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짧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그에 아난타가 멋쩍은 얼굴로 뺨을 긁적이다가 뒤에 나온 대답에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녀석이 꽤나 비싼 값에 당신 손을 빌렸나보군. 아니면...”
창문에 기대면서 컵을 툭툭 두드리던 마법사가 한마디 덧붙인다.
“값진 것을 넘겨줬거나.”
마법사의 말이 끝난 뒤에도 아난타는 그저 미소만 머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한 모금 물을 넘기고는 다시 질문을 꺼낸다.
“퍼블리가 당신에게 무엇을 물어봤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알고 계셨나요?”
“그 애가 왕국을 나와서 신성지대로 갈만한 이유가 당신을 찾아가는 거 외엔 없으니까.”
마법사의 말들을 듣고 있는 동안 자연스럽게 하늘을 조금 머금은 구름 같은 학생이 떠오른다. 실수로 사고를 일으킬 뻔한 점심시간 때부터 보게 됐고 한 번 눈에 들어온 이후로도 굉장히 눈에 많이 들어오고 기억에 깊이 박힌 학생이었다. 굉장히 밝고 적극적인데다 상당한 호감을 주는 유형이었는데 이러한 모습이 가장 두드러지는 게 주로 몸으로 많이 움직일 때인지 신체를 단련하는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들마다 칭찬 일색이었다. 여기까지 봤을 땐 확실히 다른 학생들보다 눈에 많이 들어올 학생이구나라고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널리 있는 학생들에 비해 적을 뿐이지 반마다 한두 명씩 있는 유형이었기에 학교에 있을 때만 익숙하지 기억에 깊이 박힐 정도는 아니었다. 퍼블리가 아난타의 기억에 깊이 박히게 된 이유는 그런 모습들과는 별개로 자신에게 무언가에 대해 물어볼 때 굉장히 머뭇거리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 무언가는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사에 관한 질문이었지만 그 마법사가 누군지 잘 알게 되었을 때 퍼블리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상반된 모습과 마법사에 관한 질문, 친구와 하던 대화를 듣고 도서번호를 건네주게 된 이후로 아난타는 퍼블리를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됐다. 퍼블리는 다른 학생들과 여느 반에 있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지만 곁에 있는 건 아니카 뿐이었다.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가 많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렇다고 혼자 고립되는 거냐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하게 누구를 더 친하게 여기고 누구에게 더 기대고 있는지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둘이 다른 학생들보다 서로가 더 친한 이유는 그저 둘만의 이야기니 거기까지만 알 수 있었고 그 이상으로 더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다만 퍼블리가 물어봤던 마법사가 정화 때의 마법사였으니 아니카도 알아도 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물론 퍼블리와 아니카가 떨어지는 때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마주칠 때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고 모든 일이 벌어지고 마무리됐던 축제날...
“퍼블리 학생이 무엇을 물어봤는지 말할 순 있지만...직접 듣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법사에 대해 물어보던 퍼블리와 퍼블리가 물어보던 걸 묻는 마법사.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은 이미 다 알고 있고 당사자인 둘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예전에 직접 만났을 때가 숲으로 들어가기 일주일 전쯤이었죠? 용사군은 우리를 보자마자 처음 보는 마법사들이라면서 달려왔었고 우리 어깨에 뭉친 힘을 좀 빼줬지요. 용사군을 데리러온 당신과도 몇 번 얼굴을 마주치긴 했었지만 바로 앞에 커다란 전쟁터를 두고 있었으니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도 못했죠. 그래서 이름도 몰랐었지요.”
머뭇거리면서도 패치라는 마법사를 아느냐고 물어봤던 굉장히 절박한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이름은 몰랐지만 얼굴은 모를 수가 없었던 마법사들이었다. 많은 마법사들이 있었지만 그들만큼 잊기 힘든 얼굴도 없을 터였다. 아난타는 미안함이 담긴 쓴웃음을 지었다.
“이 참에 제대로 통성명을 하죠. 전 아난타예요.”
“패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여유는 가지는 게 좋아요.”
“이미 당신을 알고 있고 당신도 나를 알고 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 게다가 지금은 여유를 가질 상황은 아니니 말일세.”
그에 아난타는 창문에 기대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그 때 가지지 못했던 여유가 미래에서 엄청나게 꼬여올 줄은 몰랐지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아난타는 다시 창문에서 몸을 떼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저에 대해 좀 더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제가 한 가지 부탁을 할 생각이거든요. 저에 대해 잘 아는 자만 할 수 있는 부탁이에요.”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아난타는 개의치 않고 손가락으로 창문을 여러 번 툭툭 두드리며 잔잔하게 부탁을 꺼낸다.
“잠꾸러기들을 깨워달라는 부탁이에요.”
그에 마법사가 입꼬리를 길게 올리며 날카로운 웃음을 지었다.
“나쁘지 않은 부탁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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