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마녀들은 집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밝았을 때보다 더 활발하게 놀고 있었다. 사탕꽃을 입에 물며 작년 식물부의 야심작 반딧불이꽃이 하늘을 장식하는 걸 보며 퍼블리가 말했다.

저거 우리 학교 식물부 애들이 만들었어요.”
아무 말 없이 반딧불이꽃을 톡톡 건드리는 마법사의 모습에 신이 났는지 퍼블리는 말을 더 꺼내기 시작했다.

내일이 바로 우리 학교 동아리들이 단체로 실력발휘 하는 날이에요! 물론 다른 학교 애들도 열심히 하겠지만...우리 동네는 당연히 우리 학교가 하니까 응원해야죠! 식물부가 올해도 뭔가 단단히 준비한 것 같은데 꼭 보고 싶어요!”
퍼블리가 열심히 말하는 동안 마법사는 어느새 반딧불이꽃을 손에 올려놓고 살펴보고 있었다. 반딧불이꽃을 이루고 있는 마법들이 고등마법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다른 마법을 중첩시키는 기술력은 꽤나 높이 살만 했기에 눈길이 갔다. 분명 어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궁 마녀가 되거나 아니면 독자적인 기술력으로 세상을 살아갈게 분명했다. 꽃과 만든자에 대한 감상을 끝낸 마법사는 퍼블리가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식물부를 보러 내일도 나올까 고민하던 순간 누군가를 눈에 담았다.

엄마?”
퍼블리는 말하던 걸 멈추고 마법사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눈에 들어온 자를 보고 반가운 기색이 만연해졌다.

아난타 선생님!”
멀리 있는데다가 지나가는 마녀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름을 불린 당사자는 딴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아난타라고 불린 자를 집중해서 바라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멀어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머리에 쓴 동그란 모자와 멀리서도 눈에 띄는 동그란 안경이었다.

저번에 얘기했던 그 선생님이에요! 인사하러 가요!”
퍼블리는 마법사의 손을 잡아끌며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는 마녀들 사이로 길을 찾아 다가가기 시작했다. 가까워질수록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누군가랑 대화하는지 옆을 바라보며 입은 웃음을 머금은 채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느꼈는지 돌아보는 순간

선생님!”

지나가던 마녀들이 잠깐 시야를 가렸지만 바로 마주하게 된 얼굴은 상당히 동글동글한 인상이었다.

퍼블리 학생?”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발견했다는 둥 아까 학생들도 많이 인사하러 왔다는 둥 서로 얘기를 주고받던 둘의 대화는 아난타의 시선이 돌려지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저번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렸네요. 이번에 신성지대에서 온 마법사 아난타예요.”
마법사가 살짝 의아함을 품자 눈치 챈 퍼블리가 작은 목소리로 모자를 가져다주러 왔을 때 옆에 있었다고 속삭였다.

퍼블리의 어머니입니다. 저번엔 제가 인사할 새도 없게 갔으니 인사를 하지 못한 데에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역시나라고도 할 수 있는 딱딱한 말이었다. 그에 퍼블리가 살짝 입 끄트머리를 달달 떤 채 웃으며 아난타를 바라봤지만 아난타는 그리 무안하거나 불쾌한 기색은 없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아난타의 표정에 놀라 애써 달고 있던 미소가 단번에 날아갔다.

“...우리 예전에 만났던 적이 있지 않나요?”
마법사의 시선이 잠깐 퍼블리에게 닿았다가 다시 아난타에게로 돌아갔다. 받은 어투는 그저 안부를 묻듯이 가벼웠지만 마법사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지금 제 기억엔 없습니다.”

마법사의 대답에 살짝 눈을 감았다가 뜬 마법사는 어딘가 후련하면서도 아쉬워보였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건 미안함이었다. 계속 지켜보던 퍼블리가 의아해했지만 그 이유는 금방 풀어졌다.

, 이런...인사를 나눈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바로 가야할 것 같네요. 내일 있을 행사 때문에 지금 교직원들이 난리가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랑 엄마도 해가 졌으니 조금만 더 즐기다가 집에 돌아가려고 생각 중이었거든요.”

그럼 내일 봐요 퍼블리 학생, 그리고 퍼블리 어머님도 나중에 보게 될 때 제가 먼저 인사드릴게요.”
그렇게 서로 인사하고 퍼블리와 함께 자리를 뜨던 마법사는 다시 고개를 뒤로 돌려 멀어져가는 아난타를 눈에 담았다. 그에 마침 똑같이 뒤돌아보던 아난타와 마주쳤다. 무언가 입모양으로 짧게 말하고는 고개를 다시 제 앞으로 돌리는 모습까지 보던 마법사는 퍼블리의 부름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번엔 반대로 누군가가 부르는 바람에 얼마 가지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블리!”
선도부 일로 축제를 즐기지 못한 아니카였다. 퍼블리는 반갑게 인사하려다 문득 옆에 있는 마법사를 생각하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저 멀리 묻혀놨던 불안감이 아니카가 다가올 때마다 싹트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아니카는 그런 퍼블리의 불안을 모르고 있었다.

날뛰는 모기떼들 제압하느라 시간 다 갔네.”
...지금 끝난 거야?”
아니 아직 할 일이 남았어. 그냥 가다가 너 보이길래 인사하러 온 거야. 오늘 축제 즐기는 건 진작해 포기했지 뭐.”
그런데 가까이 다가온 아니카는 마법사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곁에 있는 걸 전혀 눈치 못챈 것처럼 퍼블리만 보고 얘기했다. 그러다 퍼블리는 마법사가 상품들을 주머니에 넣었을 때 마녀들이 눈길도 주지 않은 걸 떠올렸다.

일단 내일 봐! 내일은 선도부들도 축제를 즐기라면서 선생님들이 선도부들 대신 뛸 거래. 그래서 내일은 같이 놀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말을 끝낸 아니카는 손을 흔들며 다시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퍼블리는 아니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마법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법사는 별말 없이 그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이 아까보다 조금 높게 떠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내렸다.

가지.”

그렇게 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돌아가는 동안에도 퍼블리가 불안해할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여느 날처럼 씻고 하루를 마칠 준비를 한 마법사는 잘 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방으로 들어갔고 퍼블리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제 손목의 팔찌를 쓰다듬고는 침대 옆 탁상 위에 두고 잠들었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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