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싫어하셔?”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질문에 퍼블리 스스로도 놀라 움찔 어깨를 떨며 손이 제 입으로 올라갔지만 그보다 아니카의 답이 더 빨랐다.

나를 싫어한다기보단 싫고 좋고의 여부와는 별개로 독립했으면 싶은 거지. 물론 다짜고짜 집 나가라고 하진 않을 테지만 웬만하면 빨리 독립할 능력을 갖추길 바라고 있어.”

여전히 먼 곳에서 들리는 이야기였다. 선생들이나 주변 애들이 하는 말들은 들어봤지만 마법사에게서 직접 독립이라는 말은 들어본 건 그 단어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할 때 외엔 없었다. 그 설명을 들을 당시에도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모든 게 어색한 이야기였다.

너야 뭐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지. 너희 아빠도 그렇고.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충격 받은 얼굴 할 필욘 없어.”

그 말에 퍼블리는 애써 표정을 수습했지만 충격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주위의 마녀들과 달리 자기는 혼자 여전히 마녀왕국이 아닌 저 밖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왕국에서 살았던 시간이 더 많았는데도.

그런 퍼블리의 모습을 본 아니카는 급하게 수습하느라 여전히 딱딱한 표정에 뭐라 더 말을 해야 할까 싶었지만 이쯤에서 포기하기로 했다. 돌려 말하는 건 연기를 하지 않는 이상 본인 스스로가 무리였고 뭐라 더 말을 해도 지금은 귀에 안 들어갈 게 뻔했다. 제 보호자에게 무언가 섣불리 표현하기가 두려워 서투른 제 친구와 자식 키우는데 서툴기로는 제 친구보다 더 한 친구 보호자의 관계에 어찌 끼어들 수 있겠는가. 그나마 제 친구가 드디어 우물쭈물하던 걸 멈추고 돌격하려는 마음을 먹은 게 다행이었지만 보호자 쪽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는데 찾고 나서 돌격한 뒤의 결과가 어찌될지 정말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다른 쪽도 정말 궁금했다.

널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라 정말 궁금하다.”
?”
마녀나 마법사마다 타고난 성격이 있고 자라다보니 보호자한테 영향 받은 성격이 있는데 넌 정말 타고난 성격이 강하구나라고 생각해.”
.....그래...?”
네가 생각해도 넌 너희 아빠같은 성격은 아니잖아?”
그렇지.”
그나마 너희 아빠를 내가 제대로 본 게 아주 어릴 때지만 인상이 내 기억 속에 굉장히 잘 남아있거든. 돌석상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딱딱하게 느껴지는 그 표정. 거의 대부분 그 표정일 게 뻔하고 네가 너희 아빠에 대해서 꽤 얘기했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마법사지만 어떤 성향이고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알만한 마법사란 말이지.”

..그렇지...?”

그럼 너희 아빠는 대체 왜 너를 키우려고 했을까?
긍정하는 퍼블리를 빤히 바라보며 아니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퍼블리는 당황섞인 눈빛으로 아니카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니카는 그저 턱을 괴고 퍼블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결국 퍼블리가 먼저 입을 뗐는데 때마침 다음 수업 선생이 들어왔다. 의자를 다시 앞으로 돌리던 퍼블리는 아니카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 방금 전 돌렸던 의자처럼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칠판을 두드리며 수업을 시작하는 선생을 한 번 옆에 있는 퍼블리를 한 번 번갈아보던 아니카는 책으로 고개를 내렸다. 애초에 보호자라는 데에 적성을 따지는 것도 이상했지만 마법사는 자식을 키우고 독립시키는 보호자엔 얘기를 통해 듣기만 해도 적성이 안 맞았다. 애초에 마법사 스스로가 그걸 잘 알고 자식을 키울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것 같았는데 왜 퍼블리를 직접 키웠을까. 빡세긴 하겠지만 마법 교육면으로 스승으로선 적합할 것 같았는데. 퍼블리를 맨 처음 발견했다 해도 GM할아버지한테 맡기고 대리 보호자라 할 수 있는 스승이 되는 게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이상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이유가 있었을 테고 그 이유는 당사자만이 알고 있으니 지금 이렇게 추측해도 연관 지을 수 있는 건 파란 장미에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뿐이었다.

아니카는 다시 제 옆자리에 앉은 퍼블리를 바라봤다. 시선을 느꼈는지 퍼블리도 고개를 돌리다가 아니카와 눈을 마주쳤다.

어리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리석다라고 할 수 없는 제 친구.

서툴게 받아왔겠지만 분명히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을 제 친구.

비밀 많은 보호자만큼이나 자기 스스로도 모를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제 친구.

아니카는 마법사의 대답이건 진실이건 어떤 형태로든 간에 제 친구인 퍼블리가 상처받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아까 하려던 말이 뭐였냐는 퍼블리의 물음에 아니카는 까먹었다고 대답했다. 퍼블리는 뭔가 찜찜하다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아니카는 말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결국 먼저 포기한 건 퍼블리였다. 그러다가 더위를 유독 많이 느끼는 한 학생이 교실에 걸린 냉기마법에 마력을 과하게 때려 붓는 바람에 결국 과부하로 마법이 풀려버리자 한바탕 난동이 일어났고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휴게실로 뛰어가는 소동이 벌어졌는데 그 행렬에 퍼블리와 아니카 또한 동참했다. 갑작스런 소동에 결국 수업시간 외에 교무실에 틀어박혀 있던 선생들이 나와 냉기마법을 다시 새기고 돌아가는 걸로 소동은 마무리 되었다.

하교할 때 갈림길에서 아니카와 헤어진 퍼블리는 재빨리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바깥의 더운 날씨에 익은 몸을 식히다가 깜빡 잠이 들어버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켰다. 지금으로선 집에 찾아올만한 마녀는 아니카 뿐이었고 문을 열어보니 예상대로 아니카였지만 손과 등에는 무언가 잔뜩 달려있었다.

오는 내내 진짜 더워서 길바닥에 쓰러질 뻔 했어.”

그렇게 잔뜩 들고 오니까 그렇지. 근데 뭘 그리 많이 들고 온 거야?”
여름 내내 너희 집에서 지낸다고 했잖아? 내 옷이랑 칫솔이랑 필기도구 등등 내 방에 있는 것들 다 가져왔지. 좀 나눠서 들고 올까 싶었지만 역시 더운 날에 왔다갔다하는 건 많이 아니잖아?”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같이 살게 되면 사이가 틀어지게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같이 살게 된 둘은 생각보다 마찰이 없었다. 정확히는 둘의 집에서의 생활이 서로 마찰을 일으킬 정도로 부딪히는 부분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퍼블리도 혼자 있었을 때에 비해선 덜 외롭다고 느끼며 여름동안이지만 아니카와 같이 살기로 한 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학교도 함께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함께 하고 더위를 피하며 가끔가다 가방을 던져두고 놀러나가는 날도 지내면서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축제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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