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카. 장미를 만든다는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그 말을 들은 아니카는 이상한 걸 들었다는 얼굴로 퍼블리를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하고 뭐고를 떠나 그건 불가능한 거 아냐? 장미들은 자연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고 그나마 피어날 환경을 만든 게 바로 그 유명한 장미정원이잖아.”
“그러니까 만약에 만들 수 있다면?”
퍼블 리가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챘는지 아니카는 눈을 마주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말을 고르려는 건지 신중한 표정을 한 채 느릿하게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같은 반 학생들의 얘기소리가 한층 더 소란스러웠을 즈음에 입을 열었다.
“자, 너희들 성적표 다 받았지? 망한 애들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울고불고 하지 말고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은 축제나 준비하고 있어라.”
공교롭게도 그 순간 저 말과 함께 들어온 선생에 의해 대답은 나오지도 못했다. 아니카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몸을 앞으로 돌렸고 다음 쉬는 시간에는 선생의 수업을 빙자한 축제 얘기 때문에 까먹었는지 나온 말은 축제의 식물부에 관한 얘기였다.
“얘네는 어째 해가 갈수록 기술이 늘어?”
“이쯤 되면 왕국 기관에서 기술 연구하는 마녀들이 학생으로 위장한 거 아닐까?”
작년에 꽤나 여러모로 큰 파급을 가져다 준 식물부였다. 물론 가져다 준 당사자들에게 있어선 직접 가서 말하지 않는 이상 영원히 모를 일이었다. 학생들은 내심 식물부 애들이 빨리 홍보를 하러 왔으면 하는 마음에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복도를 지나가는 학생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운 소리지만 식물부 정말 인기 많네.”
“인기야 늘 많았지.”
축제는 매년 있는 일이었지만 매일 새로운 걸 맞이하는 듯 한결같이 떠들썩한 반응이었다. 벌써부터 땅따먹기 신경전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학년이 올라가며 선도부에서 나온 아니카는 이제 제가 정리할 일 아니라고 숲 너머 모래바람 구경하듯이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옆에서 보고 있던 퍼블리는 말려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런 일들을 이미 예상했는지 자연스럽게 끼어들어 능숙하게 사태를 해결하는 선도부의 모습에 가만히 있기로 했다.
“올해 축제는 왠지 별로 기대가 안 돼.”
“그 전부터도 넌 축제 자체는 별로 기대 안했었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
그렇게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고 들어올 때마다 성적 얘기를 하는 선생들을 몇 번 주목하고 나니 어느새 모든 수업이 끝나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학교를 나가기 전에 점심시간 때보다 햇빛이 더 환하게 내리쬐는 운동장을 보니 새삼 이제 진짜 여름이구나라고 생각한 퍼블리와 아니카는 그늘이 있는 곳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운동장 끄트머리에 짙은 흙 위로 나무들이 일렬로 심어져 있었지만 그쪽으로 가면 운동장을 빙 돌아서 가야했다. 그렇게 운동장 한가운데와 나무그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민하던 둘은 그냥 평소대로 한가운데를 쭉 가로지르기로 했다. 아무리 그늘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빙 돌아가는 건 역시 귀찮은 일이었다.
“...날씨가 정말 재앙인데?”
“문제는 아직 시작이라는 거.”
“하하 정말 살기 싫어지는 걸?”
운동장을 가로지르던 학생들 몇몇은 결국 그늘이 있는 데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더위를 먹었는지 점점 헛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학생 무리들 사이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중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햇빛 아래 더위에서 떠들다간 금세 지쳐버릴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집으로 가는 길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길게 느껴졌다. 묵묵히 걷기만 하던 도중 드디어 집이 눈에 들어오자 둘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뛰기 시작했다. 집에 가까이 가자 이제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냉기가 둘을 반겼다.
“으아, 집! 으아, 사랑!”
“저 하늘의 유리벽이 여기 더위를 가두는 게 틀림없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둘은 몰아치는 시원함에 무릎을 꿇었다. 냉기마법을 건 옷들이 다 소용이 없었다. 지금 둘에겐 시원함 그 자체인 집이 최고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한여름도 아닌데 날씨가 이렇게 더운 건 이상해...이건 왕국이 망할 징조야.”
위험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니카였지만 어차피 들을 마녀는 옆에 있는 퍼블리 밖에 없으니 거침없었다. 평소라면 난감한 표정을 짓거나 말렸을 퍼블리는 듣는 둥 마는 둥 바닥에 드러누워 시원함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그나마 이성을 빨리 되찾았는지 일어나서 방에 가방을 던져두던 아니카는 손을 씻은 후 부엌으로 가 익숙하게 얼음을 동동 띄운 물통을 꺼내 컵 두 개를 담갔다가 건져올렸다. 그리곤 아직까지 현관문 바로 앞바닥에 엎어져있는 퍼블리에게 컵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얼른 일어나서 손 씻어.”
“그 전에 나 물 좀...”
“씻은 다음에 줄 거야.”
그 말에 퍼블리는 냉큼 일어나 가방을 두고 손을 씻으러 갔다. 그 김에 세수도 했는지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얼굴과 머리카락을 넘기며 나오던 퍼블리는 아니카가 건네는 컵을 받아들었다.
“강화마법 할 줄 알아?”
“할 줄 알았으면 오는 중에 진작 했을 거야.”
“그럼 너희 어머니한테 부탁하러 가야겠다.”
“가는 도중이 많이 괴롭겠지.”
냉기마법 강화에 대해 말하던 둘은 순식간에 컵을 다 비우고 부엌으로 가서 다시 물을 떠서 마셨다. 이제 제법 많이 여유를 되찾은 둘은 의자를 당겨 끌은 후 등받이에 등을 기대앉았다. 얼음을 와드득 씹어 먹던 아니카는 새가 하늘을 날아간다는 걸 말하는 어투로 먼저 말을 꺼낸다.
“그래서 넌 만들어진 장미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야?”
“응.”
어쩐지 확신이 담겨있는 표정과 유리병의 파란 장미꽃잎을 떠올린 아니카는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뭐...네가 확신하는 바가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입 안에 남은 얼음조각들을 마저 씹어 넘긴 아니카는 조금 가라앉은 눈으로 퍼블리와 눈을 마주했다.
“만들려고 하는 자는 물론이고 그런 걸 생각한 자들도 비난을 피할 순 없겠지. 만들기 위해선 멀쩡히 있는 장미를 파헤쳐야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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