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축제가 다가오고 있지? 하지만 그 전에 너희 앞엔 시험이 남아있다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 그런고로 시험범위를 말해주마.”
학생들의 절규와 야유가 한차례 쏟아져 나왔다. 그 모든 것들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선생은 책을 피고 꿋꿋하게 시험범위를 짚어주고 자습이라고 외치며 유유히 앞문을 열고 나갔다. 시험기간과 범위와 함께 자습이 달려오자 학생들은 그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책을 펼치기 바빴다.
퍼블리에게 닿은 건 시험보다는 축제였지만 즐거운 기분으로 다가온 건 아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험이라는 말에 다른 학생들처럼 소리 없이 울면서 책을 펼치거나 최후의 방법으로 마법사를 찾아갔거나 했겠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냉기마법 하나 더 걸어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얼어 죽지 않을까?”
“야 더워 죽거나 얼어 죽기 전에 진짜 교실에 눈 한 번 내려볼래?”
더위와 시험은 이성을 빼앗기에 충분했는지 눈 내리자는 한마디에 슬금슬금 일어나 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학생무리가 있었다. 구경하던 다른 학생들은 설마 진짜 눈을 내리기야 하겠냐며 얌전히 있었지만 설마가 마녀를 잡았다.
“야 이 또라이들아!!”
“이 모든 것은 더위와 축제를 가로막는 시험에 의해 시작되었다! 우리를 막을 자, 더위와 시험을 지배해봐라!”
그렇게 또다시 한 바탕 난리가 났고 이번엔 말리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상황이 웃겼는지 그들의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이긴 마녀가 동료라고 응원 아닌 응원을 하며 여전히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니카는 응원도 뭣도 안 하고 하나의 희극을 보는 기분으로 구경하고 있었고 퍼블리는 말리는 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써대는 마법 덕분에 흩날리고 쌓이는 눈을 멍하니 보면서 왼쪽 손목을 쓰다듬었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위로 흩날리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밖에선 잠깐 비가 쏟아지는 듯 하더니 금세 그치고 햇빛 아래에 무지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얼마 전 왔었던 폭우가 끝난 후에도 보이지 않았던 무지개는 꽤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무지개가 사라질 때까지 볼 생각이었는지 의자를 창가로 가져와 창문 너머로 향한 고개를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왼쪽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예 손으로 덮어버린다.
“무지개가 참 예쁘게도 떴네요~”
“나가.”
“정말 너무하심다! 깨어있는 날도 별로 없으신데 매번 찾아올 때마다 그렇게 매정하게 굴고! 예전에는 같이 밥도 먹고 같이 한 침대에서도 잤었는...”
마법사가 여기에 갇힌 후로 제대로 알게 된 건 말은 한 번으로도 족하다는 거였고 잘못 듣지 않는 이상 다시 말해 줄 필요 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된다는 거였다. 아무 말 없이 의자를 잡자 멀찍이 물러나는 모습에 던지지는 않았다. 계속 갇혀 지내고 대부분을 잠든 채로 있었으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체력과 근육이 꽤 떨어진 상태였다. 괜히 여기서 힘쓰기 싫었으니 위협은 이 정도로만 하고 다시 의자에 앉으니 다시 슬금슬금 다가오는 모습에 다시 한 번 위협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다섯 걸음 정도 남겨놓고 더 이상 다가오지 않자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댄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닿을 수 없다니...뭔가 아련한 사랑 소설의 주인공들이 된 것 같지 않슴까?”
“헛소리는 그쯤하고 여기 온 이유나 말하게.”
“아아 우리 패치도 낭만이 없어요, 낭만이~! 그리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우리 패치가 여기 있으니까 제가 올 수밖에 없잖슴까?”
“얼굴 봤으면 꺼지게.”
“매정함다!!”
감정을 쏟아내는 것 자체도 굉장히 힘을 쓰는 일이었으니 계속해서 화를 내니 생각보다 금방 지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더군다나 체력도 꽤 떨어져 요즘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고 있는 마법사는 혹시 녀석이 이걸 노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힘을 쓰기 피곤해졌다. 아마 지금도 얌전히 앉아있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 그리 생각하니 조금 짜증이 올라왔지만 힘을 쓰면 더 피곤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금방 올라와 기운을 빼버리는 바람에 이러다가 나중에는 일어나 있는 것도 피곤해질까봐 조금 걱정이 든 마법사는 여전히 왼쪽 손목을 덮고 있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줬다.
“너무 절 싫어하시는 거 아님까?”
“이 상황에 대체 누가 자넬 싫어하지 않을 수 있을지 정말 궁금하군. 있다면 한 번 데려와보게, 자네처럼 말이고 예의상식이 안 통하는 녀석인지 알아보고 싶으니까 말일세.”
“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우리 패치 외엔 그럴 마법사도 마녀도 없으니 안심하십쇼.”
마법사는 다시 의자를 던지고 싶은 충동과 함께 등받이에서 일어났지만 분노의 기세를 느꼈는지 한걸음 물러나는 모습에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자네 마음은 평생 일방적이겠군. 이제 내가 자네를 좋아할 일은 없을 테니 말일세.”
그렇게 쏘아댄 후 또 징징거릴까 눈을 감고 무시하려고 했지만 의외로 아무런 말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함에 다시 눈을 뜨고 쳐다보니 거의 달고 살다시피 하던 얄미운 웃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당신이 떠난 이유는 제가 고백했기 때문입니까?”
“아니.”
별달리 동요 없는 모습을 보니 자신 때문에 떠난 게 아니란 걸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게 떠나면서 뒷마당까지 함께 태웠으니 뒷마당의 진실을 알고 있던 치트도 이유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걸 차가운 잿더미 앞에서 깨닫고 대답을 듣기 위해 호수로 달려갔었다.
“그럼 제가 계속 당신을 기다렸으면 당신은 다시 저를 만나러 올 생각이 있었습니까?”
마법사는 이번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질문을 꺼낸 본인도 그다지 대답을 바라고 질문한 건 아니었다. 앞서 치트가 말한 사랑 소설의 주인공처럼 지나간 일에 만약을 가정해보는 미련 많은 자의 흉내라도 내려는가 싶었지만 이번 연기는 영 아니라고 대답해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마법사는 말없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몇 번이고 생각해봐도 대답은 같았다.
“그럼 자네는 내가 떠나지 않았으면 나를 이렇게 가둬놓진 않았을 텐가?”
치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둘 다 대답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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