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마법진인만큼 완성되는 기간이 긴 건 당연했고 여기에 환경적인 요인과 변수까지 발생하면 그 기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이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늘어나는 기간이 정해진다. 그리고 내 눈엔 점점 하루씩 늘어나는 기간이 보였다.


“넘어진다, 넘어진다고!”


“어어 빼빼빼빼!!”


넘어지는 나무 기둥과 그 아래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하얀 돌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환경적인 요인과 변수 둘 다였다. 환경적인 요인은 바로 마법진 안에 있는 마을의 내려앉는 지반이었고 변수는 그게 마법진을 만들고 있는 데까지 뻗었다는 거였다. 땅을 두드려 다 확인했는데 내려앉은 만큼 밖에 있는 흙이 그 자리를 채우려고 덩달아 쓸려내려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다 계산하고 만든 마법진의 크기였다.


“말뚝 가져와 말뚝!!”


멀쩡한 땅에 말뚝을 박아서 기둥이 완전히 무너지는 참사는 막았지만 곤란한 문제들이 남았다.


“이대로 진행하기엔 오차가 너무 커져요.”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완성하기엔 이미 늦었어요. 기둥 치우는 데도 꽤 시간이 걸릴 거고요.”


다시 만들자 오차는 나중에 수정하자라는 의견들이 반반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방금 그것들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떠올랐다.


“공중부양 마법으로 쓰러진 부분들을 고정시키고 마저 완성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즉각적으로 회의적인 반응들이 튀어나왔지만 예상했고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확도는 둘째치고 마력 문제가 있었지만 내가 이 해결책을 떠올린 이유가 있었다.


“자네가 말한 장소 같이 가줄테니 이번 일을 도와주게.”


그늘 아래 어제 저녁에 이어서 인형처럼 서 있는 용사에게 새로운 거래를 제안했다. 언제 그렇게 인형처럼 있었냐는 듯이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걸 넘어서 나무 기둥과 하얀 돌들과 함께 날고 있는 용사를 보고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단 일에 집중을 해야하고 나만 딴 길 샐 수 없다는 이유에서 용사가 말한 재밌는 현상이 발생하는 장소는 마법진이 다 완성되거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갈 때라고 못 박았다. 언제가 됐든 같이 가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는지 용사는 별말 않고 동의했다.


“무슨 말을 했길래 저렇게 신났어요?”


“도와주는 대가로 같이 가자고 하던 데를 같이 가겠다고 했을 뿐이네. 그보다 그것들은 대체 뭔가?”


자연스럽게 다가와 질문하는 갈색머리 마법사의 품에 용도 모를 물건들이 가득했다. 토끼를 비롯한 작은 동물 인형들은 그렇다치더라도 양말을 끼워넣은 듯한 모양새의 막대기는 대체 어디서 가져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쉼터씨가 좋아하는 물건들이요.”

“....다른 건 몰라도 그 막대는 농담 삼아 자네한테 말한 것 같으니 안 갖다 주는 게 더 나을 걸세.”


하지만 그는 듣지 않고 마을 마법사들을 믿는다면서 쉼터의 주인에게로 달려갔다. 멀리서봐도 당황한 모습이 아주 잘 보였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나게 물건들을 안겨주는 모습에 나는 절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리고 저 상황은 곧 내 상황이 됐다.


“...공중부양 마법은 어쩌고 왔나.”


“그냥 고정만 시켜두면 되니까 문제 없어.”


웬 잡초들과 대체 어디서 캐왔는지 모를 특이한 모양의 버섯들이 용사의 손에 한가득 쥐여져있었다. 애써 시선을 주지 않으며 공중부양 마법과 그 고정의 안정성 및 마력에 대해 얘기를 돌렸지만 전부 딱딱 대답한 용사는 여전히 안경 때문에 안 보이는 시선으로 날 보고 있었다. 결국 말을 돌리는 걸 포기한 나는 물었다.


“대체 그것들은 뭔가?”

“네가 좋아하는 것들이라고 들었어.”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건 전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아니고 자네와 나를 골리려고 그런 말을 한 걸세.”


“그럼 뭘 좋아해?”


바로 물어보는 말에 반사적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용사는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는지 들고온 것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다. 어쩐지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다시 돌아온 용사는 씻고 온 건지 말끔한 손으로 책을 들고 왔다. 방금 전의 일은 없던 일 마냥 그대로 옆에 앉아서 책을 펼쳐 읽는 용사를 보고 절로 눈이 가늘어졌다.


“자네는 뭘 원하는 건가?”


용사는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종이를 넘기진 않았다. 움직이던 손도 멈추고 용사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용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갈색머리 마법사는 나와 얘기를 나누는 게 즐겁다고 했지만 용사는 왜 저러는지 이유를 아직 알 수 없었다. 감정표현이 풍부하고 눈이 보여도 속내를 알기 힘든데 의미모를 말과 행동들만 하고 안경으로 눈까지 가리고 있으니 용사가 직접 속내를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아내는 건 힘들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길래 대답할 생각이 없는 건가 넘어가려다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상황에 용사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봤다. 미동도 없었다.


“용사님 불쌍하지도 않아요?”

“어느 부분을 불쌍해해야하나?”


갈색머리 마법사는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그렇게 노려봤자 아닌 건 아닌 걸세.”


“아니, 그...하.....”


“그리고 자네도 마찬가지일세. 자넨 쉼터의 주인에게 왜 그러는가?”


“제가요?”


“자네와 용사가 똑같다는 말을 한 마법사가 있는데 하는 행동이 비슷하네.”


갈색머리 마법사는 뭐가 충격인지 용사처럼 굳어버렸다. 어차피 일하느라 이 두 마법사에게 신경을 쓸 순 없었다. 이대로 있는 게 더 도움된다는 걸 깨달은 나는 둘을 내버려두고 하얀 돌들이 가득한 상자들을 들어 선을 그어놓은 데로 가 일을 다시 시작했다.

내게 주어진 몫의 하얀 돌을 전부 세우는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빨리 완성시킬겸 다른 마법사들을 도우려고 했지만 어째선지 모두 거절했다. 다음 순서를 먼저 하자니 아직 다 세우지 못한 게 대부분이라 진행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봐, 정신차리게.”


할 일이 없어진 내가 선택한 건 용사의 책을 빌려 읽는 거였다. 아직도 충격에 헤어나오지 못한 용사를 두 번정도 흔든 다음에 책을 읽겠다고 말을 한 후 발 밑에 있는 책을 주워 흙을 털어냈다.

그 옆에 앉아 책을 펼치니 어쩐지 굳어있던 용사가 움찔 팔을 떨더니 조금 떨어져 앉았다.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싶어 신경을 끄고 마저 읽는 데에 집중했다.


“...책만큼 좋아하는 게 있어?”


“연구일지나 개발 및 발달 계획서.”


“그런 거 말고, 예를 들면...나비?”


“좋아하지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네.”


“반짝이 풀이랑 꽃은?”


“수집하는 취미 없네.”


“술은?”


“웬만하면 안 마시지.”


그 뒤로 장신구, 희귀한 돌, 쓰는 마법 도구 등 용사가 물어보는 건 많았다. 장신구는 선호하지 않았고 수집하는 건 마법서 뿐이었으니 희귀한 돌에 관심 없었다. 마법 도구는 직접 만들 거나 만들기 까다로운 것들은 사서 쓰긴 하지만 실용성 위주로 살펴보다보니 내가 직접 고르는 걸 선호했다.

계속 질문하면서 대답을 듣기를 반복하던 용사는 이렇게 툭 말을 꺼냈다.


“미지근하네.”


딱딱하거나 재미없게 산다는 말은 자주 들었어도 저런 표현은 처음이었다.


“무슨 의민가?”


“말 그대로야. 관심이 없는 게 가장 크겠지만 막상 쥐여주면 던져버리진 않을 거잖아? 싫어하진 않으니까 던질 이유는 없겠지,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야.”


“감정을 뜻하는 거였군. 뒤에 덧붙이자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니 계속 쥐고 있을 이유가 없어 어딘가에 내려놓을 거라네.”


“행동은 확고하구나.”


옆에서 용사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림자가 진 걸 보니 일어난 게 분명했다. 굳이 고개를 들 필요성을 못 느껴 이야기를 나누느라 놓친 부분을 다시 찾으면서 훑어봤다. 종이를 두 장 넘겼을 때 용사가 문득 물었다.


“책 더 가져올까?”


그에 나는 고개를 들어 용사를 올려다봤다. 까맣게 그림자가 져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 고맙네.”


용사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나는 지금 들고 있는 책을 다 읽기 위해 집중력을 높였다.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줄을 읽고 있을 때 옆에서 둔탁하게 내려앉는 소리를 듣고 손을 뻗어 새로운 책을 집었다. 다 읽은 책은 무릎에 올려놨었는데 어느새 용사가 가져갔다.

나는 용사가 가져다 준 새로운 책들을 읽었고 용사는 내가 다 읽은 책들을 읽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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