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떻게 하면 바다에 빠질 생각을 한 거야? 심지어 모래사장 있는 바닷가도 아니고 항구 역할 하는 덴데 장난 아니게 깊을 거 눈으로 봐도 알 거 아냐?!”
바로 앞에서 에워싸는 건 물론이고 철퇴를 들고 위협을 하는데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제대로 볼 새도 없었단 말야...”
그래서 바로 뒤에 바다로 뛰어들고? 아이고~ 아무리 책으로만 접했다고 하지만 바다가 을매나 위험한데 바로 뛰어들어!! 이제 바다 보러오는 마녀들 마다 다 뛰어들겠네!!”
그 뒤로 전서구는 장미부터 그러더니 왕국에 죄다 묶어놓으려는 집착이 무섭다며 풀어줘야 한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바람과 잔소리에 고개를 깃털 사이로 묻어두던 퍼블리가 묶어놓으려는 집착이라는 말에 고개를 조금 들었다.

묶어놓으려는 집착이라니?”
아기들은 전부 장미에서 태어나자마자 성인이 되기 전까진 보호자의 동반이나 허락이 없으면 왕국 밖으로 못 나가는 마법을 받게 되니까! 그러고 보니 너 그 마법 어떻게 됐어?! 너 아직 성인 안 됐잖아!!”
난 그 마법도 오늘 처음 알았어! 일단 그건 아빠가 알고 있을 테니 아빠를 찾아서 물어보면 될 일이니까 왕국에서 묶어놓으려는 집착에 대해서 말해줘!”
전서구의 화려한 입담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흥미진진한 얘기처럼 화려하게 들려왔지만 내용은 화려하다기 보단 익살스러운 말투로 들어도 묘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사실 마녀왕국은 지금처럼 굉장히 큰 영역을 차지하지도 않았고 도시들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는 건 예상범위였다. 뭐든 간에 시작부터 크게 자리 잡을 순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점점 시간과 그 안에서의 행동과 흐름이 크기를 불려준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왕국은 꽤나 기묘한 형태였다.

물론 새로 들어오는 건 기존에 있던 것과 완전히 딴판이지만 그런 것들이 찰흙처럼 뭉치고 뭉쳐서 다양한 색으로 섞여야하는데 지금 왕국은 완전 따로따로 논다 이거지.”
따로따로 논다면...?”

제각각의 조각 케이크를 한데 나란히 모아놓는다고 생각해봐. 그게 지금 왕국의 모습이야. 일단 네가 실감 못하는 이유는...너 왕국 내의 다른 도시로 가본 적 없지?”
전서구의 말대로 퍼블리는 제가 살고 있던 데를 제외한 다른 도시로 가본 적이 없었다. 마법사는 다른 도시는 물론 제가 살고 있던 데에서도 돌아다니지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다른 데로 가자고 했어도 퍼블리 본인 스스로가 거부했을 테였다. 왕국 내에서 살고 있던 곳에서 아니카를 다시 만난 이후로 퍼블리는 다른 도시를 방문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 양반 장난 아니게 빡빡하고 철저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은둔생활 한 번 참 대단하네! 설마 마녀왕국에서 살고 있는 것도 모자라 다른 데 가볼 생각도 안 하다니! 어쨌든 말야...지금 왕국은 그렇게 제각각인 조각 케이크들을 모아놓고 학교와 왕궁 마녀를 통해 장미정원으로 가서 아이를 받거나 왕궁의 도움이 필요한 기타등등의 일로 실처럼 꿰어놓은 후에 마녀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천을 덮어놓은 상태야.”
마녀라고 해도 그들이 사는 방식은 꽤나 차이가 있었다. 비슷한 자들을 한 데 모아 도시라는 구역을 만들고 그 도시를 또 모아 기존의 왕국보다 훨씬 더 큰 왕국을 만들었다. 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욕구 혹은 편리함을 충족시켜주는 것들을 누구보다 먼저 전부 차지한 후 꼭 쥔 채 왕궁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주면서 그들이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떠나지 못한 이들 위로 느끼지 못할 얇고 거대한 천을 씌웠다. 그 천의 이름은 전서구가 말했듯이 마녀왕국이다.

그게 먹이 있을 밭처럼 누르스름한 거나 녹색 나무 사이의 빨간 것들이나 비가 오나 안 오나 하늘이 시커멓게 회색인지 아니면 파란지에나 관심 있을 우리 비둘기들 눈에도 보일 정도면 꽤나 집요하고 심각하다 이거지.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마녀들은 모를 정도면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이 말 만큼 적당한 게 없어. 시대 흐름을 잘 타다 못해 제 집의 물주전자처럼 쓰고 있다 이거야.”

시대 흐름이라면...”
정화 때 말이야.”
정말이지 마법인데 더 마법 같은 단어다. 정치, 정화. 이 둘은 지금 뗄 레야 도저히 뗄 수가 없었다. 정화 이후부터 지금의 정치가 시작되었으니 당연하지만 아무리 커다란 사건이자 위대한 일이라 해도 그저 책에 적힌 글과 가르쳐주는 말로는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제대로 느낀다면 그건 바로 당사자들일 텐데 그들의 모든 삶을 일일이 적어놓을 순 없으니 그마저도 간결하게 줄여져 책과 목소리에 담겼다. 물론 그 중에 아, 그렇구나 싶은 정도로 받아들인 사람은 정화 이후로 지금의 정치로 인해 이루어진 상황 또한 아, 그렇구나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퍼블리는 아니었다. 아빠는 정화 때 참여한 마법사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었고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은 채 갑자기 사라졌다. 그런 아빠를 찾기 위해 신성지대를 방문한 퍼블리는 단순히 책으로 인해, 그 정치라는 것 때문에 다짜고짜 감옥에 갇히게 됐고 포위하는 마법사와 철퇴로 위협을 받았으며 처음 보는 바다에서 거의 죽을 뻔 하다가 겨우 목숨을 구하고 썩은 몸으로 땅도 밟지 못한 채 바다에 고립된 아빠처럼 마찬가지로 정화 때 참가했던 마법사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들을 받게 됐다. 그런데 이것들을, 갇히고 위협당하고 죽을 뻔하고 안타까운 사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듣게 된 걸 어떻게 정치 그 한 단어로 납득할 수 있겠는가. 그건 절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왜 정치라는 말로 다 통하는 걸까?”
왜긴? 정치를 다루는 자들의 등을 받쳐주는 머릿수가 많으니까지. 그 정치를 유지하기 위해 저렇게 마녀들을 집착적으로 묶어놓고 있잖아? 정치 때문에 피해 받은 마녀나 마법사들은 그들을 무너뜨리고 싶어하지만 그들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도움 때문에 피해 받은 자들 보다 더 많은 자들이 난리법석 피우면서 일어나는 거지.”

전서구의 말에 퍼블리는 다시 고개를 깃털로 파묻었다. 전서구가 꽤나 중요한 걸 가르쳐줬지만 거기에 담긴 현실이 워낙 더러우니 기분도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문득 마법보다 더 마법 같은이란 말은 마법은 늘 곁에 존재하고 현실에도 당연히 존재하니 현실보다 더 현실이란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며 눈을 감았다. 무엇보다 이 현실을 책상 뒤집는 것처럼 바꾸려면 마녀왕국에 사는 모든 마녀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그 위에서 정치를 다루는 왕궁 마녀를 설득하거나 바꾸는 게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거다. 거기까지 생각한 퍼블리가 조용히 눈을 떴다.

어후! 드디어 다 왔네!”
새해가 시작된 겨울에서 떠나고 한창 꽃잎이 날리는 봄에 돌아오게 된 곳.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넓은 땅. 고개를 든 퍼블리가 왕국을 한 눈에 담았고 처음으로 하늘 위에서 내려다본 왕국은 무척 낯설어보였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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