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후...날개야...삭신이야...전서구야...죽어나가는구나...”

고생했다며 날개로 제 스스로를 토닥거리는 전서구 등에서 얌전히 내려온 퍼블리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수많은 비둘기들이 동시에 날아올라 열린 천장 밖으로 나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그만큼의 다른 비둘기들이 동시에 들어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들어와서 날개를 고르던 비둘기들이 숨을 몰아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채로 자신을 보듬는 전서구를 보고 구루룩 울기 시작했다. 그에 전서구가 아이고 이놈들이 와서 많이 힘들었냐며 위로의 말은 건네주지 못할망정 놀리고나 있냐고 하는 걸 보면 아마 퍼블리를 태우고 온 거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았다. 다시는 등에 누군가를 태우지 않겠다는 맹세를 태운 당사자들 말고도 비둘기들 앞에서 한 적이 있는지 비둘기들이 계속해서 구루룩 울어댔고 그럴 때마다 서러워서 못 살겠다며 벌러덩 드러누우며 날개를 퍼덕이는 전서구의 모습에 퍼블리는 그저 어색하게 하하 웃으며 옆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그보다 넌 이제 어쩔 거냐?”
? ?”
뭐긴? 누구 찾으러 거기 신성지대로 간 것 같은데 보아하니 만나지도 못하고 바다에서 자연 일체화 직전까지 갔다가 어쩌다가 걔네한테 구해진 것 같던데. 그럼 목적 달성은 못한 거잖아?”

물론 그렇다고 다시 신성지대로 간다고 하면 이번에야말로 저도 가만있지 않고 날 뛸 거라는 기세가 눈에서 눈으로 보일 정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에 퍼블리는 다시 한 번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눈을 다른 데로 굴리기만 할 뿐 제대로 답하진 않았다. 그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쉰 전서구는 지금까지 열심히 토닥이던 날개를 늘어뜨리며 벌렁 드러누웠다.

일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피곤해서야 원...”
날개 주물러 줄까?”
됐다 임마!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말고!”
쉬이 넘어가지 않고 대답을 재촉하는 말에 퍼블리는 그대로 전서구 옆에 쭈그려 앉아 팔꿈치를 다른 손으로 받치며 턱을 괴고 구룩구룩 울면서 날아다니는 비둘기들 너머를 멍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따지자면 퍼블리는 처음과 다를 게 없었다. 아난타를 만나지도 못했고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빠의 행방을 알아낸 게 아니라 그저 있었으면 물어보고 싶었을 과거에 대한 이야기, 어떤 마법사였다는 다른 눈으로 본 모습이었다. 아빠가 어딨는지 아니면 어디로 갈만한 데가 있는지도 알아내지 못한 채 왕국으로 돌아왔다. 왕국에서 퍼블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봄의 초반을 날려 보낸 학교를 다니면서 지나가버린, 축제가 끝난 후의 여름 끝 무렵과 가을, 새해가 오기 전의 겨울 때처럼 얌전히 집에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마법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무언가 꽉 잡아 누르는 답답한 느낌이 목에서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만약 감옥에 갇혀있을 때 왕궁 마녀의 도움으로 탈출했었다면 이 답답함은 계속 됐을 터였다.

일단...모르겠어. 그냥 막막해 근데 뭐라고 해야하나...”

생각만큼 답답하진 않아.

정확히 말하자면 그 답답함을 밀어내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다만 깨달았음에도 너무나 갑작스럽고 막연해서 현실감이 들지 않는 상태였다.

있지...내가 뭔가 할 수 있을까?”
잔잔한 호수 앞에서 돌멩이를 하나 들고 멈춰있는 어린아이. 이것만큼 정확한 표현은 없었다. 잔잔한 호수는 멀리서 보면 그저 푸르면서 깨끗하고 조용할 뿐인데 직접 가까이서 보니 그 속은 까맣고 아득하며 무언가 있는 게 분명한데도 거기에 물벼락을 맞았는데도 무엇일지 몰랐다. 그저 막연했다. 알고는 있는데 너무나 깊고 크고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런 호수 앞에서 돌멩이를 들고 어찌해야할지 모르는 어린아이. 던진 돌멩이가 그대로 저 호수 아래에서 가라앉을지 아니면 그 아래에서 얌전히 움직이고 있던 막연한 것들이 돌멩이를 맞고 호수 밖으로 뛰쳐나올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건 던져봐야 알 수 있는데 결과가 어떻든 아이는 받아들이기 힘들 게 뻔했다. 그저 가라앉을 뿐이라면 그나마 확실히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거였고 뛰쳐나온다면 그게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제가 그것들이나 혹은 뛰쳐나올 때 튀는 물벼락에 전보다 더 세게 휩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저 아무것도 없이 마주하고 있을 뿐인 아이가 그런 결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을까?”
넌 참 묘하다고 해야 하나...정말...뭐라 해야 하나? 마녀? 마법사? 이 둘을 통틀어서 말하는 단어는 왜 아직 없는 거야? 아무튼 지금 널 볼 때 넌 정말 마녀와 마법사 같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어.”

퍼블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마법사로 알아보는 왕국 밖의 마법사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덧붙여진 말을 보면 전서구의 의견은 다른 걸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뭐냐...어쨌든 둘 다 단순히 냉정하다 단순무식하다 이런 식으로 정의할 순 없고 복잡하잖냐? 알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단순하게 보는 게 편하고 편하게 살고 싶은 게 누구나의 심리거든. 어쨌든 처음 봤을 때 너는...완전 뒷일 생각 안 하고 돌진하는? 그런 꼬맹인 줄 알았어.”
물론 실제로도 그러는 덕에 덕분에 전용 편지 배달 역할을 맡게 됐다는 불평도 꺼내며 툴툴거렸다.

따지자면...그래! 용사양반이랑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패치 그 양반보다는 무턱대고 가는 부분이 용사양반을 닮았으니 자식이어도 용사양반 자식이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 전혀 딴판이고 닮았다는 생각 자체가 날아가버렸어...그 양반은 그렇게 할 수 있을까라는 말 자체도 안 꺼내고 그런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양반이었거든.”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있을 것만 같은 마법사였다. 물론 마법사나 마녀나 한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순 없지만 가장 크게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용사는 변한다기 보단 옆에서 가르치면 그저 행동의 선택지가 늘어나는 느낌이었지 이미지 자체가 변하진 않았다. 물론 퍼블리도 이미지 자체가 변했다고 할 순 없었지만 용사를 닮았다라고 길게 뿌리 내린 걸 한순간에, 단숨에 뽑아낸 기분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마법사와 마녀는 당연하게도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고 성격 자체도 매우 복잡했다. 하지만 어른이 됐을 때 그 다양한 것들까지 통틀어 하나로 굳어지기 마련이었다. 더 이상 자랄 게 없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전서구가 봐왔던 마법사와 마녀는 다양했지만 자세히 알기도 전에 제 일을 하러 갔었고 자세히 알게 된 자들은 이미 굳어있었다. 굳어진 면이 깨져서 의외로 몰랐던 부분이 튀어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건 다른 입을 통해 들은 거니 아, 그래? 수준으로 넘어갈 정도였다. 사실 그 자는 꽃보다 나무를 더 좋아한다 이런 수준의 변화였다. 전서구는 고개를 조금 들어 열심히 날아다니는 비둘기들을 바라봤다.

“...그래. 뭔지 알겠네! 정확히 말하자면 넌 지금 성장하고 있는 거야.”

성장?”
맨 처음 나를 만났을 때의 너를 떠올려봐. 내가 이렇게 똑같이 앞으로 어쩔 거냐고 묻는다면 무턱대고 신성지대 가자면서 날 올라타려고 했던 너는 무슨 말을 했을까?”
그 말에 퍼블리는 전서구를 처음 찾아가고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마 그 때의 자신이었다면

“...다시 올라타서 모든 곳을 둘러보고 오자고 하지 않았을까요?”
흐응~ 그래?”
포기할 수 없다면서 무턱대고 찾으러 다니자고 떼를 썼을지도 몰라요.”

그랬을지도 모르겠구나~”

대답하던 퍼블리는 옆에서 말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는 익숙한 목소리에 그대로 멈추고는 전서구를 바라봤다. 전서구는 퍼블리를 보지 않고 퍼블리 옆을 보고 있었는데 퍼블리도 그에 따라 시선을 돌리니

그래서 우리 근육이는 여기 도착하자마자 나 보러 안 오고 여기서 키 재고 있었어요~?”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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