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된 거구나...”
저주가 가득한 숲인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텐데도 모집 문구를 보고 온 마녀와 마법사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인 모두가 숲으로 갈 수는 없었다. 주의사항과 저주에 관해서 듣는 것은 물론, 비상사태에 대비해 훈련을 시작했다. 각각 저주에 반응하는 정도도 다르니 탐지계열로 저주에 민감한 게 아닌 말 그대로 저주 자체에 민감해 저주에 걸리기 쉬운 마녀와 마법사들은 모두 제외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컨티뉴가 방어마법을 손보기 시작했는데 목표는 저주를 막을 방어마법인 저주막이를 만들어내는 거였다. 예전부터 저주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는지 정보를 모아놨던 컨티뉴는 패치는 물론이고 여기 모인 실력 좋은 마녀와 마법사들과 함께 만들어냈는데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존재하는 저주막이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저주막이를 만들어냈다. 저주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오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먹어온 저주이니 이렇게라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저주막이가 생긴 건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마법연구를 하시는 분이니 저주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방대한 정보를 모으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비록 시작은 예상한 바가 아니었지만 이런 일이 언젠가 반드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거든.”
저주가 그대로 숲에만 있는 게 아니라 흘러나오기 시작한 이상 그 사실은 언젠가 밝혀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저주를 막아내거나 없애야했다. 아니면 저주가 흘러나오지 않더라도 나중에 저주를 먹고 자라는 약새풀을 대신할 게 생기거나 필요 없어질 때, 혹은 저주 자체가 불안해 없애기 위해서 방법들을 만들어낼 마녀나 마법사들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컨티뉴는 전자와 후자 모두 생각하고 미리 저주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왔던 거였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전혀 없었다. 지금처럼.

모든 건 때가 있기 마련이고 전혀 나와 상관이 없었어도 결국 내가 있는 쪽으로 흐르게 돼. 특히 이렇게 큰일은 누구에게나 다 흐르게 되지.”

다른 것도 아니고 나타난 세월도 까마득한 저주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누구나 다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패치는 그렇게 납득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컨티뉴는 여전히 얼굴은 안 보였지만 고개를 패치에게서 돌리지 않는 걸 보면 패치를 계속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네는 여기로 온 걸 후회하고 있나?”

아뇨.”

그럼 용사를 막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나?”

그럴 겁니다.”

그건 자네가 후회할 게 아니야. 용사의 선택이었지.”
패치는 뭐라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고 있던 퍼블리가 생각해도 용사는 확실히 눈을 떼면 어찌될지 굉장히 불안했다. 거기다가 가고 싶다는 데가 밸러니의 숲이니 불안한 건 당연했다. 하지만 불안과는 별개로 패치가 어째서 용사를 그렇게나 신경 쓰는지는 아직 모르니 완전히 이해할 순 없었다.

자네 혹시 운명이라는 걸 믿는...절대 안 믿겠군.”
운명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이 저를 쳐다보는 패치에 컨티뉴는 바로 알았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과는 다른 식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이 마녀와 마법사의 목숨이나 제 주변을 감싸고 있는 상황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걸 운명이라고들 말하지, 다른 뜻도 있지만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운명은 바로 이 뜻이고 이에 대해 자네와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

갑자기 왜 얘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걸까. 패치는 의아한 눈으로 뒤에 더 나올 말을 기다렸다.

나는 운명이라는 걸 반쯤은 믿는데 보이지 않는 엄청난 힘은 바로 살면서 이루는 관계고 그걸로 주변상황이 정해진다기 보단 변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 얘기를 듣고 패치는 갑자기 이런 얘기를 꺼낸 게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어쩌면 예전부터 자신과 이 얘기를 나누려고 기회와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습니까?”
그냥 자네의 얘기가 듣고 싶을 뿐이야.”

저 같은 경우엔 우연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치는 그렇게 딱 잘라 말했고 컨티뉴는 예상했는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고 묻진 않았다. 패치는 이 얘기에 대해 더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얼굴이 다 가려져 있는 컨티뉴는 도통 무슨 표정을 짓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의 경계심은 흔히 보이는 가시처럼 튀어나와서 다가오려는 자들을 물러나게 하는 모양이 아니야, 마치 마법사의 형상으로 쌓아올린 벽 모양이지. 손을 뻗어도 만질 수는 있지만 그 속을 만질 순 없고 틈새 없는 경계심만 만져보다가 결국 물러가게 하는 식이라 어쩌면 가시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어. 자네 같은 경우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건 아니야.”

패치는 자기 스스로도 알고 있는지 컨티뉴가 꿰뚫어보고 그대로 말하고 있는 거에 대해 크게 놀라진 않았다. 애초에 스스로 만들고 대놓고 내보이는 경계심이었으니 이렇게 알아보는 자가 있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패치는 컨티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네가 편하다면 상관은 없어. 내가 예전의 자네의 모습을 본 적이 없지만 그렇게까지 경계심이 많고 단단한 건 무언가 아주 큰일을 겪었기 때문이겠지, 원래부터 있었고 단단했을 벽이었겠지만 자네는 그 정도가 너무 커.”

나쁠 건 없습니다.”

이미 나쁘게 작용했지, 죄책감이 섞여버렸으니.”
패치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동요도 하지 않았고 불쾌함도 담지 않았고 늘 찌푸렸던 눈썹도 찌푸리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고 외우고 있는 책 내용을 듣고 있는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어보였다.

부디 그 벽으로 스스로를 짓누르지 않길 바라.”

Posted by 메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