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마을에서 나오자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풀이나 나무는커녕 녹색이라곤 가시를 달고 있는 신기한 식물만 가지고 있는 모래땅이 퍼블리를 반겨줬다. 퍼블리는 이곳이 말과 영상구로만 보던 사막이라는 걸 알고는 신기한 눈으로 여기저기 둘러봤다. 종종 눈에 보이는 가시가 달린 식물 이름은 선인장이었고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도 자라는 식물이란 걸 기억해낸 퍼블리는 나중에 아니카한테 편지가 오면 선인장을 실물로 봤다며 답장으로 자랑할 생각으로 선인장의 모습을 세세하게 눈에 담았다. 지도를 보며 걷던 도중 먹이를 찾고 있던 중인지 모래색 털의 여우와 꽤 크다고 할 수 있는 구렁이와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한 번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제각기 할 일을 하러 자리를 떴다. 해가 지고 하늘이 어두워질 때 노숙을 준비하던 퍼블리는 햇빛이 쨍쨍하던 밝을 때와는 다르게 어두울 땐 생각보다 춥다는 생각에 조금 굳었지만 생각보다 밤과 추위는 무사히 지나갔다. 그렇게 또 걷고 또 걷는 걸 반복하다가 어제보다 더 더워진 것 같은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자 마침 다른 선인장들보다 유독 키가 큰 선인장이 그림자를 길게 내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늘로 가서 물을 꺼내 마시던 퍼블리는 제 목과 어깨를 덮는 머리카락이 더 덥게 느껴지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머리끈을 꺼내 묶어보자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 들었지만 머리카락 길이 자체가 꽤 길었던 터라 목에 머리카락이 닿는 건 여전했다. 그렇다고 머리카락을 자르자니 자를만한 물건도 없었고 거울도 없는데다 스스로 잘라본 적도 없으니 엉망이 될 게 눈에 뻔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짐을 살펴보자 가장 아래쪽에 다 팔았다고 생각한 천 하나가 나왔다. 꺼내서 펼쳐보니 팔기에도 애매한 크기였다. 천을 보고 있다가 머리위에 올려놓고 머리카락들을 모아 뭉치며 올려놨던 천으로 감싼 후 끝자락으로 묶은 후 혹시라도 삐져나온 데가 있나 싶어 더듬어 보던 퍼블리는 그냥 묶었을 때보다 더 시원해진 목덜미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
당분간 이렇게 다닐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래가 묻은 데를 툭툭 털고는 발걸음을 옮기자 해가 가장 높은 데 떴다가 다시 땅과 가까워질 때 쯤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태까지 들렀던 마을들과는 다르게 높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동전에 새겨진 것과 같은 모양의 금색 조형물을 우뚝 세운 커다란 흰 건물이었다.

거기 앞에 잠깐 비켜줘!”

뒤에서 들려오는 말에 비켜서자 꽤나 많은 물건들을 담은 수레가 지나갔다. 길에 서서 대화를 나누던 마법사들도 수레가 가까이 오자 비켜서서 다시 대화를 나누거나 바로 옆에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사는 마법사들은 마을에 살던 마법사들과 옷이 조금 달랐다. 좀 더 장식과 무늬가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살고 있는 데가 클수록 좀 더 화려해진다는 마법사의 말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단서를 쥐고 있는 자가 이곳에 있으니 다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터였다. 묘하게 솟아오르는 기대감이 쓸쓸함을 누르고 벅차게 가슴을 두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은 쉼터에 들어간 후 바로 가라앉았는데

어떻게 만나지...?”
지나가는 마법사들을 붙잡고 아난타를 아냐고 묻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게다가 아난타는 신성지대측에서 대표로 교류를 위해서 온 마법사였다. 그러니 신성지대 단체를 찾아가면 되겠지만 큰 단체를 이루는 자들을 찾아가는 건 힘들었다. 하물며 제가 살고 있던 곳의 왕국 마녀도 무작정 찾아간다고 볼 수 있는 마녀가 아니었다. 전서구가 들었으면 자기는 왜 그렇게 무작정 찾아왔냐 물었겠지만 지금은 곁에 없는데다가 아난타를 어떻게 만나는지에 신경을 쓰는 터라 전서구에 대해 떠올릴 생각도 들지 않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런 건 의외의 부분에서 해결됐다.

우리? 당연히 신성 소속이지. 그보다 우리를 신성지대라고 부르다니 마녀들만 그렇게 부르는 줄 알았더니 먼 마을에서도 그렇게 부르는구나? 우리 단체 이름은 신성이고 이 도시는 신성이 다스리는 땅이라서 신성지대라고 이름이 붙여진 거야.”

마녀들은 앞에 왕궁이라고 붙이니까 우리도 뒤에 붙인 줄 알아서 우리 단체를 신성지대라고 부른다고 하더라.”
방에서 나오자 똑같은 갑옷과 투구를 쓴 마법사들이 잠시 쉬러 들어온 건지 의자에 앉아서 떠들고 있었다. 퍼블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혹시 신성지대 마법사분들이냐고 묻자 그에 나온 대답이다. 이들도 퍼블리를 마법사로 보고 있는지 의아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 혹시 아난타라는 분을 아시나요?”
글쎄? 처음 듣는 이름인데? 너 아냐?”
나도 몰라. 애초에 우리 조 애들 이름 외우기도 바쁜데 어떻게 다 아냐? 다른 조에 소속된 녀석 같은데.”
새끼...같은 조 애들 이름 외우기 바쁘다는 녀석이 다른 조에 있는 짝사랑 이름이랑 걔 연인들 이름이나 달달 외우다 못해 적어놓고 다니면서.”
그거랑은 상관없지! 애초에 그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뭔가 한 마법사의 지극히 사적인 비밀을 듣게 된 퍼블리는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이야기에 끼어들어야하나 아니면 이대로 비밀을 묻어둔 채 물러나야하나 고민했지만 둘의 투닥거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일단 그 아나? 아나타? 아무튼 그런 이름은 이 녀석의 원수 수첩에 없는 것 같다 새파란 풀아.”

거 아직 어린 애 앞에서 왜 그런 얘기를 왜 꺼내?!”
나중에 이 녀석 원수 수첩에 안 적히게 조심하려면 우리랑 같은 옷을 입은 녀석 중에서 눈이 주황색인 녀석 옆에 안 있으면 된다.”
!!!”
다시 투닥거림이 시작됐다. 어색하게 하하 웃은 퍼블리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지만 곧바로 나온 말에 바로 멈췄다.

그러고 보니 단장님이라면 알지 않을까?”
아무리 단장님이라도......이름 다 외울 것 같긴 한데...그래도 단장님 만나는 건 좀...”
단장님이요?”
기대감에 가득 찬 퍼블리의 눈에 둘이 얼굴을 마주하다가 어색하게 웃었다. 괜히 말 꺼냈다는 생각이 그대로 얼굴에서 묻어나왔다.

...일단 우린 마을 치안을 유지하는 기사단이니 당연히 단장님이 있지. 근데...”
단장님이 좀 빡빡하셔. 긍지도 높은 분이라서 본인한테도 빡센 분이시지. 그나마 순찰 돌고 계실 때 말 걸면 괜찮을 거야.”

이름은 프라이드인데, 찾다보면 확실히 눈에 띌 거야. 덩치가 우리 같은 일반 기사들과는 확연히 다를 정도로 크거든.”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그들은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만나면 우리 여기 쉼터에서 만난 건 비밀이다?”

아마 그들이 걱정한 건 순찰 중 농땡이에 대한 벌인 것 같았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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