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구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 보람이 있었다. 결국엔 퍼블리를 찾아내서 땅 아래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날개에 쥐날 것 같다며 투덜거리는 전서구를 뒤로하고 다리에 묶여있는 편지를 풀어 소중히 쥐면서 읽었다.

 

우리 근육이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지?

그래도 너무 열심히 뛰진 마. 그러다가 어디 부딪히거나 힘 빠져서 나중엔 뛰고 싶어도 못 뛰게 될지 모르니까 말야. 그리고 넌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에 이런 말이나 적고 못됐다고 입이나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겠지, 이 언니가 다 알고 있단다? 마음 같아선 좀 더 놀려주고 싶고 소소한 안부 묻기나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이건 급한 것 같아서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 난 네가 떠난 날 이후로 계속 너희 집에 찾아가고 있어, 물론 열쇠는 네가 갖고 있으니까 들어갈 순 없지만 혹시 누가 찾아왔을지도 몰라서 늘 찾아가고 있어. 네가 뿌린 전단을 보고 찾았다거나 본 적이 있다고 하는 마녀가 있을 수도 있고 비둘기 우체부가 찾아왔을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는 나 외엔 누가 찾아온 흔적도 없었어, 그런데 문제는 너희 집 자체야.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희 집에서 냉기가 감돌고 있어. 그동안은 겨울이라서 잘 못 느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이제 봄이고 따뜻해진지 오래지, 겨울이 봄에 피는 꽃을 시기해 다시 손을 뻗는 날도 지나갔어. 그런데도 너희 집은 냉기가 돌고 있고 이건 겨울 냉기라고 하기엔 애매해. 냉기는 냉긴데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냉기라고 해야 하나? 이상했지만 들어갈 순 없으니 그냥 너희 집을 빙 둘러보다가 이상한 데를 발견했어. 분명 너희 집 바로 뒤는 바위로 막혀있어서 공간이 없었는데 바위가 사라져있었어. 거기로 다가가 보려고 했지만 이상하게 밀려나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공간이 나를 밀어내는 느낌이야. 그래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어서 지금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 너희 아빠가 숨겨놓은 뒷마당 같은데 여기에 뭔가 단서가 있을 것 같아. 언제 한 번 마녀왕국 다시 들르러 올 때 너도 확인해봐. 물론 그 전에 내 얼굴 보러오는 건 까먹지 말고. 안 그럼 다음 편지엔 무슨 말이 적힐지 나도 몰라~?

 

편지를 다 읽은 퍼블리는 귓가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내용에 살짝 웃다가 본론으로 들어간 내용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 냉기라는 말에 순간적으로 그동안 마법사가 꽁꽁 싸매듯이 입던 옷차림이 떠올랐지만 다음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바로 상상을 덮어두고 마저 읽었다. 숨겨놓은 뒷마당이라는 말에 당장 돌아가서 확인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아직 돌아갈 순 없었다.

저 혹시 아빠 말이야...”
아 글쎄 그 양반에 대한 건 저번에 말한 그게 전부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예전에 봤을 때도 옷을 거의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입었어? 한여름에도 한겨울처럼.”
아니 그냥 평범했는데? 여름에는 망토도 벗고 팔다리 내놓고 다녔지.”
일 때문에 만나는 고객도 아니고 지인의 자식인데다가 지인의 지인에게 존댓말을 듣는 건 어색하다며 편하게 말하라는 나름대로의 배려에 퍼블리는 전서구에게 크게 격식을 차리진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GM에게 데려다달라고 부탁을 뛰어넘어 고집을 부리던 퍼블리는 여행 중인 GM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찾을 수 없단 말에 2시간은 더 매달린 후에야 포기했다. 물론 GM을 찾아간 걸 포기한 거였고 마법사에 대해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양반이 아무 말도 안 했어? 뭐 그 양반 성격에 말 안하는 건 당연하고 그걸 뛰어넘어 오히려 묻는 상대 붙잡고 정보 털어갈 위인이긴 하지만...”

뒷말은 그렇게 흐려놨지만 굳이 뒷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우울하게 가라앉는 퍼블리의 모습에 전서구는 땀을 삐질 흘리며 마법사에 대해 알고 있는 걸 전부 다 털어놓았다. 그렇게 퍼블리는 전서구의 시각으로 본 마법사의 과거 일부를 알게 되었는데 한 마디로 줄이면

용사 뒷바라지 하던 요정님이었지.”

GM 외엔 알 수 없었던 마법사의 지인 중에 용사라는 존재를 알게 됐다.

네 아빠는 인맥 만들거나 관리하는 건 그다지 관심 없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으니 네가 GM 밖에 모르는 건 당연한 거야. 솔직히 나는 그 양반이 용사양반 뒷바라지 하러 다닌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전서구가 말하는 용사라는 마법사는 폭풍 그 자체였다. 굉장히 천진난만한 성격에다가 호기심이 많고 그런 만큼 사고를 몰고 왔다고 한다. 마법사의 뒷바라지는 그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막거나 아니면 사고를 해결하거나였는데 완전히 나서서 해결하는 게 아닌 뒤에서 도와 결국엔 용사 스스로가 끝낼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식이었다. 물론 악의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기에 끝이 좋을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결국 사고는 사고였다며 투덜거리는 전서구에 퍼블리가 의아해하니

그 용사양반 사고치는 거 빠르게 수습한답시고 내 등 위에 올라탄 게 너희 아빠다.”

전서구를 올라타게 된 이유에 대해 알게 된 것과 동시에 전서구의 푸념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다가 용사가 사건사고를 해결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특유의 천진난만함에 친해진 자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마녀왕국의 공주님과 흑기사단, 아난타가 속했었다는 전장과 분노였다. 하지만 아난타는 축제가 끝나고 일주일 후에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며 제가 있던 곳으로 다시 떠났다. 물론 떠나기 전에 찾아가봤지만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바라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전서구 덕분에 꽤나 중요한 연결고리를 알게 된 퍼블리는 용사의 인맥이었던 자들을 찾아갈 생각으로 왕국에서 나왔다. 비록 간접적인 인맥이지만 늘 용사 곁에 붙어있었으니 알고 있는 게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 퍼블리를 상념에서 끌어올린 건 아프지 않게 머리를 쪼는 전서구의 부리였다.

고 박치기로 상대할 육체파 머리로 뭘 그리 삥삥 생각하고 있냐? 얼릉 답장이나 써. 이래봬도 바쁘신 몸이야!”

그에 어깨를 들썩이며 일어나 종이와 펜을 꺼낸 퍼블리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평평한 바위를 발견하고 그 위에 종이를 댔다. 뒤에서 느이 아빠 머릿속은 GM이랑 정 반대긴 하지만 두뇌파들도 아이고 이게 뭣이다냐하고 기겁하며 던지려던 도전장 집어삼키게 해서 쫓아낼 양반이라며 은근히 다시 왕국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흘러 건네는 말은 못들은 체 하고는 간단한 안부인사와 언제 한 번 왕국에 들릴 테니 너야말로 까먹지 말고 얼굴 볼 준비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내려갔다.

혹시 신성지대로 갈 일 없어?”
갈 일 없어! 거 은근슬쩍 물어보면서 내 소중한 등짝에 몸 올릴 생각하지 마라! 가는 길 가르쳐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

전서구는 그렇게 말하며 다리에 편지를 매달고 왕국으로 돌아갔다. 퍼블리는 그런 전서구가 작아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옷에 묻은 풀들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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