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조용해진 주위에 퍼블리는 당황한 채로 굳어있었다.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찬 눈빛들이 퍼블리에게, 정확히는 퍼블리가 들고 있는 판에 쏠리자 얼음꽃밭 위에 선 다람쥐가 된 기분을 느낀 퍼블리는 화제를 돌리고자 입을 열었는데
“저..그럼...”
“아이고 이 화상아!!!”
쿵! 무언가 무거운 게 그들 사이로 떨어졌다. 배가 흔들리는 것과 동시에 먼지들이 뿌옇게 솟아오르다가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퍼블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들어오는 먼지에 콜록거리며 연신 기침을 하다가 갑자기 머리 위로 들이닥친 충격에 휘청거리지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네가 잘 들어갔나 싶어 한 번 근처 빙 둘러 날아댕기다가 바다 위에서 날아댕기는 갈매기들이 웬 어린 녀석이 겁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여기서 끼룩! 저기서 끼룩! 온 동네서 끼룩끼룩 울어대질 않나! 사과 씹으면서 아이고 어린 녀석이 으른들 말 안 듣고 빠졌구나 했는데 소식 비둘기가 와서 웬 하늘담은 흰머리 마녀가 흑기사단 배에 타고 있단 얘기 듣고 사과가 흩날리고 아이고가 곡소리로 변했다 이 녀석아!!”
목소리는 퍼블리에게 매우 익숙한 목소리였다. 게다가 머리를 아프게 연신 두드리는 것도 손을 말아 쥔 주먹도 아니었다. 밀어내기 위해 손을 들어 올리자 손에 닿는 건 말랑한 살이 아닌 부드럽고 간지러운 깃털이었다. 퍼블리는 머리를 숙인 채 계속해서 밀어내며 소리쳤다.
“알았어! 진정해!”
“알았어는 뭘 알았어고! 진정하긴 뭘 진정해! 머리를 열심히 두드려놔야 다음부턴 아~ 이러면 머리 아픈 수준으로 안 끝나고 그냥 깩하니 죽겠구나~ 깨닫겠지!!”
사실 전서구는 사과를 씹으며 갈매기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 쎄한 느낌이 스쳐지나갔지만 애써 내리 눌렀었다. 호기심 많은 어린 애들은 널리고 널렸고 밖에서 온 여행자는 신성지대에서 꽤 멀리 떨어져서 그대로 쭉 가보지 않는 이상 바다가 있는 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신성 측은 신성지대 뿐만 아니라 그 근처 땅에서 바다로 갈 수 있는 길목을 모두 막아놨기 때문이다. 그 부분이 나름대로 안심을 준다는 게 참 묘했지만 어찌됐든 퍼블리가 바다에 대해 알 수 있을 방법은 없었다. 하지만
“전서구님! 전서구님!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은 마녀가 흑기사단의 배에 있었어요!”
“어...뭐..?”
“머리카락 색이 굉장히 예뻤어요! 하얀 눈이 하늘을 담은 것처럼 정말 예뻤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전서구는 자리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나..나도 생각이...!”
“생각 있긴 개뿔이!! 생각 있는 녀석은 바다에 안 뛰어들지 인마!!! 그리고 지금 당장은 이렇게 살았으니 망정이지 그 다음은 어쩌고?! 어떻게 바다에서 빠져나올려고?! 또 바다에 뛰어들려고?!!”
“방법 있...아야야야야!!!”
“깊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아예 생각하지 말고 행동도 하지 마!!!”
그렇게 분노의 부리 찍기 공격은 열 번 정도 더 이어지다가 전서구가 지쳐 떨어져 헉헉 댈 때 끝이 났다. 퍼블리는 욱씬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전서구를 올려다봤다.
“돌아갈 방법 있어.”
“헉...안 돼. 안 헉...믿어. 그냥 내가 큰맘 먹고 태워...하이고 힘들어라...안 되겠다. 나 잠깐 쉰다...”
그렇게 말하고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향하던 배는 급하게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점점 느려지더니 어느 순간 도릉도릉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안정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멀뚱히 구경하던 흑기사단들은 전서구에게 다가가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대거나 깃털을 잡고 흔들어보지만 꽤나 피곤했는지 몇 번 뒤척거리는 거 외엔 일어날 기미는 안 보였다.
“전서구랑도 아는 사이였어?”
“신성지대 가는 길을 가르쳐준 게 전서구였어요.”
이렇게 넓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며 찾아다닌 걸 보면 전서구가 퍼블리 걱정을 많이 했다는 얘기였다. 미안한 마음에 전서구의 배를 툭툭 두드리자 꿈속에서도 부리 공격을 하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던 브레이니가 자리를 뜨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흑기사는 전서구와 퍼블리를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전서구 저 친구 덕분에 우리가 대충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고 있지. 소식 비둘기가 이 먼 바다까지 오는 것도 전서구가 보내는 거야. 갈매기들도 전서구한테 부탁받아서 우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왜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 거예요? 신성 기사한테 들었는데 본인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아서요.”
묵묵히 퍼블리의 말을 듣고 있던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언젠가 전서구에게 들었던 말.
“왜긴. 그놈의 ‘정치 ’때문이지!”
정치.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 단어였다. 그들이 이렇게 바다로 내몰린 것도 메르시와 연락할 수 없게 된 것도 전부 상황 때문이었다. 이 상황을 표현하는 단어는 저 단어밖에 없었다. 하지만
“글쎄. 우리도 모르겠다.”
그게 이유가 될 순 없었다. 흑기사는 퍼블리에게 정치 때문이라는 단어 대신 모른다는 대답을 했고 어떤 대답을 듣던 간에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퍼블리의 몫이었다. 대답을 들은 퍼블리는 어쩐지 멍한 얼굴로 흑기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흑기사는 팔을 뒤로 뻗어 바닥을 짚은 채 뒤로 몸을 기대며 말을 덧붙였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 세상엔 자기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크게 보고 싶어도 모르는 어른들 천지야! 우리가 아는 거라곤 눈 떠보니 이런 모습이었고 일에 휘말려서 어찌어찌 해서 바다로 오게 됐다는 거야!”
퍼블리는 흑기사의 말을 듣고 연신 모른다 모른다라며 중얼거렸다. 그런 퍼블리를 보고 손을 들었던 흑기사는 어쩐지 깊이 무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모습에 도로 손을 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퍼블리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려 흑기사와 눈을 마주했다.
“...어른들이라고 해도 모르는 게 있어요?”
“그럼! 오히려 애들보다 모르는 게 많을 걸? 그건 까먹은 거려나? 어쨌든 모든 질문에 대답은 할 수 있지만 모르는 건 모르는 거니까 모른다고 대답하는 거지.”
“그러면...”
한순간 멈춘 퍼블리가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고는 힘겹게 입을 뗀다.
“물어보는 거, 그 자체는...뭐든 간에 물어보는 건 상관없는 거죠...?”
마치 허락을 구하듯이 머뭇거리며 묻는 퍼블리의 말에 흑기사는 한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쥐며 유일하게 접지 않은 엄지손가락을 옆으로 튕겼다.
“마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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