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네요, 퍼블리 학생.”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언제나 동글동글한 인상으로 인사를 건넨 아난타에게 마저 인사를 건넸지만 퍼블리의 표정이 영 좋진 않았는지 인사를 받은 아난타가 조금 난감한 웃음을 짓는다. 그에 마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다.
“제가 신성지대 마법사가 아니라서 충격적인 건가요?”
“네.”
“퍼블리 학생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속이고 학교랑 왕국도 속여서요?”
“네.”
익숙한 찻잎 통에서 찻잎을 꺼내고 뜨거운 물에 넣던 아난타는 무릎에 올린 손이 옷자락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리고 있자 쓴웃음을 지으며 묻는다.
“정말로요?”
아무런 대답 없이 고요함이 계속 됐다. 손의 떨림을 멈추자 열린 입에서 이번엔 목소리가 불안정한 숨과 함께 떨리며 나온다.
“선생님...전 저희 아빠에 대해서 말한 건 아니카를 제외하면 선생님밖에 없어요. 게다가 선생님은 아빠 이름은 모르지만 아빠 얼굴은 아는 것 같았어요. 축제 때...아빠가 축제에 나왔을 때 그 때 마주쳤잖아요...그리고 아빠는 축제 마지막 날에 사라졌고 선생님은 좀 더 계시다가 가셨지만..그래도..근데...그...”
끝으로 갈수록 말들이 뭉그러지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나오지만 아난타는 아무런 말없이 그저 서있었다.
“선생님...혹시 아빠랑 사라진 게 선생님이랑 상관있어요?”
고개를 든 퍼블리의 얼굴은 눈물에 잠겨있었고 동시에 알 수 없는 기대가 담겨있어 더욱 무너질 것만 같았다.
“선생님이 아빠를 데려간 거예요?”
아난타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처럼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일어났다, 일어났어!”
“형님! 일어났어요!”
눈을 뜬 퍼블리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요란스럽게 외쳐대는 소리에 묵직하게 쿵쿵거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이봐 정신이 들었어?”
검은 갑옷을 입고 철퇴를 들고 쫓아오던 기사단장 만큼 덩치가 큰 마법사였다. 얼떨떨한 눈으로 급하게 몸을 일으켜 앉은 퍼블리는 그의 뒤에 서있는 자들을 보고 흠칫 놀라 어깨를 떨었지만 최대한 뒤에 따라 붙는 감정들을 눌렀다. 그들의 살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썩어있었다. 거멓고 퍼런 살점 사이로 하얀 뼈도 보일 정도였다. 애써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들을 바라본 퍼블리는 감옥에 있었을 때 저를 감시하러 왔던 기사가 한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저...혹시 여러분이 흑기사단이세요?”
“음? 우리를 알고 있나본데?”
“요기 브레이니가 썼던 책도 그 때 같이 건졌지요!”
“다 젖어부렀네!!”
아마 기사단장이 철퇴로 짐들을 날려버렸을 때 우연히 퍼블리와 함께 바닷가로 빠졌는지 뒤에 있던 자들 중 팔이 한쪽이 없는 자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책을 들고 외친다. 다시 시선이 집중되자 머쓱한 얼굴로 손을 들던 퍼블리는 아직까지 제 손에 쥐어진 유리병을 깨달았다. 얼마나 꽉 쥐고 있었는지 정신을 잃은 동안에도 놓치지 않고 쥐느라 손에 자국이 남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손이 뻐근해진 느낌에 퍼블리는 잽싸게 유리병을 제 주머니로 넣었다.
“그보다 마녀가 저 책을 들고 여기까진 어떻게 온 거야?”
“에이 형님 맨 처음에 바다에 둥둥 떠 있는 거 봤을 때 웬 마법사가 바다에 빠졌다고 했으면서!”
“건졌을 때 겨우 마녀인 거 알았으면서!”
“이놈들아 너희는 처음에 물건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고 했잖냐!”
소란스러우면서도 활기차게 소리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차가운 느낌에 부르르 떨던 퍼블리는 제 옷과 머리카락을 살펴봤는데 물기가 조금 남아있어서 그렇구나 생각하고 밑 부분이 살짝 축축해 목덜미에 달라붙는 머리카락들을 한데 모아 넘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전 여러분을 찾으러 온 거예요!”
“응? 우리를 찾으러?”
“그럼 일단 손님이지?”
“일단은 무슨! 우리 배에 오른 순간부터 손님이다!”
퍼블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달려가 문을 열고는
“손님이 일어났다! 파티 시간이다!”
그렇게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들 사이에 앉아있었다. 학교 식당보다 더 요란하게 생선을 먹고 술을 마시는 그들은 모두 저주 때문에 겉모습은 시체나 다름없었지만 오히려 신성 측의 기사들보다 더 편안하고 친근감이 느껴졌다. 애초에 신성 측은 친근감을 느끼기도 전에 감옥에 던져 넣었으니 이들의 자유롭게 대하는 반응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퍼블리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툭툭 쳤다.
“와아...”
“안...녕...”
지금까지 봤던 마녀와 마법사들 중에서 눈앞의 마법사만큼 덩치가 큰 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 압도적인 크기에 인사도 건넬 생각 않고 신기하게 올려다보는 퍼블리를 보던 그는 마르긴 말랐지만 물이 묻어 쭈글쭈글해진 책을 가리키며 입을 연다.
“내가...쓴..책....”
“네?”
“우리..들...이름...쓴...책....”
바로 책을 쓴 장본인이었다. 그보다 책에 적혀있었던 게 이름이었다는 사실에 퍼블리는 조금 허탈해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아난타가 왜 그 책을 추천해줬는지 알게 됐지만 이번엔 그걸 어떻게 알아본 건지 궁금해졌다. 책을 다시 펼쳐본 퍼블리가 젖었던 부분을 넘기고 멀쩡한 부분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어떻게 읽어야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브레이니는 눈이 안 보여. 그래서 느낄 수 있는 마력의 흐름을 이용해서 이름을 적었는데 흐름이다보니까 그냥 읽으려고 하면 읽을 수 없어.”
어느새 다가와 그냥 읽을 수는 없다는 걸 알려주는 건 이곳의 대표이자 검은 갑옷을 입은 마법사였다. 본인이 소개하기로는 이름이 흑기사라서 이들의 단체 이름을 흑기사단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보다 아까 우리를 찾으러 왔다고 했지? 우리 모습을 보고 처음 빼고는 놀라지 않으려는 걸 보니 저주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왕궁 마녀? 왕궁 마녀야?”
“왕궁 마녀라면 안 왔지! 우리가 메르시에 대해 물어보는 걸 엄청 경계하니까 바다 근처는 얼씬도 안하잖아!”
메르시라면 마녀왕국 공주님의 이름이었다. 퍼블리는 이들이 왕국의 공주님과 교류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교류를 뛰어넘어 이름까지 서슴없이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 같은데 어째서 교류라는 말로 남았을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니었다.
“...마법사를 찾고 있어요.”
퍼블리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자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한순간에 가라앉아 사라졌다. 흑기사를 바라보며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던 퍼블리가 숨을 크게 쉰 후 이름을 꺼낸다.
“용사라는 분에 대해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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