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어도 처음 보는 마법사니 퍼블리는 공손하게 인사부터 했다. 그러자 마법사의 표정이 아까 봤을 때보다 더 이상해졌다. 퍼블리는 아까 처음 봤을 때 인사를 안 하고 두 번째에도 안 해서 화가 났나 싶었지만 바로 나온 말을 보면 인사 때문이 아닌 걸 깨달았다.
“아직 어른도 안 된 마녀 같은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대답하기 힘든 질문에 퍼블리는 그저 하하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마법사도 굳이 알아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지 혀를 차며 이걸 어찌해야하나 하는 눈으로 퍼블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이름 물어봐도 되나요?”
“아니. 내 이름 비싼 이름이다.”
혹시나 만났는데도 한 번 만나서 기억을 못하는가 싶어 물어봤는데 단호하게 이름 밝히는 걸 거부한 마법사에 당황한 건 퍼블리였다. 떨떠름한 얼굴로 어, 네 하고 자리를 뜨려던 퍼블리를 잡은 건 뒤를 이은 마법사의 말이었다.
“그 썩은 배추머리 녀석이 가장 많이 불리는 별명이 비밀 상인이다.”
“네?”
“그만큼 모르는 게 없고 허투루 정보를 안 준다 이 말이지.”
퍼블리가 기댔던 벽에 이번엔 마법사가 기대면서 팔짱을 꼈다. 미심쩍다는 듯 반쯤 뜬 눈으로 퍼블리를 바라보던 마법사가 덧붙였다.
“그런데 그 새...녀석이 나랑 그 보라머리한테 명령하길 네가 궁금해 하는 건 아는 만큼 알려달라는 거였지.”
마법사가 말하는 바가 무언지 눈치 챈 듯이 눈을 깜빡이며 바로 물었다.
“이름 가르쳐주세요!”
“그거 말고! 의심을 하라고!”
퍼블리는 또 다시 어색하게 웃었다. 의심을 하기엔 워낙 아빠한테 달라붙었던 치트가 계속 생각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은 아빠도 찾을 겸 자신한테 점수따기인가 짐작한 퍼블리는 깜빡하고 잊고 있던 걸 떠올려냈다.
“아 그럼, 다른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마법사는 퍼블리가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퍼블리는 애써 무시하며 여기에 왔을 때 책상에서 보게 된 종이 내용을 말했다.
“왕국이 다른 색 장미를 만들어냈고 보라색 장미가 성공했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아아, 그거? 그 보라머리가 보라색 장미에서 태어난 마녀라서 그래.”
퍼블리의 말을 들은 마법사가 바로 심드렁한 표정을 짓더니 가볍게 펜을 책상위로 툭 던지듯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내놓았다. 이번엔 다른 의미로 할 말을 잃은 퍼블리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으니 이번엔 마법사가 물었다.
“그보다 무슨 고민이 그렇게 잔뜩 쌓여있길래 복도 한가운데서 멍하니 천장만 보고 있었냐?”
“그냥...개인적인 거예요.”
티가 많이 났구나 싶어 민망해진 퍼블리는 고개를 숙였다. 마법사는 이번엔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퍼블리는 볼 수 없었고 마법사도 퍼블리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크게 한숨을 쉰 마법사에 퍼블리가 움찔 어깨를 떨었다. 어째선지 고개를 다시 들 때를 놓친 것 같았다.
“나에 대해선 말해줄 수 없지만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 솔직히 그 보라머리 정말 물어본 것만 대답해서 답답할 거다.”
“네. 그럼...”
퍼블리는 그대로 뒤돌아서 빠르게 걸었다. 뒤에서 시선이 아직 느껴졌지만 돌아보기엔 이상하게 껄끄러웠다.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돌아보니 텅 빈 복도가 눈에 들어왔고 퍼블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내가 아까 어떤 방에서 나왔지?”
방들은 방문에 써져있는 번호들을 제외하면 다 똑같이 생겼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문을 열 때 세게 문고리를 세게 돌렸는지 조금 내려가 있거나 아님 별로 많이 열었던 문이 아니었는지 아직까진 반질반질한 문고리였거나. 퍼블리는 난감한 얼굴로 아까 나왔던 방의 번호를 기억해내려고 했지만 자신을 안내했던 모드의 등만 보거나 방을 나올 때 돌아서서 방 번호를 확인한 기억은 없었다. 결국 퍼블리는 눈에 보이는 모든 방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너 뭐하냐?”
283이 써져있는 문을 54번째로 두드렸을 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고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역시 아까 헤어진 지 얼마 안 됐던 이름 모를 마법사였다.
“그게, 제가 나온 방이 어떤 방인지 모르겠어서...”
이번에 마법사가 지은 표정은 퍼블리도 제대로 봤다. 그리고 아까처럼 묘해서 못 알아볼 표정도 아니었다. 황당함을 가득 담긴 눈빛이 설마 계속 문을 두드려왔냐고 묻고 있었고 퍼블리는 또 민망함에 하하 웃었다.
“무식하게 그러고 있었어?”
“하지만 복도를 지나다니는 분들이 없었는걸요.”
분명 치트가 있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엔 마녀는 물론이고 마법사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복도를 꽉 채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열 걸음 지나다니다보면 세 명은 만날 정도로 있었는데 이상하게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눈앞의 마법사를 제외하면.
“그거 말고, 썩은 배추가 너한테 보라머리 붙여놨잖아.”
아까부터 마법사가 치트를 썩은 배추라고 하니 퍼블리는 자기도 모르게 치트를 만날 때 자신도 마법사처럼 썩은 배추라고 부르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하면서 웃음을 꾹 참았다.
“야, 보라머리! 나와 봐, 얘 방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잖아!”
마법사가 그렇게 외쳤지만 마녀는 물론이고 보라색 머리끝도 보이지 않았다. 와락 얼굴을 찌푸린 마법사가 퍼블리에게 불러보라고 시켰다. 퍼블리는 아무도 없는 복도인데다가 혼자 두고 왔는데 과연 지금 자신이 부른다고 나타날까 싶어 조심스럽게 모드의 이름을 불렀다.
“모드씨?”
“부르셨습니까.”
바로 퍼블리의 뒤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퍼블리가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드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퍼블리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퍼블리는 크게 뜬 눈을 꾹 감은 채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모드에게 물었다.
“제가 있었던 방이 어디 방인지 모르겠어서 그러는데 다시 데려다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들은 모드는 바로 제 옆의 284가 써져 있는 방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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