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아아아아아!!!”

퍼블리가 달려가는 동안 다행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다고 퍼블리의 외침에 돌아보지도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퍼블리가 잠시 주춤했지만 조심스레 패치의 옆으로 다가갔다. 퍼블리가 바로 옆으로 다가갔는데도 패치는 고개를 돌리기는커녕 계속 호수만 보고 있었다. 퍼블리가 조심스레 아빠라고 불러도 전혀 안 들리는 것처럼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던 퍼블리는 손을 뻗어 패치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그러자 패치가 드디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가?”
아빠?”

퍼블리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다시 제 아빠를 다시 불러봤지만 패치는 아까처럼 또 아무 말도 안하고 호수를 보듯 퍼블리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바로 느낀 퍼블리는 자기도 모르게 옷자락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찾으러 왔어요.”

누구를?”
누구긴요, 아빠요!”
패치는 또 입을 다물었다. 이건 무언가 이상한 게 아니라 확실히 이상했다. 퍼블리는 조심스레 옷자락을 놓았고 패치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먼저 말을 꺼내진 않았다. 하다못해 퍼블리에게 왜 이 위험한 숲으로 왔느냐고 소리치는 게 정상인데 그런 것도 없었다. 정말 고개 돌리기 전까지 계속 보고 있던 호수를 보듯이 퍼블리를 보고 있었다. 퍼블리는 패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아무것도 안 물어요? 제가 왜 여기로 왔는지 안 궁금해요?”

자네가 여기로 오기로 결심했으니 자네는 여기 있는 거지. 내가 궁금해 할 이유가 없네.”

그 말을 들은 퍼블리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패치가 이상한 게 맞았다. 퍼블리는 뭐라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지만 모두 엉키고 뭉쳐서 잘 나오지 않아 입만 달싹였다. 패치는 여전히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복잡한 눈으로 패치를 보고 있던 퍼블리는 잠시 패치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천천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저는 아빠를 찾으러 여기 왔어요.”

패치는 역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만약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면 인형인 줄 알았을 정도로 정말 모든 게 잔잔했다.

아빠한테 묻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고 천천히 대화도 하고 싶었어요, 아빠랑 같이 있으면서도 아빠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아빠가 정말 저를 사랑하는 걸까, 언젠가 나를 툭 두고 떠나버리지 않을까 막연히 불안하기만 했고 그렇다고 물어보면 정말 떠날까봐 묻기도 무서웠어요. 그런데 이렇게 그대로 있으면 더 답이 없다는 걸 겨우 깨달아서요.”
퍼블리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무엇을 물어봐야할까, 무엇을 먼저 말해야할까.

일단 아빠 과거가 궁금했어요. 다른 애들이 다 엄마에 대한 걸 말했을 때 전 딱히 뭐라 말할 게 없었어요. 다들 예전에 엄마가 어디 학교를 다녔었다, 무슨 일을 했었다, 지금도 무슨 일을 한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전 하나도 몰랐죠. 아빠가 항상 집에 있고 간혹 가다 제 숙제와 공부를 도와주고 예전 집에 대해 물어도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는 다는 거 외엔 아무것도 몰랐어요.”
늘 옆에 앉는 아니카가 아니라 앞에 앉았던 같은 반 친구가 언젠가 말했었다. 엄마가 사과를 정말 좋아하셔서 언제나 아침에 사과를 먹는다고 말했었고 또 오르골을 좋아해서 생일날 때 오르골을 선물해드렸는데 정말 좋아해서 안아줬다며 자랑스럽고 행복한 얼굴로 말했었다. 퍼블리는 그냥 가만히 듣고 있었다. 너는 어땠냐며 물었을 땐 비밀이라고 얼버무렸다. 자기도 말해줬으니 너도 말해달라고 졸라도 그냥 웃었다. 퍼블리는 아빠가 어떤 과일을 좋아하는지, 생일이 언젠지도 몰랐다. 무슨 물건을 좋아하는지도 몰랐고 어떤 말을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포옹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몰랐다. 퍼블리는 그런 거에 대해서 누군가가 물어볼 때 그냥 웃었다. 울고 싶었지만 그래도 웃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세요?”
딱히 크게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없네.”

어떤 물건을 좋아하세요? 오르골?”
책을 선호하지, 오르골은 있으면 나쁘진 않지만 굳이 갖고 싶을 정도로 좋아하진 않네.”
생일은 언제예요?”
“831일일세.”
그럼 포옹은 좋아하세요?”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크게 좋아할 것 같진 않군.”

사과 좋아해요?”
싫어하진 않네만.”
퍼블리는 잠시 묻는 걸 멈췄다. 또 뭘 물어봐야할까 고민했다. 패치는 퍼블리가 물어도 무시하거나 그냥 그렇다거나 기억이 안 난다고 얼버무리면서 넘어가지 않았다. 퍼블리가 빤히 바라봐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면서 대답했고 대답도 크게 막히는 게 없었다. 정말 딱히 생각해본 적 없다는 거 외엔 잘 대답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크지 않다고 대답했고 오르골보단 책이 더 좋았고 생일은 831일이며 포옹에 대해선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리 좋아하진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혹시나 싶어 콕 집어본 사과도 싫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매일 먹을 정도로 좋다고 하지도 않았다.

딸기는요?”
자라는 것도 드물고 먹기도 좀 힘든 거라 잘 모르겠군.”

책은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웬만한 마법서적은 다 좋아하네.”
하늘의 현자가 속했던 마법사들 중 하나였던 게 진짜예요?”
그와 같은 조를 이루긴 했지.”
그럼, 그럼....”
퍼블리는 지금 떠오르는 대로 묻고 있었다. 어쩌면 굉장히 자잘하면서도 티가 나지 않으면 모를만한 것들과 본인이 알아낸, 우리 아빠는 이런 마법사였다! 라고 자랑할 만한 엄청난 과거를 확인 차 묻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 물어보려고 했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퍼블리는 물으면서 고개를 내리고 있었다. 그 상태로 퍼블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꺼냈다.

안아...봐도 돼요?”
패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퍼블리는 그대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퍼블리는 울고 있었다. 입술을 꾹 문 채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왜 눈물이 나는지 퍼블리 자신도 몰랐다. 그냥 울고 싶었다. 퍼블리는 계속 울었다. 고개를 숙인 채.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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