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다 했어?”

 

다 했네.”

 

가자.”

 

그 전에 이거 받게.”

 

털어내기 힘들 정도로 진흙이 묻을 수 있으니 새로운 신발들을 챙겨왔다. 용사의 발에 맞을진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에 한 켤레를 건넸다.

 

이건...”

 

진흙 묻은 신발로 돌아올 순 없잖나. 혹시 크기가 안 맞나?”

 

받아든 신발을 보던 용사는 고개를 저으며 맞을 것 같다고 했다. 마땅히 넣어놓을 주머니가 없었는지 용사는 신발을 손에 쥔 채 앞장섰다. 주머니에 넣어놓고 돌아올 때 꺼내줄까 물어봤지만 용사는 들고 있어도 상관없다며 거절했다.

용사가 앞장서서 도착한 곳은 용사의 집이 있는 바로 그 숲이었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마력이 고이는 현상 말고 다른 현상도 있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숲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용사의 발이 멈추고 드디어 도착한 장소는 이미 본 적 있는 장소였다.

 

여긴 바다꽃밭 아닌가?”

 

커다란 비달팽이를 용사가 해결하고 나는 흩어진 책들과 깔아놓은 지뢰들을 수거했던 그 날, 씨앗을 뿌렸던 그 바다꽃밭이었다. 이미 씨앗과 꽃잎을 날린 바다꽃들은 줄기만 남은지 오래였다. 용사는 그 줄기를 두 개 꺾어 하나는 나에게 건넸다.

 

절대 놓으면 안 돼.”

 

뭐라 묻기도 전에 줄기를 쥐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 갑자기 밤이 된 것처럼 주위가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내 손에 있던 줄기는 어느새 활짝 핀 바다꽃이 되어있었고 주위로 꽃잎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리고 있는 비는 현실이었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은 환상이었다.

 

잔상이군.”

 

간혹가다 그 장소 자체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잔상으로 남아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영상구처럼 재생되는 현상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서 비가 내리니 신기했고 그 아래에 바다꽃들이 있으니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이 불어와 바다꽃잎들이 저번에 봤을 때처럼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밤에 씨앗을 뿌리는 건 꽤 보기 힘든 광경인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예쁘지?”

 

자넨 왜 그렇게 예쁜 걸 묻나?”

 

예쁜 걸 보여주는 게 가장 좋다고 들었어.”

 

“...아름다운 광경이네. 만족하나?”

 

내 대답을 들은 용사는 입만 보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걸 본 나는 문득 예전과 아까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전부터 좋아했어요.”

 

사실 그리 감정에 예민한 편은 아니었다. 다른 마법사들처럼 얼굴과 행동에서 보이는 감정은 알아보고, 일부러 덮어서 감추는 감정들은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덮어두어도 잘 보일 정도로 새어나오는 게 있다고 하지만 그걸 눈치챌만큼 길게 얘기해본 마법사가 없었다. 그 때까지는.

 

좋아해요.”

 

하물며 향하는 방향이 내 쪽이 아니었으니 더욱 모르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이런 말도 이젠 변명이 될 수 없었다.

 

 

다행이네. 넌 예쁘다고 느끼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이라는 잔상으로 비구름이 가려졌다 해도 이렇게 비가 직접 내리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데 그보다 더 작은 안경을 핑계삼다니 참 우스웠다.

GM이 왜 그 둘에게 열심히라고 했는지, 왜 그 둘이 그렇게 기행과 의미모를 말들을 꺼내고 다녔는지 이제 제대로 알게됐다.

 

갈색머리 마법사는 쉼터의 주인을 좋아한다.

용사는 나를 좋아한다.

둘 다 똑같이 좋아한다는 표현을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전했다.

이제 다른 점은 갈색머리 마법사는 본인의 감정을 자각을 했고 용사는 자각하지 못했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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