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 올린 노란색 머리카락과 그 아래 언제나 사라지지 않고 늘 자리 잡은 웃는 얼굴. 속내를 알기 전에 막아버리다 못해 찔러 들어오는 검은 눈동자. 그 익숙함에 퍼블리는 한 발짝 물러나니 더 잘 보이는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분명 편지에는 여기 도착하자마자 나 보러오겠다고 마중부터 나오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아니 마중부터 나오라고 하진 않았...”
다시 저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퍼블리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어찌됐건 간에 얘기는 했어도 거의 통보하고 떠난 거나 다름없었으니 한동안 못 본다는 데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힐 준비를 위한 배려도 없었고 퍼블리가 없는 동안 학교 측에서 퍼블리의 행방을 물어볼 자는 아니카 밖에 없었으니 그동안의 부담도 있었을 게 분명했다. 다만 아니카는 놀라긴 했지만 한동안 떠난다는 데에 크게 충격을 먹고 있지도 않았고 당연히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 퍼블리는 그런 아니카의 속을 모르고 있었다. 의외로 학교 측에서 퍼블리의 행방을 묻지 않았는데 이는 위에서 손을 쓴 보라색 머리 마녀 덕분이었지만 둘은 당연하게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행 갔다 온 보람은 있었어?”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퍼블리의 모습에 아니카는 이쯤에서 장난을 접어두기로 했는지 물러났다. 그리고 나온 말에 퍼블리는 다른 의미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아직 고개를 들지 않아 들키지 않은 표정이지만 뭐라 얘기해야할지 막막했다. 아난타가 추천해줘서 사고 갖고 간 책이 금서취급을 받고 있었고 감옥에 갇히고 탈옥한 후에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얘기를 목표에 대한 소득은 둘째 치고 어떻게 여행담처럼 얘기할 수 있겠는가. 고개를 들지 않는 퍼블리의 모습에 아니카가 그대로 고개를 숙이며 퍼블리를 빤히 쳐다본다.
“거짓말해도 너는 다 티가 나요 퍼블리 어린이~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아니 잠깐! 그렇게만 말하면 내가 꼭 지기도 전에 집게벌레 불러오는 꽃봉오리 같잖아!!”
“거의 그렇더만 뭘!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잔소리도 부족하다 요 집게벌레도 필요 없이 바다로 뛰어들 꽃봉오리 녀석아!!”
둘이 서로를 향해 왁왁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날아 나가던 비둘기들도 다시 돌아와 주변을 둘러싸며 구경하기 시작했다. 아니카도 그 옆에서 비둘기들과 함께 둘이 뭐라 소리치는 걸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그렇게 둘이 거의 목이 쉴 정도로 소리치다가 숨이 차 멈추고 있을 때 다가온 아니카는 언제나의 웃는 얼굴로 퍼블리의 얼굴을 붙잡아 마주했다.
“그래서 갔는데 감옥에 갇히고~ 바다에서 죽을 뻔하고~ 정작 아난타 선생님은 거기 마법사 아니었고~?”
그제야 아니카가 얌전히 기다려 전말들을 다 토해낼 때까지 듣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퍼블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눈을 굴려 마주 오는 시선을 피했다. 그에 늘 웃던 아니카는 웃음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고 그에 움찔 어깨를 떤 퍼블리가 힐끔 눈을 돌리며 눈치를 봤다.
“안 혼내~ 애초에 어떻게 혼내야할지도 모르겠네. 혼낸다고 해서 네가 죽을 뻔한 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상황이 온다면...”
다시 돌아온 웃음엔 어딘가 한기가 서려있는 것만 같았다. 그에 퍼블리는 차라리 혼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저 호호 웃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미안해...”
“미안할 게 뭐가 있니~ 다짜고짜 금서라고 외쳐대고는 감옥으로 끌고 간 거기 마법사들 잘못이지~ 아니 금서 추천한 마법사도 잘못이 있으려나?”
한 번 서리기 시작한 한기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부드러운 어투 속에서도 느껴지는 날카로움에 소름이 돋은 퍼블리가 팔을 쓸어내렸다.
“일단 가서 꽤나 깊고 찝찝한 걸 보고 느끼게 됐는데 사실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하나...뭐라도 하고 싶긴 한데 상대가 너무 큰 느낌이야.”
“너무 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도 큰 것 같은데?”
“그래서 너무 막연해. 그리고 어쩌면...”
뒷말을 흐리며 조금 위를 바라보자 품속에 브레이니가 건넸던 책과 작년의 축제가 겹치면서 흘러갔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잘라낸 퍼블리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툭툭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이렇게 온 거야?”
“나도 몰랐지~ 난 늘 그랬듯이 편지 전하러 온 거야. 그런데 우리 큰비둘기씨는 엄청 바쁜지 매일매일 찾아가도 어쩌다 한 번 만날 수 있을 정도라서 열심히 여기 왔는데 어머나 오늘 이후로 더 이상 편지 보낼 일이 없어졌네?”
“내가 엄청나게 고급 배달부라고! 아주 중요한 거 아닌 이상 직접 움직일 일이 없는데 너희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편지 배달부로 쓰고 있던 거지! 너무 자연스러워서 배달하는 중간에서야 깨닫고 아이고 이미 불길을 건넜구나 싶은 지경이다 요 무서운 녀석들아!”
이번에 가만히 있던 전서구가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 다시 소리쳤다. 물론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익숙한 상황과 빠르게 다가오는 체념에 전서구는 아주 그냥 작정하고 대를 잇는다면서 궁시렁거리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아니카에게 그동안의 일을 듣는 퍼블리를 보며 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거지만 퍼블리는 확실히 특이했다. 마녀인 아니카가 바로 옆에 있으니 더 세세하게 느낄 정도였다. 여느 마녀와 다르다는 건 아빠가 누구인지 보면 마법사를 잘 알고 있고 몰라도 대화를 나눠보면 누구나 그럴 만 하네라고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단순히 그런 식으로 단정 지을 만한 느낌은 아니었다. 마녀인데 마법사같은 아이. 하지만 그렇다고 마녀처럼 느껴지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 점 또한 아빠가 마법사니 당연히 마법사 같은 행동이나 말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과는 달랐다. 그랬다면 마녀라는 장미꽃 위에 호숫물이 묻어있다고 표현했겠지만 지금 보는 퍼블리를 뭐라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다. 굳이 말하자면 퍼블리라는 틀에다가 마법사와 마녀를 모두 집어넣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전서구의 눈빛을 느꼈는지 퍼블리가 돌아봤고 아니카도 전서구를 바라봤다.
“그렇게 열렬하게 안 봐도 금방 갈 거예요~”
“아니 뭐...그런 의미로 본 건 아니지만...”
“편지 보낼 일 있으면 보러 올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나 말고 저기 비둘기들 써!!”
호호 웃으며 전서구의 속을 뒤집어 논 아니카가 퍼블리의 손을 잡고 바로 뒤에 구경하기 위해 앉아있던 비둘기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딛으며 유유히 빠져나왔다. 손이 잡힌 채 뒤따라가던 퍼블리도 비둘기들에게서 빠져나오자 아니카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어디긴? 너희 집 뒷마당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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