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유리보다 돌이 더 단단했고 유리와 돌이 부딪힌다면 깨지는 건 유리였다. 돌을 없애기 위한 수단이라면 유리병 안에 돌을 녹일 독이나 깨질 때의 충격을 이용해 터지는 액체를 넣어놓겠지만 순수한 유리로 돌을 부수긴 힘들었다. 강화 마법을 걸어놔도 돌이랑 부딪혔을 때 유리가 멀쩡한 수준으로 남으면 매우 수준이 높은 강화 마법이었다. 하지만 마법사가 마법을 걸어놓은 이 유리병은 달랐다. 퍼블리가 던지는 힘을 달고 굉장히 빠르게 날아간 유리병이 과 부딪히자 굉음과 함께 벽이었던 돌 파편들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단순히 돌 위에 떨어뜨렸는데도 멀쩡하다 못해 돌까지 깨놓은 유리병은 이번엔 돌과 그 외의 물질들로 만든 단단한 감옥 벽을 부쉈는데도 멀쩡했다. 그렇게 유리병을 다시 주워 골고루 던지기를 몇 번 반복하자 퍼블리가 엎드리고 웅크리면 들어갈 수 있을만한 구멍이 뚫렸다. 유리병을 다시 품속에 넣은 퍼블리는 잽싸게 구멍으로 들어가 감옥을 빠져나왔다. 동시에 퍼블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유리병으로 감옥 벽을 부순 게 어이가 없는데다가 유리병을 이런 식으로 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법사한테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까 내심 궁금하기도 했고 그와 동시에 다시 유리병 속의 장미꽃잎의 존재를 의식하게 됐다. 다시 저를 둘러싸는 분위기가 고요하게 가라앉는 느낌을 받으며 넘실거리는 푸른색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은 퍼블리는 재빨리 지금의 목적지를 찾아 달렸다.

 

대체 어떻게 부순 거지?”
한편 퍼블리가 떠난 감옥엔 기사들을 이끌고 내려온 기사단장이 놀라움과 감탄을 섞어 부서진 벽을 살피고 있었다.

어리다고 방심한 게 실책이군! 짐에선 딱히 위협적인 물품이 없었는데 정작 본인이 그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당연히 엄청난 마법이 걸려있는 유리병의 존재를 모르는 그들은 퍼블리 혼자서 벽을 부술 정도의 힘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설령 진실을 안다고 해도 누가 유리병으로 감옥 벽을 부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들의 실책은 감옥 벽이 튼튼하다고 생각해 바로 밖으로 이어지는 위치에 감옥을 만들어 둔 것도 포함이었다.

당장 찾아서 끌고 와라! 그들의 첩자 답게 쉽지 않은 상대이니 어리다고 봐줄 생각하지 말고 있는 힘껏 상대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하는 건 우리가 될 거다!”
!!”
기사단장은 들고 있던 철퇴를 휘둘러 벽을 더 크게 부수고 퍼블리가 도망친 흔적을 찾아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르는 기사들과 신성지대에서 나갈 길을 봉쇄하기 위해 흩어진 기사들을 그림자 속에서 지켜보고 있던 마녀는 주머니에서 통화용 수정구를 꺼냈다. 반짝 빛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 모드양? 제 말 들리심까?”
.”
저도 모드양 목소리 들리네요. 신성지대에 갔다는 것도 예상치 못했는데 거기다가 감옥까지 들어갔다는 소식 듣고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먹고 있던 딸기마저 펄쩍 뛰어올랐지 뭡니까? 그쪽 동네가 큰데다가 여행객들도 받고 있는데 비해 타 지역 타 집단을 굉장히 경계하니 마법사도 심어놓기 힘들고 해서 어떻게 됐는지 정말 궁금했는데...이렇게 아까 연락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연락 오는 걸 보니 제가 원하는 소식이 준비되어있나 싶어 기대가 됩니다~”

수다스러운 말에 모드라고 불린 마녀는 딱 한마디 꺼냈다.

탈출했습니다.”

~ 역시나 모드양입니다! 성공적으로 마녀왕국으로 모셔다놨죠? 아무래도 밖에 있으면 살펴보기 힘들고 우리 패치도 불안해할 테니 당분간 왕국 안에 얌전히 있게 되면 좋으련만...일단 돌아갔으니 안심임다.”
그에 모드는 뒤에 한마디 덧붙였다.

벽을 부수고 탈출했습니다.”

“...?”
제가 준 이동 마법 물품을 사용하지 않고 감옥 벽을 부숴서 탈출했습니다. 지금 이곳 기사들이 그 뒤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반문하던 목소리는 뒤에 이어진 상세한 설명에 완전히 침묵에 잠겼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던 모드는 연락이 끊어진 건가 살펴봤지만 아직까지 빛나고 있는 걸 보면 끊어진 건 아니었다. 다시 기다리자 이미 기사들이 지나간 감옥 벽이 푸스스 소리를 내며 조금씩 파편을 떨어뜨리고 있을 때 수정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선 쫓아가세요. 그리고 잡히지 않게 도와주고 바로 이동마법을 써서 왕국으로 보내시고 모드양은 신성지대에서 잠시 대기하십쇼.”

 

마법사들 사이를 헤집으며 퍼블리를 찾아다니던 기사들은 지나가는 자들의 어깨를 붙잡고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혀를 차며 손을 놓고 다시 옆에서 지나가는 자를 붙잡는 걸 반복했다. 순찰 도중 죄수가 탈출했다는 연락을 받은 기사들은 도시 출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들어오거나 나가려던 여행객들은 이게 웬 봉변인가 싶어서 항의했지만 기사들이 하는 대답은 죄수가 탈출했으니 협조해 달라는 말 뿐이었다. 온 도시가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퍼블리는 용케 잡히지 않고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다. 머리에 쓴 천을 풀고 길게 내려오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던 퍼블리는 여행객들 틈새에 몸을 숨기다가 지나가는 마법사들을 붙잡아 바다가 있는 곳의 위치를 물었다. 세 번째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때 이곳에 살던 마법사였는지 바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킨 자에게 감사인사를 한 후 지나가는 자들 사이를 헤집는 기사들을 보고 골목길로 들어가 뛰어다니며 기사들을 따돌렸다. 그렇게 해가 거의 저물어 점점 어둠이 내려오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 쯤 잔잔하면서도 커다란 소리가 퍼블리의 귓가에 날아와 발걸음을 붙잡아 이끌기 시작했다. 소리가 들린 곳에 도착한 퍼블리는 크게 눈을 뜨고 그대로 멈춰섰다.

“...이게..바다구나...”
물이 잔뜩 고여 있는 거라고 보던 게 마실 물이 솟아오르던 샘뿐이었고 들어본 건 호수였다. 바다에 대해 알려준 건 단순히 땅처럼 넓다는 책에 적힌 묘사 한 줄과 그림뿐이었다. 하지만 책에 적힌 대로 넓다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퍼블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그들의 첩자가 갈 데는 그들이 있는 곳밖에 없지.”
묵직한 철퇴를 들고 오는 기사단장의 기세는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기세보다 퍼블리는 손에 들린 철퇴를 보고 질렸는데 저 하나 잡자고 저렇게 커다란 철퇴를 들고 오니 내심 기가 차기도 했다.

네놈이 강하다는 건 알겠지만 이번엔 절대 방심하지 않을 것이니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거다!”

철퇴를 퍼블리에게 겨누고 당당하게 외치는 기사단장이었지만 애초에 퍼블리는 무기도 없었고 무기가 있다고 해서 상대가 된다고 할 순 없었다. 제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아도 상대는 정화 때의 마법사이자 이곳의 기사단장이고 퍼블리는 전투는커녕 정식적인 대련도 해본 적 없는 학생이었다. 물론 마법사한테서 공격용 마법을 배우긴 배웠지만 다른 마녀나 마법사들한테 써본 적도 없었다. 힐끗 바다를 보다가 다시 앞을 본 퍼블리는 기사단장 뒤에서 기사들이 일렬로 서있다가 점점 둥글게 자신을 에워싸려고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다. 눈을 꽉 감고 있다가 무언가 결심한 건지 눈을 뜨고 기사단장을 보고 있던 퍼블리는 제 등에 있던 짐을 기사단장에게 던졌다. 제법 묵직하게 날아오는 짐들에 기사단장이 철퇴를 휘둘러 저 멀리 날려 보내는 데 신경을 빼앗기자 퍼블리는 그 틈을 타 뒤돌아 품속의 유리병을 꼭 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퍼블리는 바다가 얼마나 깊었는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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