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새로운 얘깃거리가 생겼나보군.”


“어제의 연장선이에요.”


“이미 어제 끝나지 않았나.”


“저도 이제 경계하기 시작한 걸 보면 일부러 정을 안 붙이시려는 유형이시군요?”


그렇게 거창한 단어만큼 거창하게 세운 벽이 아니었다. 지금같은 경우에는 그저 귀찮았다. 귀찮음을 바람삼아 흔들리며 밀어내는 장막이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였는지 왜 그렇게 벽 세우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첫째,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고 명확히 답이 나온 주제를 계속 이어나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둘째, 일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셋째, 귀찮다. 여기서 더 이유가 필요한가?”


“와...진짜.....”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 더 말을 잇지 않던 갈색머리 마법사는 그대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려했다.


“아 그 전에 혹시 저기 계신 쉼터 주인님이랑 친해요?”


가려고 하기 전에 멈춰서서 뜬금없는 질문을 꺼냈고 나는 인사하고 말 몇마디는 나눌 정도지만 그 이상으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진짜 냉정하시네요.”


그렇게 말한 갈색머리 마법사는 방금 친한 정도를 물어본 쉼터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신경을 끄고 마저 일하려던 찰나 쉼터의 주인 옆에 있는 마법사가 눈에 띄었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색은 무난하지만 온갖 화려한 무늬가 가득 새겨져있는 망토를 칭칭 둘러싼 마법사였다.

둘러싼 게 이상할 정도로 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둘러쌀 정도로 추운 날씨도 아니었다. 나만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는지 짐을 나르면서 그 주위를 지나가던 마법사도 흘끗보면서 발걸음도 느려지고 있었고 아예 쉼터의 주인에게 가고 있던 갈색머리 마법사는 그대로 멈춰섰다.


“그러니까.....라는....용사님?”


거리가 좀 있어서 묻히는 말들이 많았지만 저 망토를 둘러싼 마법사를 용사라고 부르는 건 똑똑히 들었다. 그나마 더 가까이 있던 갈색머리 마법사도 들었는지 어깨를 떨더니 나를 돌아보고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용사가 무슨 말을 했길래 웃음과 걱정이 섞인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주 열심히야!”


언제 왔는지 옆에서 하얀 돌로 난초를 그리고 있는 GM이 불쑥 말했다. 뭘 뜻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정리해둔 거 어지르지 마십쇼.”



“어지르긴! 예쁘게 정리해두고 있는 건데!”


흙을 묻혀서 명암까지 넣고 있는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고 빠르게 돌들을 수거했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열심히 웃던 GM은 뜬금없는 말만 남기고 다시 돌아갔다.



“모르면서도 둘 다 참 열심히지?”



흙 묻은 부분을 털어내며 한층 더 소란스러워진 셋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중 누구를 제외하면 GM이 말하는 둘이 될까 잠시 생각을 굴려봤지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쉼터의 주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뭐가 열심히라는 걸까 추측을 해보려고 했지만 나 아니면 쉼터의 주인에게 열심히 말 걸려고 하는 거 외엔 또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바로 멈췄다. 계속 신경쓰고 있기엔 마법진을 완성시켜야했고 그다지 신경쓰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많이 바빠?”



한창 집중하고 있을 때 온갖 시선을 잡아끌던 망토는 어디다 뒀는지 평범한 옷과 안경을 쓴 용사가 옆에 와서 바쁘냐고 묻고 있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내 할 일을 계속 했다.



“내가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는데 말이야.”


보통 무시하고 할 일을 하면 바쁘다는 무언의 대답이었고 상대방은 아 바쁘구나 하면서 자리를 뜨기 마련인데 용사에게는 계속 말해도 상관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나?”



“잠깐 쉬었다하면 되잖아.”



“지금 쉴 생각 없네.”



“언제 쉴 건데?”



“그걸 내가 정하나? 일하는데 방해말고 저리가게.”



뭐라 따진다면 몇마디 더 할 생각이었는데 용사는 순순히 자리를 떴다. 정말 자리만 순순히 떴다.



“지금부터 두 시간 쉬었다 합시다!”



일한지 아직 30분도 안 지났건만 뜬금없는 외침에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관리감독 옆에서 용사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고 나는 돌을 쥐어 흔들어보였다. 이 행동의 의미는 허튼짓 말고 일정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의미였다. 그 외에 돌을 들고 흔들어보이는 행동 자체가 통상적으로 좋은 뜻을 담고 있는 게 아닌데



“3시간이요...?”



용사에게는 통상적으로 와닿지 않았나보다. 관리감독의 당황스런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고 나는 더 망설이지 않고 양손에 돌을 쥔 채 일어섰다.



“어때? 시간도 남아도는데 내가 말한 거 보러 갈래?”



“자네는 내가 왜 돌을 들었다고 생각하나?”



“나한테 던지려고?”


“의미는 어느정도 파악한 것 같다만 먼저 기회를 주지. 오히려 시간을 늘린 이유는?”


“2시간은 3시간보다 짧으니까.”


용사의 말을 참고 삼아 돌 두 개는 부족할 테니 더 많이 준비했다는 의미로 마력탄 수 십개를 던지기 전에 보여줬다. 뒤에서 누가들어도 GM의 웃음소리라는 걸 알 수 있는 히이익 소리에 기분이 더 가라앉았지만 기겁한 관리감독이 쉬는 시간을 철회하고 원래 일정을 외침으로서 나는 마력탄들을 전부 없앴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야?”


“오히려 내가 묻고 싶군. 왜 그러는가?”


“그야...”


뭔가 말하려던 용사는 입을 딱 다물더니 무언가 심각한 얼굴이 되어선 숲으로 뛰어갔다. 어째선지 뒤에서 들려오는 GM의 웃음소리가 아까보다 더 커진 것 같아 무언가에 휘말리기 전에 빨리 내 자리로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GM만 문제가 아니었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다수의 시선이 느껴져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마법사들도 전부 이상한 표정을 한 채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눈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렸다. 급격히 쌓이는 찜찜함에 더더욱 가라앉는 기분을 애써 덮어두고 일에 집중했다.


“혹시 쉼터씨가 뭘 좋아하는지 아시나요?”


용사 아니면 갈색머리 마법사 이 둘은 서로 닮은 부분이 없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나를 찾아와 귀찮게 군다는 점 말이다.


“모르네만.”


“에이~ 그래도 서로 얘기 많이 나눠봤을 텐데 뭐 좋아한다 싫어한다 소소한 거 하나도 안 꺼내봤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얘기를 나눈 거라기보단 쉼터의 주인이 말을 꺼내고 나는 흘려듣는 식이었다. 그렇게 말해봤자 그것도 얘기를 나눈 게 아니냐 혹은 저번처럼 너무 냉정한 게 아니냐라는 말이 돌아올 게 훤했기에 다른 말을 꺼냈다.


“그럼 자네는 왜 쉼터의 주인이 뭘 좋아하는지를 알고 싶은 거지?”


“친하게 지내고 싶으니까요!”


그럼 이사온 이후 한 달은 대체 어떻게 지낸 거냐 따지기엔 개인의 비밀을 단체적으로 숨기고 있을 마을의 폐쇄성과 배척성을 생각한다면 마을에 들어선 것 자체가 신기한 노릇이었다.


“한 달로는 마을 마법사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나?”


“아뇨? 모두들 친절하셨어요.”


용사와 숲의 비밀을 제외하면 너그러웠는지 마을 마법사들의 친절한 행위들을 하나하나 읊기 시작하는 모습에 한숨이 나오려는 걸 꾹꾹 눌러담았다. 일단 머릿속에 있는 마을 마법사들의 행동 및 태도들을 수정했다.

그렇다면 갈색머리 마법사가 쉼터의 주인과 친해지지 않았던 건 딱히 서로 볼 일이 없었던 게 아닐까 추측됐다. 확실한 건 직접 물어보는 거였지만 물어보면 이들의 관계에 더 깊게 관여하게 되고 휘말릴 것 같아 머릿속에 맴도는 질문들을 흩어놓았다.


“정말 몰라요?”


“나한테 묻지 말고 직접 물어보게.”


이렇게 말하니 뭐가 또 문제인 건지 난감함이 대부분인 표정으로 쉼터의 주인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숙인다.


“그건 좀...”


“직접 물어보는 게 꺼려지면 다른 마을 마법사들에게 물어보면 되잖나. 아무리 쉼터의 주인이 내게 말을 많이 건넸다고 해도 정작 주인 취향을 알만한 건 같이 지냈을 마을 마법사들일 텐데.”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언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멍하니 나를 보더니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요?”


“나한테 물은들 어떻게 알겠나, 생각을 안 한 자네만 알 테지.”


끝말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는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라고 소리치며 다른 마법사들에게 달려가는 갈색머리 마법사를 보니 GM이 말했던 열심히라는 게 저걸 말하는 건가 싶었다.

마을 마법사들과 나와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도와주러 온 마법사들 구분않고 붙잡아 물어보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뒤에서 또 익숙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제 안 바쁘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건 비효율적이었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예고없이 마력탄을 뒤로 쏴서 날렸다.






“솔직히 말해봐요. 용사님 싫어하죠?”


마력탄을 열네 발 정도 쐈을 때 저 멀리서 일하는 마법사들 붙잡느라 바쁘던 갈색머리 마법사가 기겁하면서 달려와 말리는 걸로 용사와 마력탄의 술래잡기는 끝이 났다.


“귀찮다는 것도 싫어하는 범주에 들어간다면 싫어하는 거겠군.”


“아니 귀찮다고 그...번쩍번쩍하고 위험한 걸 날려대요?!”



엄연히 안전성 검증을 받은 비살상 위협용 마력탄이었지만 말 해봤자 안 들어먹을 걸 뻔히 아니 입 아프게 설명 않고 일하는데 방해말라는 뜻과 자네도 귀찮다는 뜻을 함께 담아 마력탄을 만들어보였다. 뜻이 제대로 통했는지 식은땀을 흘리며 뒤돌아 달리는 갈색머리를 지켜보다가 바로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마저 일을 해야했다.



“지금부터 한 시간 쉬었다 합시다!”



쫓아내던 와중에 시간은 착실히 흐르고 있었고 어제만큼 진도가 안 나간 내 몫의 일처리에 자연스럽게 내 표정은 좋지 않았다.



“5분 정도면 어제 몫은 따라잡겠어.”


평소보다 더 집중을 한 결과 5분만에 어제 몫보다 조금 더 많이 세워진 하얀 돌들을 살펴보며 쓰러지지 않게 마무리 고정을 마치고 흙 묻은 장갑을 벗었다. 나머지 55분동안 편안하게 쉬기 위해 적당한 나무그늘을 탐색하고 근처에 놓여진 유리봉 다섯 개를 들고와 눈에 들어온 나무그늘 아래에 원모양을 이루도록 세워놨다.

원 안으로 들어와 몇가지 도형과 문장을 그려넣음으로써 원 밖으로 밀어내는 바람을 일으키는 임시 통행거부 마법진을 완성했다.


“...이렇게까지 하다니.”


그 사이에 또 찾아온 갈색머리 마법사가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며 질린다는 눈으로 마법진을 보더니 돌아갔다. 역으로 이렇게까지 해야만 안 오는 자네들은 대체 뭐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시 찾은 평온이 우선이라 나무에 기대어 설계도를 보면서 가장 빨리 끝날 부분과 가장 마지막에 해야할 부분을 표시해두고 중간을 어떻게 진행하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계획을 짜냈다.

그러던 중 나는 각종 특성을 지닌 생물들과 싸워온 용사를 너무 얕잡아봤다는 걸 깨달았다.


“바람이 엄청 부네.”


단순히 통행거부용이니 마법사가 날아갈 정도로 강한 바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리에 조금만 힘 주면 들어올 정도로 애매한 바람도 아니었다. 앞으로 일정 범위 내에 발을 딛는다면 일반 마법사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결국 뒤돌아오는 세기의 바람이었다. 그런데 용사는 다리에 힘도 주지 않고 평소보다 강한 바람 맞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상하게 자네가 일반적인 마법사가 아니라는 걸 자꾸 망각하게 되는군.”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그보다 임시로 그린 거지만 대단한 마법진인데? 바람 쐬려고 하는 거였으면 안쪽으로 바람을 넣지 왜 바깥으로 바람을 내보내는 거야?”



“바람 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지 말라고 바람을 바깥으로 내보낸 거였는데 자네가 그냥 들어온 걸세.”



“이왕 들어왔으니까 옆에 앉을게. 책도 들고왔어.”


옆에 털썩 주저앉은 용사는 안경을 고쳐쓰고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신경을 끄고 마저 계획을 짜 정리단계로 들어갔다.



“내가 옆에 있는 게 싫어?”


사실 일하는데 방해하거나 귀찮게 굴지만 않으면 옆에서 책을 읽든 드러누워서 자든 상관이 없었다.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말을 걸고 귀찮게 굴면 누가 좋아하겠나? 심지어 계속 방해해서 일처리가 늦어지고 있다면 그것만큼 짜증나는 건 없다네.”


“그럼 가만히 옆에서 보는 건?”


“방해만 안 하면 상관없다네.”


용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이 끝나갈 때까지 종이 넘기는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


“다시 시작합시다!”


관리감독의 외침이 들려오기 5분 전, 세워둔 유리봉들을 수거하고 땅에 그린 도형과 문장들을 발로 문질러 지웠다. 책을 읽고 있던 용사도 나를 따라 발로 땅을 문질렀다.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들려오는 외침에 여기 온 이후로 매일 잡다시피하는 하얀 돌들을 그려진 선들에 맞춰 세웠다.

뒤따라온 용사는 네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 내가 일하는 걸 지켜보기 시작했다. 반복노동에 뭐가 볼 게 있을까 했지만 두꺼운 안경 때문에 시선이 잘 보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세도 한참동안 변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심심해서 옆에 앉은 채 멍하니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집중해서 일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일어나서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어제보다 더 많이, 빽빽하게 세워진 하얀돌이었고 그 다음으로 들어온 건 앉은 채로 잠든 건지 미동없이 그대로인 용사였다.


“거기 앉아서 뭐 하나? 일은 다 끝났네.”


“잠깐 생각 정리.”


“그럼 들어가서 하게.”


일하고 있던 때라면 모를까 엄연히 마법사 다니는 길목이었으니 통행에 방해가 되는 건 당연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용사는 나를 따라 쉼터로 들어왔다. 곳곳에서 용사를 부르는 마을 마법사들이 있었지만 용사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방해의 기준은 어느 정도야?”


“일처리의 진행속도를 늦추거나 멈추게 만드는 정도.”


“쉬는 시간엔?”


“혼자 있는 게 더 좋지만 옆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할 일을 하면 상관없네.”


“그럼 말 거는 것 자체가 싫은 거 아니야?”


“다짜고짜 친밀하게 말을 걸고 어디론가 데려가려고 하면 누구나 다 싫어하지.”


“친밀하게 말을 거는 게 싫다고? 왜?”


나는 어쩐지 반응이 격한 용사를 보며 되물었다.


“우리가 친한가?”


용사는 입을 딱 다물면서 그대로 멈췄다. 다시 짚어보자면 나와 용사는 애매하지만 친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이렇게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만날 일이 없고 편지를 주고받을 만큼 이야기 분야가 겹치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는 물론이고 용사 또한 맑은 하늘, 비내리는 밤과 같은 자잘한 안부 인사가 담긴 편지를 쓸 리가 없었다.

용사는 다시 되짚어보니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게 충격적이었는지 그로부터 40분이 지나도 같은 자세로 굳어있었다. 어쩐지 기쁜 기색이 가득한 쉼터의 주인이 여기서 함께 저녁을 먹을 거냐고 물으러왔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어깨를 툭툭 두드릴 때까지 용사는 굳은 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용사님?”


두드리는 걸 넘어서 어깨를 잡고 흔들어서야 용사는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반응이라고 해봤자 무작정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말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결국 긍정으로 간주한 쉼터의 주인은 용사 몫의 저녁까지 준비해왔고 용사는 거의 반복활동만 하는 인형처럼 입에 쑤셔넣고 있었다.


“...용사님이 왜 저러시는지 아시나요?”


나는 차마 나와 친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아서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제가 여기저기 돌아다닌 게 많다보니 별별 마법사들이랑 마녀들을 봤거든요? 그런데 당신처럼 냉정한 마법사는 정말 처음봤어요.”


“미리 말하는데 난 자네와도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렇게 벽을 세우고 밀어내는데 누가 몰라요?”


나는 말 없이 여전히 멍하니 앉아있는 용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용사님은 예외라고 칠 게요. 근데 정말 애매...하다고 해야하나? 보통은 좋거나 싫거나 둘 중 하나가 확실하단 말이에요.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밀어내는 건 또 처음인데 그렇다고 가시 세워서 밀어내는 느낌은 아니라 정말 모르겠다고요.”


“가시를 세워야할 이유는 없으니 세우지 않는 거고 밀어내는 건 친해질 생각이 없으니 밀어내는 걸세.


“그런 마법사가 어디 흔하겠어요? 게다가 완전히 밀어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어느정도 말도 받아주니 더 헷갈린다고요.”


“말 허리를 자르거나 아예 듣지도 않고 자리를 뜨는 건 좋고 싫고를 확실히 표현하는 걸 떠나서 무례한 거니 대답을 바라는 말엔 대답을 하는 거라네.”


“이건 또 묘하게 올곧으셔.”


사실 태도가 애매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고 이해가 안됐다. 이런식으로 태도를 취하면 오히려 상대방 측에서 말 거는 걸 꺼려했다. 여기서 용사와 이 마법사를 제외하고 예외를 꺼내자면 마법사 마녀 안 가리고 놀리는 걸 좋아하는 GM과 GM의 심부름으로 간혹 찾아오는 들개들인데 들개들도 나를 꺼려하니 실질적인 예외는 GM 하나뿐이었다.


그러는 자네는 밀어내는 걸 뻔히 알면서 왜 계속 쓸데없고 자잘한 질문을 하는 거지?


아니 저기요, 쓸데없고 자잘하다뇨! 진짜 이 마법사 막말이 거침없네!


반응을 과장해서 어물쩍 넘기려들지 말고 제대로 말하게. 보통 이런식으로 밀어내는 걸 느끼면 꺼려하기 마련인데 자네는 왜 일부러 질문을 하는 건가?


갈색머리 마법사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그런 것들과는 별개로 당신이랑 얘기 나누는 건 재밌거든요.


그런 말을 툭 남기고 쉼터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옆에서 인형처럼 앉아있던 용사도 어느새 사라져있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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