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는 전서구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면서 아니카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전서구는 궁시렁거리다가 뒷마당에서 흘러나오는 냉기에 표정을 풀며 지붕 위로 날아올라가 앉았다. 제법 쨍쨍하지만 냉기 덕분에 덥게 느껴지지 않는 햇빛을 받으며 조금 졸고 있던 전서구는 문 열리는 소리에 퍼뜩 깼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퍼블리의 머리와 짐을 조금 챙겼는지 저번보단 조금 가벼워 보이는 짐가방이 전서구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짐을 들고 있는 게 퍼블리 뿐만이 아니었다.
“...넌 왜 메고 있냐?”
“나도 갈 거니까.”
“어디를?”
“바깥을.”
“...누구랑 어떻게?”
“퍼블리랑 당신을 타고.”
그 말 뒤로 뭘 그리 당연한 걸 묻느냐고 마지막으로 덧붙인 아니카의 말에 전서구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어차피 등에 태우는데 한 번에 태우는 게 한 명이든 두 명이든 무슨 상관인가 애써 자기 자신을 위한 위로를 빙자한 포기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햇빛은 정말 쨍쨍했다.
“자자 얼른 수그리세요.”
한숨과 함께 몸을 숙인 전서구의 위로 올라탄 아니카는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평을 남기며 자세를 잡았다. 퍼블리도 그 옆에 올라타며 미안하고 고맙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퍼블리까지 제대로 자세를 잡자 전서구가 날개를 퍼덕이며 천천히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광경 진짜 끝내주네~”
하늘에서 마녀왕국을 내려다본 아니카의 감상이었다. 집들이 엄지손톱보다 작게 보이고 집들보다 작은 마녀들은 안 보일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길거리로 나온 마녀들이 굉장히 많아 집들 사이로 다양한 색상들이 옹기종기 뭉쳐서 신비롭고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퍼블리는 이미 한 번 본 광경이었지만 역시 두 번 봐도 눈을 떼기 힘들었는지 아니카와 함께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어...아직 안 정했는데...”
“뭐여?!”
기다렸다는 듯이 불평불만과 잔소리가 곧장 튀어나왔다. 퍼블리는 미안해하며 어디로 갈지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는 머리를 쥐어짜내며 고민하기 시작했고 아니카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아래의 광경을 눈에 담아두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에이씨! 일단 왕국이나 벗어나야겠다! 등이랑 날개 아파서 죽겠네!!”
그렇게 투덜거린 전서구는 왕국과 바깥을 나누는 벽 너머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아래를 계속 내려다보던 아니카의 눈에 들어오는 건 이제 녹색 가득한 세상이었다. 퍼블리도 새삼 신기해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린 것도 잠시, 저 아래에서 무언가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날카로운 바람이 귓가를 스치듯 지나갔다.
“웜머?”
아직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전서구의 의문 섞인 감탄을 시작으로 곧이어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잔뜩 쏘아져 올라오고 있었다.
“웜매나?! 이게 뭣이여?! 뭣이냐고?!”
날카로운 가시들이 맞으면 단순히 아야하는 수준이 아닐 거라고 경고하듯 위협적이게 번쩍이며 저 아래에서부터 잔뜩 날아올라오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비행하는 전서구는 스치면서 제 깃털들을 뽑아대는 가시들에 비명과 함께 알 수 없는 말들을 섞어 꺼내며 혼란에 빠졌다. 정체불명의 가시 공격들을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급하게 멈추고 돌고 위로 솟고 아래로 바로 내려가는 걸 반복하다보니 전서구의 등에 있던 퍼블리와 아니카는 타고 있는 게 아닌 매달려서 간신히 버티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아니카!! 저거 뭔지 알고 있어?!”
“제대로는 몰라도 딱 보면 원거리계 최상위 마법 중 하나인 것 같아!!”
“저거 어떻게 막는 방법 없어!?”
“방어막 마법 쓸 테니까 마력 쏟아 부어!!!”
전서구가 이리저리 피하면서 순간적으로 안정적으로 있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을 때 그 틈을 타 아니카가 마법을 사용했고 퍼블리가 마력을 쏟아 부었다. 급하게 만들었지만 제법 튼튼한 방어막이 완성됐고 날아오는 가시들을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두 마녀와 비둘기는 안심했다.
“뭐야? 누가 공격하는 거야?!”
“누구 원한 삼을 만한 일 한 마녀와 비둘기~?”
“있을 리가!!”
하지만 그 순간을 노렸던 것일까, 순간 모든 세상이 빛나듯 눈앞이 번쩍이며 방어막이 깨졌다. 그 반동으로 흔들린 전서구 위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질 뻔한 아니카가 눈을 질끈 감고 재빨리 자세를 낮춰서 손에 닿는 깃털들을 꽉 쥐었다. 하지만 퍼블리는 아니었다.
“퍼블리!!!”
갑자기 가벼워진 제 등에 기겁한 전서구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퍼블리가 아직 눈이 부신지 눈을 감은 채 떨어지고 있었다. 전서구가 급강하를 하며 퍼블리를 향했고 다시 시야를 회복한 아니카가 바람을 잔뜩 맞으며 몸을 일으켰다.
“얼른 잡아, 얼른!!”
퍼블리는 등을 마구 때리는 바람을 느끼며 눈을 떴다. 전서구와 아니카가 굉장히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향해 내려오고 아니카가 손을 뻗는 게 이상하리만치 느리게 느껴졌다. 마주 손을 뻗는데 제 손도 마찬가지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손들이 서로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엇갈리고 있던 그 순간 다시 한 번 빛이 번쩍이며 시야를 빼앗았다.
다가올 아픔에 전서구와 아니카는 눈을 꽉 감았지만 그들을 때리는 건 아래로 급격히 내려가면서 맞게 되는 바람 외엔 없었다. 살며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건 엄청난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는 풀밭이었다. 전서구가 당황하며 급하게 멈추자 아니카는 저마저도 튕겨져 나가려는 걸 간신히 버텨냈고 다행히 전서구는 부딪히기 전에 멈췄다.
“퍼블리는?!”
정신을 차린 아니카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퍼블리는 보이지 않았다. 잡지 못했으니 분명 풀밭으로 떨어졌을 텐데 보이는 건 온통 녹색 가득한 풀뿐이었다. 공중에서 피하고 급하게 내려오고, 멈추고를 반복해서 지쳐버린 전서구는 그대로 풀밭 위로 쓰러지듯 내려왔다.
“퍼블리...? 퍼블리!!”
전서구의 등에서 내린 아니카는 큰 목소리로 퍼블리를 부르며 찾기 시작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가올 아픔에 대비해 눈을 꼭 감았건만 아픔은커녕 이상하게 방금전까지 잔뜩 맞고 있던 바람도 느껴지지 않아 의아해진 퍼블리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러자 바로 보이는 건 하늘이었고 고개를 눈을 옆으로 돌렸더니 풀밭이었다. 하지만 땅을 딛는 감각은 없었다.
“괜찮으세요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어딘가 본 듯한 보라색 머리 마녀가 걱정스럽게 퍼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곰곰이 생각하던 퍼블리는 그 마녀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신성지대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퍼블리를 도우러 왔던 왕궁 마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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