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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3.23 [치트패치] NEVER ENDING.14
  2. 2021.01.19 [치트패치] NEVER ENDING.13
  3. 2021.01.10 [치트패치] NEVER ENDING.12

패치가 정신을 차린 건 자고 일어난 후였다. 사실 잤다기보단 거의 기절에 가까웠지만 깨어난 건 본인의 침대 위에서였다. 옷도 잠옷으로 갈아입혀져서 어제의 일이 마치 악몽 같았지만 몰아쳐오는 두통과 쓰린 속에 현실이라는 걸 잘 알게 됐다.

 

“일어나셨습니까?”

 

아닌가 꿈인가. 분명 어제 같은 부분을 여러 번 후려쳤는데도 치트의 얼굴은 멀끔했다. 치트는 패치의 시선을 눈치 채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끄럽다는 얼굴로 뺨을 감싸고는

 

“선배님의 손길이 닿은 거니 그대로 냅두고 싶었지만~ 일하는데 가서 보이면 직원분들이 맞고 사는 남편이라고 수군거려 선배님이 오해받으면 속상하지 않겠슴까~”

 

패치에게 있어서 더 속 터지는 오해는 단란한 부부 사이라는 오해였다. 그걸 모를 치트가 아니었지만 행복한 얼굴을 한 채 패치의 손을 붙잡아 자신의 뺨으로 끌었다. 밖에 나갔다 왔는지 뺨은 꽤 서늘했다.

 

“어제 영화 재밌었죠?”

 

두통과 복통 때문에 축 늘어져있던 손이 뺨을 밀어냈다. 얼굴이 밀리는가 싶더니 몸은 멀쩡하게 중심을 잡고 있어 의도치는 않았겠지만 굉장히 얄미운 꼴이 되어버려서 패치의 속은 다른 의미로 아파졌다. 잡고 있는 손을 쳐낸 패치는 그대로 이불을 뒤집어 썼다.

 

“아프시겠지만 죽이라도 좀 드시라고 사왔슴다~ 어제부터 밥도 변변찮은 것들만 먹고 다 토하기까지 했으니 기운 없을 거 아닙니까~”

 

그마저도 치트가 이불을 걷어버리는 바람에 패치의 속은 한층 더 아파오고 있었다. 패치의 상태가 영 아닌 걸 알고 있는 치트도 더 말을 걸진 않았지만 파리한 안색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왜...”

 

“네?”

 

“왜 그랬나...?”

 

“뭐가 말입니까?”

 

거기까지만 말하고 패치는 기절하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치트는 선배님? 하고 다시 불렀지만 미약하지만 고른 숨소리에 잠들었다는 걸 눈치채고 또 잔다며 투정을 부렸다.

 

“어쩔 수 없죠~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 제가 이해하겠습니다~”

 

이런 헛소리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한 치트는 사온 죽과 함께 방을 나갔다. 냉장고에 죽을 넣으며 패치가 무얼 물으려 했을까 생각하던 치트는 돌연 기분이 좋아져 또 웃었다. 멱살을 잡고 제 목으로 손을 옮겨주던 그 때에도 저런 질문을 했었다. 묻고자 하는 건 다르겠지만 말이 똑같은 걸 보면 여전해보였기 때문이었다.

 

냉장고 안을 쭉 훑어보니 기본적으로 있는 계란과 어제 급하게 넣어놓은 반찬들 몇 가지 외엔 텅텅 빈 냉장고에 치트는 반사적으로 누구를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모드양을 많이 부르긴 했나보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죽 사러 나가기 전에 냉장고를 보는 거였다며 작게 투덜거린 치트는 닫혀있는 문을 힐끔 보고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선배님~ 부디 제가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잠들어계십쇼~”

 

***

 

패치는 드물게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꽤 한정적이었는데 죽었다 살아나면 꾸는 꿈도 달라지는 건지 생전 처음보는 꿈을 꾸게 됐다. 꿈속의 패치는 자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고 있는 패치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꿈이었다. 간혹 꿈속에서 또 잠을 자서 꿈을 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얘기에 영향을 받은 꿈인가 싶었던 패치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자고 있다면 내가 왜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지?

 

패치는 잠에서 깨기 전까지 계속 자고 있는 자기 모습만 보게 됐다. 꿈이 늘 그랬듯이 자고 일어나면 단순했어도 꽤나 흐릿해져서 기억이 제대로 안 나게 되는 게 꿈이었다. 꿈속에서 패치 자신은 어떤 얼굴로 자고 있었는지, 괴로워했던 얼굴이었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는지 흐릿했다. 옷은 파랬던 걸 기억하면 수호대 복장일 듯 싶었다.

 

어쩐지 찝찝한 느낌에 다시 눈을 감던 패치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치트가 어디 나갔다 온 걸 눈치 챈 패치는 조심스레 일어나 조용히 문을 잠갔다. 일어나자마자 또 속이 뒤집어지고 뒷목이 당기는 건 사양이었다. 문고리가 덜걱거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베개를 던져주는 걸로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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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메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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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집에 돌아온 패치는 술판을 벌였다. 밥을 먹으면서 술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간식들도 사오긴 했지만 사온 맥주들이 꽤 많아 밥과 함께 먹어야 했다. 그 결과 과자 봉지를 뜯기도 전에 제법 취했다. 그렇다고 멈추진 않았다. 작정하고 마시니 빈 맥주캔이 무서울 정도로 쌓였다.

 

거의 기계적으로 캔을 까고 마시는 걸 반복하다가 새로운 캔을 잡으려고 뻗은 손이 헛손질을 했다. 맥주가 전부 동이 났다. 아직 안 깐 새 캔을 찾아보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빈 캔들만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반듯이 세워져있는 캔들도 있지만 다른 캔들에 밀려 쓰러져 다 마시지 않아 조금 남은 맥주를 뚝뚝 흘리는 캔들도 있었다. 엉망이었다.

 

하하...”

 

맥주와는 반대로 안주로 사온 과자들은 꽤 많이 남았다. 먹다가 제법 세게 쥐었는지 과자 부스러기들이 손에 남고 바닥에도 흩어져있었다. 엉망이었다.

 

하하하하...”

 

이상하게 술을 마시면 패치는 웃음이 나왔다. 평소에 안 웃고 못 웃은 만큼 웃는 걸까, 웃길 일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웃게 된다. 그러다가 술은 평생치의 웃음을 끄집어내는 것도 모자라 집중력마저 빼앗아갔다. 패치는 일어나서 빈 캔과 과자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는 것도 까먹고 거침없이 발을 움직였다. 과자를 밟았는지 작게 빠직 부스러지는 소리와 양말 밑이 거슬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베란다 창문을 연 패치는 어느새 웃는 것도 멈추고 멍하니 밖을 봤다. 영화보고 길거리에서 난리치고 돌아와서 홀로 술판까지 벌였는데 하늘은 빨간 부분도 없이 시퍼렇다. 이렇게 대낮에 술을 이렇게까지 많이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끝도 없이 웃음이 나올 줄 알았는데 파랗고 아득한 하늘을 보니 이상하게 나오던 웃음도 뚝 끊어졌다. 어쩐지 귀가 웅웅거리는 느낌에 패치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선배님...?”

 

도어락 소리는 미처 못 들을 정도로 웅웅거리는 상황에 저 선배님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선명하게 들릴까. 패치는 멍한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재수없게 매끈한 평소와는 달리 한쪽이 퉁퉁 부은 얼굴이 저기에 있었다. 어쩐지 패치는 그 얼굴이 너무 웃겨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부은 거에 더 해 일그러지기까지 했다. 시야 때문일까 저 얼굴이 찌푸린 걸까. 더 웃겨서 더 웃었다.

 

선배님 이게 무슨...”

 

아까부터 너무 웃어 가슴께가 아팠던 패치는 조금 수그리다가 뒤로 등을 기댔다. 난간은 날갯죽지를 아슬아슬하게 받치는 형태라 그 위는 휑했다. 어쩐지 난간에 닿는 부분이 간질간질해 이대로 뒤로 넘어가면 날아가버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난간을 경계로 몸을 앞뒤로 흔드니 저 얼굴이 더 일그러졌다. 저기서 더 일그러질 수 있다니 너무 웃겼다.

 

일그러진 얼굴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패치의 웃음보를 건드렸다. 숨을 넘기며 몸을 완전히 뒤로 넘긴 순간, 몸이 앞으로 확 당겨졌다.

 

웃는데 온 힘이 쏠려서 그런지 감각이 둔했지만 어지러워지고 바로 아래로 내려간 시야 덕에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건 패치 본인도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술이 휘저어놓은 머리는 웃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멈춰 세워 멍하게 만들었다.

 

“....이번엔...대체 왜...!!”

 

저 일그러지다 못해 터진 찐빵이 뭐라 소리치고 있는데 들리질 않는다. 눈만 도륵 굴려 위를 보니 찐빵 속의 노란 무언가랑 마주쳤다. 모든 게 흐릿한데 저 노란 건 유독 선명했다.

 

왜 저를 이렇게 실망시킵니까 왜!!”

 

실망이라는 단어를 천천히 곱씹었다. 하지만 상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억센 손이 패치의 멱살을 붙들어 매었다.

 

그래요. 기대조차 안 하는 게 나았겠죠! 하지만 전 절망 밑에 더 한 실망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과연 선배님이에요, 선배님에게 비롯된 모든 건 제가 생각한 모든 것도 모자라 제가 몰랐단 부분마저 뛰어넘는군요. 그것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던 부분마저!!”

 

실망을 곱씹던 패치는 천천히 눕혀지는 걸 느꼈다. 곧이어 멱살을 잡던 두 손이 천천히 타고 올라와 목을 감싸는 걸 느꼈다. 이걸 느낀 건 두 번째였다. 곧이어 손끝으로 힘이 가해지는 걸 느낀 패치는 주먹을 꽉 쥐고 부은 자리를 한 대 더 후려쳤다.

 

뻐억! 제대로 들어간 소리와 함께 패치는 술이 확 깼다. 천천히 돌아오려는 고개에 맞서 주먹을 한 차례 더 휘둘렀다. 송곳니가 입술을 찢었는지 치트의 입가에서 피가 흘렀다.

 

자네가 감히 왜 실망을 논하나?”

 

패치는 제 목을 감싸 쥔 손목들을 붙잡아 꺾었다.

 

예전에 이미 한 번 말한 것 같지만 실망은 내가 했네.”

 

그대로 치트를 밀쳐서 일어난 패치는 치트를 내려다봤다. 노기를 띄어 형형하던 눈빛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흐리멍텅한 눈이 보였다. 그런데도 시선은 절대 패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 시선을 피해 흔들리는 머리를 붙잡고 천천히 화장실로 도망쳤다. 화장실 문을 단단히 잠근 패치는 변기통 앞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그대로 속을 게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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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은 것과 배가 고픈 건 별개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 텅 빈 위장이 배고픔을 호소했다. 패치는 바깥으로 나오면서 바로 보이는 편의점으로 들어가려했다. 문이 열리고 들어가기 직전, 제 손을 잡아끄는 힘에 안으로 한 발 내딛지도 못했다.

 

배고프시죠? 근처에 아는 맛집이 있으니 거기로 가죠.”

 

대체 이 근처에 자네가 아는 맛집이 왜 존재하나?”

 

선배님께 맛있는 걸 먹이기 위한 저의 피나는 노력 덕분이죠~”

 

생글생글 웃는 얼굴과는 반대로 잡아끄는 힘은 꽤나 강압적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드러날 정도로 심사가 뒤틀렸다는 걸 느낀 패치는 덩달아 짜증이 올라오는 한 편, 무엇이 치트의 신경을 건드렸을까 궁금했다.

 

파스타 좋아하십니까?”

 

아니.”

 

여기 파스타가 맛있습니다. 들어가죠.”

 

귓등으로도 안 들을 거면 대체 뭐하러 묻는 건가?”

 

선배님도 제 말을 들어주시지 않잖습니까?”

 

들어야하나?”

 

패치는 끌려가는 힘에 저항하며 자리에 우뚝 섰다.

 

내가 자네 말을 들어야하나?”

 

치트는 천천히 돌아봤다. 뒤틀렸던 심사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져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얼굴로 웃으면서

 

이미 두 번이나 들어주셨죠.”

 

곧바로 그 얼굴 위에 주먹이 꽂혔다. 머리가 흔들리면서 몸도 휘청거리며 균형을 잃었지만 꽉 쥔 손이 끝까지 넘어지지 않게 꽉 잡아 붙들었다. 주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달아 같은 자리를, 다른 뺨과 눈 위, 이마, 코 전부 때렸다. 코피가 터지고 피멍이 들면서 부풀어 올라 얼굴이 흉하고 아프게 일그러졌다. 그런데도 행복이 가득 담긴 웃음은 더욱 선명해졌다.

 

멱살이 아닌 손을 잡고 있었다. 때린 횟수가 10번은 넘었음에도 바로 붙잡아 제압하는 억센 손도 없었다. 과거의 영광을 액자에 기리던 어두컴컴한 실내가 아닌, 사람들이 지나가고 뒤에 들어가는 문이 있는 실외였다.

 

자네는 지금 주저앉아있지.”

 

.”

 

보라머리 끄나풀도 없고.”

 

.”

 

지나가는 사람들 전부가 증인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일세.”

 

.”

 

입술 바로 옆 또한 때렸는데 나오는 대답은 뭉개지지도 않고 선명했다.

 

그런데도 똑같군.”

 

그렇습니까?”

 

행복이 더 깊어졌다. 치트만 행복했다. 패치는 쥐고 있던 손을 내동댕이쳤다.

 

원래도 그랬지만 앞으로 밥은 따로 먹게.”

 

패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떴다.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지 않고 유일하게 다른 말이지만 둘 사이를 이루는 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손이 욱신거렸다. 무언가를 던지거나 묶는데 익숙했던 손은 의외로 때리는데 어색했다. 패치는 손이 느끼는 고통에 집중하면서 영화가 끝난 이후의 상황을 쭉 되짚어봤다. 결론은 이미 정해져있다. 치트는 이미 미친 새끼였고 앞으로도 계속 미친 새끼였다. 미친 새끼의 심사가 뒤틀린 원인을 찾는 것만큼 의미가 없는 건 없었다.

 

그런데 그 미친 새끼가 이혼도 불가능한 법적 혼인신고 상대에다 적어도 1년간 절대 떨어질 수 없다면 매우 큰 의미가 있는 거였다.

 

편의점의 가장 큰 장점은 번화한 도시라면 어디에나 있다는 점이었다. 횡단보도 건너고 한 골목 꺾으니 또 다른 편의점이 바로 나타났다. 이번 편의점은 방해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끼니를 때우기 위해 도시락 하나와 마른 간식들 두어개를 집은 패치는 잠시 카운터에 올려두고 바로 냉장고로 향했다.

 

미친 새끼를 이해할 순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친 새끼의 반응은 끌어내고 볼 수 있다.

 

패치는 맥주를 종류별로 하나씩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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