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셋이 둘러앉을 만한 탁자, 그 옆에 놓인 넉넉한 크기의 의자 두 개와 아이가 앉을만한 작은 의자 하나, 방은 두 개였고 그 중 한 방은 침대와 서랍이 딸린 책상, 책이 가득 꽂혀있는 책장과 옷장 하나로 꽤나 있을 게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조금 휑해보였지만 무언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인위적인 느낌이 감도는 방이었다. 마법사는 이 방을 가장 싫어했고 그 다음으로는 이 집 자체를 싫어했다. 사실 가구나 물건들 몇 개를 제외하면 그동안 마법사가 지내왔던 집들은 죄다 비슷했다. 거실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크기의 공간에서부터 이어진 방 두 개와 부엌 하나, 화장실. 특히 부엌은 집에 조금만 들어서면 눈에 보일 정도였기에 집이 좁아보였지만 혼자서 지내기엔 당연히 넓었다. 지금 있는 나머지 방 하나엔 아이들이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과 작은 베개, 담요가 놓여있지만 그 방은 지금 전혀 쓸 일이 없었다. 지금 이 집에서 쓰고 있는 공간은 부엌과 침대가 있는 방이 전부였다. 책을 넘기다가 처음 온 날을 떠올린 마법사는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다.

어디 아픈데 있슴까?”
그리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번엔 대놓고 얼굴을 찌푸렸다.

역시 아픈데 있으시죠? 늘 그렇게 입 꾹 다물고 있으니까 어디가 아픈지 몰라서 제가 매일 전부 다 살펴볼 수밖에 없잖슴까~ 물론 저야 매우 좋아서 불만은 없습니다만 정확하게 말씀해주셔야 우리 패치도 안 아프고 저도 속 안 썩죠~”

그에 마법사는 속이 썩어가는 건 난데 왜 네놈 속이 썩어가냐고 따지듯이 말하려고 했으나 그저 손을 들어 눈과 이마를 쓸고 입술을 짓씹으며 꾹 눌러 넣었다. 뭐라 말해봤자 제 입만 아플 거란 걸 깨달은 이후론 계속해서 그의 말을 무시했지만 짜증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상대는 대답이 없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대답을 해주면 더 날뛰는 녀석이라 지금의 마법사에게 있어선 답이 없는 상대였다. 속으로 끓어오르는 분을 삭히고 있던 도중 조금만 더 세게 물면 피가 나올 것 같은 입술에 불쾌한 감각이 찾아왔다. 그에 마법사는 퍼득! 어깨를 떨며 주먹을 날렸다.

이 미친...!!”
오랜만에 입을 열어주시는데 하는 말이 욕이라니 저 상처받슴다~”

주먹에 맞은 뺨과 입을 감싸며 가증스럽게 우는 척을 하는 그 모습에 마법사는 그저 들고 있던 책을 덮어 휘둘렀다. 꽤나 위협적인 터라 가만히 주먹도 맞고 있었던 그는 잽싸게 물러나 피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피할 걸 예상했는지 다리를 움직여 물러난 만큼 빠르게 다가가 발로 찼다. 이번엔 제대로 들어갔는지 발차기에 맞은 옆구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더니 부들부들 떠는 손을 들어 올려 선을 그리듯이 슥 그어보이자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마법사가 그대로 쓰러졌다. 바닥에 완전히 쓰러지기 전에 다가가 손을 뻗어 몸을 받친 그는 욱신거리는 옆구리와 방금 전 누구 하나 죽일 것처럼 험악한 표정은 사라지고 곤히 잠든 마법사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고는 그대로 안아 방문을 열고 침대 위에 눕혀놓았다. 색색 고른 숨을 내쉬는 입에 아까처럼 입을 맞추고 이불까지 꼭꼭 덮어주며 잠든 마법사를 보살폈다. 그리고는 시간을 확인하고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문 밖으로 나섰다. 중간에 몇 번이나 아쉬운 눈빛으로 마법사를 돌아보다가 문을 닫고 집을 나선 그는 방금 전까지 짓던 웃음을 싹 없애고는 집에서 멀어질 때마다 한숨을 쉬며 지루한 표정을 새겼다.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한숨 푹푹 쉬고 지랄이야?”
다시 안경 씌워드릴까요? 욕 찍찍 내뱉으라고 다시 돌아오게 한 게 아닌데 말이죠?”
그에 대신 표정으로 욕을 하는 얼굴에 진심으로 다시 안경을 씌울까 고민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엔 위험부담이 너무나도 컸다.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은 둘이 집을 감싼 풀밭과 나무들에서 벗어났을 때 그들 뒤에 남아있는 건 휑한 돌과 모래뿐이었다.

 

아니 진짜 미치겠네!?”

푸드득 날개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제법 큰 깃털이 땅 위로 내려앉는다. 커다란 비둘기가 발목에 편지 하나를 묶고선 아래를 바라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잘 나가고 모르는 길 없다지만 달랑 받는 마녀 이름만 써놓으면 어떡하라고!?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는 마법사들이나 멀리 여행 떠나는 마녀들도 편지 받는 장소 정돈 정해놓는다 이 말이야!”

그렇게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아래는 숲과 들판이 가득한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비둘기의 정체는 바로 비둘기 우체부의 대표 비둘기 전서구였다.

할배도 그렇고 그 마법사 양반도 그렇고 아주 다 제멋대로지! 한동안 둘이 잠잠해서 아 이젠 살겠구나~ 했는데! 이젠 그 양반 자식이야? 그것도 마녀!?”

퍼블리가 마녀왕국을 떠나기 전에 찾아간 건 바로 전서구였다. 당연히 한 단체 그것도 거의 모든 마녀와 마법사들이 이용한다는 비둘기 우체부의 대표를 만나고 싶다고 찾아간다고 해도 쉽게 만날 순 없었다. 마녀왕국에서 축제를 즐긴 전서구는 처음엔 축제가 끝나고 다시 제 둥지로 갈 생각이었지만 마침 그 때 마녀왕국 내에서 전달할 편지들이 있었기에 몇 달동안만 더 있다가 갈려고 했었다. 그러던 도중 자신을 찾는다는 어린 마녀 얘기를 들었을 땐 의아해했지만 어디 먼데다가 편지를 보내려고 한 줄 알았다. 그에 멀리 가는 비둘기들에게 부탁하거나 꼭 저를 통해서 보내고 싶다면 예약을 해두라는 말을 건네려고 했지만...

“GM할아버지한테 연락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GM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며 바로 달려 나왔다. 전서구는 GM이 꽤나 여러 인맥 두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왕궁 마녀라면 몰라도 생판 처음 보는 어린 마녀가 사적으로 그를 알고 있는 경우는 몰랐으니 놀랄만도 했다. 그러다가 평소 GM의 성정을 알고 있던 전서구는 이내 수긍했다. 아마 왕국 밖으로 놀러 나왔다가 친해진 경우겠지 싶어서 GM이 소개해줬냐고 묻자

아뇨, 아빠가 말씀해주셨어요. 제 아빠 이름이 패치인데요...”

그 말에 전서구는 뒤집어졌다.

그 양반이 아빠라는 시점에서 범상치 않았지만...!”
누가 아빠라고? 패치? 그 마법사 양반이? 아니 그보다 그 양반이 애를 키운다고? 거기다가 마법사도 아니고 마녀?

당시의 전서구는 혼란에 빠져 정신이 없었고 퍼블리가 마법사의 자식인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바로 다음 순간 퍼블리가 자신을 올라타며 GM이 있는 데로 데려다달라고 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수긍해버렸다. 그 마법사의 자식이 아니면 이렇게 바로 올라타려 하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전서구는 그 때를 회상하고 툴툴거리며 저 아래 녹색 가득한 세상에 외쳤다.

! 퍼블리 어딨냐? 아니카가 편지 보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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