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마녀들이 퍼블리 앞을 지나가면서 시야를 가린 덕에 그대로 잘못 본 거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녀들 사이 틈을 비집고 다가가보니 메르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고 똑바로 퍼블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앞에 바로 다가선 퍼블리는 그저 아연한 표정으로 메르시를 보고 있었을 뿐이고 메르시는 그저 웃고 있었을 뿐이었다. 한쪽은 태평하고 한쪽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시선교환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아니카는 결국 가까이 다가와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우리 근육이 새로운 친구 있었구나? 그래서 누구야? 얼른 새 친구 소개시켜줘.”
하지만 질문이 썩 좋지 않았다. 아니카에게 공주에 대해 얘기는 했었지만 그 공주가 어떻게 생겼느냐 공주의 이름이 무엇이냐 세세하게 말하진 않았었다. 지금 아니카가 공주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자기들보다 더 어리고 계속 잠들어있어서 더 자라지 않은 어린 마녀라는 거 외엔 없었다. 그렇다고 길 한복판에서 공주라고 속삭이면 되지 않을까 해도 당사자인 메르시가 섣불리 다른 마녀에게 제 정체를 밝혀도 된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어쩌다 알게 됐다고 얼버무리기엔 어쩐지 미안했고 눈치 빠른 아니카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퍼블리보다 메르시가 한 발 더 빨랐다.
“저는 메르시예요. 저번에 퍼블리 언니가 저를 도와준 적이 있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왔어요.”
아니카는 그렇구나 하고 얌전히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여기 다른 마녀가 있었다면 둘이 얘기 나누라고 물러난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퍼블리는 깨달았다. 돌아보자 바로 자신을 보고 있는 아니카와 짧은 시선교환을 나눴다.
눈치 챘구나.
눈치 챘어.
다시 메르시를 본 퍼블리는 무릎을 살짝 굽혀 메르시와 눈을 마주했다. 메르시는 바로 퍼블리에게 다가가 새어나가 누군가가 들을까 바로 손을 모아 작게 속삭였다.
“찾다가 지치면 마지막으로 피리를 불어요. 어쩌면 모든 비밀이 담겨있을지 모르거든요.”
무슨 뜻인지 묻기도 전에 메르시는 바로 뒤돌아 마녀들 사이로 사라졌다. 무릎을 다시 필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보고 있던 퍼블리의 정신을 되돌린 건 어깨를 툭툭 두드린 아니카였다.
“그래서 뭐래?”
“피리가 비밀상자 열쇠래.”
다시금 몰려오는 마녀들의 물결에 퍼블리와 아니카는 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 빵을 만든 마녀들이 바구니채로 나눠주는 빵들을 받아들었다. 빵을 하나 꺼내 먹던 아니카는 저기 마녀들이 빵을 받고 있네라는 어투로 말을 꺼낸다.
“공주님이 큰 그림 그리고 있었던 걸로 다시 잠들었나 아님 탈출했나 궁금했던 건 해결됐네.”
물론 그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퍼블리는 대답 대신 빵에 입을 넣었다. 아니카도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퍼블리가 다섯 번째 내밀어지는 빵바구니를 거절할 때쯤 머리 위에서 크게 푸드덕 날갯짓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아까 하늘에서 봤던 전서구가 이번엔 반대편으로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퍼블리는 새삼 저렇게 바쁜 비둘기를 붙잡아서 태워달라고 했구나 싶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편지길래 축제 때에도 저렇게 바쁠까?”
“축제라서 더 바쁜 거 아닐까?”
축제는 작년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기묘한 묘기를 선보이는 마녀들과 날아드는 비둘기들. 저 한구석에선 색깔열매를 이용해서 구운 빵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는데 저마다 화려한 색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무지개 빵이었다. 화사하고 화려해서 그 길을 지나가던 많은 마녀들이 무지개 빵을 집어 들었지만 퍼블리는 그다지 손이 가지 않았다.
“자꾸 얘기 꺼내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그래서 왜 추억이 빵인지 혹시 이유 알아냈어?”
때마침 빵을 넘기던 퍼블리는 그대로 사레가 들릴 뻔 했다. 함께 빵파티를 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한 흑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장소가 장미정원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아니카가 주는 사과주스로 겨우겨우 진정한 퍼블리는 그대로 말해줬다.
“근데 오히려 반대일 것 같은데?”
“반대?”
“원래 집 앞마당이었는데 가져오는 장미들 둘 데가 없어서 장미정원이 거기까지 넓어진 거 아냐? 우리가 태어나기 전이긴 하지만 세상의 모든 장미를 모았다고 선언한 게 50년이 안 지났어.”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공주는 물론이고 다른 얘기들도 꺼내지 않았다. 여전히 바쁘게 날아다니는 전서구가 그림자로 제 존재감을 여러 번 드러냈지만 둘은 그 때마다 올려다보고 동시에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대회에 가까이 다가가 구경하기로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랬듯이
“비둘기판이네.”
“깃털 떨어진다~!”
대회용으로 나온 빵들에 날아드는 비둘기무리와 그런 비둘기들을 손을 흔들어대며 내쫓는 만든 마녀들, 그리고 역시나 하면서 웃음 반 진부함 반에 뒤를 도는 관객들. 진행자는 이제 포기했는지 비둘기들도 이렇게 날뛰는 빵들이라며 빵의 위험성이라는 농담을 꺼내고 있었다.
그런 광경들을 옥수수 튀긴 것 대신 빵을 씹으며 구경하고 있던 퍼블리와 아니카는 폭신하고 매끈한 감촉이 아닌 까끌까끌한 감촉에 손을 바라봤다. 어느새 바구니는 텅 비어있었다.
“더 받으러 갈까?”
아니카는 여전히 바구니째 나눠주는 마녀들을 가리키며 물었고 퍼블리는 조금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견과류나 옥수수가 박혀있는 빵들을 받아온 아니카는 마실 것도 찾으러 가자며 앞장섰다. 아직 어른이 되지 않은 마녀들이 많아서 그런지 술을 내놓는 곳은 없었고 음료수는 꽤나 다양했다.
“새삼 생각했는데 그 많은 추억 중에 빵파티가 뽑힌 건 역시 첫째 날은 잔뜩 먹어서 남은 축제를 버티라는 거 아닐까?”
“가장 설득력 높네.”
그렇게 해가 지기 전까지 둘은 돌아다니면서 먹고 구경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해가 지고 어둑해질 때 둘은 남은 빵을 나눠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퍼블리는 오늘 축제가 재밌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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