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보세요!”
앞으로도 생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퍼블리에게 있어서 오늘은 최근 중에 가장 행복하고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물방울을 뿜어대는 나비 머리장식을 제 머리 위에 올려놓고 돌아보는 퍼블리는 처음으로 축제를 돌아다녔을 때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니 마법사가 스스로 마주 짓던 웃음도 눈치 채지 못하고 왜 그러냐고 묻자 퍼블리는 잽싸게 아무것도 아니라며 다시 앞장서서 복작거리는 마녀들 사이를 갈라 길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마녀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위를 올려다보자 그에 따라 올려다본 둘의 눈에 비둘기들이 입에 가루가 든 병을 물고 날아다니면서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마법사는 어제 퍼블리에게 들은 난동 피운 비둘기들이 떠올랐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고 퍼블리는 다행히 그런 마법사의 생각을 모른 채 비둘기들이 그리는 모글리제의 산들바람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비둘기들 아래에 장신구를 파는 가게가 보였고 마녀들은 그런 광고에 넘어가주며 장신구 가게로 다가갔다. 당연히 가판대에 자리잡은 장신구들의 무늬는 모글리제의 산들바람이었다. 퍼블리 또한 마녀들을 따라가더니 장신구 색이 하나 다른 팔찌 한 쌍을 사서 파란색 팔찌를 마법사한테 넘겼다.

제 건 빨간색이에요!”

아마 빨간색은 마법사를, 파란색은 퍼블리 본인을 가리키는 것이리라.

퍼블 리가 주위를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자라서 같이 다니는 축제는 둘 모두에게 즐거웠다. 처음에 퍼블리는 마법사가 그냥 아무런 선호 없이 제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면 어떡하나 싶은 게 무색하게도 마법사는 생각보다 호불호를 잘 나타냈다. 싫다고 딱 잘라내기보단 거기 있는 것보단 저기 있는 게 더 좋다는 식이었다. 마법사가 선호하는 행사는 퍼블리가 좋아하는 행사와 많이 겹쳤다. 마법보다는 몸을 쓰는 행사였는데 그 중에서 마법사가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건 공을 던져 물건을 맞추는 행사였다. 범상치 않은 운동실력을 보여주며 마법사까지 경쟁상대에 포함해 상품을 싹 쓸어오던 퍼블리도 이것만큼은 마법사를 이기지 못했다. 던지는 족족 맞추고 엄지손톱 크기의 얼음꽃무늬 돌조각도 맞춰서 떨어뜨리는 걸 보고 사실 마법사의 정체는 흑기사단도 정화하는 자들이 아닌 공 던지기 요정 볼라의 후손이거나 아니면 볼라 본인이 마녀와 마법사 사이에서 놀고 싶어서 그들 사이로 숨어든 게 아닌가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던져요?”
하다보면.”
던지기 실력을 빌미삼아 과거를 살짝 떠볼까 싶었지만 바로 나온 마법사의 대답에 포기한 퍼블리는 다음 행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잔뜩 타온 상품들이 떠올랐는지 마법사를 돌아보자 주머니에 넣는 모습에 그저 할 말을 잃었다. 여기서 말하는 주머니는 따로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가죽 혹은 천 주머니 같은 게 아닌 말 그대로 옷에 달려있는 주머니였다. 물론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묻는 다면 사람 상품 중엔 작은 상품들도 있었지만 어른 마녀 얼굴만한 그릇도 있었다. 그 그릇까지도 기껏해야 손보다 조금 넉넉한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 이 말이다. 당연하게도 마법을 썼겠지만 무게의 부피와 중량을 무시하는 마법을 각 상품들에다가 일일이 걸었을지 아니면 주머니에다가 걸었을지는 마법사만이 알 뿐이었지만 확실한 건 그 마법 자체가 상당한 고등 마법이라는 건 마녀들과 마법사들은 물론 다섯 살 먹은 어린 애들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마녀들이 돌아다니는 길 한가운데서 보이는데 지나가는 마녀들은 눈길 하나 안 주니 그 외 더한 마법 자체를 본인에게 걸었을 게 뻔했다. 퍼블리의 질린 기색이 섞인 눈빛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봤다. 마법사의 눈빛은 왜 그렇게 보느냐라는 뜻도 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는 듯한.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질문을 듣고 나서 판단하지.”
그에 퍼블리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은 답이라면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말이었으니. 묵묵히 주머니에 전부 집어넣던 마법사는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앞에 있던 퍼블리 또한 그 모습에 뒤돌아서 다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뒤따르던 마법사가 아하고 아주 작은 감탄을 내며 멈춰선 퍼블리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까르르 웃는 아이들과 눈을 빛내는 어른들 손에 들린 무지개 구슬에 닿았다.

아까 그 학생이네?”

...? ?”

다시 돌아올 줄 알았어! 어이 거기 채스터! 얼른 돈 내놔! 내가 기른 구슬 재료들은 이 왕국에서 제일 싱싱하고 색을 잘낸다고 자부했잖아?”

성질도 급하긴! 아직 해보겠다고 말도 안 꺼냈잖아! 게다가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같은 길을 밟은 건지 아닌지도 구분 안 하고!”
구분하고 말고가 뭐 있어? 어차피 이 길 계속 가면 분수대밖에 안 나오잖아. 괜히 돈 주기 싫어서 입씨름하지 말고 순순히 포기해라?”

돈 주기 싫은 건 당연한 거고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지.”

두 마녀의 대화를 듣던 마법사는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무지개 구슬을 보고도 안 만든다며 떠난 퍼블리가 다시 돌아와 만들겠다고 할지 아니면 그대로 안 올지 내기를 했을 터. 하지만 퍼블리가 내기 대상이 되었어도 그리 기분 나쁜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퍼블리가 축제를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무거운 손이 올라와 잊지 말라는 듯이 심장을 꽉 쥐었다. 그렇게 서로를 향해 소리치면서도 친절하게 재료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던 두 마녀는 입을 멈추고 퍼블리를 바라봤다. 퍼블리는 중간부터 다시 무지개 구슬에 시선이 팔려 둘이 나눈 외침들은 흘려들어 내기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때마침 고개를 든 퍼블리가 웃으면서 외쳤다.

만들래요!”

채스터라고 불린 마녀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마법사는 이번엔 참가하지 않고 퍼블리가 만드는 걸 구경했다.

퍼블리는 제 앞에 놓인 무지개에 들어가는 세가지 색 열매들을 섞이지 않게 잘게 빻기 시작했다. 곱게 빻은 가루들을 투명한 진액과 함께 동그란 틀 안에 넣자 틀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틀도 투명해서 안쪽이 다 보였는데 가루들이 부딪히며 새로운 색을 만들어내고 옆에서 조금씩 마법기구가 조정을 하자 어느 정도 양이 정해진 기본 색들은 섞여 색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마침내 완성한 무지개 구슬은 정말 무지개를 담은 것처럼 예쁘고 한눈에 들어왔다. 구슬을 만들고 나니 어느새 해가 하늘 한 구석을 빨갛게 태우며 내려가고 있었다. 이번에도 퍼블리가 앞장섰지만 어디 가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까 내기에서 이긴 마녀가 말했던 대로 둘이 가고 있는 길의 끝엔 분수대밖에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손 좀 줘보세요.”

분수대에 앉자 퍼블리가 대뜸 손을 내밀고 말했다. 그에 오른손을 내밀려다가 고개를 젓자 왼손을 내밀자 퍼블리의 손이 가는 곳은 다름 아닌 비둘기로 광고하던 데에서 샀던 팔찌였다. 거기에 무지개 구슬을 대며 집중하던 퍼블리가 손을 놓자 구슬이 원래 팔찌 장식이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붙어있었다.

어때요? 괜찮죠?”
접착 마법으로 붙였는지 꽤나 감쪽같았다. 구슬을 만들 때보다 더 집중했었던 퍼블리는 뿌듯한 미소를 지었고 마법사는 팔찌에 붙은 구슬을 만져보다가 큰 충격을 받으면 금방 떨어지겠다고 충고하려고 했지만 차마 뿌듯해서 웃는 퍼블리에게 말할 순 없었다. 나중에 몰래 더 보강하겠다며 접착 마법을 뒷전으로 미룬 마법사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까 공 던지기에서 얻은 얼음꽃무늬 돌조각이었다. 마법사가 몇 번 손으로 쓸자 울퉁불퉁하던 돌조각 표면이 매끄러워지고 모양이 구슬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

신기하게 바라보던 퍼블리가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고 마법사가 팔찌에다가 가공한 돌조각을 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무지개 구슬처럼 자연스럽게 팔찌 장식으로 자리 잡았다. 남색과 파란색 바탕의 돌조각 위에 새겨진 얼음꽃무늬는 정교했고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짜 예뻐요!”

퍼블리가 눈을 빛내며 예쁘다고 연신 외치고는 손을 높이 들어 얼음꽃무늬 돌조각 장식을 얻은 빨간색 팔찌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퍼블리의 모습에 마법사는 반대로 손을 들지 않고 고개를 숙여 무지개 구슬 장식을 얻은 파란색 팔찌를 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완전히 하늘을 까맣게 태우고 사라질 때 쯤 다시 비둘기들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낮에 봤던 비둘기들처럼 병을 입에 물고 가루를 흩뿌리며 까만 하늘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표절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분수대에 앉아있던 둘은 하늘을 바라보며 축제를 되새겼고 다시 축제를 즐기러 일어섰다.

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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