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이지...누가 보호자를 넘어서 아빠 엄마 사이 아니랄까봐 이렇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점을 닮아버리면 어떡합니까.”
속으로도 많이 앓는 듯한 말과 그 뒤를 잇는 한숨이 땅을 꺼뜨릴 만큼 매우 무겁게 내려앉는다. 늘 짓던 웃음까지 내려놓으며 눈썹을 찌푸리고 천장을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눈썹 바로 밑에서부터 얼굴을 쓸어내린다. 바로 방금 전 들어온 보고에 치트는 듣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모드양? 다시 말해주겠어요?”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그 때 상황을 자세히...”
“철퇴의 프라이드한테 짐을 던지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상세한 설명치곤 지나치게 간결했지만 솔직히 이 말 외에는 딱히 나올 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드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보고를 듣는 치트가 직접 봤어도,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봐도 기사단장에게 짐을 던지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퍼블리를 봤을 터였다. 퍼블리는 바다가 얼마나 깊고 위험한지 모르고 치트와 모드는 그걸 모를 테니 둘의 눈엔 그저 자살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상황이었고 대체 무슨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대로 바다에 맨 몸으로 뛰어들었는지 당사자에게 묻지 않는 이상 영원히 모를 문제였다. 사실 치트는 딱히 퍼블리를 건들 생각은 없었지만 이번에 왕국에서 나가는 걸 보고 모드를 시켜 왕국으로 보낸 후 미성년자 보호 마법을 걸고 어느 정도 자신의 상황이 정리가 되고 여유가 생기는 때가 마침 퍼블리가 성인이 되는 때랑 맞게 됐으니 왕국에서 얌전히 살게 한 후 데려올 생각이었다. 처음에 감옥에 갇혔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도 당황했었고 상황을 듣고 과연 신성지대라며 넘길 수 있었지만 바다에 스스로 빠진 건 과연이라고 감탄하고 넘길만한 게 못 됐다. 무엇보다
“...우리 패치한테 뭐라 말해야 함까...”
마법사가 듣는다면 단순히 당황이나 어이없다는 반응에서 그칠 리가 없었다. 처음 깨어났을 때보다 더 심각해질 미래가 바로 코앞에 와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본인의 죽음까지 불사하며 난리를 피울 게 뻔했다. 한숨이 끊임없이 나올 기세라 입을 꾹 다문 치트는 모드에게 바다 주위를 계속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죽었다고 단정하고 싶진 않았으니 그저 퍼블리가 운 좋게 뭍으로 밀려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으로선 그쪽의 깊은 바다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퍼블리는 지금 흑기사단의 배에 안전하게 있었지만 그가 알 턱이 없었다.
“아아...지금 당장 보고 싶지만 지금 보게 되면 저는 표정관리도 못할 검다...당신은 분명히 퍼블리에 대해 물어볼 테고, 아니면 그 때 못 던졌던 의자 먼저 던질 수도 있겠네요.”
감시하는 영상구를 달고 싶었지만 지금 마법사를 가둬두고 있는 집은 함부로 마법을 쓸 수 없었다. 그만큼 정교하게 만든 집이자 감옥이었고 다시는 할 게 못 될 거였다. 그 집 외엔 마법사를 가둘 수 있는 건 없고 마법사가 아니고선 누구도 그 집에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치트가 그 집에 마법사를 두고선 오래 머물지 않는 게 바로 그 이유였다. 대신 자주 찾아가는 편이었지만 오래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그 집을 나오게 하는 즉시 모드가 곁에 없는 치트는 죽은 목숨이 될 게 눈에 훤했다.
“왜 또 한숨을 찍찍 뱉냐?”
“한숨을 찍찍 뱉는 건 또 뭡니까? 일은 제대로 하고 온 검까? 아니 선생님 일은 제대로 하고 왔겠죠. 퍼블리가 신성지대로 갔던 건 당신을 찾으러 간 게 확실할 테니까. 참 수업을 잘 가르쳤나 봄다?”
그에 아난타가 와락 눈썹을 찌푸리며 그를 쏘아본다.
“거 시X 내가 기억 못하는 거 잡고 시비터냐? 애초에 네놈 새끼가 날 재우고 보낸 거잖냐? 그렇게 따질 거면 마침 왕국에서 살고 있던 네 충실한 부하새끼한테 선생질 시켰어야지. 난 처음부터 싫다고 했는데 다짜고짜 그 XX같던 안경 씌운 새끼가...”
이대로 앞에 뒀다간 계속해서 욕을 뱉을 게 뻔한 아난타를 밖으로 내쫓은 치트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저주가 괜히 저주가 아니라고 증명하는지 원래의 인격과는 전혀 딴판인 저 인격은 내놓는 말 전부 천박한 욕들뿐이니 대화를 나누는 게 손해였다. 하지만 일은 정말 손색없을 정도로 잘하는 편이니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은 치트는 원래의 아난타와 대화했던 때를 떠올렸다. 쨍하게 붉었던 머리카락이 검게 변하고 누구 하나 심심해서 물어뜯을 것 같던 눈이 상대를 깊이 꿰뚫고 배려하는 눈으로 변했을 땐 완전히 다른 마법사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대화를 나눴을 때 성격은 비교할 필요도 없었다. 마음 같아선 원래 모습으로 두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아난타가 지닌 힘과 경험은 물론이고 통찰력의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그나마 저주인 쪽은 파악하고 파고들어 공격하려고 하지만 단순해서 알기 쉬웠다. 거래를 했을 때 고맙다고 하며 저를 꿰뚫어 보던 눈을 떠올리며 치트는 웃음을 머금은 채 턱을 괴고 수정구를 툭툭 치며 모드의 연락을 기다렸다.
“그 X같은 새끼는 아주 나를 지 봉으로 알아!!”
다채롭게 쏟아지는 욕들에 지나가던 자들은 안 봐도 누군지 안다는 얼굴로 욕이 들려오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걷기 시작했다. 지금 곁에 얼쩡거렸다가 걸리면 욕을 집중적으로 받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걸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여하간 저 얼굴 미끈한 새끼는 영 마음에 안 들어!!!”
왜 그렇게 짜증이 났는지는 거의 대부분 두 가지 이유였다. 하나는 하던 일이 꼬였을 때고 다른 하나는 수장인 치트를 봤을 때였다. 후자는 쌍방으로 싫어하는 상황이지만 치트는 금방 감정을 끊어내고 제 일에 집중했고 아난타는 계속 욕하면서 일을 하는 게 차이였다. 그렇게 제 주위를 피해 주변에 있는 자가 점점 없어졌을 때 쯤 아난타의 욕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완전히 혼자가 되었을 쯤 그는 걷던 발걸음에 속도를 더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뛰기 시작했다. 꽤나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에 지나가던 마법사 중 하나가 붙잡아서 어디 그렇게 급하게 가냐고 물을 법도 하지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마음껏 뛸 수 있었다. 그가 가고 있는 곳 자체가 숨겨진 데다보니 가는 길목에도 당연하게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그곳은 아무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아난타는 살짝 웃으며 입을 연다.
“미안합니다. 늦었죠?”
어느새 쨍했던 머리카락도 검게 변해 있었다. 도착한 이곳엔 늘 둘만 있었다. 창문 너머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주를 누르다니 대단하군.”
“그동안은 잠들어 있었지만 저주로부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저는 저보다 어리고 경험도 적으니까요 그리고...”
말하면서 웃는 지금의 아난타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환했다.
“저는 비싼 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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