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많이 가까워졌구만?”


그 이후로 용사는 책을 가져와 옆에 앉아서 읽거나 자잘한 말들을 툭툭 건넸다. 그에 나도 자잘하게 대답했고 마저 책을 읽는 걸 반복했다. 그러던 중 GM이 문득 찾아와서 저런 말을 꺼냈다.


“그렇게 보입니까?”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지!”


일단 늘 웃고 있는 GM이지만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의미심장한 웃음은 구분할 정도로 많이 봐왔으니 지금 짓고 있는 웃음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무슨 생각이십니까?”


“구경할 생각이지!”


내 눈은 자연스럽게 가늘어졌지만 GM의 웃음을 더 북돋을 뿐이었다. 구경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번엔 GM이 직접 장난을 치는 게 아닐테지만 어쩐지 느낌이 안 좋았다. 찜찜함이 거슬렸지만 거기에 집중을 쏟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주위 경계를 올리는 걸로 덮어뒀다.


“저 오래된 마법사랑 친해?”


“자네는 표현도 보통이 아니군. 친하다고 묻는다면 애매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사이일세.”


“애매해?”


“믿음이 가지만 친밀감을 느끼기엔 꺼려지지.”


애초에 GM이 나를 편하게 놀릴지언정 친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용사는 내 대답을 듣더니 힘을 빼고 나무에 기대앉았다. 읽는데 집중하다보니 나도 나무에 많이 기댔는지 용사와 팔이 닿았다. 책을 넘기는데 불편하니 바로 떨어져 앉았다.


“친하다고 느껴지는 마법사는 없어?”


“없네.”


“보통 그러면 외롭다던데 넌 안 그런가봐?”


“그건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용사는 할 말이 없었는지 그 뒤로 더 묻지 않았다. 도우면 더 빠르게 끝낼 수 있을 텐데 같이 일하는 마법사들은 자신의 몫은 자기가 전부 하겠다고 하면서 거절했다. 스스로 자신의 몫을 끝내는 건 좋지만 시기와 효율을 따지자면 괜한 고집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움 필요 없다는 마법사를 굳이 붙잡고 내가 하겠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쉬면 더 좋지 않아? 왜 그렇게 일을 하려는 거야?”


“시간을 낭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걸세. 쉬는 것도 쉬는 것 나름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일하는 거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네.”


“일벌레라는 단어 알아?”


“자주 듣는 단어지.”


용사는 일중독이라는 단어도 말했지만 그것 또한 자주 듣는 단어였다. 그만큼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왜 그렇게 질린다는 얼굴들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용사는 책 말고 다른 물건들도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거 어떻게 가지고 노는지 알아?”


“...나는 알지만 자네가 모르고 있는 것 같군.”


어린 마법사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들을 가져오고선 그것들로 노는 방법을 설명하는 용사의 모습이 참 황당했다. 왜 가져왔냐 물으면


“일하는 거 말고 노는 법도 알아야지.”


“그리 말하는 자네도 정작 제대로 놀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만.”


나를 위해 가져왔다고 하는데 어쩐지 가져온 용사가 더 신난 기색이었다. 입으로 불어서 돌리는 종이 팽이를 바람 마법까지 이용해 돌리던 용사는 꼬을수록 늘어나는 실을 팽이에 감고 한계까지 늘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옆에 있는 것도 까먹고 혼자서 열심히 놀기 시작했다.

넓은 데에서 혼자 열심히 놀라는 배려를 담아 책들을 들고 다른 나무 그늘 아래로 갔다. 책을 세 권 정도 읽고 있을 때쯤 옆에서 다시 기척이 느껴졌다.


“노는 건 끝났나?”


“너랑 같이 놀려고 가져온 거였어.”


“흥미없네.”


“재밌어.”


“이미 예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라 지금은 재미없네.”


용사의 기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깃털 색이 예쁜 새를 잡아와서 손에 쥐여주려고 하거나 바다꽃잎을 책갈피로 써보라는 둥 저번보다 훨씬 더 의미모를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용사만큼이나 기행을 부리는 마법사가 있었으니 그건 갈색머리 마법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용사가 갈색머리 마법사를 따라하는 것 같았다. 갈색머리 마법사가 먼저 이상한 말과 행동을 하고 용사가 그 뒤를 이어 나에게 찾아오는 식이었다.

용사의 기행 대상이 나였다면 갈색머리 마법사의 기행 대상은 쉼터의 주인이었다. 곤혹스러워보이는 쉼터의 주인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도 둘을 이상하게 봤지만 정작 그 둘은 눈치채지 못했는지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적당히 좀 하게.”


“네? 뭐가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자네와 용사 둘 다 행동이 똑같은 데다 둘 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네. 쉼터의 주인과 내 입장에선 자네들은 정말 영문모를 말과 행동들만 해서 곤혹스러운 거 외엔 느끼지 못 해.”


“어...진짜요?”


“쉼터의 주인이 무지개 잎에다가 물방울 구슬을 싸서 자네 손에 쥐여주고 햇빛 받으니까 예쁘죠? 하고 묻는다면 자넨 뭐라 대답할 건가?”


“예쁘네요!”


이 둘은 대체 뭐가 문젤까. 자연스럽게 차게 식은 내 시선에도 아랑곳 않는 태도에 한숨이 나오려는 걸 참고 예시를 변형했다.


“내가 자네에게 그런다고 생각해보게.”


“...왜 그러세요?”


“그래 그걸세.”


충격받은 얼굴로 정말 그 정도냐며 되묻는 갈색머리 마법사를 보니 용사도 마찬가지겠구나 싶어서 같은 예시 대상은 쉼터의 주인으로 용사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반응은 참 가관이었다.


“무지개 잎까진 아니어도 그런 적은 많은데?”


마을 마법사들이 용사에게 호의적이었다는 걸 망각하고 말한 예시였다. 그리고 용사는 마을 밖 마법사들을 만난 적이 이번 외엔 별로 없으니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러다가 문득 호의라는 단어에 실마리가 잡힌 걸 느꼈다.

같이 지내는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상대는 따로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이들과 더 자주, 오래 만나서 친구로 남는 일이 많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주변에 존재했다. 들개들과 GM과 하늘의 현자가 그러했다.


“...어쨌든 다짜고짜 그런다면 상대는 당연히 당황하고 자네들이 대체 왜 그러나 의아해할걸세. 그냥 다른 이들 대하듯 하면 나도 쉼터의 주인도 곤혹스럽지 않고 자네들을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없어지지.”


부담스럽다는 말에 또다시 충격을 먹은 건지 둘 다 입을 꾹 다물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저번처럼 굳은 채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진 않았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없어서 다른 이들 대하듯 하라고 한 거였지만 쉼터의 주인 입장은 어떨지 모르니 적합한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해지고 싶었던 거냐고 물으면서 운을 떼면 내 무덤을 파는 꼴이었다.

이미 친하지 않다고 못 박고 그은 선을 제대로 느꼈으니 눈치 좋고 머리 좋은 저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알아챌지도 몰랐다. 선을 확실히 더 그은 셈 치며 자리를 떴다. 그 자리에 계속 남아있었다면 정신차린 둘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다른 이들처럼 대해야 부담스럽지 않을 거냐며 붙잡고 물어보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손이 빠르시네요.”


사실 이렇게 말해도 저 둘은 다른 식으로 기행을 펼칠 게 훤했고 GM의 열심히라는 말이 걸렸으니 이 둘이 어째서 나와 쉼터의 주인에게 다른 이들보다 호의적으로 다가오고 싶어하는지 알아내야 했다. 

대놓고 묻자니 그냥 좋다거나 자신도 몰랐다는 반응이 나오거나 계속 그랬듯이 입을 다물거고 아니면 그걸 기회삼아 친해지자며 본격적으로 선을 넘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나와 비슷한 처지인 마법사 즉 쉼터의 주인에게 찾아가서 그동안 갈색머리 마법사와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아내는 거였다. 내가 용사와 겪은 일들을 비교해보면 이유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고생이 많아보이더군요.”


“네? 고생이라니 무슨...아.”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용사와 갈색머리 마법사를 보던 쉼터의 주인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속에 보이는 피곤함에 동질감이 더욱 깊어졌다.


“악의가 없는 건 알고 있어요. 오히려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쉼터의 주인은 그간 자신이 얼마나 곤혹스럽고 부담스러웠는지 겪은 일에 대한 감정을 담아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그 사이에 짜증이나 귀찮음은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짐작이 갑니까?”


꽃잎들을 하얀 천과 합체시켰다는 일까지 들은 나는 질문을 했다. 그에 쉼터의 주인은 말을 멈추고 잠깐 생각하더니 전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바다꽃을 구경하러 온 마법사들과 마녀들이 많아 쉼터가 바빴어서 마을에 이사 온 마법사가 있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여유로워졌을 때야 알게됐다고 했다. 그 때가 마침 내가 결계 마법 때문에 용사를 찾아왔던 시기였다. 

애초에 여행객이 아닌 이상 쉼터에 들릴 이유도 없었으니 갈색머리 마법사도 굳이 바쁜 쉼터에 찾아가 인사를 할 생각이 없었고 둘의 접점은 최근을 제외하고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알려줘서 고맙다고 한 후 이만 가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건 그대로였다. 그 둘이 공통적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는 만큼 나와 쉼터의 주인 사이에 무언가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공통점은 둘째치고 겹치는 게 마법사라는 거 외엔 아예 없었다.


“...이런 일로 머리가 아프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제일 간단하고 확실한 해결책은 마법진 완성을 빨리 마치고 빨리 떠나는 거였다. 다만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고 설령 떠난다해도 GM이 가만히 떠나게 둘 리가 없다는 점도 한 몫했다. 앞으로 한참 남은 시간동안 무시해야할지 아니면 원인을 알아내 그만두게 할 해결책을 만들어내야하나 고민했지만 우습게도 이 고민은 바로 무색해졌다.

확실하게 못을 박고 대놓고 얘기를 꺼낸 효과를 보는 건지 용사의 기행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많이 사라졌다. 사실 기행 자체도 거슬리는 게 아닌 가볍게 넘길만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가령


“어깨 주물러줄까?”


“됐네.”


정정한다. 다시 되짚어보면 기행이라기보단 농담이나 장난 혹은 그냥 하는 말 수준으로 바뀌었다. 갈색머리 마법사와 쉼터 쪽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쉼터의 주인의 당황하는 표정이 줄어든 걸 보면 어느정도 용사처럼 알아들은 것 같았다.


“저기 어깨 아파하는 마법사들 많은데?”


“나는 그 마법사들이 아닐세. 애초에 자네 다른 마법사들 어깨 주물러봤나?”


“아니.”


참 실 없는 대화였지만 기행보단 훨씬 괜찮았다. 그러다가 그 이후로 계속 어깨뿐만이 아니라 팔, 다리, 허리, 등을 안마해줄까 묻는 걸 듣고 저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안마 자체가 필요 없다고 대답하고 이제 일에 집중해야한다는 걸 이유로 용사의 입을 막았다.


“왜 마법진을 이런식으로 설계하는 거야?”


“모든 마법사들이 자네의 마법진 같은 형식을 쓸 수 있는 건 아니네. 그러니 누구나 쓸 수 있는 보편적인 형식으로 설계한 거지.”


기행이 줄어든 대신 그만큼 용사는 질문이 많아졌다. 저번부터 느꼈지만 용사는 나를 통해 보편적인걸 배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행은 갈색머리 마법사와 마을 마법사들에게서 배우고 있는 게 확실했다.


“이게 보편적인 거야? 통로가 많은 것 같은데?”


“앞서 말한 걸 변형하자면 모든 마법사들이 자네처럼 마력이 많지 않으니까 이렇게 통로를 많이 만들게 설계한 걸세.”


“불편하겠네.”


마력이 용사 자신에게 비하면 적은 게 불편하겠다는 건지 아님 설계 자체가 불편하겠다는 건지 모를 말이었다. 용사는 설계도를 복사해도 되냐고 물어봤고 예비로 미리 복사해둔 게 있었으니 그걸 넘겨줬다.


“그런데 무엇에 쓰려고 그러나?”


“해보고 싶은 게 생겼어.”


보편적인 설계방식으로 마법진을 설계 해볼려나 싶었다. 복사본을 구기지도 않고 조심스럽게 쥐던 용사는 잠시 집에 들렸다 오겠다며 급하게 자리를 떴다. 그냥 오지 말라고 하고 싶었으나 듣는 귀가 많았고 용사는 이미 저 멀리 가버렸다.

어느 정도 내 바람이 이루어졌는지 용사는 꽤 오랜시간 돌아오지 않았다. 갈색머리 마법사도 쉼터의 주인 옆에 붙어서 쉴새없이 떠드느라 여기로 오지 않았다. 드디어 조용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니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가 안 오니까 그렇게 좋았어요?”


“조용한 환경은 언제나 좋을 수밖에 없지.”


“이해 못해요. 심심하잖아요?”


“일하는데 왜 심심한가?”


작정하고 빠르게 했을 때만큼이나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세워진 하얀 돌들과 나무판자들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문양을 그려넣는 담당인 마법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더 했겠지만 문양은 일정한 시간차로 그려야했기 때문에 더 하고 싶다고 해서 더 할 순 없었다.

이 참에 문양 그리는 것도 맡을까 고민했지만 한 마법사가 일을 많이 쥐면 안 된다며 GM이 말리는 김에 장난을 칠 게 훤하니 바로 생각을 접었다.

조금 뒤로 물러나 마을을 빙 돌며 살펴보니 7할은 완성되었다. 혹시나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싶어 연달아 살펴보니 삐뚤게 세워져있는 나무판자 두 개 외엔 없었다. 자잘한 실수들을 전부 찾아 없애고 일어서니 언제왔는지 용사가 바로 뒤에 멀거니 서 있었다.


“언제왔나?”


“네가 왼쪽에서 세 번째 돌들을 다시 정갈하게 놓을 때부터.”

약 20분 전부터 와있었다는 얘기였다. 별 생각없이 말을 걸었던 처음과는 달리 방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이 가르침을 받고 학습하는 아이같아 조금 묘했다.


“기약없이 기다리는 것보단 관리감독이 쉬는 시간을 알릴 때나 일이 완전히 끝나는 해질녘에 찾아오는 게 더 나을텐데.”


“상관없어. 그리고 이거 받아.”


용사가 내민 것은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였다. 본 적 있는 모양새였지만 내가 준 복사본에 그려진 이동 마법진이 아닌 다른 마법진이었다. 그리고 내가 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이게 뭔가?”


“내가 쓰는 결계 마법진을 변형했어.”


“이걸 내게 주는 이유가 뭔가?”


“쓰라고.”


반사적으로 눈을 좁혔다. 당연히 쓰라고 줬겠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물어본 건데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여전히 두꺼워서 안 보이는 안경 때문에 알 수 없었다.


“내가 이 마법을 쓸 수 있게 굳이 자네가 변형까지 해서 줘야할 이유가 뭔가?”


“이런 거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저번에 날 찾아온 것도 이 마법을 쓰고 싶어서였잖아.”


맞는 말이긴 하지만...이 정도로 친절을 베푸는 이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이렇게 보통 마법사가 쓸 수 있을 정도로 변형까지 했다면 이 마법서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게 분명하다. 이런 걸 그냥 받을 순 없었고 받는 것 자체가 뭔가 꺼림칙했다.


“...거래를 다시 할 의향이 있었으면 미리 말하게. 그 때 내가 대가로 챙겨온 건 놔두고 와서 지금은 값을 치를 수 없네.”


“아니, 거래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그....선물이야.”


선물이라는 말에 내 눈은 더욱 가늘어졌지만 곧이어 이어진 버섯은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좋아하는 목록으로 말한 것들을 읊으면서 조금 힘이 풀렸다.


“자네 혹시 선물을 주는 것 자체가 처음인가?”


“처음이지. 마을 마법사들한테 받는 건 꽤 있긴 있었는데 뭘 주려고 해도 거절하더라.”


마법진에 대해 캐러 온 마법사들과 마녀들은 귀찮고 불쾌해서 밀어냈다고 한다. 일단 납득을 하며 마법진이 그려진 종이를 내려다봤다.


“역시 그냥 받을 순 없네. 단순히 선물로 받기엔 가치가 높아.”


“난 상관없어.”


“내가 상관있네.”


몇 번의 거절 끝에 보통 마법사 맞춤형으로 변형까지 한 정성이 있으니 나중에 용사가 원하는 걸 이 마법진 값어치만큼 주기로 타협을 봤다.


“원래 선물은 거래용도가 아니고 선의로 받는 거라고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 부담스러워 하는 거야?”


“선의의 선물도 정도가 있지, 누가 자네에게 산을 하나 선의의 선물이랍시고 주는 걸 생각해보게. 부담스럽지 않을 리가 있나?”


그래도 용사는 이해한 기색이 아니었다. 어차피 용사가 숲 밖으로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 여기서 굳이 더 설명하진 않았다. 이해를 시키려면 용사를 아예 모르는 세상 자체를 돌아다니면서 배워야했으니.

주변이 조금 어두워지고 용사의 머리카락에 주황빛이 도는 걸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때마침 오늘은 여기까지라는 관리감독의 외침이 들려왔다.


“들어가지.”


나는 다른 마법사들을 따라, 용사는 나를 따라 쉼터로 들어갔다.



“둘이 사이가 꽤 가까워졌네요?”


쉼터의 주인에게 계속 붙어있느라 바빴던 갈색머리 마법사가 오자마자 한 말이었다. 가까워졌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내가 일하는 중에 용사를 밀어내지 않고 용사도 일정거리에 떨어져있고 일정량의 말만 하면서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가까워졌다기보단 타협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말을 걸고 바로 옆에 딱붙어서 행동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니 밀어낼 명분이 없는 게 당연했다. 대신 용사쪽에서도 전처럼 가까이 오거나 말을 자주 걸 수 없으니 서로가 물러난 자연스러운 타협이었다.


“그러는 자네야말로 웬일로 쉼터의 주인과 떨어져있군.”


“이번엔 많이 바쁘신 것 같아서...”


바쁘지 않아 보일 땐 종일 붙어있겠다는 소리로 들려오는 건 그동안 질리게도 붙어있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인가.

드디어 선을 좀 지우거나 늘렸냐며 넉살좋게 얘기를 붙여오려고 하지만 난 바로 일에 집중을 해야하니 길게 얘기를 나눌 수 없다고 딱 잘라냈다. 그에 여전하다며 툴툴거리더니 용사에게 다가가 비결이 뭐였냐고 묻기 시작한다. 그리고 용사에게 말을 별로 안 걸고 일정거리 떨어져 앉았다는 대답을 듣자 기대와 호기심 가득한 눈은 안쓰러운 빛을 띄기 시작했다.


“...힘내요, 용사님.”


그렇게 말을 남긴 그는 숲으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에 용사에게 물었다.


“그러고보니 숲에 들어오는 건 통제하지 않는 건가? 마력을 먹은 생물들 때문에 위험할 텐데.”


“마력이 고이기까지 시간이 어느정도 걸리기도 하니 별 문제 없어. 나타날 때 위험도를 확인하고 통제하는 식이야.”


이유인 즉슨 숲에서 마을 마법사들이 숲에서 캐는 식물들이 꽤 되기 때문이었다. 항상 통제를 하면 그들은 꽤 먼 곳까지 갔다와야했다.


“자네가 맡은 게 정말 많군.”


용사는 그런가 하며 넘겼다. 다행히 생필품들은 마을 마법사들이 마련해주고 있어서 사는 데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바다꽃을 또 보러온 마법사들과 마녀들이 있었는데 그 때 비달팽이 덕분에 비가 많이 내려서 그들 모두 시기를 한차례 놓쳤지.”


“마지막 차례였나?”


“응.”


아쉬워하면서 돌아갔을 무리들이 곧바로 떠올랐다. 그 뒤를 이을 말은 떠오르지 않아 대화는 그렇게 끊겼다. 그 뒤로 용사는 질문보단 샘 근처에 파란 빛을 내는 버섯이 자랐다던지 자잘한 일상 얘기를 꺼냈고 나는 대답 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돌아온 후엔 말 없이 옆에 앉아 다시 나를 구경하고 말을 꺼내는 게 반복이었다. 정말 적절한 타협 범위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어깨를 툭툭 치는 손길에 손이 바로 멈췄다.


“쉬는 시간이래.”


“...너무 집중했나보군.”


나무 그늘에 가기 전에 용사가 햇빛 아래서 잠깐 이걸 보라며 손을 내밀었다. 용사의 손엔 거울석을 껍데기로 삼은 손가락 두마디 크기의 벌레가 있었다. 거울석이 햇빛을 반사시키면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예뻐?”


“왜 나한테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빛나고 환하다고 해서 전부 다 예쁜 건 아니네. 일단 이건 너무 빛이 강해서 눈이 아프네만.”


내 대답에 용사는 미련없이 벌레를 땅에 내려뒀다. 거울석을 껍데기로 삼은 벌레는 흔치 않은 편이지만 어디까지나 껍데기가 거울석이지 벌레 자체가 귀한 건 아니었기에 그리 가치있는 발견은 아니었다. 저 아래서 반짝반짝 빛으로 존재감을 내뿜으며 사라지는 벌레를 애써 무시하고 용사에게 말했다.


“공통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마법사마다 예쁘다고 느끼는 기준은 다르다네.”


“그럼 넌 어떤 게 예쁘다고 생각해?”


“나한테 물어봤자 의미 없다는 말을 하려고 했네만...다른 이들과 공통적인 부분으로 바다꽃이지.”


“그 때 본 바다꽃들 예뻤나보구나.”


“많은 이들이 보려고 했던 것 만큼 당연한 게 아닌가?”


“당연하다라...”


말을 흐린 용사는 얼굴 중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입으로 미소를 짓고는


“정말 예뻤어.”


어쩐지 대화의 흐름이 조금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에 떨떠름해졌다. 어딘가가 조금 어긋나고 마구잡이 같아 위화감도 들었다. 몰려오는 찜찜함에 반사적으로 눈가를 찌푸리니 용사가 어디 안 좋냐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 안 좋은 게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가 말았다.


“그래서 가져왔던 이유가 뭔가?”


“너한테 예쁜가 싶어서.”


“그러니까 왜 나한테 그 벌레가 예쁜지를 물어보려고 한 건가?”


“...바깥에서 온 마법사들 중에서 네가 객관적이고 통상적인 걸 잘 말하니까.”


“한 마법사의 말만 들어선 의미가 없네 나 말고 다른 이들에게 가서 물어보는 게 더욱 확실하고 효율적이지.”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는지 용사는 쉬는 시간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가 동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고 쉬는 시간이 끝났을 때 계속 생각에 잠겨 있던 용사가 문득 물었다.


“...마법진은 언제쯤 완성돼?”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사흘 후에 마무리 단계네.”


“약속 잊지 않았지?”


약속이라고 한다면 거래를 말하는 거였다. 대체 뭘 보여주고 싶길래 저리 안달인가 싶었지만 정말 변수가 없다면 사흘 후에 보겠거니 했다. 그리고 변수라는 단어는 어째선지 말을 꺼내자마자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빨리 방수막 쳐!”


“문양 지워지면 망한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무리 단계로 들어갔어야했지만 갑작스럽겍 내린 비 때문에 그려넣은 문양들이 일부 지워졌다. 


“분명 비는 그 때 비달팽이 때문에 한꺼번에 쏟아져서 더 이상 내릴 비가 없을 텐데?”


그동안 구름이 조금 끼거나 아예 화창했었는데 지금은 여기 처음 왔을 때처럼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여 꽤 어두웠다.


“비 내릴 때 함께 숲을 돌아다녔던 게 떠오르네.”


“돌아다녔다기보단 수색이 아니었나? 그리고 따로 다녔던 걸로 기억하네만.”


“바다꽃밭 말이야. 그러고보니 오늘 마무리 단계 아니었어?”


“그래, 자네가 말한 데를 오늘 보러 가려고 했는데 비가 내리는 군.”


“그럼 보러 갈래?”


지금 바깥에 비오는 날씨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이어 신발이 더러워지는 거 외엔 딱히 걸리는 게 없었다. 방수막은 하루내내 걷는 게 아닌 이상 빗물이 샐 일이 없었다.


“비가 와도 상관이 없는 곳인가?”


“오히려 비가 내리면 더 좋더라.”


대체 어떤 곳이길래 비가 오면 더 좋은 곳일까. 어차피 오늘 갈 예정이었으니 상관없었다. 신발은 돌아올 때 들어오기 전에 진흙들을 털어내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비가 내려서 일을 진행할 수 없으니 하루종일 책 읽기 외엔 할 일이 없었다.


“바로 준비하겠네. 자네도 준비가 필요한가?”


“아니.”


“금방 끝내고 오겠네.”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도중 계단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들어본 이 목소리는 갈색머리 마법사였다. 그 옆에는 쉼터의 주인인지 일이 많이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늘 하던 일이라 괜찮다고 대답하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계단 뒤로 가서 저 둘에게 말을 걸며 인사를 할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그대로 올라가려고 했다.


“.....요.”


만약 그대로 올라갔다면 내 발소리에 묻혀서 내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금 전보다 작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아직 발을 계단에 올리지도 않았으니 제대로 들었다. 바로 그 옆에 있을 쉼터의 주인은 당연히 들었을 말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는 정적이 깨지기 전에 계단에 발을 딛고 올라갔다. 어쩌다가 듣게 된 거지 크게 관심 가질 일도, 관심이 이어질 일도 아니었으니까.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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