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옆이었네요?”
하하 웃던 퍼블리는 눈물을 삼켰다.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거에 대한 눈물이었을까, 바로 옆으로 올 때쯤에 겨우 모드를 부르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에 허무함이었을까. 비틀거리는 퍼블리에 어디 아픈가 싶어 뒤에서 치유마법과 회복마법을 복합적으로 쓰는 모드와 그걸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둘을 번갈아보는 마법사. 여기서 먼저 자리를 뜬 건 마법사였다. 모드는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퍼블리는 들어가면서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방 밖에서 멀뚱히 서있기만 하는 모드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물었고 모드는 말 없이 퍼블리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퍼블리는 바로 후회했다.
“모드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네.”
“그...보라색 장미에서 태어났다고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모드는 정말 대답만 했다. 먼저 말을 걸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말 그대로 가만히 있기만 했다. 방에서 들어온 이후론 문을 등 뒤에 두고 서서 계속해서 퍼블리만 보고 있었다. 퍼블리가 자신이 앉을 의자 말고도 다른 의자를 끌고 와도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고개와 눈동자만 돌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으라고 권하니 앉았지만 퍼블리를 바라보는 시선은 돌리지 않았다. 짙어지는 어색함에 결국 퍼블리가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궁금한 걸 물어보기 위해 먼저 말을 꺼내기 시작했고 그게 지금 상황이었다.
“혹시 다른 색 장미들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그걸 만든 이유나 짐작은 가지만 왕궁에서 왜 비밀로 했었는지.”
퍼블리가 궁금해 하는 걸 들은 모드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가 한 번 눈을 깜빡이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실례지만 질문하시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아까 맨 처음 방에 있을 때 책상에 있는 걸 읽어버려서...”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모드는 담담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왕궁에서 다른 색 장미를 만든 이유부터 설명 드리자면 표면상의 이유는 자연 발생하는 장미를 모을 수 없으니 안정적이게 장미를 모으자는 것이었습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밸러니의 숲에서 얻게 된 하얀 장미를 분해하고 숲의 마력 파악 및 기존의 장미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을 하다가 색이 바뀌는 걸 보고 본격적인 실험을 하고자 입니다.”
물론 내용은 담담하지가 않았다. 왕궁에 있었던 마녀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숲에서 받게 된 저주를 풀기 위해 하얀 장미를 파악하려고 하는 거였다면 이해가 갔지만 그걸 장미에다가 갖다 대는 경우는 대체 뭔가 싶어 퍼블리는 분노보다 황당함을 먼저 느꼈다.
“감춘 이유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들이 발표를 하기 전에 파란 장미 씨앗과 함께 계획을 써놓은 종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퍼블리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는 건 메르시의 방 서랍에 있었던 종이뭉치였다.
“그러면 왕궁에서 숲의 마력을 파악하려고 한 이유는 정화의 날 때 숲에 있었던 자들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인가요?”
“아닙니다. 하얀 장미를 발견한 건 정화의 날이 일어나기 훨씬 전입니다. 그리고 그 때 당시에 그들은 왕궁의 마녀라기 보단 마법사와 함께 탐험을 위해 단체적으로 모인 집단이었습니다. 제법 실력이 있었던 자들이라 왕궁에서도 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정보를 예전에 찾았습니다.”
이쯤 되면 퍼블리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읽었던 역사책은 진실을 얇게 올려놓은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일단 약새풀이 자라는 데가 점점 넓어지는 걸 발견하고 정화하기로 마녀와 마법사들이 정했다고 했다. 하얀 장미는 정화의 날이 일어나기 전보다 훨씬 앞섰다고 했으니
“그럼 약새풀이 자라는 데가 넓어지게 된 게 그 하얀 장미를 가져온 이후인 건가요?”
“네.”
만약 여기 아니카가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다면 웃으면서 정말 미쳐 돌아가고 있네라며 독설을 날렸을 거다. 당장 축제 한복판에 가서 외쳐도 마녀들이 쉽게 믿지 않을 엄청난 진실들에 머리가 멍해진 퍼블리는 고개를 숙여 이마를 짚었지만 곧이어 또 잊고 있었던 거에 대해서 외쳤다.
“맞다, 아니카랑 전서구!”
“그 둘은 지금 바다로 가고 있습니다.”
착실하게 대답한 모드의 말에 퍼블리가 바로 떠오른 건 배 위에서 생활하던 흑기사단이었다. 흑기사단에 대해선 역사책과 퍼블리의 얘기로만 들었던 아니카였으니 그 둘이 거기로 가는 이유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퍼블리는 브레이니의 책을 끌어안으면서 울던 메르시가 떠올랐다.
“모드씨가 저를 데려오기 전에 갑자기 공격을 당했었는데 혹시 누가 공격했었는지 보셨나요?”
이번엔 바로 대답하지 않고 기억을 더듬고 있는지 눈을 감은 모드는 퍼블리가 세 번 눈을 깜빡였을 때쯤 다시 눈을 떴다.
“아뇨. 보지 못했습니다.”
대답하자마자 오른쪽에서 빛이 번쩍였는데 모드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꺼내드니 빛이 꽤 눈부실 정도로 번쩍이는 수정구가 나왔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고개를 숙인 모드는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마자 퍼블리는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침대 바로 옆에 집에서 챙겨왔던 짐 가방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들어 올려 가방을 열어보고 짐들 사이를 뒤적이던 퍼블리는 메르시가 준 피리를 꺼냈다.
“아니카가 거기로 간 이유는 아마 이거 때문이겠지?”
피리를 꺼내 든 퍼블리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지금 불어볼까 말까. 비밀의 열쇠가 될 거라고 메르시가 말했고 불고 나선 어떻게 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섣불리 불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은 치트가 마법사의 행방을 같이 찾겠다고 했고 아까부터 계속 묘하고 익숙한 느낌이 드는 마법사가 신경 쓰여 아직은 여기에 있고 싶은 마음이 더 큰 퍼블리는 언제든 불 수 있게 피리를 계속 들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맞다. 모드씨한테 그 분 이름 물어볼걸.”
사실 당사자가 알려주고 싶지 않아 말하지 않는 걸 억지로 묻거나 알아낼 생각은 평소라면 들지 않았겠지만 그러기엔 퍼블리의 감이 이상하게 그 마법사가 누군지 기억해 내야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머리색도 눈 색도 그렇고 동글동글한 얼굴과 분위기를 보면 예전에 만났어도 바로 떠오를 텐데 이정도로 안 떠오른다면 처음 보는 거나 다름없고 그런데도 익숙한 게 너무나도 이상했다.
“대체 누굴까? 이름을 꼭 듣고 싶은데.”
침대에 누워서 멍하니 천장을 보던 퍼블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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