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해도 결국엔 무작정 나갈 거지?”
머쓱함에 피하는 눈길에서 얼핏 보인 고집에 아니카는 꺼낸 말 뒤에 나오려던 한숨은 숨을 크게 들이쉬고 그대로 잠시 멈추면서 다시 삼켰다. 한숨을 쉰다고 해서 답답한 게 사라진다면 진즉에 몇 십번은 넘게 쉬었을 한숨이었다. 알면서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긴 답답함이었다. 퍼블리는 내심 아니카가 무언가를 참고 있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 당사자가 직접 꺼내지 않고 오히려 무의식적으로도 나오지 않게 눌러 담으니 섣불리 뭐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느껴지기만 할 뿐 그 안에 눌러져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으니 뭘 말해야할지 모르는 상태라는 게 더 적절했다.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자리 잡은 침묵이 조금 식은 차를 홀짝이는 소리를 더 크게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나 지났을까 전부 비웠는지 가볍게 탁!하고 소리가 울렸다. 결국 먼저 내려놓는 건 아니카였다.
“원래부터 빙빙 돌려가면서 말한 적 없으니 그냥 말할 게. 사실 난 퍼블리 네가 그렇게 열심히 뛰어나가는 게 이해가 안 돼.”
꽤나 꽉 찬 돌직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에게 닿진 못했다. 퍼블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아니카는 잠시 할 말을 고르는 듯이 눈을 반쯤 내려감으며 입가를 매만지고 있었다.
“뛰어나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게 그러니까...일단 나도 처음에 엄마가 사라진다면 여기저기 전단을 돌리거나 수소문을 할 거야. 하지만 왕국 밖으로 나가야한다면...글쎄? 애초에 너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아직 성인이 아닌 나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나갈 수 있어도 실종자들을 전문적으로 찾는 마녀나 어떻게든 왕궁 마녀한테 찾아갈 것 같아. 물론 너희 아빠도 특수한 경우라 주위의 다른 마녀한테 섣불리 부탁할 수 없는 거 알아 하지만.”
숨을 고른 아니카는 웃는 얼굴을 완전히 내려놓고 말했다.
“넌 평생 너희 아빠를 찾으러 다닐 거야?”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퍼블리의 표정이 멍해졌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난 아마 처음 한 번 찾으러 나간 후엔 직접 나서는 건 포기할 거야. 다른 마녀에게 계속 찾아달라고 부탁은 하겠지만 내가 직접 저 넓은 밖을 돌아다니진 않겠지. 분명 슬프고 그립고 찾고 싶겠지만 그것들과 기약 없는 소식에 비례해서 갈수록 지칠 테니까. 더군다나 엄마가 나한테 차지하는 부분이 분명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렇다고 전부는 아니니까.”
거기까지 말한 아니카는 입을 다물었다. 얘기를 다 들은 퍼블리의 손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끝이 시커먼 두려움이 끝도 없이 몰려와 제멋대로 속을 아프도록 채우고 휘저으며 그에 숨이 막혀 버둥거리는 생각은 두려움에 휩쓸려 여기저기 아프게 부딪히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숨을 멈추더니 그와 동시에 떨림이 멎었다. 눈을 감은 퍼블리는 고개를 푹 숙이다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동시에 고개를 다시 들어 올리며 눈을 떴다. 여전히 두려움은 밖으로 쏟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가득 차 있었지만 잔잔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느새 그곳에서 올라온 생각은 그 모든 걸 바로 발밑에 두고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전히 그 끝은 시커멓고 보이지 않았으며 발을 적시고 있었지만 다시 빠지진 않았다.
“...평생이라고 장담할 순 없겠지만 지치지 않는 이상, 아니 지쳐도 계속 찾아다닐 거야.”
“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의문이었지만 정말로 궁금했는지 물리려는 생각은 없어보였다. 아니카는 잔잔함에 잠시 몸을 맡긴 퍼블리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몇 번 눈을 깜빡인 퍼블리가 다시 자세를 바로 하며 제자리로 올라왔다.
“내 전부건 많은 부분을 차지하건 간에 결국 슬프고 그립고 찾고 싶고 막연히 두려운 걸 끝내려면 직접 아빠를 찾아야하고 아빠한테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그렇게 대답한 퍼블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하고 단단하게 보였다.
대답을 들은 아니카는 잠시 동안 아무런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지만 다시 웃음을 올렸다. 이해고 뭐고 간에 저 높은 장대 위에서 떨어질까 두려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장대만 겨우 잡아 울상 짓는 것처럼 보이던 제 친구가 이제야 편해 보이는 모습에 저 또한 답답한 게 가셔 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니카는 들고 왔던 축축한 우산을 들고 신발을 신으며 내일 학교에서 보자며 인사하고는 문을 열었다.
어느새 비는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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