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질 다 끝났습니다.”
문을 열자 쉼터의 주인이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 안엔 퍼블리가 잡아왔던 토끼가 육포로 손질되어 담겨 있었다. 감사하다며 받아든 퍼블리는 아직 저를 보고 있는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이내 실례했다며 다시 손님을 마주하는 자리로 물러나는 모습에 퍼블리는 그저 약간 곤란한 웃음을 지으며 문을 닫았다. 지금까지 마을들을 거치면서 비슷한 반응을 많이 받아왔는데 저 정도는 매우 괜찮은 축에 속한 편이었다. 가끔가다 지나가던 마법사들이 퍼블리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가는 경우가 있었는데 당연히 그런 반응들을 접하게 된 퍼블리는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라는 생각을 하며 쉼터의 방마다 있는 거울이나 꽝꽝 언 물웅덩이 위로 얼굴을 비추고 더듬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유를 알게 됐는데 어느 날은 지나가던 마법사 하나가 대놓고 퍼블리를 쳐다보는 걸 넘어서 가까이 다가와 신기하네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그에 퍼블리가 왜 그러냐고 묻기 전에 다가온 마법사가 먼저 물었다.
“당신은 마법사예요, 마녀예요?”
마녀라고 대답하자 물어봤으면서도 놀라면서 당황스러워서 굳어있던 퍼블리도 실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리저리 훑어보고 간 이상한 마법사 이후로 지나가던 마법사들이나 쉼터의 주인들이 마법사인지 마녀인지 물었고 퍼블리는 계속 마녀라고 대답하다가 어느 순간 마법사라고 대답하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 마법사라고 대답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면 그제야 궁금증이 풀린 얼굴로 실례했다며 물러가는 마법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쉼터의 주인들은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지만 한차례 이미 실례를 저질렀고 남에 대해 캐묻는 건 무례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물러났다. 그 반응들은 퍼블리가 천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주로 여행하는 마녀들이 계산하는 방식이었기에 나온 반응이었지만 마법사 중에서도 그렇게 계산하는 자들이 있으니 사실은 마녀가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는 건 본인들이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을 이상한 생각이었다. 설령 사실은 마녀라고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어쨌든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나를 마법사로 보고 있다는 건데...”
사실 마녀와 마법사는 딱 봐도 구분이 가능했다. 비유를 하자면 눈앞에 있는 게 흰 고양이냐 검은 강아지냐 구분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게 마녀와 마법사인데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는 마법사들이 저를 마녀인지 마법사인지 구분을 못하니 당연히 당사자인 퍼블리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떠오른 게 마법사인 제 아빠와 마녀왕국 밖에서 살았던 기억이었으니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버렸다. 일단 지금 퍼블리의 목표는 신성지대로 돌아간 아난타를 찾아가는 거였기 때문에 다시 고개를 들어 올라오는 궁금한 것들은 아빠인 마법사를 찾았을 때의 몫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을 잘라낸 퍼블리는 육포가 담긴 주머니를 제 짐 속에 넣어놓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감았다.
혼자 남아버렸어.
나를 두고 어디로 가버린 거니?
나는 계속 여기에서 기다렸어.
너를 기다렸어.
하지만 너는 여전히 오지 않았고,
나는 지금까지 남아있었지.
마법사가 눈을 뜬 건 이틀하고도 여섯 시간이 지나서였다. 오래 누워있던 터라 멍한 기분이 한동안 머리를 부여잡고 놔주지 않았다. 고개만 돌려 주위를 돌아보자 방 안엔 누워있는 저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마법사는 발을 조심스럽게 방바닥으로 내려놨지만 힘을 주기엔 또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일어서자 몸이 휘청거리며 몇 번 침대 위로 풀썩 주저앉았지만 계속해서 일어서려고 시도한 덕분에 위태롭게 균형을 잡으며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을 짚은 손이 점점 벽에서 물러나자 그에 맞춰 마법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방문을 여는 순간 얄미운 얼굴과 말투가 눈앞에서 잠깐 반짝이듯 떠오르며 사라졌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곁에 없는 그는 마법사도 익히 잘 아는 자였다. 밤이었을지 달이었을지 아님 호수였을지 모를 것에 취해 달이 환하게 뜬 밤, 호수 앞에서 제 이름과 그의 이름을 서로에게 건넸던 상대. 치트. 그게 바로 저를 납치해온 그의 정체였다. 물론 납치당할 때 가만히 있었던 마법사가 아니었다. 다만 정말 운이 나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도 그럴게 마법사는 비록 본인 의지로 행한 상황이었지만 마력이 상당히 줄어 있는 상태였고 바로 그 때 치트가 납치하러 들이닥치는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최대한의 저항 결과 집에 들이닥친 납치범의 오른팔을 부러뜨리고 왼팔을 탈골상태로 만들어놨지만 결국 정신을 잃은 건 본인이었다. 하지만 양 팔을 쉽게 쓸 수 없게 된 터라 기절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데려갈 순 없었던 치트는 곧바로 지원을 불렀고 안경을 벗고 검은 머리카락이 다시 빨갛게 변하면서 욕을 머금게 된 아난타가 한동안 치트를 놀려댔었다. 물론 이건 마법사가 모르는 뒷이야기였다.
겨우겨우 방에서 나온 마법사는 부엌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기분 나쁘다는 게 여실한 눈빛으로 쭉 주변을 훑어봤지만 머리만 아파왔는지 꾹꾹 눈썹 위를 문질렀다. 이 집은 비슷하다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아예 태우기 전 그대로 남겨둔 건가 생각할 정도로 마녀왕국으로 떠나기 전에 지냈던 집과 똑같았다. 단순히 집 구조가 아닌 물건들도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았는데 등받이에 자주 기대느라 조금 휘어진, 지금 앉은 의자가 바로 그 예다. 그렇게 쓰러지고 처음 이 꺼림칙하고 싫은 집에서 눈을 떴을 때 마법사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곁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던 그 얼굴은 울면서도 웃고 있었고 슬프면서도 환희에 가득 차 있었다. 부들부들 떨며 뺨을 쓰다듬던 손은 마치 손끝에 있는 게 환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려고 더듬는 눈먼 자의 손짓 같았다. 곧이어 잠겨있으면서도 희열에 차 들뜬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었다.
“왜 저를 떠난 겁니까? 아니, 이젠 이유 따윈 상관없습니다. 저는 당신을 찾아냈고 이렇게 제 눈에 보이고 제 손에 닿는 곳으로 당신을 데려왔으니까 물을 필요도 없겠죠. 당신은 이제 절대 여기를, 나를 떠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제 얼굴 위로 고개를 숙이는 치트를 향해 박치기를 한 마법사는 그대로 목을 눌러 제압하려고 했지만 팔을 붙잡아 그대로 침대 위로 내리 누르는 그의 힘은 강한 걸 넘어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엄청난 집착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힘이 빠질 정도였다. 눈을 마주했을 때도 뚝뚝 떨어진다고 생각할 정도로 넘쳐흐르는 그 감정은 마법사가 질려서 순간 움직인다는 걸 잊어버릴 만큼 농도 짙고 쉽게 외면할 수 없었다. 그에 마법사는 안 보이면 마음도 식어버릴 거라고 생각한 제가 안일한 건지, 저렇게까지 마음을 붙들다 못해 집착을 덕지덕지 붙인 그가 비정상인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결론은 둘 다였다. 기억속의 시간을 거슬러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더듬던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에서야 이런 생각을 해봤자 이 상황을 해결하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고 지금 혼자 남아있을 퍼블리가 걱정이었다. 이렇게 저 혼자 있을 때 탈출시도를 한 때가 꽤 있었지만 문고리를 잡자마자 정신을 잃는 상황이라 아예 마법을 날려보려 했지만 몸에서 나온 마력이 일그러지며 흩어지기 일쑤였고 이곳이 과연 어떤 곳인지 주위의 마력과 제가 마녀왕국에서 걸어놓은 마법들을 탐지해봤지만 탐지만 가능했지 느껴지는 방향은 매번 탐지할 때마다 뒤죽박죽이었다. 마치 모든 탈출시도를 막아놓은 것처럼 철저하게 지어진 이 집은 마녀왕국이나 신성지대의 감옥보다 더 견고하고 철저할 거라며 혀를 내둘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도 없는 것이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뜰 때마다 찌뿌둥한 수준이 아니라 한동안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는 점에서 자고 있을 때 시간이 흐르는 건 단순히 하루 수준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정확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마법사가 그동안 정신을 잃은 횟수가 꽤 됐다. 그에 마법사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는데 그건 왕국 내의 집에서 걸어뒀던 마법을 천천히 풀어 남은 마력량을 탐지해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아내는 거였다. 우선 첫 번째는 방 안에 잠가뒀던 서랍이었다.
“....결국 뒷마당에 걸어둔 마법까지 풀어버리게 됐군.”
식품에 걸어둔 보존 마법을 제외하면 마법사가 집에 걸어놨던 거의 대부분의 마법을 풀어버린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뒷마당의 마법은 풀어놓을 생각이 없었지만 풀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 다시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들어 컵에 물을 따라 조금 마셨다. 아직 물이 남은 컵을 탁자 위에 툭툭 두 번 두드려보고는 찰랑거리는 물들을 빤히 지켜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렇게 시계의 짧은 바늘이 두 번 정도 돌았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깨셨슴까?”
눈을 뜨자 문이 열린 소리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제 옆에 와서 싱글거리며 웃는 얼굴이 보였다. 그에 혀를 차며 다시 눈을 감아버리자 들려오는 말이
“그대로 키스해달라고 눈 감으신 검까?”
마법사는 조용히 물이 든 컵을 들어올렸다. 물을 뿌리려나 싶어서 당신이 마시던 물이라서 달다고 놀려줄 말을 준비했던 치트는 컵 째로 던지려는 손동작에 꺼내려던 말을 삼키고 잽싸게 마법사의 손목을 잡았다.
“아무리 저라도 그걸 맞으면 아픔다?”
“아프라고 던지지 안 아프라고 던지나? 아니 그래, 자네 말대로 아프지 않게 바로 죽길 바라며 던지면 되겠군.”
“에헤이~ 그건 더 안 됩니다~”
컵 내려놓게 좀 놓으라는 말에 놓기는커녕 팔목과 손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에 기어이 다른 손까지 들어 올리게 만들자 그제야 놓는 모습이 얄미워 발로 잽싸게 정강이를 걷어차자 과장스럽게 맞은 데를 부여잡고 아파하며 맞은 편 의자에 털썩 앉는다.
“그나저나 의외입니다?”
“뭐가 말인가.”
“지금까지 퍼블리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셨잖슴까?”
그 말에 눈을 살짝 찌푸린 마법사는 덤덤하게 말을 꺼낸다.
“자네가 퍼블리한테 손도 대지 않은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쪽으로 저를 믿어주시는 검까? 감동임다~”
“만약 퍼블리를 붙잡아 인질로 썼다면 내가 여기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퍼블리를 언급했겠지.”
그 말에 치트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짙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 후에 잡아왔을지 어떻게 알고요?”
“그렇다면 잡아온 그 때 자네는 운을 뗐겠지. 이번에 나를 잡아온 자네의 방식을 봤을 때 자네는 매우 철저하니 섣불리 퍼블리에게 손을 댈 수도 없고 손을 대서도 안 되는데다가 자네는 지금 손 댈 생각도 없잖나. 손을 댈 수 없고 안 되는 이유는 퍼블리가 마녀왕국 내의 학생이니 학기 중에 사라지면 상당히 곤란해지지. 학교 측에서 퍼블리의 행방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거고 왕궁에서 실종된 학생을 찾는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조사대를 파견하면 퍼블리가 왕국 내에서 사라진 걸 알게 될 테고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마녀는 보호자의 동의나 같이 동행하지 않는 이상 왕국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보호자도 같이 없는 상황이니 함께 손잡고 왕국 밖으로 나갔을 거라 추측하고 거기서 멈추지 않을까요?”
“마녀들은 왕국 밖으로 나갈 때 검문소를 방문해서 밖으로 나간다는 임시 확인서를 작성하고 나가는 게 법이잖나. 게다가 대체 어느 마녀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제 아이를, 그것도 학기 중에 밖으로 데리고 나간단 말인가?”
그에 치트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받았다.
“뭐, 확실히 그렇게 되면 조사대가 더 넓게 움직이긴 하겠지만 그건 그들만이 피곤하고 저는 별 문제 없슴다? 우리 패치도 방금 말했다시피 전 매우 철저하다고요? 그럴 능력도 되는 걸 넘어서 뛰어나고 마녀 왕국 내에서도 그랬듯이 넓게 행사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슴다.”
“물론 그건 자네 얘기고 난 아직 내 얘기 중이었네만?”
무슨 소린지 의아해하는 눈빛을 받고서도 마법사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물로 목을 축이며 말을 이어간다.
“자네가 자네 능력 자부하듯이 나도 내 능력 좋다고 말할 수 있네. 자네가 찾아오던 그 집을 태우고 떠난 그 날부터 자네가 나를 납치해오던 날까지 마녀 왕국에서 마법사인 걸 들키지 않고 살아왔잖나. 거기다가 퍼블리를 다른 마녀들처럼 학교에 보낼 정도로 자연스럽게 살아왔지. 하지만 아무리 나라도 왕국 내의 탄생 기록은 손댈 수 없었네. 그 탄생기록은 장미정원에서 태어난 마녀들뿐만 아니라 결혼한 마녀들, 심지어 마법사와 결혼해 왕국을 떠난 마녀들의 아이가 마녀일 경우 기록하게 하는 대단한 기록일세. 내가 현 거주자들의 기록을 겨우 꼬고 가려서 이름을 등록해 살아온 처지니 말 다한 거나 다름없지. 가려진 걸 치우고 정리만 해놓는다면 왕궁은 내가 그 어디에도 속한 마녀가 아니란 걸 알아낼 테고.”
마법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치트를 바라봤다.
“굳이 뒷말도 길게 덧붙여야하나?”
“아뇨~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돼도 딱히 제가 걱정할 일은 아님다. 전 우리 패치가 저를 떠나는 게 걱정될 뿐.”
“그럼 역시 손댈 생각이 없는 쪽이군. 비록 길게 말하긴 했지만 떠본 걸세. 자네 반응을 보아하니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을뿐더러 날 잡는데 혈안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퍼블리를 건드려봤자 자네에게 이득은 없으니까. 건드려봤자 나한테 더 반감을 사겠고 그에 맞춰 나는 내 몸도 신경 안 쓰고 날뛸 테니까 말일세.”
그에 치트는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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