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을 들은 퍼블리가 아무런 말없이 털썩 주저앉자 전서구를 콕콕 찌르고 있던 기사들은 밥을 안 먹어서 기운이 없는 거라 생각했는지 손질하고 구운 생선과 음료수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그에 거절하려던 퍼블리는 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얌전히 받아들었다. 슬쩍 둘러보니 전서구에게 신경이 쏠린 기사들 외에 다른 기사들은 모두 난간으로 가 물고기를 낚아 올리거나 전서구처럼 갑판 위에 드러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거나 서로 작은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톡톡 두드리거나 던지면서 놀고 있었다. 제각기 따로 노는 그들의 모습은 꽤나 자유로워보였다. 마지막 생선 한 조각을 음료수와 함께 넘긴 퍼블리는 돌멩이를 던지며 놀고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건 무슨 놀이에요?”
홀짝 맞추기!”
떨어지는 돌멩이 잡아채서 성공한 게 홀인지 짝인지 맞추기!”
손에서 놓쳐서 떨어지는 돌멩이 수로 손 안에 든 게 홀인지 짝인지는 훤히 보였다. 그럼에도 놀이를 즐기는 자들은 돌멩이를 쥐는 손에만 집중하고 홀과 짝을 외쳐대며 맞히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는 걸 계속 반복했다. 그 때마다 즐거운지 공터로 뛰어나온 아이들처럼 까르륵 웃는 모습들이 어쩌면 썩어가는 모습을 누를 정도로 순수하고 보기 좋아서 이렇게 서슴없이 눈을 마주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퍼블리는 곧이어 저도 끼기 시작했다.

...어으..뭐여...?”

일어났다!”

일어났다 일어났어!”
해가 가장 높이 올라갔다가 조금 아래로 다시 내려왔을 때 쯤 전서구가 일어났는지 날개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날개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익숙해졌을 때 쯤 날개를 거둔 전서구가 저를 내려다보는 흑기사단들에 흠칫 놀라 몸을 일으켰다.

뭐여?! 여기 어디...내가 찾아왔었지 참...”
열심히 부리로 머리를 쪼아대더니!”

홀랑 까먹었네!”
까먹었대, 까먹었대!”
아이고 정신 사나워, 요 문드러진 놈들아!!”
곁에 있던 자들뿐만 아니라 놀고 있거나 낚시를 하고 있던 자들도 우르르 몰려와 한마디씩 말을 꺼내니 금방 시끄러워졌고 방금 막 자고 일어난 와중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니 전서구는 졸린 눈을 부릅뜨며 정신없다고 소리치기 시작했지만 특유의 입담은 어디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튀어나왔고 그에 더 신이 났는지 한마디가 두세마디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는 어째 올 때 마다 조용해지는 법이 없어!”

그게 우리들의 매력이지!”
매력이 시끄러워서 다 도망갔다 요놈들아!!”
홀짝 맞추기 놀이에 집중하던 퍼블리가 멀리서도 귀에 쏙쏙 들어오는 전서구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흑기사단들에게 시달려있는 전서구에게 다가가려다가 뒤에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손길에 돌아보니

으고...”

...브레이니씨?”
밤에 비해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던 브레이니가 얌전히 서있었다. 손에는 상당히 손때가 많이 묻은 낡은 책이 하나 들려있었는데 모습이 꽤나 익숙했다. 퍼블리가 책에 대해 뭐라 묻기도 전에 브레이니가 책을 건넸다.

이건...”
우리 이름...내가 직접...쓴 거...”
이걸 왜 저에게...”
얼떨결에 받아든 퍼블리가 의아함을 담아 올려다보자 느릿한 대답이 들려온다.

우리...지금...갈 수 없다...”

저 말은 마녀왕국은 물론 땅을 밟을 수도 없는 본인들의 처지를 얘기하는 것이리라.

그러니...축제 때...메르시...보게 된다면...전해달라...”
그 말에 퍼블리는 작년의 축제를 떠올렸다. 잔뜩 빵을 얻어온 첫째 날, 마법사와 함께 축제를 즐겼던 둘째 날, 그리고...거기까지 생각한 퍼블리는 반사적으로 제 손목에 걸린 팔찌를 쓰다듬었다. 장식으로 달린 돌조각의 얼음꽃무늬가 차갑게 정신을 끌어올리는 것 같았다. 축제 때 메르시를 보게 된다면 전해달라는 그 말에 퍼블리는 입을 달싹이다가 길게 미소를 지었다.

. 꼭 전해줄게요!”
늘 손에 소중히 쥐어왔을 텐데 자그마한 희망을 걸며 넘겨주는 자에게 차마 축제 때 공주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말할 순 없었다.

 

어여 뛰어와라 요 행동파 사고뭉치야!!”

재촉하는 전서구의 외침에 천천히 걸어오던 퍼블리가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퍼뜩 뛰어오라는 재촉이 덧붙여진 후에야 뛰어오는 모습이 얄미웠는지 자기 전에도 많이 두드렸던 머리를 또다시 부리로 툭툭 두드린 전서구가 한숨을 쉬며 몸을 낮췄다.

“...그 아빠에 그 애로구만.”

아하하...”

웃지마! 내가 다시는 등에 마녀고 마법사고 안 태운다고 날 타고 다니던 녀석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는데!!”
원통해하던 말던 퍼블리를 태우기로 결정한 건 전서구 본인이었다. 퍼블리의 주머니 속에 있는 이동 마법 물품의 존재는 끝까지 전서구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고녀석 안전성은 보장하니까 떨어질 걱정 마라!”

쌰랍!!!”

그 외침과 동시에 전서구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보다 큰 흑기사와 어느 순간 눈높이가 같아지더니 이제는 내려다볼 정도로 높이 올라갔다.

잘 가라!”

나중에 또 놀러와!”
홀짝 말고 다른 놀이도 많으니 나중에 놀러 올 때 같이 해!”
이제는 저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흑기사단들이 전부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왔다. 퍼블리는 그들의 인사에 맞춰 손을 흔들었고 품에 안은 책을 꼭 쥐었다. 전서구는 큰 몸집에 비해 상당히 빠르게 날았고 그들의 얼굴은 물론 배까지 점점 작아졌다. 그렇게 배가 완전히 점으로 보일 때 쯤 퍼블리는 많은 걸 받게 된 배를 뒤로하고 날아오는 바람을 맞이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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