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녀에게 길러진 마법사였다.

내가 주위를 제대로 인식하고 당시 상황을 기억 속에 깊이 새길 때쯤 맨 처음으로 선명하게 들은 단어는 바로 미안이었다.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따라하고 몇몇 단어들은 또렷이 말하게 됐을 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걸 알고 싶으면 알고 싶은 걸 먼저 말하고 뭐야? 라고 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깨닫자마자 말했다.

 

미안이 뭐야?”

 

그 때 매일 미안하다고 말하던 마녀가 지었던 표정을 말해보라고 한다면...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눈여겨보지도 않아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 외엔 나올만한 게 없었다. 다만 나를 기르고 있었던 마녀의 상태가 이상해졌는데 말을 가르쳐주는 내내 같은 말 하나를 하루에 열 번씩은 반복해서 말하게 했다.

 

괜찮아.”

 

살면서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면서도 이때의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말이었다. 그 뜻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그저 반복해서 말하게 했으니 나는 당연하게도 별 생각이 없었고 그럴 때마다 마녀는 그 말 자체를 좋아하는가 싶었더니 어느 순간엔 울기 시작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손을 들어 자기 뺨을 긁어댔으며 나중에는 내 목이 자기 뺨이라고 생각했던 건지 내 목을 조르듯이 긁어댔다. 자세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자기 뺨을 긁어대다가 내 목을 긁는 걸로 바꾸게 된 계기가 있긴 있었다.

 

괜찮아가 뭐야?”

 

그렇게 물어본 이후였었다. 아픈 게 싫었던 나는 마녀가 쉽게 들어올 수 없는 틈 사이로 숨었고 마녀는 늑대처럼 울부짖으며 내 이름을 불러대곤 했었다. 어느 날은 못 찾고 어느 날은 찾는데 성공했는데 못 찾았을 때는 높은 찬장에 있어 내가 손을 못 대는 곳 위에 올려놓은 병을 들어 입에 가져다 불어댔고 찾았을 때는 틈 사이로 팔을 구기듯 넣으며 나를 끌어내려고 안달을 냈었다. 작았을 때는 잡히지 않았지만 몸이 커지면서 쉽게 잡히자 나는 틈 사이로 숨는 걸 포기하고 하루 종일 바깥에 나가있었다.

 

어디 갔어!!”

 

문에서부터 열 발자국 떨어져도 소리치는 게 굉장히 생생하게 들려왔었다. 그 소리가 참 듣기 싫어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아무 데나 가곤 했었다. 오랫동안 돌아다니면 금방 배고파지는 게 싫어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만 멀어져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해가 질 때쯤이면 마녀도 지쳐서 멍하니 앉아있기 때문이었다.

하루는 아프고 부어오른 목을 부여잡으며 완전히 떠나버릴까 했지만 흙바닥은 앉아만 있어도 거칠고 딱딱했으며 밤공기는 물보다 차가웠다. 배까지 고프기도 해서 짜증낼 힘도 없이 멍하니 누워있을 때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까만 게 잔뜩 박힌 작은 덩어리들이었다. 그 땐 열매라는 개념도 몰랐고 꽃과 다르게 생긴 덩어리들은 먹을 수 있는 거라고 막연히 알고만 있어서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잽싸게 따서 입에 욱여넣기 바빴다. 아직 제대로 익을 시기가 아니었는지 단맛보다 시큼한 맛이 먼저 터져 나왔지만 나는 아랑곳 않고 모두 목 뒤로 넘겼다.

 

밤늦게까지 내가 돌아오지 않으니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나를 찾으러 나온 마녀는 나를 끌어안으며 계속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다신 안 그러겠다고 절박하게 외쳐댔다. 나는 그 외침을 흘려들으며 덩어리들이 가득했던 풀 사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마녀가 나를 들어 올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갈 때에도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는 마녀 스스로가 말한 대로 다신 그러지 않기 위해 최대한 참는 듯 했으나 어디까지나 마녀 입장에서 최대한이었으니 완전히 그런 행동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전보다는 확실히 줄어들고 자주 밖으로 안 나가도 돼서 조금은 편해졌지만 귀찮고 아픈 건 똑같았다. 울부짖는 순간이 불규칙적으로 변해 미리 폭력을 피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날아오는 손보다 더 빠르게 피하는 순발력을 키우게 됐다. 오히려 더 약이 오르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다음엔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일이 많아 잡히지만 않으면 바로 바깥으로 달려 나갈 수 있었다.

마녀가 참고 있는 동안엔 본격적으로 글을 배웠다. 시기가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그동안 바깥으로 나가있는 시간만큼 하루 종일 단어를 외우고 같은 문장들을 반복해 쓰면서 익히니 늦었다는 흔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하얀 풀들이 나부..나부키고?”

 

나부끼고.”

 

..널버...넓어져서 모두가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마녀는 잘못 읽거나 힘들어하는 부분을 고쳐주는 걸 좋아했고 그런 날은 폭력이 일어날 일이 드물었기 때문에 일부러 더듬어 읽었던 때가 많았다. 마녀는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그 외에 무언가에 대해 알려주려고 할 때마다 목소리 끝이 천장을 두드릴 것처럼 올라가기 바빴다.

글을 더듬어 읽는 걸 그만둔 건 마녀가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질 때였다. 나를 가르치는 데에 의욕을 두던 마녀는 그것마저 지루해졌는지 아니면 지쳤던 건지 의자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거나 창밖에 시선을 던져뒀다.

마녀의 상태가 어찌됐든 더 이상 아플 일이 없다는 것과 멍하니 있을 땐 주변을 살펴보지도 못한 다는 걸 눈치 챈 나는 마녀가 서랍 깊숙이 숨겨뒀던 책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읽다보니 이제까지 읽어왔던 책과는 다른 느낌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건 누군가의 기록 아니면 일기로 추측되었다.

그 마녀가 쓴 일기는 아니라고 확신한 이유는 몇몇 부분만 제외하면 있었던 일을 객관적이게 적어놓거나 무언가를 보고 관찰한 느낌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기록이라는 단어를 몰랐었고 읽을거리가 책 아니면 일기 외엔 모르던 때라 일기라고 생각하고 읽었었다.

 

심은 이후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실패.

불안정한 시험 장소로 인해 실험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공주의 눈이 곳곳에 숨겨져 있으므로 실험은 잠정폐쇄.

씨앗하나가 사라졌다.

 

당시엔 무슨 의미인지 몰라 기억에 남는 부분만 따로 적어서 틈 날 때마다 읽었는데 따로 적은 부분이 바로 저 문장들이었다. 멍하니 앉아있는 마녀가 언제 일어날지 몰라 급하게 적은 것들이니 온전한 문장들은 아니었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이 전부 담겨 있어 문제는 없었다.

마녀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마녀가 쥔 비밀들에 관심이 있던 나는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집안 곳곳에 마녀가 숨겨놓은 정보들을 찾아냈다. 마녀의 비밀엔 누구를 향한 건지 모를 사과와 폭력의 대상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대상이 누군 줄 알게 되면 더 이상 내가 아플 일도, 귀찮을 일도 없을 거라며 지금 생각해도 참 순진하게 생각했었다.

 

찾아낸 정보들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엔 그 바탕이 되는 상식과 세부적인 지식들이 필요했다. 기본적인 역사는 가르쳐주니 문제가 없었지만 그 외의 나머지가 문제였다. 세부적인 지식은 둘째 치고 요정을 좋아할 법한 아이들도 지루해할 평화로운 동화와 옛 전설에 대해서만 읽어주고 알려주는 마녀에 지식 또한 내 스스로 쌓아야한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참 끝까지 도움이 안 된다는 불평을 바로 앞에 내뱉지 않도록 조용히 삼키면서.

 

예전부터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었어.”

 

금방이라도 누군가가 집을 부술 것처럼 두려워하던 마녀는 어느 순간 자기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폭력도 완전히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기 때문에 안도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라 포기, 체념에 더 가까워보였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상세하고 정확하게 정의 내릴 줄은 몰랐지만 위험하다는 거 하나만은 잘 눈치 챈 나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바로 도망쳤다. 마녀는 내가 도망치는 것도 모르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가거나 아니면 화장실에 가는 줄 알았다. 그렇게 나는 폭력 때문이 아닌 뭔지 모를 위험함 때문에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그 중에서 겁이 제일 많았지, 마녀들 많은 거리도 나가기 힘들어했었는데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다른 마녀들이랑 뭉치고 여기저기 돌아다녔을까 신기해.”

 

언제 그 위험함이 터질지도 모르는데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이유는 중요해 보이는 내용들이 많은 것 같아서였고 실제로도 중요한 내용이 맞았다. 바깥에 나가서 오늘 들은 이야기와 전날에 들은 이야기 그보다 훨씬 전에 들었던 것들 전부 곱씹고 되씹으면서 기억 속에 깊이 새겨 넣었다. 제대로 아는 게 없고 배워놓은 게 엉망이었으면서도 나름대로 정보라는 걸 쥐려고 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아픈 게 싫었고 마찬가지로 귀찮은 게 싫었다.

 

체념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위험함은 갑자기 끝났다. 거기에 이어 내가 마녀로 인해 아플 일도 귀찮을 일도 없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실 물은 물론이고 씻을 물도 없어서 작은 통을 들고 근처에 있는 강에 몇 번 왔다갔다 물을 날랐다. 창고 옆의 큰 물통을 전부 다 채우고 얼굴을 다 씻은 후 수건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집에 들어갔었다.

끼익 천장을 잇는 나무가 대신 비명을 질러주는 것 같았다. 물론 내 비명은 아니었다. 끼익끼익 두 번 울리면서 아주 예전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만큼 상처도 많이 생겼다는 발이 흉터를 내보이며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 발을 보면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을 보게 된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마녀가 마지막으로 보인 모습은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과 배움을 주었지만 곧바로 관심이 없어졌다. 죽음 이후엔 아무것도 못 느낀다 해도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는 아파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린 나는 아픈 것과 귀찮은 것, 이 두 가지가 제일 싫었으니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 건 당연했다. 그 때 저 위에 천장과 끈 하나로 이어진 마녀의 마지막 표정을 말해보라고 한다면...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눈여겨보지도 않아 기억나지 않는다는 대답 외엔 나올만한 게 없었다.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