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마법사가 없는 집에서 시작되는 일상은 떠나기 전부터 그랬듯이 퍼블리에겐 싸늘했지만 놀라우리만치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시간이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둥글게 다듬어 그에 맞춰 익숙해지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퍼블리가 빨리 혼자인 상황에 적응된 데에는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들 때문이었다. 퍼블리는 여러 번 생각해본 결과 역시 대머리는 아닌 것 같다고 학교 가기 전날 다시 한 번 극렬히 반대했지만 안타깝게도 여러모로 쌓인 게 많아보이던 아니카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물론 아니카가 지나가는 학생들 마다 일일이 붙잡아서 얘기한 건 아니었다. 맨 처음 퍼블리에게 다가와 왜 학교에 나오지 않았냐며 걱정 조금 호기심 대부분을 담아 물어보러온 애들에게 딱 한 번 말했을 뿐이다. 물론 한 번이든 여러 번이든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한 번 말하나 여러 번 말하나 그게 그거였을 뿐이었다. 아니 오히려 한 번만 말하니 당사자의 입에서 떠나 들은 자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내용은 눈 내린 언덕 끄트머리에서 굴려진 구슬처럼 원래보다 점점 더 한 내용으로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가장 황당했던 건 머리카락이 자아를 가지게 되어 치열한 전투 끝에 다시 머리로 돌아왔다는 내용이었다. 이걸 들은 아니카는 그 날 학교에서는 물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헤어지고 난 후에도 계속 웃어댔다. 저 갈림길 골목 너머에서 계속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퍼블리는 기분이 굉장히 상했지만 그 웃음으로 깔끔하게 쌓인 것들을 비운 듯 한 아니카의 모습을 위안삼기로 했다. 그 쌓인 것들이 폭발한 아니카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되지 않을뿐더러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보통 재앙이 아닐 거라는 걸 깊게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제 방으로 들어가 침대위로 몸을 내려놓던 퍼블리는 그대로 잠이 들었고 소문이 사그라들 때까지 집에 오자마자 자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잠잠해질 때 쯤 여느 때처럼 침대 위로 바로 눕던 퍼블리는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나더니 유리병이나 피리를 꼭 쥐거나 어떤 때는 여전히 냉기를 뿜어대는 뒷마당으로 뛰어갔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엔 다시 침대에 누워 잠들지도 않은 채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이불을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덮기도 했다. 자세히는 잘 모르지만 무언가 낌새를 느낀 건지 작년 가을처럼 자주 왔던 아니카가 아무 말 않고 기다리거나 돌아가며 조금씩 혼자 있을 시간을 늘려주고 있었다.
그런 아니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배려하면서도 왕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도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만 묻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던 퍼블리였지만 직접 물어볼까 아니면 자신도 마찬가지로 물어보지 않아야할까 고민으로 놓인 줄다리가 묻지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일 때까지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새 햇빛이 녹빛 짙은 풀을 끌어당겨 올리고 땅을 조금씩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왜 벌써 더워지려고 하는 거야?”
“작년보다 빠른 게 올해는 엄청 더우려나 본데?”
더위가 금방 다가올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어제 오늘 연속으로 내리고 있는 폭우로 잠시 주춤하고 있었다. 창가에서 폭포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거센 빗줄기들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문득 저러다가 약새풀들이 어떻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잽싸게 천들을 모아 끌어안고 뒷마당으로 뛰어갔지만 약새풀들은 거센 빗줄기에 조금 땅과 가깝게 눕혀진 거 외엔 꺾인 데도 하나 없이 멀쩡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발자국 하나 없는 눈 밭 위로 비가 쏟아지는 광경처럼 보여 시선을 빼앗긴 채 멍하니 서있던 퍼블리는 몸이 으슬으슬 떨릴 쯤에 정신을 차리고 젖은 천들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의외고 다행이라는 점은 비가 내리고 냉기까지 감돌고 있어 꽤나 추웠던 곳에서 쫄딱 젖은 채로 한참 있었는데도 감기는 물론 열도 나지 않았단 거고 피해갈 수 없었던 불행은 젖은 옷과 천들을 빨아야 했고 빨아도 비 때문에 말릴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조금 울상을 지으며 축축해지는 바닥을 보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인지 의아해할 필요도 없이 퍼블리 혼자 있는 집에 찾아 올 자는 역시 아니카 뿐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는데 어떻게 왔어?”
“요령껏 왔지. 사실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온통 젖은 우산과 신발의 물기를 털어내다가 젖은 천들과 함께 한구석으로 밀어 넣고 부엌으로 향한 둘은 찻잎을 컵에 담으며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더워질 줄 알았는데 비가 먼저 내리네.”
“저거 하늘 깨진 거랑 관련 있는 거 아냐? 어딘가가 아예 구멍이 뻥 뚫려있을지 몰라.”
그에 설마 그럴 리가 있냐며 웃던 퍼블리는 부글부글 끓으며 하얀 김을 올리는 물을 컵에 부었다.
“풀들은 멀쩡해?”
“보러나간 거 어떻게 알았어?”
컵을 받아든 아니카는 말없이 제 우산과 신발 옆에 뭉쳐놓은 천들을 힐끗 쳐다봤다. 멋쩍게 웃던 퍼블리는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어떡할지 생각해 봤어?”
“뭘?”
“너 이제 올해면 학교도 완전 졸업이고 내년이면 어른이니 수업 다 끝난 겨울 때 아빠 찾을 때까지 무작정 돌아다닐 생각은 아니지?”
그에 퍼블리는 시선을 피하고 침묵과 어색한 미소로 대신 답했다.
“우리 근육이...밖에서 많은 걸 알아왔으면서 정작 배운 건 없구나~?”
호호 웃는 소리와 함께 나오는 독설에 퍼블리의 시선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굉장히 무식한 방법이긴 하지만 더 이상 아는 게 없는 걸 어찌하란 말인가. 이대로 계속 집에서 혼자 지낼 수도 없고 마냥 기다리거나 포기하고 싶지도 않으니 유일하면서도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물론 이걸 입 밖으로 꺼내봤자 날아오는 건 앞선 독설의 연장선일 테니 꺼내지 않았다.
“이제 단서가 전혀 없다시피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무작정인데다가 막연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하지만 이거 외엔 방법이 없는 걸?”
“다시 공주님을 찾아가보는 건?”
“이동마법판은 그 때 처음 쓴 이후로는 바로 사라졌어. 게다가 찾아간다 해도...공주님이 아빠가 어디로 사라졌을지 알 리가 없잖아.”
공주에 대해 얘기하자 퍼블리는 순간적으로 피리가 떠올랐지만 딱히 피리에 특별해보이는 건 없었고 불어봐도 그저 평범한 피리였다.
“그래도 너 그렇게 무작정 나가는 건 진짜 아니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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