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가 사라졌어요.”

평소 같았으면 요것이 하늘로 다시 솟아올랐느냐 아님 땅으로 꺼졌느냐 대꾸하며 열심히 부리를 움직였을 전서구는 날개로 제 몸을 소중히 감싼 채 하늘만 바라봤다. 아무리 말 많은 비둘기라고 해도 옆에서 표정과 기세만으로도 찬바람을 만들어내며 제 끓는 속을 삭히고 있을 어린 마녀를 두고 오두방정을 떨기엔 스멀스멀 제 깃털 속까지 닿은 찬바람이 커다랬던 담도 급격히 쪼그라들게 만들 정도였다.

퍼블리가 떨어졌다면 적어도 피가 튄 흔적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고.”
워낙에 담담한 어투라 듣고 있던 전서구도 제가 내용을 잘못 들었나하고 정신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흠칫 날개를 떨었다. 아니카는 넓게 펼쳐진 풀밭만 멀거니 보고 있다가 두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덮었다. 표정관리는 집어치우더라도 갑작스레 몰려오는 짜증과 분노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충동을 겨우겨우 누른 손이었다. 그동안 쌓인 게 너무 많았다.

문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해결 방법이 단순히 지우개로 지우는 수준이 아닌 상황, 무언가 일이 터지는데 남은 단서는 극히 적거나 상상을 초월해서 섣불리 손대지도 못하는 것들이고 하나도 시원하게 해결 못하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상황.

보물찾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마 그건 보물이라도 찾지 지금 상황은 원래 옆에 있었던 가족 찾기였고 듣기만 해도 정말 머리가 아득해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번엔 단순히 듣기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도 찾아야하는 상황까지 왔다. 물론 여기까지는 친구의 아빠를 찾는 거니 친구의 속이 더 썩어있을 거라는 생각이 그나마 자신을 위로하고 나서면 힘들겠지만 사연과 친구의 행동을 보면 바로 옆에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정도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정신없는 상황이 터지고 정신차려보니 친구가 사라졌다. 그렇게 목표가 강제로 변경되었다.

친구 아빠 찾기에서 친구 찾기로.

심지어 남은 단서는 더 극악이었다. 단서라고 할 것도 없었다. 친구랑 같이 친구 아빠 찾으러 비둘기 타고 왕국 밖으로 나갔는데 갑자기 공격당하고 친구는 떨어지고 빛이 번쩍이더니 친구는 사라졌다.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면 그들도 이마를 꾹꾹 누를 정도로 환장할 상황이었다.

저는요~ 추리하는 거 좋아하고 그런 책들도 나름 즐겨보거든요? 그런데 이런 상황은 전혀 안 좋아해요~”
목소리는 평소처럼 발랄했지만 입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건 옆에 있는 전서구 외엔 없었지만 대답을 바란 말도 아니었는지 마저 말을 이어간다.

상황이 너무 엿같은데다가 내가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자처하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뭐 어떡해요? 퍼블리는 내 친구고 마녀마다 다르겠지만 제 기준으로 따지자면 친구는 단순히 학교 옆자리 앉는 걸로 끝인 게 아닌데. 한 번 얘기 듣고 도왔으면 끝까지 가고 중간에 발 빼는 어중간한 거 싫어해서 지금 이러고 있어요.”

사실 거의 자기 자신한테 하는 말이었다. 그 증거로 폭발하려던 짜증이 서서히 가라앉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천천히 설명하던 아니카는 한숨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직 해도 안 진데다가 여름이라서 그런지 굉장히 쨍하고 구름 한 점 안 보였다. 구름이 죄다 마음속으로 들어온 모양새였다.

햇볕 쨍쨍하고 그늘 하나 없이 더운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으니 얼른 퍼블리의 행방에 대해서 추리를 해봐요.”
아니 해보라고 해도...”
더위인지 아니카의 기세에서 스며나오는 찬바람 때문인지 땀을 흘리고 있던 전서구는 열심히 눈을 굴리듯 머리를 굴렸다.

혹시 보호마법 때문에 날아온 거 아냐? 성인이 안 된 마녀들은 함부로 왕국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나름 머리를 쥐어짜내어 말하던 전서구는 점점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그 생각을 안 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날아오던 마법은 전혀 보호마법으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몰래 나가는 아이들을 다시 제 발로 돌아오도록 하려고 겁주기 위해 방어막 마법도 부술 정도의 원거리 마법을 넣어놓은 거라면 마법 설계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아이를 둔 마녀들이 항의하거나 아예 왕국을 떠났을 거다.

전 엄마한테 미리 허락을 받아놨고 퍼블리는 애초에 의미가 없어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분명 누군가가 공격마법을 날려댄 게 틀림없었고 퍼블리가 사라진 걸 보면 처음부터 퍼블리를 노리고 날린 공격이었고 퍼블리를 해칠 작정이었다면 전서구를 타고 떠나기 전에 퍼블리가 혼자 있을 때나 땅에 발을 딛고 있을 때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다. 지나가던 마녀들한테 들키는 걸 염려했다 치더라도 애초에 그 정도로 원거리 마법을 써대는 시점에서부터 실력이 범상치 않은 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들키고 해치우는 건 역시 땅에 있었을 때가 더 쉬웠다.

일단 가장 유력한 게 작정하고 공격한 거랑 납치하려고 과격하게 일을 벌인 건데...제 생각으로는 후자가 더 유력한 것 같네요?”
아무리 그래도 아직 어른도 안 된 마녀 하나 납치하려고 통구이가 되다 못해 탄자국만 남길 정도로 그렇게 번쩍번쩍 공격을 해댔다는 건 보통 미친 생각이 아니잖아!?”

미친 생각이 괜히 미친 생각이 아니죠~ 아무튼 이걸 더 유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일단 멀쩡히 살아있다는 거 때문이에요.”

일단은 무슨! 내 정신은 이미 재가 돼서 저 공중에 훨훨 민들레 홀씨마냥 날고 있다고! 두 번 멀쩡하면 아예 죽었다가 살아나겠네!!”

전서구는 차츰 정신과 기운이 돌아오고 있는지 요란스런 입담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아니카는 전서구의 반박을 무시하며 다시 주변을 살펴봤다. 다시 봐도 신체일부는 물론이고 핏자국이 없는 걸 보니 떨어질 때 그냥 데려간 게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퍼블리를 노릴만한 자들이 누군지 알아내야하는데 혹시 짐작 가는 데 없어요?”

짐작은 집어넣고 솔직히 말해서 후보들이 여름철 나뭇잎 색 마냥 너무 훤한데.”
첫 번째 후보는 당연히 신성지대였다. 퍼블리가 거기서 그 난리를 쳐댔으니 왕국으로 무언가 항의라도 던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두 번째 후보도 나왔는데 바로 왕궁 마녀들이었다. 물론 이건 신성 쪽이 퍼블리를 마녀로 알아봤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고 실제로는 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마법사로 봤다. 그런데 여기 있는 둘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일단 이 둘이 후보였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퍼블리 어디에 있냐며 들이닥칠 수도 없었다. 어찌할지 생각에 빠진 아니카는 현재 손을 빌릴 수 있는 마녀를 떠올렸다.

우선 독립해서 나간 공주님을 뵈러가야겠네요.”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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