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오셨슴다?”
“그럼 늦게 오길 바랐냐?”
까칠하게 대꾸한 그 마법사는 어쩐지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는다는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툭 책상 위로 던졌다.
“다 찾아왔다. 이딴 걸로 부려먹지 마.”
“다음에도 부탁함다~”
몸을 돌리며 나가려고 했던 마법사가 손을 들다가 퍼블리와 눈이 마주치고 멈췄다. 한숨과 함께 썩은 배추라고 중얼거리곤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묘한 느낌에 닫힌 문을 계속 보고 있던 퍼블리는 끊어졌던 얘기의 뒷부분을 마저 이어서 말하는 치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퍼블리님을 데려오라고 모드양한테 부탁했죠.”
그렇게 말한 치트는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퍼블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패치는 잘 지냈나요?”
그에 퍼블리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지금 마법사가 잘 지내고 있는지 가장 궁금한 건 바로 퍼블리였다. 그런 퍼블리의 생각을 모르는지 치트는 이젠 기대가 가득한 걸 넘어서 아련한 눈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아빠를 찾으려고 나오다가...”
마녀 왕국으로 오게 된 이후론 밖으로 잘 나가지 않던 마법사.
“작년 축제 때 갑자기 사라지셨어요. 왜 사라지셨는지 잘 모르고 일단 무작정 찾고 있고...”
여름에도 늘 한겨울보다 두껍게 입고 다녔던 마법사.
“마지막 옷차림은 어...엄청 두껍게 입으셨고 모자를 썼었고 그리고, 그리고...”
약새풀의 냉기는 분명 강하지만 한여름에도 시원한 정도였는데 늘 두껍게 입고 다녔던 마법사, 그리고 그 약새풀을 비밀로 하던 마법사, 모든 비밀을 다 묻어버리고 말해주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 마법사.
“...왜?”
몇 번을 다짐해도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때마다 퍼블리는 발밑이 허전하다고 느꼈다. 맞잡은 손이 서로 차갑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을 때 그 위로 빳빳한 감촉이 느껴졌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검은 손이 올라와 차가워진 퍼블리의 손을 덮고 있었다. 하지만 덮은 손도 그리 따뜻하진 않았다.
“네?”
“그동안 계속 패치를 찾아다니고 있었고 제가 도와드리면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겠슴까?”
“아니, 그...저....”
“그러니 여기 며칠 머물러계십쇼. 얘기를 더 나누고 싶지만 지금은 일이 너무 많아서 나중으로 미뤄야할 것 같네요. 그러니 여기 머무르면서 기다려주시면 되겠슴다. 모드양~?”
이제 이름을 알게 된 왕궁 마녀가 치트의 부름에 가까이 다가왔다.
“퍼블리님이 머물 방으로 안내해주십쇼. 그리고 무언가 필요하다면 모드양한테 말하시면 됩니다~”
퍼블리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미 다른 방이었고 혼자였다. 갑작스럽고 빠른 진행상황에 당황한 퍼블리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니카랑 전서구와 함께 왕국을 빠져나오던 도중 공격을 받아서 떨어지고 이중으로 일하는 왕궁 마녀한테 납치 아닌 납치를 당했고 그걸 시킨 상관이 여기 와서 만난 게 예전에 아빠한테 구애하던 마법사였는데 어쩌다보니 아빠가 사라진 거에 대해서 얘기까지 했고 자신도 돕겠다며 여기 며칠 있으라고 왕궁 마녀를 시켜 방까지 데려다줬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말이 안 되는 상황인 건 아니고 어찌 보면 우연과 인연이 마주쳐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퍼블리는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정확히는 상황보다는
“왜 이렇게 그 아...치트씨가 어...색하지?”
아저씨라고 할 뻔 하다가 치트씨라고 하며 몸서리치던 퍼블리는 마법사에게 반했을 때에 대해서 얘기하고 묻고 마지막엔 도와주겠다고 한 치트를 떠올리고 아주 옛날 마법사한테 시도 때도 없이 다가가려고 했던 치트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기억 속의 둘은 마법사 앞에선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지금의 모습은 무척 어색했다. 중간에 마법사가 없고 단 둘이 있었던 적은 아까 전을 제외하면 마법사가 아파서 누웠을 때 치트가 마법사 대신 어렸던 저를 재웠을 때였다. 그래도 그 땐 마법사가 아파서 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때라 그랬었는지 제대로 인식도 못했었다.
“오랫동안 못 봐서 그런가? 내가 엄청 자라기도 했고...”
아직 궁금한 게 남았고 여기 머무르는 동안 도와준다고 했었으니 여러 번 보러 가게 될 건데 만날 때마다 어색해할 순 없으니 계속해서 괴리감을 없애려고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없어지기는커녕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퍼블리는 최후의 수단으로 상상 속에 마법사를 끼워 넣었다.
마법사에게 엉겨 붙는 치트와 그걸 밀어내는 마법사. 여기까지는 쉽게 상상이 갔다. 그리고 그 옆에 퍼블리가 멀뚱히 서 있었다. 다시 옛날의 기억으로 상상을 덧칠하니 어린 퍼블리가 둘 사이로 뛰어들어 마법사한테 딱 달라붙고 치트는 입술을 삐죽이며 마법사를 끌어안으려고 하지만 어린 퍼블리는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투닥거리는 둘의 모습에 한숨인지 픽 흘러나오는 웃음인지 모를 걸 흘리던 마법사가 어린 퍼블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시점에서 다시 지금의 퍼블리를 덧칠했다.
“내가 많이 자라버렸구나.”
지금의 퍼블리는 어린 퍼블리처럼 둘 사이로 뛰어들지도 않았고 마법사한테 딱 달라붙지도 않았다. 그저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둘을 보고만 있었다. 우선 예전의 흉내라도 내고자해서 다가가니 치트가 퍼블리를 발견하고 마법사 좀 빌려가겠다며 능글맞게 웃고는 함께 어디론가 가버렸다. 예전이랑 달랐다. 다시 흉내를 내서 안 된다고 외칠까 싶었지만 상상 속의 퍼블리는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안 돼?
“...모르겠다.”
그렇게 중얼거린 퍼블리는 그대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식혀야하는 게 우선이라 무작정 방을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왕궁 마녀, 모드가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하고 묻자 퍼블리는 멍한 눈으로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바람 하나 불지 않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앞도 제대로 안 보고 무작정 걷고 있던 퍼블리는 얼마 안 가 멈춰서 벽에 기댔다. 그냥 모든 게 멍했다.
“야.”
누군가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르자 화들짝 놀란 퍼블리가 돌아보니 머리색처럼 쨍하게 빨간 눈과 마주쳤다. 아까 봤던 묘한 마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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