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섣불리 말하지 못했다. 왕과 왕후가 죽은 것 자체가 엄청난 사건이고 충격적인데 정황상 그들은 살해당했고 시체를 숨기는 자들이 왕궁 마녀들이라고 한다. 다른 마법사나 마녀라면 몰라도 이 말을 꺼낸 건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하늘의 현자라고 불리고 있는 컨티뉴가 꺼낸 말이었다. 뒤늦게라도 농담이라며 평소처럼 은근하게 놀리는 분위기로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고 평소라면 분위기를 익살스럽게 웃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킬 GM도 가만히 있었다. 무거운 침묵 끝에 패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든 왕궁 마녀들이었습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건 여섯 명 정도였어.”

왕궁 마녀들이 고작 여섯 명으로 끝은 아닐 거였다. 하지만 딱 그 여섯이 범인이자 일행의 끝인지 아니면 그들이 대표적으로 오고 그 뒤에 숨어있는 자들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후자라면 숨어있는 자들이 얼마나 더 있을지 왕궁 마녀들 중 또 누구인지 알아내기 힘들 터였다.

순간 퍼블리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있는 패치의 기억이 아닌 퍼블리의 기억이 머릿속에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숲으로 들어오기 전의 정신없는 기억들이 휙휙 넘어가던 중 멀지 않은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쨍한 머리색의 아난타로 변신한 채 엄청난 비밀들을 말해준 아빠, 도둑맞은 하얀 장미와 수첩, 분열, 왕궁 마녀가 된 몇 명의 마녀들. 사실 퍼블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기억 속의 저들은 아직 알지 못했다.

왕과 왕후께서 승하하신지 얼마나 지났습니까?”
우리가 거기서 여기까지 바로 왔으니 나흘이 지났지.”
그 말로 듣고 있던 마법사와 동물들은 분명 뒤에 누가 더 있다고 거의 확신했다. 시간이 더 지나고도 둘의 죽음이 알려지지 않는다면 분명해진다. 애초에 왕궁 마녀라고 해도 고작 여섯이서 오랫동안 숨기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가기 전에 컨티뉴에게 왕의 편지를 건네준 왕궁 마녀가 있었고 편지를 받은 컨티뉴와 GM이 아직까진 직간접적인 위협이 없는 걸로 보아 모든 왕궁 마녀가 한패는 아니라는 걸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담 그 녀석들이 뭘 태웠고 그걸 찾는 게 우선이겠지, 그래서 우리를 부른 건가 영감들?”

비록 탄내가 가득하고 가봤자 이미 사라져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부탁한다.”

검은 들개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절하기엔 들은 이야기가 무척 큰데다가 이대로 묻어두기엔 그도 당연히 찝찝했기 때문이다. 얘기 끝에 두 가지 목적과 두 조가 생겼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왕과 왕후의 죽음에 대한 것과 왕궁 마녀가 태운 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컨티뉴와 검은 들개가 조가 되어 조사하기로 했고 그 근처에 혹시라도 숨어있을 왕궁 마녀들과 왕과 왕후가 저주가 흘러나온다는 의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찾기 위해 GM과 연한 갈색 들개가 조가 되어 살펴보기로 했다.

워낙 분위기가 심각해 미처 용사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는데 용사는 어느새 자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조용했구나 싶어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던 퍼블리는 무언가 생각에 빠져있는 패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패치는 늘 그랬듯이 용사 곁에 있을 거고 남은 갈색 들개도 다른 들개들을 기다리면서 용사와 함께 지낼 예정이었다. 전서구는 늘 그랬듯이 다시 우체부 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마음의 편치는 않아보였다.

두 조는 다음날 바로 준비하고 떠났는데 만약 이주가 넘도록 오지 않으면 자신들을 찾지 말고 잠시 몸을 숨기고 있으라는 말을 남기며 떠났다.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기억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었다. 꽤 길어지는 기억에 퍼블리는 그대로 앉아 무릎을 모았다가 결국 다리를 펴서 편하게 앉았다. 기억은 여느 때처럼 들개와 노는 용사와 뒷정리를 하는 패치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하루가 지나고 다시 또 비슷하게 반복되고 또 하루가 지나는 식이었다.

그러다 문득 퍼블리는 이 숲으로 오게 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뭘 먹은 적도 잠든 적도 없었다는 걸 떠올렸다. 기억이 현실의 시간과 다를 게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도 배도 고프지 않았고 졸리지 않았다. 이제야 자각한 게 좀 놀랍긴 하지만 마법사가 말한 네 몸이 지치진 않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깨달았다. 퍼블리는 제가 이렇게 둔했나 의아해하는 한편 정신이 지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다. 말 그대로 몸은 멀쩡한데 계속해서 보다가 지루해서 지친다는 걸까. 아직 퍼블리는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기와서 대부분 봤던 게 이런 반복되는 일상이었는데도.

아니 이게 뭔 일이래요?!”
일주일이 넘었을 무렵 갑자기 전서구가 들이닥쳤다. 만약 무슨 일이 없다면 컨티뉴와 GM, 들개들이 먼저 오고 전서구는 얘기 들으러 그 뒤에 오지 지금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일은 없었다. 무언가에 엄청 놀라서 연신 오매 이게 무슨 일이야, 설마 그게 그거였나라는 의미모를 말만 하고 진정 못하는 전서구에 패치가 다가가 말했다.

우선 진정부터 하게. 자네가 말하는 무슨 일이 뭔지는 우리가 모르네.”
그 말에 전서구는 급하게 제 다리에 묶여있는 종이를 부리로 쪼아 풀어 패치에게 건넸다. 펼쳐보니 비둘기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보거나 제보를 받아 소식을 담은 소식지였는데 이번 소식지엔 딱 하나의 실물 사진과 소식만 적혀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제목으로.

자라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약새풀.

소식지를 읽은 패치와 들개는 심각한 얼굴로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퍼블리는 저주가 흘러나오는 일이 알려진 게 저렇게 알려졌기 때문에 왕과 왕후의 이야기는 없었다는 걸 알아챘지만 아직은 뭔가가 미심쩍었다. 패치와 들개는 이게 정말 사실인지 전서구에게 물으려던 순간 뒤에서 익살스럽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어~ 사진은 잘 나왔는감?”

엄청난 일이다냐!!”
GM과 그 옆에 같이 갔던 들개가 돌아왔다.

할배가 찍었어요?!”
전서구의 말에 의하면 익명제보로 사진이 들어왔고 깜짝 놀란 전서구가 사진을 받아온 비둘기에게 누군지 물어봤지만 그 비둘기는 이상하게 인상착의가 기억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아하니 혼동 마법에 걸려 기억을 못하는 건가 싶어 일단 소식지부터 만들어 뿌리고 바로 여기로 날아왔다는 게 아까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제보자의 정체는 방금 여기 온 GM이라고 한다.

컨티뉴랑 깜장 들개는 일단 공주 만나러 갔지.”
메르시와 친분이 있는 흑기사단으로 변장해 몰래 찾아가서 진실을 들려주러 갔다고 했다. 퍼블리는 이미 지나갔고 벌어진 과거였지만 충격 받을 메르시가 걱정 됐다. 그리고 이상한 걸 깨달았다. 마침 시기도 이러니 왕과 왕후의 시체를 감춘 왕궁 마녀들 측에서 최선의 선택지는 먼저 저주가 흘러나오는 낌새를 눈치 챈 왕과 왕후가 비밀리에 조사하러 그들 혹은 다른 왕궁 마녀들과 함께 숲 근처로 갔다가 그만 저주에 영향을 받아버리는 바람에 승하하셨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거였다. 하지만 퍼블리도 알다시피 흘러나오는 저주에 대해서 왕과 왕후의 이야기는 전혀 적히지 않았고 모종의 이유로 죽었다고만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도.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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