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바로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저주였다. 퍼블리는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에 대해 묻고 싶었다. 아빠는 흑기사단이었고 숲에 들어갔으며 저주를 받았냐고, 그리고 그 저주는 지금도 아빠를 괴롭히고 있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슬픔, 조급함, 아닐 거라는 미약한 기대와 절박함이 목 끝까지 쌓인 퍼블리는 망설이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자마자 마법사에게로 달려간 퍼블리는 주변의 시선들은 물론 뒤에 있을 아난타도 잊고 입을 열려던 순간
“아..엇!?”
갑작스레 무언가가 머리 위로 푹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 당황한 퍼블 리가 허둥거리며 잡고 올리자 분명 바로 앞에 있었던 마법사는 어느새 교문 밖으로 유유히 나가고 있었다. 갑작스레 알 수 없는 상황에 얼떨떨하게 서있던 퍼블리 뒤로 아난타가 다가와 말한다.
“모자네요?”
“어...네?”
“퍼블리 학생한테 모자를 씌워주고 바로 가버리셨는데...제 모자를 빌려드릴까 싶었는데 다행이네요.”
그 말에 퍼블리는 잡고 있던 걸 잡아 내렸다. 분명 집에 두고 온 모자였다.
“저 분은 퍼블리 학생의 어머니신가요?”
“네에...”
그제야 퍼블리는 주위를 돌아봤다. 짐을 나르던 학생들은 퍼블리와 마법사에게 시선을 주다가 금방 다시 돌리거나 밖으로 다시 나간 마법사를 제법 오래 보고 있다가 모습이 안 보일 때쯤 곁의 친구와 함께 뭐라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마 여름인데도 한겨울 마냥 온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옷을 입었는데 망토까지 걸치고 있었으니 그에 대해 뭐라 얘기하고 있을 게 뻔했다. 고개를 돌려 이번엔 아난타를 바라보자 의아해졌다. 딱히 별일 없는 듯이 물어보던 목소리와는 다르게 아난타는 식은땀을 흘린 채 이미 사라지고 없는 마법사의 뒷모습을 쫓기라도 하듯 마법사가 사라진 방향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당황, 놀람 등 기타 알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들이 녹아들어있던 얼굴이 자신을 부르는 퍼블리를 향하자 담은 감정은....
“...혹시 퍼블리 학생 어머님께선 왕궁 마녀신가요?”
“네? 아뇨! 전혀요!”
“이 모자에 이미 방어마법이 새겨져 있네요. 원래 우리가 축복으로 내릴 방어마법보다 더 강하고 고차원적인 걸요? 이 정도 마법실력이면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훨씬 뛰어넘었어요.”
퍼블리는 그에 뭐라 말해야할지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아난타는 그저 감탄하고 싶었던 건지 더 물어보지 않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며 인사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그에 퍼블리는 모자를 끌어안은 채 아난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보고 있다가 근처에 있던 평평한 돌 위에 털썩 앉았다. 모자를 만지작거리다 쓴 퍼블리는 그냥 흘러듣는 것처럼 아무런 반응 없이 듣는 마법사가 실은 제 말을 자세히 듣고 있었다는데 기쁜 마음이 들었다. 바로 이 모자가 그 증거가 아닌가. 아마 어제 저녁에 했을 말을 기억하는 게 틀림없었다. 다만 기쁨보다 더 많은 심란함이 짓누르는 터라 웃음이 나오진 않았다. 아난타가 말한 저주라는 게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러다가 방금 사라진 아난타에 대해 다시 생각했을 때 이번엔 의아함이 불쑥 튀어나왔다. 분명 아까 퍼블리가 부를 때 돌아보며 담은 감정은 분명
“..뭔가 도서실에서 책 못 빌리게 됐을 때보다 훨씬 더 미안해보이던 표정이었는데?”
뭐에 대해 미안한 표정이었을까. 순간 도서번호가 스쳐지나갔지만 고개를 저었다. 일단 뭐든 간에 마법사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너희 엄마가 오셨다고?”
“응.”
“모자 가져다주러?”
“...응.”
“너희 엄마가?”
아니카는 눈을 크게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계속해서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그도 그럴게 왕국 내에서 마법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는 퍼블리를 제외하면 아니카 밖에 없었다.
“학교가 멀다고 할 순 없는데 번화가를 지나칠 수밖에 없잖아! 물론 장 보러 갈 때 근처 작은 상가는 가보겠지만 이렇게 마녀가 많이 돌아다니는 번화가를 지나쳤다고?”
아무리 마녀왕국의 옷을 입는다 해도 마녀는 마녀고 마법사는 마법사라는 게 대번 티가 난다. 그런데 마법사는 15년 동안 들키지 않고 살아왔다. 그만큼 들키지 않는데 심혈을 기울었다는 건데 그 결과가 바로 저렇게 꽁꽁 싸맨 모습이다. 누구라도 저렇게 체형이 가려질 정도로 입고 목을 가리다 못해 입까지 가리고 모자까지 쓰면서 눈만 제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싸매면 그 알맹이가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아니면 마법인형인지도 알 수 없을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은 되도록 마녀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가지 않는 거였다. 퍼블리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입학서를 작성하러 갔을 때와 입학식 때, 단 두 번만 학교에 왔었다. 마녀가 많은 번화가를 지나고 마녀가 많은 학교에.
“...대체 무슨 일이람?”
아니카는 드물게 늘 달고 살다시피 하던 웃음마저 지운 채 심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면에 퍼블리는 마법사가 그렇게 제 안전에 신경을 쓴다는 걸 깨닫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 위에 쓴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실제로 번화가를 지나다가 퍼블리 위로 망치가 떨어졌었는데 모자가 푹 꺼지거나 쓸린 흔적은커녕 오히려 망치가 깨졌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탄생했다. 그 때 아니카가 질린 목소리로 대체 학교에서 우리 모자에 무슨 마법을 건 거냐고 했을 때 마법사의 이야기가 나오게 됐고 아니카는 헤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심각했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퍼블리는 분명 마법사에게 물어보려는 마음이 그득했지만 막상 문을 앞에 두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실 저번에 예전에 구해했던 마법사와의 사이를 끝냈다고 했던 그 날 퍼블리는 문득 무서워졌다. 이제까지 말하지 않은 데에 이유가 있고 계속해서 물어본다면...거기까지 생각한 퍼블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얼마 안 있으면 축제인데 같이 돌아다니지 않을래요?”
저녁을 먹을 때 용기를 내보려 했으나 나온 말은 저것뿐이었고 그 이상은 없었다. 그렇게 진전 없이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연달아 지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축제가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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