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진실공방은 이쯤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생각해야하지 않겠슴까? 우리 패치는 저랑 뭘 하고 싶나요?”
“거기서 자네를 빼거나 내가 자네의 목을 직접 꺾고 싶네만.”
돌아오는 반응은 한결같았다. 너무하다는 둥 자기는 진심으로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는데 그렇게 살벌한 말만 하니 슬프다는 둥 마법사에게 닿을 리 없는 말들만 실컷 늘어놓던 치트는 이젠 짜증스런 표정으로도 자신을 봐주지 않는 마법사의 모습에 외면하면 슬프다는 말도 덧붙이곤 손으로 얼굴을 덮은 채 우는 소리를 내며 징징대면서도 손가락 틈 사이로 특유의 날카로운 노란빛을 굴리며 마법사의 얼굴은 물론 옷과 손끝, 옷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발목까지도 꿰뚫을 듯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자네 눈알 굴러다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네. 그렇게 눈이 한자리에 계속 붙어있는 게 불편했으면 진즉에 말하지 그랬나?”
“평생 한자리에서 우리 패치 볼 수 있게 계속 여기 있어주시겠슴까?”
“난 이미 예전에 답을 줬고 자네 고백은 실패했네.”
“고백이란 건 아직 마음이 있는 한, 한 두 번으로 끝날 게 아니잖슴까?”
“문제는 마음이 한쪽에만 있다는 거고 그럴 경우엔 한 번으로 끝내야 둘 다 서로 아플 일이 없을 텐데 자네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붙들어서 둘 다 아픈 결과를 초래하는군.”
그 말에 치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마십쇼, 제 고백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거고 저는 그저 제 방식대로 사랑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요.”
저는 더 이상 아프지 않습니다.
하얀 구름과 선명한 무지개를 걸어놓은 하늘, 따뜻하게 내려오는 햇살, 그 모든 걸 그림처럼 담고 있는 창문, 그 앞에 햇살을 받으며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마법사와 햇살처럼 해사하게 웃은 채 서있는 또 다른 마법사.
달달하고 포근한 연애 소설의 일부같은 이 상황을, 이 순간을 치트는 정말 완벽하다고 느꼈고 패치는 정말 역겹다고 느꼈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표정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고 다음에 일어난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기...패치? 안 그래도 많이 힘들 텐데 진정하시고 의자 좀 내려놓으십쇼. 던지면 우리 패치 체력손해는 물론 다친 제가 한동안 못 올 테니 눈 호강 손실 아님까?”
“내 체력손해도 아쉽지만 현재 여기서 들만하고 자네에게 제법 타격을 줄 수 있는 게 의자밖에 없는 게 더 아쉬울 뿐이고 자네 얼굴을 안 본다면 이만한 이득은 없다고 생각하네만.”
치트는 저번처럼 손을 들어 슥 그어봤지만 마법사는 이제 제법 내성이라도 생겼는지 잠시 휘청거리다가 다시 미간사이를 찌푸린 채 의자를 질질 끌고 오기 시작했다. 한 번 더 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거칠게 쾅쾅 두드려댔다.
“야 이 사시새끼야!! 너 또 X발 일 내팽겨 치고 여기서 그놈의 사랑타령 하고 있지!? 내가 살다살다 일을 성실하게 할 줄은 몰랐다, 이 시X X같은 상사 잡아오는 일을!!”
굉장히 억울한 소리였다. 치트가 마법사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일도 내버려두고 왔다고는 하지만 사실 다 끝내놓고 오는 길이었다. 다만 다시 밀려오는 일이 끝도 없었을 뿐.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대치상황을 어찌해야하나 싶었지만 역시 억지로 버텼는지 팔을 부들부들 떨며 의자를 내려놓고 기대는 마법사의 모습에 한숨을 쉬며 다가간다.
“이런 당신의 체질 덕분에 당신을 여기 붙잡아 둘 수 있지만 한 편으론 불안합니다. 거듭 말하지만 당신은 이 집을 나갈 수 없고 설령 나간다 해도 이 집에 공급되는 약새풀들은 근처에 잔뜩 만들어뒀지만 결계마법을 쳐놔서 눈으로 찾을 순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 말에 마법사는 픽 비웃으며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내 마법실력을 알고서 그 말을 꺼낸다면...그냥 답을 알려주는 거나 마찬가지지. 자네가 두려운 건...”
뒷말은 꺼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치트가 두려운 건 이대로 마법사가 이 나갈 수 없는 집 밖으로 나간 채 약새풀도 찾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비웃음과 함께 감상한 마법사는 결국 그대로 쓰러졌고 의자와 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마법사를 안아들은 치트는 여전히 굳은 얼굴로 성큼성큼 걸으며 조금 거칠게 침실 방문을 열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마법사를 침대에 눕혔다.
“도발하는 건 좋았지만 우리 패치는 그럴 생각이 없잖슴까?”
어느새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오고선 잠들어 있는 마법사의 머리카락을 빗듯이 쓸어보던 치트는 몇 가닥 쥐더니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춘다. 그리고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잠들어있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걸 놓고 이번엔 뺨을 쓰다듬더니 다른 손으론 품에서 통신수정구를 꺼내고 톡톡 두드렸다.
“모드양~ 들립니까?”
“무슨 일입니까?”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통화를 하나요? 모드양 목소리 듣고 싶어서 그랬답니다~ 라고 하고 싶지만 시킬 일이 있슴다~”
어쩌면 딱딱하기로는 눈앞의 잠든 마법사보다 더 딱딱한 그의 부하는 묵묵히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1년도 안 남았기도 했고 원래는 성인 될 때까지 기다려보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우리 패치가 못 만난 새에 홀랑 멀리 떠나는 방랑벽이 생겼나봄다~ 그러니 데려올 날짜를 조금 땡길까~ 싶어서 이렇게 연락을 줬지요.”
“언제입니까.”
“지금 바로!...라면 너무 급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이쪽으로 오게 돼서 정신없을 지도 모르니 조금 여유로우면서도 빠른 날을 생각해보니 이제 얼마 안 있음 축제잖슴까? 앞으로는 마녀왕국에서 지내지 못할 테니 마지막 축제를 즐기라는 의미에서 축제 마지막 날로 생각했는데 모드양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축제 마지막 날에 데려오겠습니다.”
“크~! 모드양이랑은 의견충돌이 없어서 정~말 편해요.”
나중에 또 목소리 듣고 싶으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통신수정구를 다시 톡톡 두드린 치트는 아쉬운 눈으로 마법사를 바라보며 일어난 후 무거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서 여전히 쿵쿵 두드려지고 있는 현관문으로 비척비척 움직였다. 집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차가운 공기들은 방 안에 누워있는 마법사를 향해가고 있었고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욕설들이 잠깐 흘러들어왔지만 문 닫는 소리와 함께 희미해지고 곧이어 사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천천히 눈을 뜬 마법사는 말없이 천장을 뚫을 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차가운 공기가 옅어졌을 즈음에 복잡한 감정을 듬뿍 담은 한숨을 쉬며 왼쪽 손을 들어 올리곤 손목에 걸린 아무장식 없는 밋밋한 팔찌를 천장대신 바라봤다.
'장편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5- (0) | 2018.01.21 |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4- (0) | 2018.01.18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2- (0) | 2018.01.02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1- (0) | 2018.01.01 |
마녀를 키우는 마법사 chapter 3 -generation.10- (0) | 2017.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