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라는 기사단장을 찾아가기엔 이미 해가 져버려서 시간이 애매해졌다. 지금 퍼블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밥을 먹거나 제 방으로 돌아가서 창밖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퍼블리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완전히 쉬고 있을 때 할 만한 건 왕국에서 샀던 책을 읽거나 마을구경 뿐이었다. 전에는 운동이라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방 안에서 운동하다가 균형을 잃어 실수로 벽을 부술 뻔 한 이후론 운동은 최대한 밖에서 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날이 밝을 땐 할 수 있던 마을구경도 날이 어두워지면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마녀, 비록 지나온 곳에선 마법사로 보고 있지만 성인이 채 안되어 보이는 건 어른들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쉼터의 주인들이 꽤 말린 적이 많았다. 마을 마법사들도 어두워지면 되도록 돌아다니지 않는 주의였다. 하지만 이곳은 해가 졌어도 돌아다니는 마법사가 꽤 되는 게 마녀왕국이랑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창문 너머로 돌아다니는 마법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던 퍼블리는 그 사이의 기사들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커튼을 내렸다. 조금 이르지만 빨리 날이 밝아졌으면 하는 마음에 침대에 누운 퍼블리는 그대로 눈을 감고 집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제가 들어오면 고개를 돌려 인사를 받아주고 건네는 마법사를 상상하며 잠들었다.

 

누군가가 저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옆에서 여럿이 있었는지 외치는 소리가 꽤나 소란스러웠다. 따뜻하게 저를 꼭 쥔 누군가는 친구라며 그들에게 자랑했다. 그에 더 시끄러워졌고 소리로만 그들을 인식하던 저는 한숨소리와 함께 매우 익숙한 목소리를 듣게 됐다.

또 사고 쳤나보군.”
그 익숙한 목소리에 그리움이 가득 차오르며 목소리의 주인을 보려고 했지만 자신에겐 볼 수 있고 눈물을 흘릴 눈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점점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대체 어디서...!”
저를 쥐고 있던 자가 자랑스레 손을 내밀어 저를 보여주며 친구라고 외치자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점점 주변의 모든 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마저도.

...!”

그에 급한 나머지 부르려고 했지만 빛이 모든 걸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없었던 눈은 창문 틈새로 들어오고 있던 햇빛이 지나가는 길 아래에 놓여있었다. 뜨던 눈을 다시 감고 햇빛을 피해 일어난 퍼블리는 멍한 얼굴로 앉아서 눈을 깜빡였다. 보통 꿈이란 건 무언가 그림 같은 상황이 펼쳐지고 깨어날 땐 그 잔재가 남아서 꿈 내용이 어땠는지 더듬을 수 있는데 방금 꾼 꿈은 아무런 모습도 나오지 않고 그저 처음 듣는 목소리와 소란스러운 외침들, 그리고...

분명 아빠 목소리였는데?”
틀림없었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느낌이 분명 마법사라고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퍼블리가 기억하기로는 마법사가 그렇게 많은 자들 곁에 있었던 적은 없었고 저를 곁에 둔 적은 더더욱 없었다. 아니 곁에 있었기 보단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는 기분이었기에 꿈을 떠올릴수록 혼란에 빠지던 퍼블리는 꿈에 대해 떠올리던 걸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프라이드라는 자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모든 건 마법사를 찾아 그에게 묻는다면 해결될 일이었다. 대답을 듣지 못한다면 용사라는 자를 찾아 물어볼 생각이었다.

짐을 챙겨들고 쉼터를 나온 퍼블리는 순찰을 도는 기사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마까지 감싸는 투구는 그나마 잘 보이는 게 눈이었는데 살펴보다가 주황색 눈인 기사를 발견하자 어제 쉼터에서 만났던 기사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라 살짝 웃음이 터지다가 눈이 마주치고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자리를 피하는 일도 있었다. 계속 지켜보다가 기사들의 체격이 비슷하긴 하지만 조금씩 차이는 있었기에 어쩌면 봤을지도 모르는데 놓친 게 아닌가 싶어 지나가는 기사들을 붙잡아 그들의 단장이 어딨는지에 대해 묻자 모른다는 말과 해가 지금보다 더 낮게 떠있을 때쯤에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 쪽에서 봤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보니 해는 어느새 가장 높게 오를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갔다가 슬슬 내려오기 시작했다. 더워서 땀이 조금씩 맺히기 시작할 때 쯤 그토록 찾아다니던 자를 발견했다.

확실히...크다.”
다른 기사들은 물론 여느 마법사들과도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꽤나 큰 덩치를 자랑하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던 퍼블리는 재빨리 뛰어가서 그를 붙잡았다. 툭툭 저의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돌아보는 얼굴은 다른 기사들보다 투구에 더 가려져 눈밖에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바깥에서 오신 여행자분이로군요. 무슨 일입니까?”
, ...그 신성 측의 마법사분을 찾고 있는 중이었어요. 순찰 돌던 기사분들한테 여쭤봤는데 단장님이신 분이 알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기사단장에 대해 가르쳐준 기사들의 바람과 정보를 받은 퍼블리의 양해 덕분의 그들의 쉼터에서의 농땡이는 순찰로 변했다.

그렇습니까? 찾는 분 이름이...”
아난타예요.”

이름을 말했지만 이상하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이름을 들은 그는 그저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퍼블리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에 퍼블리가 조금 당황하며 제대로 못 들었나싶어 다시 한 번 말해야하나 고민하던 순간

“...일단 기사들 중에서도 그런 이름은 없습니다. 사제들 중에서도 아난타라는 이름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이름이 정말 아난타 맞습니까?”

“..., 맞아요.”
당황함에 한 박자 늦게 대답한 퍼블리는 재빨리 눈앞의 기사단장의 반응을 살폈다. 이대로 그런 마법사는 없다고 딱 잡아떼며 떠나면 곤란해지는 건 퍼블리였다. 다행히 퍼블리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사제님께서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대사제님이요...?”
왕국의 공주님처럼 이곳 신성의 대표자이신분입니다.”

원래 이렇게 각각의 대표자를 만나는 게 간단한 거였나. 퍼블리의 얼굴에 그런 의문이 그대로 떠올랐는지 기사단장이 뒤에 말을 덧붙였다.

같은 마법사로서 공평하게 대화할 기회를 주시는 분입니다. 다만 그 많은 분들을 일일이 만날 순 없으니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들을 듣고 기사들과 사제들 선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해결하고 아니면 대사제님께 말씀 드리는 게 절차입니다. 저는 웬만한 기사들과 사제들의 이름을 다 외우고 다니고 있지만 제가 모른다면 알고계실 분은 대사제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퍼블리는 얼떨결에 길 안내를 시작하는 기사단장을 따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로 눈에 들어온 그 흰 건물로 들어가게 됐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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