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땅따먹기야?”
이번엔 땅따먹기 수준이 아니야!”

급하게 뛰어온 선도부는 이번엔 그런 귀여운 말이 아닌 폭동 수준이라고 했다. 축제 둘째 날은 아직 학생들의 무대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다시 한 번 그들의 성과를 두드려보는 날이었다. 물론 둘째 날은 자유라고 불리고 있었으니 이것도 어찌 보면 축제 중의 구경거리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인원수가 많은 동아리들이 연합을 한 것 같아. 인원이 아닌 각 동아리들이 할 수 있는 행사 규모에 맞춰서 배분해준 구역이라고 해도 듣지를 않아!”

선도부라고 하지만 앞도적인 숫자에는 진땀을 흘리고 거의 피신하다시피 물러날 수밖에 없는데 인원수 많은 것들끼리 붙어먹었다는 말에 아니카도 늘 달다시피 하던 웃음을 거두고 머리를 짚었다.

많은 새..녀석들도 축제 행사를 이끌어가는 건 몇 명만 뽑는 거잖아. 그놈의 인원수가 많다느니 인원이 많으니 자리가 많아야한다느니...걔네들 거기 땅에다가 재료 농사짓거나 마력 발전소 하나 세워서 행사 안 이끄는 애들 마력 쏟아 붇는대?”

곧이어 날선 말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다. 아니카를 부르러 왔던 선도부는 식은땀과 울상을 지으며 아니카를 데려갔고 퍼블리는 그대로 혼자 남게 됐다. 자유라고 불리는 축제날이었지만 통제하는 마녀에게 있어선 축제 중에 자유란 거의 없었다. 동행인이 통제하러 가버린 터라 남은 마녀는 곤란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작년까진 아니카가 선도부가 아니었으니 항상 같이 축제를 즐겼다. 물론 퍼블리가 아니카에게 엄마랑 축제를 즐기지 않고 자기랑 즐기게 돼서 서운해 하지 않으시냐고 물어봤지만 그에 아니카는 처음엔 몇 번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어봤지만 이제는 신나게 술 마시러 나간다고 대답했다. 아무래도 또래끼리 노는 게 더 즐거운 건 어른이든 아이든 똑같았다.

물론 퍼블리는 친구가 아니카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만 아니카보다 덜 친해서 같이 축제를 돌아다니고 싶은 친구들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그 들도 제 짝인 친구들이랑 돌아다니고 있을 테니 더더욱 같이 돌아다닐 마음은 들지 않았다. 멍하니 분수대에 앉아서 축제가 한창 시작되는 모습들을 천천히 눈에 담기 시작한 퍼블리는 새삼스럽게 축제가 굉장히 소란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카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축제란 건 가만히 있는 마녀에겐 매우 소란스럽게 다가왔다. 그렇게 계속 앉아 있다가 분수가 이제 그만 가라는 듯이 물 몇 방울을 퍼블리의 등에 떠미는 손처럼 뿌리자 그제야 일어나 소란스러운 축제 무리로 걸어 들어갔다. 무지개 구슬을 만드는 행사와 투명한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행사 등등 다양한 행사들이 있었지만 딱히 즐기고픈 마음이 없었던 퍼블리는 그저 한 발짝 떨어져 구경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지개 구슬 재료를 나눠주고 설명하고 있던 마녀가 그런 퍼블리를 발견했다.

학생! 학생도 한 번 만들어 봐요!”

, 아뇨! 저는 그냥 구경이 더 즐거워서요!”

그렇게 말한 퍼블리는 마녀들 사이를 빠져 나와 다시 분수대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가라앉았다. 분명 축제는 소란스러운데 제 주변은 조용한 것 같았다. 아니카가 그렇게 수다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늘 범상치 않은 말을 꺼낸 터라 기억에 잘 남게 되고 잔상이 떠오른다는 걸 혼자 있게 돼서야 느끼게 됐다. 그러다가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은 아니카가 지금쯤이면 엄청난 독설을 날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여름인데도 한기가 느껴지면서 당할 애들을 생각하니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가라앉은 기분 아래에서 웃음을 건져 올리던 퍼블리는 곧이어 눈앞에 나타나는 얼굴에 살짝 물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아빠랑 같이 축제 즐기고 싶었는데...”
아주 예전에 퍼블리가 마녀왕국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맞게 된 축제 때 마법사는 그런 퍼블리를 달래주기 위해 손을 잡고 축제를 돌아다녔다. 볼을 부풀린 퍼블리는 그저 땅만 보고 걸었지만 얼마 안 가 축제의 화려함에 시선과 서운함을 빼앗겼다. 신나게 뛰어다니기 시작한 퍼블리는 아마 환하게 웃고 있었을 거고 뒤에서 퍼블리를 보고 있던 마법사가 무슨 표정을 지었을지는 같이 있던 퍼블리 또한 몰랐다. 계속 앞만 보며 뛰어다녔으니 당연히 모를 만도 했다. 어쩌면 한 번 쯤은 뒤돌아봤을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억이 안 난다. 그 때의 마법사도 지금의 마법사처럼 온 몸을 꽁꽁 싸매다시피 옷을 입었다. 그런데도 그 때 주위 마녀들은 마법사한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어째서? 퍼블리는 잠시 의문을 가지며 다시 한 번 눈앞을 전부 차지하는 마법사의 옷차림을 살펴봤다. 마녀나 마법사의 시간은 어른이 되고 난 후 굉장히 느리게 흐른다고 들었다. 기억속의 마법사 또한 지금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옷까지 너무 최근인데?”
분명 그 때 유행하거나 입던 옷이랑 지금 입는 옷이랑은 현저히 다르다. 꽁꽁 싸매는 건 똑같아도 당시에 사서 입는 옷이니 유행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억에서 튀어나온 마법사의 옷차림은 너무 최신에 유행하는 옷차림이 아닌가. 그 때 마법사의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

?”
눈을 깜빡이고 비벼서 다시 봐도 마법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분수대 앞에 서있는 마법사는 그런 퍼블리의 행동에 어쩐지 식은 눈으로 쳐다보고는 퍼블리에게 다가왔다.

...”
엄마.”
..엄마.”
환상이 아니었다. 실제 마법사였다. 축제 기간 내내 집 안에 틀어박혀있었던 혹은 있어야할 마법사다.

엄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반문하는 퍼블리에 마법사는 다시 눈썹을 찌푸리다가 그동안 제 행동들을 돌아보고 반사적으로 나오려는 한숨을 삼켰다. 아무리 사정이 그랬다하더라도 제가 생각해도 보호자 자격을 박탈해야할 것 같았다. 퍼블리가 멍하니 마법사를 쳐다보며 말했다.

왜 나왔어요?”
그리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기껏 나왔는데 왜 나왔냐고 묻다니, 무언가 볼일이 있어서 나온 게 틀림없을 텐데 말이다. 마법사라고 늘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론가 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축제 때 나오는 일은 그 때 이후로 없었는데...어쩐지 알 수 없는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그 때

축제 때 같이 돌아다니지 않겠냐고 했잖나.”
짓누르던 것들이 이 순간만큼은 모두 물러났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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