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잠깐 맡아두겠습니까?”
그 말에 퍼블리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등에 메고 있던 짐을 넘겼다. 어차피 제일 중요한 장미꽃잎은 제 품에 있다. 짐을 받아든 기사단장은 물품을 관리하는 마법사에게 넘기고 앞장서기 시작했다.
“따라오십쇼.”
기사들이 입고 있던 갑옷처럼 흰 건물 안의 마법사들은 전부 흰 바탕천에 금색 자수와 장식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가다가 종종 열려있는 문틈 사이론 일제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마법사들이 모여있었다. 신과 신앙에 대해서 얼핏 들어본 적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처음인 퍼블리는 그저 신기한 눈으로 둘러볼 뿐이었다.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던 기사단장이 잠깐 몸을 틀어 시선을 줬다.
“혹시 신앙에 관심 있습니까?”
“말로는 들어봤는데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저희가 하는 건 그저 신을 믿고 신의 말씀을 따라 행할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신의 말씀이요?”
“대사제님께서 신이 내려주시는 말씀을 받고 저희에게 내려주시는 겁니다. 지금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대사제님뿐이죠.”
“신은 어디 계시는데요?”
“신은 언제나 저희 곁에 있습니다.”
철저한 논리주의 마법사한테서 자라온 퍼블리에게 신이란 존재는 크게 와닿지도, 자세히 들어본 적도 없는 존재였다. 이는 마법사가 딱히 신과 신앙에 대해 가르칠 필요성을 못 느낀데 생긴 일이었다. 지금 퍼블리는 신을 그저 신성 측의 마법사중 한명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는 기사단장의 말에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무래도 신을 믿는 분은 아니신가보군요.”
“어...아니..그러니까...신이라는 분은 어떻게 늘, 그것도 모든 마법사들의 곁에 있다는 건지...”
“신은 절대적인 존재이니 늘 저희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저희의 믿음을 바탕으로 곁에 계십니다.”
퍼블리는 그쯤에서 더 묻는 걸 포기했다. 애초에 신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둘은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고 마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가는 도중에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찬송가와 기도문을 읊는 소리를 들으며 완전히 낯선 세상에 떨어진 느낌을 받으며 뒤를 따라가자 곧이어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봤던 나무로 된 문들과는 달리 돌로 이루어진 새하얀 문 앞이었다.
“이곳이 바로 대사제님께서 기도를 올리시는 방이자 신의 말씀을 내리고 곤경에 처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방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문을 세 번 두드리자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나왔다. 문을 열자 군데군데 이가 빠져있는 원탁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너머에 수염이 풍성하고 꽤 긴 지팡이와 다른 사제들의 옷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옷을 입고 있는 마법사가 앉아있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전 이곳 신성의 대사제 홀리라고 해요. 미숙하게나마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죠.”
그가 바로 대사제이며 신성의 대표자였다. 생각보다 온화하게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 또한 위엄이 있다기보단 가만히 뒤에서 머무르며 이야기를 듣고 전달한다는 느낌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 퍼블리였다.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는 부드러운 권유가 다가왔고 조심스레 앉은 퍼블리는 원탁에 시선을 두다가 숨을 들이쉬며 고개를 들어 대사제에게로 돌렸다.
“대사제님의 도움이 필요하신 분입니다.”
“프라이드가 직접 데려오신 분이라니...뭔가 일반 사제들과 기사들로도 해결이 힘든 일을 겪고 계신 분이군요.”
그저 마법사 선생님을 찾으러 온 게 뭔가 굉장히 해결 불가능한 힘든 일이 된 거에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은 퍼블리는 그에 대해 얘기하려고 했지만 기사단장이 한 발 더 빨랐다.
“저희 쪽에서 아난타라는 분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아난타라...”
지팡이를 툭툭 땅에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있던 대사제는 퍼블리와 눈을 맞추며 묻기 시작한다.
“이름이 아난타가 확실한가요?”
“네.”
“흐음...하지만 그런 이름의 마법사는 없는데...”
“검은 머리에 크고 동그란 안경을 쓰신 분이세요.”
딱딱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음...우선 저희 신성에 그런 분은 없어요. 아난타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지만 그 분은 다른 소속이거든요.”
“다른 소속이라면...?”
“전장과 분노 소속이죠.”
분명 그 아난타가 맞다. 하지만 신성에 속하진 않았다고 한다. 점점 혼란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차분히 생각을 하려고 했지만 혼란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꼬아놓기 시작했다.
“제가 아는 아난타 분도 검은 머리지만 안경은 쓴 적이 없어요. 전체적으로 인상이 동글동글했던 분인데...”
칠판 앞과 교탁 뒤에서 수업의 일환으로 옛날의 제 얘기를 꺼내는 아난타가 떠오른다. 동그란 안경 너머의 눈도 동그랬던 동글동글한 마법사이자 격투가라고 소개했던 선생. 전장과 분노 소속이었다가 정화의 날 이후 함께했던 팀원들을 찾기 위해 신성지대로 들어갔다는 말. 문득 다가온 이상한 느낌에 더 질문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퍼블리가 그대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어제 쉼터에서 만난 기사의 말이 아침에 꿈에서 깨자마자 들이닥치던 햇빛처럼 생각의 밑에서 튀어올라온다.
“우리? 당연히 신성 소속이지. 그보다 우리를 신성지대라고 부르다니 마녀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먼 마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은 신성이고 이 도시는 신성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신성지대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야.”
그걸로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공손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이 벌벌 떨고 있다가 옷자락을 긁어모으듯이 꽉 쥐기 시작했다.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다가 사라진다. 그 뒤로 곤란하다는 표정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는 얼굴이 어른거리다가 사라진다. 그대로 시간이 멈춘 듯이 가만히 아래만 보고 있던 퍼블리가 고개를 들어 다급하게 입을 연다.
“저 그럼 혹시 마녀왕국에...!”
똑똑똑 문을 세 번 두드리는 소리에 가위로 소리를 자르듯이 고요함이 내려앉자 문 밖에서 목소리가 문을 두드린 이유를 말한다.
“마녀왕국에서 이번 학술 교류에 대해 요청하는 마녀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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