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데는 조금 시일이 더 걸렸다. 애당초 이렇게 돌아다니는 목적이 새로운 결계마법 혹은 이식할 만한 마법진을 찾는 거였다. 비 때문에 발목이 잡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상관없는 일에 썼다. 그 이후로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그럭저럭 괜찮은 마법진을 발견해 기존의 결계마법의 구조에 이식하는데 성공했다.

물리적인 인식조차 왜곡시키는 용사의 결계를 제일 먼저 봐서 그런지 지금 완성된 결계마법은 어딘가 아쉬웠지만 목표는 어디까지나 북도를 비롯해 다른 이들이 멋대로 마법이나 마력을 끼워넣지 못할 결계를 만들어내는 거였다. 그 이상은 지금당장 필요하진 않았다.

꼭 용사를 만나야하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이제 용사와 볼 일도 관련될 것도 없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데에서 용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냐!”

“용사!”


“맞다! 용사 냄새다냐!”

마법진을 완성하기 전에 갑자기 찾아온 들개들이었다. 항상 붙어있다시피하던 검은 들개는 어디로 갔는지 소란스러운 두 갈색 들개들만 나타나 다짜고짜 용사 냄새가 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결계마법 때문에 만났었다네. 용사를 아는가?”


“지금 용사는 모르지만 예전 용사랑 자주 놀았다냐!”

“옛친구!”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이 두 들개라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에 바로 납득했다. 한창 열심히 떠들던 들개들은 마법진을 완성했을 때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검은 들개가 찾아왔다.


“용사를 처 만났다고?”


“이렇게 찾아오는 걸 보면 그 용사라는 마법사와 굉장히 친한가보군.”


“예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절대 아니다.”


“그 예전이라는 게 안경을 벗으면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과 관련있나?”


눈을 찌푸리는가 싶더니 한숨을 내쉬듯 숨을 뱉으며 그대로 뒤돌아 왔던 길로 돌아갔다. 확실히 그 난데없는 변화와 들개들이 말하는 예전은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자세히 알고 싶진 않았다. 엄연히 들개들과 용사 사이의 일이었으니 잠깐 개인적인 일로 찾아간 나는 그 사이를 파고들 이유도 의욕도 없었다.

검은 들개가 찾아온 이후론 북도의 편지도 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북도의 편지가 오긴 오지만 결계마법으로 선별이 되어 북도의 편지를 가지고 온 비둘기 우체부는 그대로 돌아가는 형식이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고 이제 더 이상 귀찮은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여행은 잘 갔다왔는감!”

이렇게 GM이 직접 찾아오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만큼 무언가 일이 터졌거나 장난치러 왔다 이 둘중 하나였다.

“용사를 만났다며?”


용사는 몸을 사린 것치곤 발이 넓은 마법사 사이에선 꽤나 유명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일단 GM이 무슨 말을 더 할지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지금 용사랑 친해졌나~?”


“결계마법 건으로 찾아간 거 외엔 특별한 교류는 쌓지 않았습니다만.”


“안경 벗으면 왔다리갔다리 하는 거까지 보고 와놓고선 빼기는!”


어제 괜히 말을 더 붙였다고 생각했다. 확실히 긴 교류를 쌓은 게 아닌 이상 초면에 그런 변화를 알기는 힘들겠지만 상황이 꽤 특수했다. 우선 내 입장에선 특별한 교류를 쌓았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 쌓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용사쪽에서 나에게 무언가 바라는 것과 확인하고픈 게 있어서 계속 접촉을 해왔던 거지 나는 확실하게 선을 그어놨다. 용사가 꽤 여러번 선을 넘기는 했지만 그 넘은 깊이보다 비와 질척한 땅과 아무것도 안 하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더 싫고 귀찮았을 뿐, 선과 넘은 발자국들을 지운 건 아니었다.


“반응 보니 지금 용사는 별론가보구만!”


“자꾸 지금 용사라던지 비밀이 떡하니 있는 점을 들어서 말하는 걸 보면 그 비밀이 뭐냐고 묻길 원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척하면 착이구만! 어때, 들을텐감?”


안 들으면 더 귀찮아질 게 훤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이 고이는 숲에 대해 알고 있나?”


“용사가 사는 그 숲이라면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설명은 간단하게 끝나겠네! 용사도 그 원리로 태어난 마법사지.”


“...제가 기억하기론 그 숲엔 호수가 없었습니다.”


“호수라기엔 너무 작고 샘이라기엔 조금 큰 물웅덩이는?”


“비가 오던 때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호수만 있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바로 납득이 들었다. 호수가 있어도 자연적으로 뭉치는 마력을 기다리고 있는데 구조 자체가 모이고 고이기 쉬운 구조라면 푸른달이 뜰 때마다 아기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특성을 지닌 마력이 모인다고 했으니 용사 자체가 특성입니까?”


“그렇지! 바로 눈치채는구만?”


용사 자체가 특성이라는 건 말 그대로 용사의 모습과 마력 그대로 태어난다는 얘기였다.


“그렇담 용사는 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짧은 시간 내에 죽었을 테고 다시 태어나는 걸 반복한 거군요. 성격은 바뀌는 걸 보니 기억은 이어지지 않고.”


“지식은 마력과 함께 전해지지.”


무용담과 비달팽이, 마법사 하나의 마력으론 턱 없이 부족할 정도인 결계마법. 고인 마력을 먹은 생물들을 상대하다가 죽고 다시 태어날 때 마침 고이기 시작하는 마력들도 끌어오게 되어서 마력이 많아진 게 아닐까 싶었다.


“일단 여러 가지로 아직 납득 되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만...아기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성장한 모습 그대로 태어나는 겁니까?”


“그거야 나도 모르지!”

히익거리며 웃기 시작하던 GM은 제 동업자라면 자세히 알 것 같다고 했다. 그 마을 쉼터의 주인이 왜 말하길 꺼려했는지는 이해가 됐고 외부의 마법사가 안다해도 당사자가 이렇게 비밀은 잘 지킬법한 마법사라는 데에 감탄이 들었다. 마을 전체가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게 하려는 게 굉장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자네 다시 용사 만나야할 것 같은데?”


“...일단 앞뒤 사정을 먼저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비에 뭔가가 엉망이 됐는지 마을이 이주한다네.”


그 비는 아주 잘 알고 있고 잘 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용사와 함께 커다란 비달팽이에게 휘말린 걸 알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 마을 마법사들이 예전에 GM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거였고 그들에게 있어서 믿을 만한 외부 마법사가 GM이라는 거였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던 건 명확했다. GM의 발이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넓게 뻗어있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그 마을까지 밟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GM이 그 마을에서 이주관련 도움을 부탁을 받았다는 거고


“...저는 왭니까?”

“거기 쉼터 주인이랑 친하다고 들었지!”


나도 같이 가서 도우라는 말이었다. 쉼터에 머무르고 있을 때 말을 꽤 많이 걸었던 주인이 떠올랐다. 대답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을 못하게 막은 것도 아니니 친근하게 느껴진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쉼터의 주인 생각이었다.


“저는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에이 마법사 마음, 정이 있자너~!”


그 뒤로 계속 거절했지만 이렇게 작정하고 찾아온 GM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결국 얼마간의 준비기간을 마친 나는 한 달만에 다시 그 마을로 가게 됐고 거기서 가장 먼저 만난 건 용사도 쉼터의 주인도 아니었다.


“아 저번에 여행오셨던 마법사분이시네? 속삭이 바람 듣고 오셨나요?”


저번에도 용사와 쉼터의 주인보다 먼저 만났었던 약초 캔다는 그 마을 주민이었다. 나와 GM 외에도 이주를 도와줄 다른 마법사들이 많이 있었는데 얼굴이 꽤 익었는지 단번에 나를 알아봤다.


“한꺼번에 쉬지 않고 내린 비 때문에 마을에 문제가 생겼고 이주를 해야한다고 해서 도우러 온겁니다. 정확히 무슨 문제가 생긴겁니까?”


“원래 여기 지반이 점점 약해지고 있었는데 비가 쉬지도 않고 내려서 무너지는 게 앞당겨졌다네요.”


멀리서 봤을 땐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조금 기울어진 집들과 울타리들이 보였다. 나중에 땅이 더 가라앉는다면 지금 이주를 하는 게 확실히 옳은 선택이었다.


“저는 운이 없네요...여기로 이사 온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뭐라 더 말하려던 그 마법사는 저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 실례한다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어쩐지 이 마을 이주를 돕는 동안 저쪽에서 자주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편의상 갈색머리 마법사라고 기억해두기로 했다.

어떤식으로 이주를 할지,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을 때 누군가가 다급하게 내 어깨를 잡아돌렸다. 급하게 달려왔는지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는 용사의 얼굴이 보였다.


“너...!”


“뭐가 그리 급한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놓고 말하게.”


내 어깨를 잡은 손을 툭툭 두드려 떼어내고 마주보니 천천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진정을 한 건지 새빨간 얼굴을 잠깐 쓸어내리던 용사는 이렇게 말했다.


“또 왔다길래...”


“마을 이주를 도와주러 왔네만.”

숨이 완전히 돌아온 용사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럼 설명해줄까?”

“이미 들었으니 됐네.”


용사는 뭔가 더 할 말이 있어보였지만 설명하고 안내하는 이를 앞에두고 마냥 얘기를 나눌 순 없으니 가봐야겠다며 그 마법사와 함께 자리를 떴다. 다행히 급한 게 해야할 말은 아니었는지 용사는 붙잡지 않았다.


“일단 이거랑 저기 나무판자들을 옮겨주시고요, 내일은 하얀돌들을 저기 선에 맞춰서 세워주세요.”


아무래도 이주 방법은 단체 순간이동인 듯 했다. 나무판자로 세워지는 뼈대와 땅에 그림을 그리는 하얀돌. 한쪽에다가 나무판자들과 숯을 옮겨놓고 그어진 선들을 살펴봤다.


“반듯하게 참 잘 그려졌지~?”


“땅은 미리 알아두셨을 테니 도착지점은 이미 정해두셨을테고 복잡한 방식이 아니니 어려움은 없지만 마을 마법사들을 전부 이동시킬 마법진을 그리려면 시일이 꽤 걸릴 것 같은데 급한 게 아니었습니까?”


“한두 달 정도는 땅도 기다려줄 테니 걱정 없어!”


그러면 대체 왜 저를 데려온 거냐며 묻기엔 GM의 생각은 이미 짐작이 갔다. 다른 마법사 즉 나와 쉼터의 주인 혹은 용사와의 교류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마 용사쪽에 더 기울어져 있는 것 같았다. 사회성이 없는 마법사 두 명이 서로가 서로를 인연 삼아 교류를 시작하는 게 나쁘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되고 좋은 거니까 만나게 해준다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유이지만 GM은 당당하게 호기심과 재밌을 것 같아서라고 말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얘기는 잘 나눴남?”


“얘기라고 나눌 것도 없습니다만.”


“용사는 아닌 것 같은데~!”


GM이 내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지만 뒤돌지 않았다. GM은 둘이서 열심히 얘기 나누라며 자리를 떴고 나는 다른 곳으로 발을 옮겼다.


“어? 또 오셨네?”


쉼터의 주인은 나를 바로 알아보고 반갑다는 듯이 다가왔다. 인사를 나눈 후 꺼내는 얘기는 갑작스럽게 비가 와서 땅이 가라앉는 게 빨라졌다던지 여기 와서 맨 처음 만난 갈색머리 마법사가 꺼낸 얘기와 비슷했다. 다른 얘기라고는 많은 마법사들이 도와주러 와서 다행이라고 하거나 혹시 도와주러 온 마법사 중 하나냐고 묻고 쉼터에서 얼마든지 지내도 된다는 말들이었다.


“우리야 그냥 떠나면 그만이지만 용사님이 걱정이에요.”


“같이 떠나면 되지 않습니까?”


“음...용사님은 숲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으셔서...”


사실 숲과 용사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지만 이렇게 반문하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다. 마을이 이주를 하면 용사는 생활용품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들겠구나 싶었지만 어쩐지 알아서 만들 거나 방법을 강구할 것 같으니 그에 관련된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 맞다. 이것 좀 용사님께 전해주실래요?”


쉼터의 주인이 내민 건 저번에 그를 통해 용사가 보냈던 책 중 하나였다.


“저번에 전해주러 갔다가 실수로 땅에 떨어뜨려서 진흙투성이가 됐어요. 그래서 새로 하나 사는데 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용사님이 계신 곳까지 갈 시간이 도통 나질 않아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책을 내밀고 있지만 그다지 부정적인 감정은 들지 않았다. 사실 쉼터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를 통해 책을 받은 일이 많았으니 이정도 쯤은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고마워요!”


쉼터의 주인은 크게 기뻐하면서 외치고는 제 일터로 돌아갔다. 나는 바로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뒤돌아 책을 건넸다.


“받게.”


“나인 건 어떻게 알았어?”


“등이 뚫리는 착각이 들 정도인데 모를 리가 있나.”


책을 받아든 용사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눈이 안 보일 정도로 두꺼운 안경 때문에 어디에 시선을 두는지는 물론 어떤 감정을 나타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비달팽이 네 말대로였어.”


“뭐가 말인가.”


“마력을 토해낸 거.”


그리고는 언제부터 가지고 있었는지 투명한 상자 하나를 들어 나에게 보여줬다. 그 안엔 여유롭게 잎을 뜯어먹는 비달팽이 한 마리가 있었다.


“설마 그 커다랗던 녀석인가?”


“응. 물리 공격이 약점이었는지 엄청나게 반항해서 검을 갖다대지도 못했지만 열심히 날뛰는 바람에 부러진 나무가 운 좋게 이 녀석 쪽으로 쓰러졌거든.”


“그 마력은 어떻게 됐나.”


“대부분 공기중으로 흩어졌지만 특성을 지녔으니 아주 조금이나마 남았지.”


또 생물들이 먹어서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집 안 서랍 깊숙이 봉인을 해뒀다고 한다. 그렇다면 책들과 집의 파편을 찾으러 다닐 때 마력과 비달팽이를 찾았다는 말이 된다. 이제서야 말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기도 우스운 것이 그 때는 워낙 빨리 일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으니 애초에 듣지도 않으려고 했을 게 뻔했다. 그보다는 다른 이유로 궁금했다.


“처음 방법으로 세운 가설에 확신을 얻어서 좋긴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뭔가?”


“비달팽이의 원래 서식지는 어디야? 나는 오랫동안 숲을 비울 수 없으니까 방생하기 힘들고 계속 데리고 살 생각도 없어.”


“이주가 끝나면 내가 서식지에 방생하겠네. 그런데 이 녀석 말고 나머지 비달팽이들은 어디있나?”


나머지 아홉 마리의 평범한 비달팽이들은 그 큰 녀석이 날뛰는 난장판 한 가운데에서 살아남기엔 너무 작고 연약했다. 당연한 상황이었지만 쓰러뜨리려고 했던 녀석이 살아남고 별 생각 없이 잡아놓은 아홉 마리가 죽었다는 게 참 황당했다.

용사는 떠날 때 집으로 찾아와달라며 돌아갔다. 그냥 처음부터 내게 맡기면 되지 않느냐고 묻기엔 눈을 한 번 깜빡이니 용사는 이미 저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 뒤로 용사는 완전히 집으로 돌아간 게 아닌 건지 종종 찾아와서 밥은 먹었냐고 묻거나 남는 시간에 읽을 책을 빌려줄까 하면서 책들을 들고 오고 있었다. 일단 책을 받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안 가고 얼쩡거리길래 그냥 책을 돌려주고 자리를 떴다. 다행히 다음 날엔 용사는 찾아오지 않았고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었다.


“혹시 용사님 싫어하셔요?”

“자넨 뜬금없이 무슨 소린가?”


하얀 돌은 열 개쯤 세웠을 때 갈색머리 마법사가 찾아와서 다짜고짜 저렇게 물어오는 바람에 평소 볼 일이 많은 이들에게 하는 말투가 튀어나왔다.


“와, 말투 특이하셔요! 그리고 뜬금없는 게 아니라 보고 느낀 그대로 드리는 말이에요. 용사님 싫어하셔요?”

“아니.”


“그럼 좋아하셔요?”


“말장난하러 온 거면 다른 마법사를 찾게.”

“말장난 아닌데!”


처음 볼 때의 어색함과 어제의 거리감은 어디갔는지 바로 옆까지 와서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을 들이밀고는


“에이~ 둘 다 아니면 뭐가 있어요?”


“자네는 저 쉼터의 주인을 싫어하나?”


“네? 아뇨!”


“그럼 좋아하나?”


“그럴 리가요!”


“방금 자네의 말을 빌리자면 둘 다 아니면 뭐가 있나?”


펄쩍 뛰며 부정하던 갈색머리 마법사는 입을 꾹 다물더니 얌전히 옆에서 하얀 돌을 세우는 걸 돕기 시작했다.


“멀리서 보면 용사님을 경계하는 게 뻔히 보여요.”


정정한다. 입을 다문 게 아니라 계속 입을 열려고 돕기 시작했다.


“사실 저도 이 마을 마법사들 만큼 용사님을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용사님이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마법사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당신은 반대로 용사님을 경계해서 오히려 눈에 띄어요.”


“경계한 건 사실이나 굳이 용사만 경계하는 건 아닐세.”


“...저 일단 할 말이 없으니까 좀 더 생각하고 올게요.”


“생각하고 와도 별 다를 게 없네. 사실이니.”


“너무 매정하게 그런 말 하기 없기!”


피해다닐 목록에 갈색머리 마법사도 추가됐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쉼터의 주인에게 뛰어가던 그는 결국 넘어졌고 가까이 있던 쉼터의 주인이 다가가 일으켜줬다. 그 모습을 잠깐 보고 있던 나는 내 할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돌을 집어들었다.


“모두 한 시간 쉬었다 합시다!”


마법진을 만들고 있던 마법사들이 나무판자와 돌을 내려놓고 그늘 밑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흙 묻은 손을 털어내며 몸을 일으킨 나는 잠시 쉼터로 들어가려고 했다.


“왔어?”


오늘따라 정정해야할 말들이 참 많았다. 쉼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타난 용사는 꽤나 두꺼운 책들을 품 안 가득히 안아들고 있었다.


“...그 책들은 뭔가?”


“심심할까봐.”


“일하는 중엔 읽을 수 없네. 설령 지금이 쉬는 시간이라도 다 못 읽는다네.”


용사는 내 대답에 입을 딱 다물더니 책들을 옆에 두고 그 중 하나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일하느라, 그리고 짧은 쉬는 시간동안 많이 못 읽을 나를 놀리겠다는 뜻인 건지 아니면 나머지 책들은 자기가 읽을 몫이라는 건지 알기 힘들고 알고 싶지도 않은 행동이었다.

근육통이 오는 건지 목 언저리가 다시 쿡쿡 쑤시기 시작했다. 요즘 운동을 잠깐 줄였다고 이렇게 금방 통증이 생기니 다시 예전만큼 운동량을 늘릴 계획을 세우고 가볍게 목을 양 옆으로 까딱였다.


“무리했구나?”


“그 정도 일한 걸 누가 무리했다고 하는가. 다시 일하기 전에 풀어두는 걸세. 안마 필요 없으니 손 치우게.”


용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들어올렸고 나는 뒤로 한 발 물러나면서 거부의사를 표했다. 순순히 손을 내린 용사는 다시 책을 들어 읽기 시작했고 일을 하지 않으면 딱히 할 일이 없는 나는 그 옆에서 함께 책을 읽었다.

한 시간이 지나고 쉬는 시간이 끝났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해가 질 때까지 두 번째 선 위로 돌을 세운 후 내일 할 일을 미리 정리하고 따로 적어놓으면서 일을 마무리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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