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리는 걷는 내내 폭이 좁은 돌담 위를 걷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걷기엔 앞장 서는 왕궁 마녀의 걸음이 상당히 빨라서 한 눈 팔면 바로 놓쳐버릴 것 같아 잔뜩 긴장한 채 왕궁 마녀의 등을 뚫을 기세로 쳐다보며 따라가고 있었다. 이 정도 시선이면 한 번쯤 뒤돌아볼 법도 한데 왕궁 마녀는 힐끔거리는 기색 없이 앞만 보면서 걷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을까 싶었지만 아까 마주한 딱딱한 얼굴과 지금도 느껴지는 냉랭한 기색을 보면 대답은 듣지 못할 게 뻔했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퍼블리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긴장을 풀어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느껴지는 시선에 방을 나온 이후로 왕궁 마녀의 등에서 떼지 않던 눈을 돌려보다가 깜짝 놀랐다. 여기를 지나다니는 자들이 퍼블리와 왕궁 마녀 둘뿐만이 아니었는데 여기가 퍼블리의 예상대로 왕궁이었다면 다른 왕궁 마녀들도 지나다니는 게 당연한 거였다. 아직 어린 마녀가 여기 있는 게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힐끔 보다가 가는 마녀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기에 마녀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 왕궁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마녀들처럼 바쁘게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을 보며 흘러나온 얼떨떨한 물음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란 퍼블리가 다시 앞을 바라보니 고개만 돌린 게 아니라 몸도 완전히 뒤로 돌아 마주보게 된 왕궁 마녀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퍼블리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여긴 어디예요?”
“제 일터입니다.”
즉각 나오는 대답에 당황한 건 퍼블리였다. 혹시나 해서 바로 물어봤는데 바로 대답이 나왔다. 예상과는 달리 친절하진 않지만 숨기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이 의외였는지 머뭇거리던 퍼블리는 하나씩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왕궁 마녀는 왕궁 말고도 다른 일을 가질 수 있었나요?”
“네.”
“그런데 전 왜 여기로 데려온 거예요?”
“상관의 명령에 따라 데려왔습니다.”
조금 이상한 말이었다. 떨어지는 퍼블리를 보고 데려온 게 아니라 처음부터 명령을 받고 퍼블리를 데려왔다는 말처럼 들렸다.
“저, 그럼...”
“뭐야? 왜 복도 한 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어?”
퍼블리는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에 묻던 걸 멈추고 돌아봤다. 쨍한 머리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지만 머리색만큼 분명 동글동글한데 묘하게 험악하게 느껴지는 얼굴도 인상적인 마법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뭐라 한마디 더 하려던 마법사는 퍼블리와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멈춰선 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퍼블리는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 마법사를 빤히 쳐다봤다.
“너...”
“저...저요?”
저를 부르는 듯한 외마디에 당황한 퍼블리가 반문하자 마법사는 뭐라 말하려고 했는지 입을 달싹이다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대기 시작했다. 그런 후엔 한숨을 쉬곤 굉장히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로 왕궁 마녀를 쏘아보며 눈빛처럼 따지듯이 쏘아댔다.
“여기 왜 어린 녀석이 돌아다니는 거야?”
“명령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니 그 명령이고 자시고...아오, 진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답답해하는 모습에 당황한 퍼블리가 아무 말도 않고 보고만 있자 왕궁 마녀가 여전히 딱딱한 어투로 기다리고 계시니 가야한다고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퍼블리는 망설이다가 빠르게 멀어지는 왕궁 마녀를 따라 황급히 뛰었다.
“야, 잠깐! 야!!”
뒤에서 외치는 목소리에 퍼블리는 힐끔힐끔 고개만 살짝 돌려 마법사를 살펴봤다. 분명 처음보고 낯선데 이상하게 눈에 익은 기분이 들어 혼란스러웠다. 마법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지만 멀어져서 이젠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고 저렇게 눈에 띄는 마법사를 예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면 이렇게 기억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쨍하고 짧은 곱슬머리도 안보이게 될 쯤에 퍼블리는 저 마법사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보다 왕궁 마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 문 앞에서 멈춰선 왕궁 마녀는 문을 두드리고는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야하나 망설이던 퍼블리는 방으로 들어가선 아무 말도 않고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쭈뼛거리며 따라 들어갔다. 방 안은 벽지가 검어서 약간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주변 물건들이 제법 잘 보이는 방이었다. 방 한가운데엔 꽤나 넓은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있었고 그 책상 너머로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심까? 오랜만임다~”
앉아있는 자는 마법사였는데 굉장히 반가운 기색으로 부드럽게 눈웃음치며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왕궁 마녀에게 인사를 건네는 거라고 예상한 퍼블리는 멀뚱히 서서 둘이 대화하는 걸 지켜보려고 했다.
“흐음? 저는 반가운데 우리 어린 손님은 제가 안 반가우신검까?”
“어...네? 절 말하는 거예요?”
“그럼요~ 우리 어린 손님 퍼블리님을 말하는 거죠~”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퍼블리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이 제대로 보이자 퍼블리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한쪽 눈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본래 희어야할 부분이 검고 그 한 가운데 있는 노란 눈동자는 밤에 뜬 달처럼 보였다. 그리고 굉장히 낯이 익었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에 복도에서 만난 마법사와는 달리 분명 본 적이 있다고 확신했다. 기억을 더듬자 곧바로 튀어나오는 게 있었다. 너무 어릴 적이라 기억 속의 모습이 희미하고 흐릿했지만 눈앞에 있는 마법사와 잘 맞았다.
“아...!”
누군지 제대로 떠올린 퍼블리는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그런 반응을 보고 마법사는 분명 계속해서 웃음을 짓고 있었는데도 활짝 웃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반가운 기색을 보이면서 일어났다.
“기억하셨나보군요? 혹시 기억 못하실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다행임다~ 정말 못 본 새에 많이 컸네요~”
그렇게 말한 마법사는 퍼블리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입을 막던 손을 내리고 내밀어진 손을 맞잡았다. 입을 막은 이유는 반사적으로 튀어나올 말을 막기 위해서였다.
아빠한테 구애하던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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