까 고민하며 쉼터 가까이로 갔다. 문을 열려던 도중 옆쪽에 기척이 느껴졌다. 마법사 하나가 쉼터 벽에 기대 앉아있겠거니 하고 넘기기엔 느낌이 굉장히 묘했다. 고개만 내밀어 벽 옆을 보니 아까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마녀 중 하나가 창백한 안색으로 주저앉아있었다.

 

누구야?”

 

날선 표정으로 돌아봤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고 곧바로 표정이 풀어졌다.

 

미안하다 얘, 여기까지 오느라 제대로 못 쉬었거든.”

 

왜 쉼터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쉬어요?”

 

난 시선 많은 건 힘들어하는데 쉼터에도 시선이 있으니 좀 괜찮아지면 들어갈 거야.”

 

내가 어린아이라서 그런지 경계도 누그러졌다. 전부가 익숙한 건 아니었던 거구나라고 넘기기엔 지치거나 힘들어서 안 좋은 안색이 아니었다. 독 든 열매 먹은 토끼의 안색이 저랬었다. 왕궁 마녀라고 해도 아픈 마녀가 왕국 밖으로, 그것도 마녀들과 마법사들 죽인 범죄자를 잡으러 나왔다는 게 참 이상했다. 물론 이걸 직접 말하진 않고 아파 보이는데 괜찮은 건지 묻는 걸로 한 번 찔러보았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그보다 위험하고 나쁜 마녀가 돌아다니니 너도 얼른 집에 가야지?”

 

그리 대답하고는 쉼터로 들어갔다. 방금 마녀의 말 덕분에 오늘 굳이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을 필요가 없어졌다. 마녀들은 범죄자를 마녀로 확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인상착의도 모른다고 했다. 저들은, 혹은 적어도 방금 대화를 나눴던 마녀는 숨기고 있는 게 있다는 건 확실했다.

나무 다듬이 마법사도 집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한 나는 아직 밖에 있는 마을 마법사들에게 인사한 후 마을 밖으로 나가는 척 하면서 담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주머니에서 기름과 다 쓴 종이를 넣은 병들을 꺼내 살펴봤다. 이상은 없었다. 이 순간 내 머리가 검다는 게 다행이라고 여기며 병들을 들고 저번에 찾아갔던 책가게의 뒷문으로 갔다. 뒷문 바로 앞에 병들을 두고 물러났다. 같이 준비해둔 마른 풀들 한 줌을 책가게 앞문에다가 던져놓고 불을 일으키는 마법을 사용했다. 비록 작은 불이지만 풀에 붙으니 연기를 일으켰다. 안쪽에서 우당탕 넘어지는 소리와 함께 뒷문이 열렸다.

 

왜 가게 앞에 연기가

 

뒷문이 열림과 동시에 병들에도 같은 마법을 일으켰다. 뒷문으로 나온 책가게 주인이 바로 아래 병을 밟자 바로 깨지면서 불꽃이 바로 터져 나왔다. 비명소리와 함께 불길이 책가게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마녀들도 쉼터로 돌아갔고 슬슬 해가 질 때라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마법사들과 이미 들어간 이들 모두 비명소리에 놀라 뛰쳐나왔다.

어디서 난 소리인가 궁금해 하는 이들 가운데 연기가 일어나고 있는 책가게를 발견한 이들이 깜짝 놀라 불이 났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네 번 정도 소리쳤을 때 저 멀리서 물 양동이를 들고 달려오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 외에 물 마법에 능숙한 편인지 바로 달려가서 물을 뿌리는 마법사도 있었고 어떡하냐며 발만 동동 굴리는 이도, 멍하니 연기를 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은 처음 봤지만 시끄러워서 그다지 달갑진 않았다.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 보고 갔다간 집에 도착하는 건 한밤중이 될 것 같아 내일 아침 일찍 와서 상황을 살펴보자 생각하며 조심스레 마을 밖으로 나갔다. 모두들 책가게로 달려가느라 그림자 밖에 나온 나를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음 날 마을로 가보니 내가 어느 정도 예상한 상황 둘과 예상 못한 상황 하나를 맞닥뜨렸다. 예상한 상황들은 책가게 주인이 죽는 것과 때마침 마을에 방문한 마녀들이 더욱 경계 섞인 시선을 받게 된다는 상황이었고 예상 못한 상황은 경계와 의심을 넘어서 거의 확정 취급을 받고 있는 마녀가 하나 있다는 거였다. 그 마녀는 어제 쉼터 벽에 기대서 나와 얘기를 나눈 마녀였는데 같이 쉼터에 들어가지 않았던 그 짧은 순간이 의심스럽다는 얘기였다.

 

그래, 왕궁 마녀들이 이런 먼 데까지 올 리가 없지!”

 

아무리 도망치는 범죄자라고 해도 여기까지 왔겠어?”

 

책가게 주인은 불에 타 죽었고 가게 내부가 일부 타긴 했지만 가게 안에서부터 일어난 화재가 아닌데다 정확한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마을 마법사들의 경계와 불안함은 그런 불완전한 것들을 전부 짓누르고 있었다. 마을 대표자의 입장에 있는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다른 이들에 비해 증거가 없고 화재상황이 이상하다는 점에서 무작정 따지진 않았지만 은근한 눈치를 줬고 그 결과 의심 받는 마녀는 지금 쉼터의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었다. 감옥이라는 게 없는 작은 마을에선 그 정도 감금이 최선이었다.

 

애기야, 위험한 마녀들이 있으니까 얼른 집으로 돌아가렴.”

 

몇몇 마을 마법사들이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책가게와 쉼터를 등지고 섰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마당 닭들 구경하러 왔다는 얘기면 충분했다. 나무 다듬이 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걱정하는 눈빛들도 얼마 안 가 바로 사라졌다. 닭 구경하러 온 아이를 걱정하는 것보단 저들끼리 떠드는 게 더 급했기 때문이었다.

닭들을 구경하며 주위 마법사들의 시선이 돌아가는 때를 노리고 시선이 전부 사라졌을 때 천천히 일어나 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내가 움직이는 걸 발견해도 햇빛 때문에 그늘로 갔구나 생각할 게 훤했다. 모이 쪼던 닭들이 하나 둘 줄어들고 닭장 안의 달걀들을 품으러 가는 걸 마지막으로 보고 나무 그늘들 아래로 움직이면서 쉼터 가까이로 다가갔다.

쉼터의 창문들을 살펴보니 2층 가장 구석진 창문이 커튼까지 쳐져 꽁꽁 닫혀있는 게 보였다. 마침 가까이에 굵은 나뭇가지들이 창문 가까이 뻗어있어 만약 뭣 모르고 열었다간 유리가 긁힐 테니 저기에 감금해둔 게 분명했다. 나무를 타는 건 열매 따느라 익숙했다. 물론 처음에만 그랬고 아래에서 돌 날려서 떨어뜨리는 게 훨씬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터라 나무를 탄지는 꽤 되어 오랜만이었지만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나뭇가지들이 굵은 덕분도 있었다.

 

“.............”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한 명 더 있었는지 좀 더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너무 작은데다가 울리는 느낌이라 이상했다. 자세히 듣기위해 창문 가까이 붙었다.

 

어떡하......?..끊지마!”

 

내용이 제대로 들릴 때쯤에 차분한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 우는 소리가 더 커졌다. 듣기 싫었던 나는 중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내려가버릴까 고민했지만 곧이어 들린 말에 미소 지었다.

 

이번엔 정말 내가 아니란 말이야!”

 

 

마녀의 상황은 순식간에, 단순하게 해결됐다. 쉼터 앞에서 떠드는 마법사 무리 하나 붙잡고 그 마녀의 인상착의를 말하며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마법사들은 얼굴이 굳어지며 그 마녀는 왜 찾냐며 역으로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태연하게 말했다.

 

어제 집 가기 전에 쉼터 벽에 기대어 있는 거 봤어요! 저랑 얘기 나누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때 너무 아파보여서 아직도 걱정 돼요!”

 

순진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말 한마디가 증거불충분과 이상한 상황보다 효과적이었다. 감금은 풀렸고 험담하던 마법사들은 입을 다물었으며 나무 다듬이 마법사는 사과를 했다. 마녀들은 사과를 받아들이며 속모를 눈빛으로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 덕분에 오해가 풀렸어!”

감금에서 풀려난 마녀는 엉엉 울며 나를 끌어안았다. 고마운 건 진심이었겠지만 이렇게까지 안는 건 주변 시선에 보여주기 용이었는지 힘 자체는 약했다. 그에 맞춰 나도 끌어안은 팔 아래로 손을 뻗어 위로하는 척 등을 토닥였고 마녀의 귀에만 들리게 속삭였다.

 

이번엔 내가 아니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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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후는 말 그대로 끝이었다. 천장과 제 머리를 이어 숨을 멈춘 마녀는 하루가 지나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죽음과 그 이후를 처음 보는 나는 처음엔 마녀가 다시 움직여 어디론가 가버린 줄 알았다. 훗날 알게 된 상식으로 죽음 이후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마녀와 마법사는 죽게 되면 바람, , 꽃잎, 풀 이 중 하나만 남기고 사라진다. 다음 날에 아무것도 없었던 걸 보면 그 마녀가 남긴 건 바람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깔끔한 뒤처리였다.

 

아픈 것과 귀찮은 것, 그 때까지만 해도 이 두 가지는 내게 있어서 대표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었다. 이 두 가지보다 혹은 그 만큼 싫은 건 딱히 없다고 생각했었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보다 더 참을 수 없고 싫어진 게 나타났다. 정확히는 나타났다고 하기 보단 자각을 하게 됐다는 게 더 적절했다.

 

“...이 책도 다 외웠어.”

 

그동안 느낄 새도 없었으니 자각하지 못했던 건 당연했다. 한 번은 물론이고 열 번, 스무 번, 백 번도 넘게 본 책은 어느 한쪽에 써져있는 내용들을 읊으라면 전부 읊는 걸 넘어 똑같은 책을 만들어낼 정도로 읽었다. 책등과 날개가 닳은 책, 보존마법이 걸려 있는 식량의 양, 가끔 비가 내리는 하늘. 이것들 외엔 주위에서 변하는 게 없었다. 천장에 걸려있는 밧줄마저도 그대로였다.

 

진짜 지겹네.”

 

폭력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던 나는 평온을 맞이한 후엔 지루함을 느끼게 되었다. 아프고 귀찮은 건 여전히 싫었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바로 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지루함이었다. 지루함을 자각하자마자 집에 있는 모든 책들을 꺼내 읽고 쓰고 외우는데 집중했다. 뜻 모를 문장과 처음 보는 단어가 있어도 무작정 읽고 쓰고 외웠다. 나는 이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루함을 몰아내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책들도 결국 끝을 보이고 말았다.

단순히 책장에 꽂힌 책들뿐만 아니라 집 곳곳에 숨겨진 책들과 종이뭉치들을 전부 모아 모두 읽고 외웠는데 결국 남은 건 너덜너덜한 책과 종이들, 마녀의 옷장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낡고 잠긴 상자 그리고 아직 꽤 남은 식량들. 변한 게 없었다. 집 안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넣은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책으로 배운 마법을 어설프게 써서 즉시 탈진해서 쓰러지거나 제대로 성공한 마법들을 조합해 발 빠른 토끼, 혹은 날아다니는 새를 잡아 주변에 있는 풀과 열매를 먹이며 상태를 살펴보기도 했고 반응이 괜찮은 것들은 챙겨서 보존마법이 걸린 식량들과 함께 놓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주변의 풀숲들을 전부 살펴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밤늦게까지 밖에 있었을 때 먹었던 열매.

 

꼬마야 보호자는 어디 있니? 왜 혼자 있어?”

 

주변에 말을 하는 자는 마녀와 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굳혔지만 어깨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게 있었다.

 

놀러왔어요! 열매 따고나서 이따가 만나기로 했어요!”

 

좋은 곳으로 놀러왔구나? 여긴 위험한 생물들도 없으니 안전하지.”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대답하니 바로 의심을 접고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본 마법사였고 얼굴자체를 기억할 수 없는 마법사였다. 평평하고 색을 넣은 유리가 눈과 그 주변을 가리고 입은 하얀 천으로 싸여있어 빈틈이 아무데도 없었다. 머리에는 당시 내 표현력을 빌리자면 하얀 비누거품 같은 걸 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딸기가 아주 달게 익었을 시기구나.”

 

딸기요?”

 

? 딸기 따러 온 거 아니었니?”

 

까만 점들이 가득 박힌 열매예요.”

 

그게 바로 딸기란다.”

 

그 열매의 이름을 알게 된 나는 연신 입 안에서 그 이름을 굴려댔다. 딸기가 많이 열린 데를 봤다는 그 마법사의 말에 답지 않게 경계고 뭐고 옷자락을 잡으면서 데려다달라고 외쳤다. 그 때 마법사가 무슨 얼굴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웃음을 흘리면서 옷자락을 내 손을 잡고 훨씬 작은 내 발에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달빛에 겨우 형체만 알아보고 먹은 열매는 자세히 보게 되니 굉장히 빨간색이었다. 분명 희끄무레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생각도 못한 색이어서 얼떨떨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주위에서 그만큼 빨간 건 딱 하나 뿐이었다. 긁힌 상처에서 배어나오는 피.

 

왜 그러니?”

 

“...빨개요.”

 

딸기는 익으면 이렇게 빨갛게 된단다.”

 

같은 빨강이었지만 여러모로 달랐다. 홀린 눈으로 새빨갛게 익은 딸기를 하나 따서 입 안에 넣었다. 가장 먼저 터져 나와 입 안 가득 자리 잡은 건 설탕과는 다른 달콤함과 그 뒤에 바로 붙은 상큼함이었다. 단 거라고는 설탕뿌린 빵 외엔 먹어본 적 없고 시큼함은 느꼈어도 상큼함은 처음 느낀 나에게 있어서 이 딸기는 충격과 새로움 그 자체였다. 제대로 익지도 않았을 땐 배를 채우기 위해 급하게 넘겼지만 지금 먹은 딸기는 넘기는 것마저도 아까워 천천히 씹으면서 굴렸다.

 

맛있나보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웃음소리와 함께 손이 내려와 머리를 쓰다듬는 걸 느끼며 딸기를 하나 더 땄다. 혹시나 떨어뜨릴까봐 아니면 생채기라도 낼까봐 아까보다 더 조심스럽게 딴 후 그 모양 그대로 어느새 비어버린 입 속에 채워 넣었다. 동시에 가슴 안쪽에서부터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만큼 아직 부족함을 느꼈다. 뭐든 간에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설익은 딸기는 시큼하지만 잘 익은 딸기는 달고 상큼하지, 거기서 더 익으면 물렁해지고 단 맛만 강하게 남는데 그만큼 익는 시간이 빨라 잘 익은 때가 금방 지나가버리는 까다로운 녀석이야.”

 

이번에도 딸기를 아껴 씹으면서 그가 하는 말들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이렇게 그냥 먹는 것 말고도 다양하게 가공해서 먹는 방법들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거나 딸기와 비슷한 종류의 과일들의 이름들을 말해줬다. 얘기를 듣던 중 흥미로운 부분이 딸기에 쏠린 신경을 붙잡았다.

 

마녀왕국이요?”

 

마녀들이 먼저 모여서 이룬 왕국이라 그렇게 불리지. 지금은 에키테 폐하께서 적극적으로 마법사들도 살 수 있게 하고 있어서 지금 들어가려고 하는 마법사들도 많단다.”

 

집 안 곳곳에 마녀가 숨겨놓았던 공책과 종이뭉치에 자주 적혀 있던 단어였다. 마녀왕국, 왕궁 마녀, 장미꽃에서 태어난다는 마녀들 그리고...

 

마녀왕국에 관심이 있니?”

 

. 그런데 마녀왕국이 적힌 책이 없어요.”

 

...이 숲은 마을들이랑 꽤 먼데...”

 

그 마법사는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메고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반듯하게 접힌 지도였다. 집에 지도가 있긴 있었지만 그가 건넨 지도에 비해선 굉장히 낡은 지도라 정보의 차이가 컸고 무엇보다 이 숲이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지도가 있으나마나였다. 그는 어느 한 부분을 가리키며 지도를 읽는 방법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여기가 지금 위치고 가장 가까운 마을은 바로 여기지.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가면 나오는 마을이야.”

 

방향과 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당시 내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설명한 마법사는 선물이라며 지도를 나에게 줬다. 호의라는 걸 처음 접한 터라 약간의 얼떨떨함과 경계를 담아 올려다봤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해가 지는 걸 보더니

 

그래 바로 저쪽이 서쪽이야. 하지만 지금 가면 늦고 이제 해도 지고 있으니 얼른 집에 돌아가렴.”

 

그 마법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해가 지는 방향으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소름이 돋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는 나더러 집에 돌아가라고 했고 나는 집이 근처에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보통 이럴 땐 어서 보호자와 만나라고 했을 텐데 말이다. 어렸던 나는 새로 얻게 된 지도를 보기 바빠 잘 가라고 짧게 인사만 하고 바로 관심을 끊어버려 알아채지 못했다.

다행인지 아닌지 그 마법사는 처음 만난 그 날 이후로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놀랍게도 그는 하늘의 현자라고 불리던 대단한 마법사였고 공교롭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마녀왕국 왕의 사망 및 공주가 모은 밸러니의 숲 조사대에 현자가 참여했다는 소식지가 곳곳에 뿌려졌다. 그리고 그 일의 뒷이야기는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명확한 목적지 없이 여기저기 무작위로 소식지를 뿌리는 비둘기들 덕분에 비둘기 우체부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소식지를 신청해 매일 기다렸다. 큰 사건이 없는 이상 어디에 무슨 꽃이 피었다 수준의 평화로운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조금이나마 지루함을 덜어줬기 때문이었다.

 

매워서 못 먹겠는데 잘 먹네요.”

 

구룩! !”

 

소식지 같은 건 돈 대신 바로 먹을 수 있는 먹이 아니면 질 좋은(?) 나뭇가지나 지푸라기도 받는다고 해서 꾸준히 소식지를 볼 수 있게 됐다. 가장 쉽게 얻을 만한 게 나뭇가지와 지푸라기지만 비둘기들 입장에서 질 좋은 건 달랐던 건지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워 차라리 돈을 내는 게 더 편할 정도였다. 마침 먹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해보려고 모아둔 열매들 중에서 비둘기가 좋아하던 게 있었다. 매우 좋아하면서 멀쩡히 먹어 괜찮은 건가 싶은 마음에 덩달아 먹어봤는데 그렇게 매운 건 처음이었다.

 

혹시 밸러니의 숲에 더 관련해서 적힌 소식은 없나요? 돌아온 이들의 무용담 말고요.”

 

구루룱...”

 

고개를 이리저리 까딱이던 비둘기는 옆에 있는 창문을 두 번 두들겼다. 아니다, 없다라는 뜻이었다. 매번 비슷하다 못해 별무늬가 새겨진 판으로 찍어내는 것처럼 거기서 거기인 내용이 나왔다. 정화가 성공하고 순백의 날이 된 때에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소식지와 정보가 참 즐거웠는데 갈수록 지루함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행히 소식지를 끊어버릴까 하던 찰나에 비둘기들도 얇지만 밥줄은 밥줄인지 끊기는 걸 원치 않아 다른 소식지들을 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앞서 말한 평화로운 소식들이었다.

 

만약 나온다면 다음엔 꼭 그걸로 부탁합니다~”

 

이런 소식지를 읽으면서 배운 건 바로 부드러운 말투였다. 상황을 보고 오는 건 비둘기지만 소식을 적고 형상화하는 건 마녀 혹은 마법사였으니까 이런 잔잔한 소식은 그들의 시점과 분위기에 따라 부드럽게 변했고 각자마다 말투가 다르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그리고 말을 알아듣는 비둘기는 그만큼 똑똑해서 이렇게 부드럽게 말하면 어쩌다가 몇 번 소식지를 그냥 주기도 할 정도로 자기 기분과 예의를 잘 알고 있었다.

소식지를 다 읽었을 땐 마녀가 집 안 곳곳에 숨겼던 종이들을 계속 읽는 걸 반복했다. 내용은 다 외웠지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는 내가 마녀왕국에 대해 자세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했다. 어른 마법사들도 모를 정도로 내용을 꼬아놓거나 일부러 중요한 부분을 없애버린 게 많았다. 이걸 알아낸 건 그 현자가 알려준 마을을 한 번 찾아갔을 때 이 종이뭉치 일부를 들고 갔을 때였다.

 

아가. 책 만들기 심부름이라도 왔니?”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종이뭉치를 가득 들고 마을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법 했다.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을 귀퉁이의 나무집을 가리키며 저기가 책가게라고 가르쳐주며 해지기 전에 얼른 심부름 끝내고 돌아가라며 제 갈 길을 갔다. 나는 그 나무집으로 바로 달려갔고 그곳에 가득한 책들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린 손님은 오랜만이네. 동화책은 저쪽에 있다.”

 

아뇨. 책 만들러 왔어요.”

 

책을? 심부름이냐?”

 

.”

 

나에게 심부름을 시킬 마녀는 없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니 그렇다고 했다. 책가게 주인은 종이뭉치를 받아들고 대여섯 장 훑어보더니 이상하다는 듯이 눈을 찌푸렸다.

 

이거...내용이 온전치가 않은데?”

 

온전치 않다는 게 뭐예요?”

 

이론식인가? 군데군데 빠진 데가 많고...뭘 만들려고 했는지 영 알 수가 없네. 실험 주체가 뭔지 아예 안 적혀 있어.”

 

당시에는 무슨 소린지 몰라서 멀뚱히 듣고만 있었다. 가게 주인은 나에게 정말 이걸로 책을 만들어 오라고 했냐며 물었고 그에 심부름을 받아서 책상 위에 있는 종이뭉치를 가져왔다고 대답했다. 이건 맞는 말이었다. 발견하고 마녀가 죽은 이후론 항상 책상 위에 내가 올려놨으니까 말이다.

 

잘 보고 가져왔어야지. 내가 봐도 이건 책으로 만들 게 아니야. 아마 실패한 실험 이론식 같은데 고치려다가 네가 갖고 온 걸 거야.”

 

실험은 뭐고 이론식은 뭐예요?”

 

그런 게 있어 좀 더 머리랑 키 커진 후에 네 보호자한테 물어봐라.”

 

반사적으로 보호자가 없다고 하려다가 꾹 입을 물어 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녀는 보호자라고 하기엔 그 뜻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종이뭉치를 다시 돌려받고 주위를 훑어보며 어떤 책들이 있는지 살펴본 나는 저 멀리 열린 방에 얼핏 보인 침대와 난로에 빨리 돌아가서 추운 밤에 대비해야한다는 걸 깨닫고 곧바로 가게와 마을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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