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느낌에 고개를 드니 난감하고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는 얼굴이 보인다. 마법진을 설계하면서 몇 번 얼굴을 봤던 마법사였다.

 

...몇 번 불렀는데....”

 

“...무슨 일이십니까.”

 

...일단 급하게 피라도 닦으세요.”

 

물수건을 건네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고맙다고 대답한 후 받아들이자 도망치듯 급하게 뒤돌아 뛰어간다. 물수건으로 목과 팔을 닦자 피가 잔뜩 묻어나온다. 이건 내 피가 아니었다.

 

내가 예상치 못한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용사가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줄 몰랐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는 사고가 일어나는 거였다. 팔다리 날아갈 각오는 물론이고 숲이 뒤집어진 시점에서부터 이미 대형사고가 난 거나 다름없었지만 책장에 깔리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마법으로 만들어져 날리는 바위들이나 물은 마법사들에겐 자체 마력저항이 기본적으로 있으니 부상의 정도가 실제보단 옅었다. 하지만 용사는 실제로 책장에, 그것도 책들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에 깔렸다.

굳어있던 것도 잠시, 달려가 책장과 책들을 치우자 가장 먼저 보인 게 묻어서 떨어지는 피였다. 그리고 그 아래엔

 

다행히 바다 근처라 큰 마을이 많아 바로 수술에 들어갈 수 있었어. 응급처치가 좋았다는군.”

 

“...어딥니까.”

 

나중에 깨어나면 알려줄테니 기다리고 있게.”

 

용사의 부상은 저의 책임 또한 있습니다. 그러니

 

화장실 가서 얼굴 씻고 거울부터 봐.”

 

GM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그가 말한대로 씻을 필요가 있었다. 그대로 일어나 GM이 간 방향 반대쪽에 있는 화장실로 갔다. 피 묻은 물수건을 옆에 두고 물통을 끌어와 피가 묻은 데를 씻자 바로 물이 빨갛게 변해 흘러간다.

 

책장이 무너지기 전에 머리를 이미 부딪혀서 그런지 머리의 부상이 제일 심각했다. 우선 입을 열어 혀가 숨을 막지 않게 빼어잡고 찢어져서 피가 흐르는 부분을 지혈했다. 부러진 부분은 부목으로 쓸만한 것들과 고정마법으로 일시적으로 고정시켜놓았다.

섣불리 부축을 하면 상태가 더 심각해지는 데다가 하필이면 그 난리통에 통신구도 깨져있었다. 어찌해야하나 난감한 순간 아직 마법진 근처에 남아있던 마법사들이 찾아왔다. 굉음과 함께 숲이 흔들리고 뒤집어지고 있는 게 보여 급하게 준비를 하고 숲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들의 도움으로 숲 밖의 GM에게 근처에 응급 및 대수술을 할 수 있는 마을을 찾아달라고 연락할 수 있었고 용사도 옮길 수 있었다. 마법사들은 내게 묻고 싶은 게 많아보이면서도 묻지 않았다. 정확히는 묻기 힘들어했다.

 

피를 다 씻어내고 아래를 보니 온통 붉었다. 물통을 부어 전부 흘러가게 한 후 금이 간 거울을 보니 다친 데도 없으면서 낯색 나쁜 마법사가 있었다. GM이 왜 말렸는지 이해가 되지만 이건 별개였다. 바로 화장실에서 나와 GM을 찾아다녔지만 보이지 않았고 다른 마법사들에게 물어봐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 결국 가방에서 예비용 통신구를 꺼내 연락을 넣어봤지만 통신구를 들고 있지 않은 건지 아니면 일부러 안 받는 건지 반응이 없었다.

 

혹시 어느 마을인지 아는 데 없습니까?”

 

저는 지도만 드려서 아는 바가 없어요.”

 

이렇게 다른 이들이 마을마저 모른다면 GM이 작정하고 숨긴 게 틀림없었다. 이렇게 되면 내 낯색이 괜찮아질 때까지 GM은 아무런 연락도 주지 않을 거고 난 그저 기다리기만 해야했다. 평소같았으면 기다렸겠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무작정이긴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 근처에 있는 큰 마을들의 치료원을 찾아가는 거였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도 그것뿐이었다. 아까 물어본 마법사에게서 지도를 얻고 짐을 챙겨들어 밖으로 나갔다.

 

 

지도 들고 나갔다 했더니 진짜로 돌아다니고 있었어?”

 

이틀에 걸쳐서 마을 네 군데를 돌아다녀보니 그런 환자는 오지 않았다는 말 외엔 들은 게 없었다. 다섯 번째 마을을 찾아가고 있던 도중 GM이 나타났다.

 

어딥니까?”

 

거울 보고 얼굴빛 좀 환하게 하라고 말 안 한 거였는데 지금 보니 틀린 선택이었구먼.”

 

어딘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이런 때에 좋은 방법이 있지!”

 

제 할 말만 하던 GM은 이내 내 어깨를 붙잡고는

 

자네 안색 괜찮아질 때까지 나와 함께 지내는 게 제일 좋은 방법 인 것 같은데.”

 

나는 얌전히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기로 했다.

드디어 돌아오게 된 집은 당연하게도 조용했다. GM이 말한 대로 안정을 되찾기 위해 방으로 들어선 순간 벽 한켠에 세워진 책장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반사적으로 방어막을 펼쳤지만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정신차리고 앞을 보니 책장은 언제 쓰러졌냐는 듯 멀쩡히 세워져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책도 없었다. 방어막을 없애고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책장 가득 꽂혀진 책들에 이마를 대어 기댔다. 딱딱함이 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책을 읽다가 책이 무너지고 바람소리에 묻어온 악을 듣고 다시 잠드는 꿈을 꾼 건 일주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책장은커녕 책 하나 떨어지지도 않았고 바람이 불어도 잔잔했다. 마음과 감정이라는 게 참 우습게도 시간이 지나니 결국엔 잔잔해지고 있었다. 거울을 봐도 그 때의 내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거울 한 켠이 깨져있었다는 것과 바닥이 빨갛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그 때와 달리 내 집에 있는 거울은 깨진 데 없이 멀쩡했고 바닥은 계속 청소를 해놔서 피는 물론, 얼룩진 자국도 없었다.

무려 한 달만에 온 제대로 된 연락이었다. 그동안 연락이라고 해봤자 무슨 의미로 보냈는지 모를 난초들만 결계 밖에 놓여있었다. 난초들을 그늘진 마당 한 켠에 심어놓은 채 기다리길 이 주, 삼 주 그리고 한 달, 어떤 장소에 대한 좌표가 적혀있는 종이가 계속 오던 난초대신 놓여있었다.

거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한 나는 바로 나갈 준비를 했고 방금 끝마쳤다. 깔끔하게 정리한 집을 뒤로하고 생각 또한 정리하면서 결계밖으로 나가 용사가 있는 마을 근처로 이동했다. 부디 정리한 말들이 엉켜서 나오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온다는 녀석이 네놈이었냐.”

 

오랜만이다냐!”

 

무소식!”

 

이동하자마자 보이는 건 GM을 통해 자주 봤던 들개들이었다. 겹치는 일이 생겨서 다른 이들을 마중 보냈다고 써놓은 걸 봤긴 했지만 용사의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치료마법사가 있을 줄 알았다.

 

나도 마중 나온 이들이 자네들인 건 지금 알았네. 치료마법사는 다른 환자들도 있어서 바쁜가?”

 

우리가 그동안 용사녀석 간호를 한 달동안 해왔는데 용사 상태는 치료마법사를 제외하면 우리만 알지.”

 

자네들이 간호했다고?”

 

매일매일 옆에 붙어서 간호했다냐!!”

 

성심성의!”

 

여기서 용사녀석 사정 제대로 아는 게 이번에 처 알게된 너를 제외하면 우리밖에 없지.”

 

납득한 나는 용사가 있는 방으로 가면서 그동안 용사의 상태를 물어보았다. 갈색 들개들은 붕대 맨 상태로 신나게 날아다녔다던지 상황에 대한 얘기만 해서 결국 대장들개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처음 봤을 땐 온 몸의 뼈가 다 부러지기라도 했는지 붕대를 맨 상태로 고정되어있었고 나중에 가서야 풀게 됐는데...왜 처 다쳤는지 알만하더군.”

 

알만하다니 무슨 소린가?”

 

뭔소리긴 그 성격에 용케도 처 살아남았구나 싶은 소리다. 그래서 이번에 처 죽을 뻔한 건가? 이번 용사녀석은 옛날에 만났었던 용사와 좀 비슷하더만, 저 두 녀석은 그 덕에 신나서 용사랑 친해진지 오래고.”

 

대장들개의 말을 들으니 더욱 혼란이 왔으나 용사가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직접 상태를 확인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날붙이와 무거운 물건이 없는 환자의 방, 햇빛이 잘 들어오는 창문 하나와 환자용 침대 하나. 그런데 그 침대에 용사는 없고 웬 종이들만 놓여있었다. 당황스러움과 함께 아래에서 익숙하면서도 아이처럼 끝이 올라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웅~?”

 

, 용사?”

 

안뇽!!”

 

침대 위에 누워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용사는 바닥에 앉아있었다. 팔 한짝만 빼고 온통 고정붕대로 묶여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멀쩡한 손으로 무언가를 쥔 채 바닥에 대고 있었다. 바닥에 의미 모를 선들을 보아하니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전에 말한 새 친구다냐!!”

 

우정!”

 

“...?”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기도 전에 용사가 손에 쥔 걸 놓아 새카만 손으로 내 망토자락을 잡아당기고

 

새 칭구는 이름이 모야아~?”

 

우습게도 나는 그제서야 무너져내렸다.

 

 

 

 

 

열 번이나 얘기했기 때문인지 오랜만에 그 때의 일을 꿈으로 꿨다. 다친 머리 때문인지 아니면 죽음으로 판정된 건지 용사는 다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문제는 추억에 관한 부분만 잊어버리는 게 정상이었다면 이번엔 추억은 물론 말 그대로 지식, 상식, 생활방식에 대한 기억이 전부 날아갔다는 거였다. 나는 그 때 용사의 모든 교육을 담당하겠다고 했고 GM은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썹을 찌푸리거나 하지 않고 그저 아무런 표정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교육 자체가 돌보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들개들은 이런 내 행동에 상당한 경계심을 내보였다. 기본적인 친분조차 쌓지 않는 내가 이런 행동을 하니 의심을 하는 건 당연했다.

 

아이고 비둘기 팔자야~! 내가 이러다 짝을 찾기도 전에 고향도 못 돌아가 죽겠구나~!!”

 

호들갑 그만 떨게. 어차피 자넨 날아서 가니 그다지 위험할 건 없잖나.”

 

지도도 없는 세상의 끝 너머라도 이 하늘, 저 하늘 똑같으니까 위험할 거 없겠다고요?! 아이고 내 팔자야! 이 무심한 손님 때문에 비둘기 속이 타들어간다~! 위험수당 꼭 받을 거니까 알아둬요!!”

 

로메루의 단서를 찾겠다고 했지만 아무런 준비 없이 무작정 나온 건 아니었다.

 

비둘기가 회귀본능이 있어서 쓸만하군.”

 

뭐요?! 지금 뭐랬어요? 쓸만하군? 쓰을마안하아구우우우운~???”

 

뒤따라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무시하고 미리 준비해둔 편지 안에 내가 밟은 곳들을 그려넣은 지도를 끼워넣어 뒤돌아 건넸다.

 

내 아이에게 전해주게.”

 

 

 

 

First side story end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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